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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본 한국
게시물ID : history_124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atriceEvra
추천 : 13
조회수 : 2608회
댓글수 : 32개
등록시간 : 2013/11/03 06:13:41

 
☞ 뉴!쭉빵카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저작권리는 글쓴 회원에게 있습니다.]
↑ 뉴쭉인 권리 보호마크임. 지우지말고 글쓰세요~






1. 마크 트롤로프는 그의 책 [The Church in Corea](1915)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말하면서 일본사람들보다는 어깨 위로 머리 하나 만큼은 크며 건강하고 잘 생겼다고 했다.


특히 천주교인들이 신앙을 위하여 순교하는 충실함을 찬양하고 있다. 또한


조국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는 등 용기있는 백성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2. 정확하고 빠른 운동에서는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강한 자립심과 자유로운 동작을 보이고 있고, 크기와 강한 점에서


중국인과 비슷하고 일본인보다는 우월하다.


국민의 좋은 특징과 질적 우월성을 비교하면 조선이 중국에 비해 단연 우위이다. 
(독일인 Ernst Oppert 의 <조선기행 Reisen nach Korea> 중)



 



저도 이걸로 올리고 싶진않았습니다만......이미지가 별다른게 없어서..


말년님께 심심한 사과의 위로를..


 


  


3. 한국인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한국인은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하다.


한국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를 상당히 타고 났다.


외국인 교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한국인의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 나아가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중)


 


 



-ㅎㄷㄷㄷ 맵시포스 평민..


 


 


 


 


 


4.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인은 잘 생긴 민족이다. 한국인의 얼굴은 타원형이고 정면에서 볼 때는 대체로 길지만,


옆 모습은 약간 오목하다. 코가 양미간에서 약간 평평하고 콧구멍이 넓기 때문이다. 

<참고1> 송나라 사신이 본 고려인의 특징 
".... 인물과 의복은 비록 대략은 중국과 같지마는 고려인은 대개 머리에 침골(枕骨)이 없으나 중이 되어 머리를 깎아 버리면 침골없는 것이 보이는데 퍽 놀랍고 이상하다. 옛날 [진사(晉史)]에는, 삼한(三韓) 사람들은 갓난 아이를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만든다고 하였으나 옳지 않다. 대체로 종류와 타고난 기품에 따라 그렇게 (납작하게) 되는 것이지 반드시 돌 때문에 넙적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 ( [고려도경] 중에서 )


 


5. 한국인들의 일상적 표현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활기차다.


얼굴 생김새는 가장 잘 생긴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아 힘이나 의지의 강인함보다는 날카로운 지성을 나타낸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잘 생긴 종족이다. 체격도 좋은 편이다.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3.4센티미터이다.


여자의 평균 신장은 확인할 수 없는데, 세상에서 제일 보기 흉한 옷 때문에 그 결점이 과장되는 여자들의 모습은 땅딸만하고 펑퍼짐하다. 남자들은 힘이 매우 세어서 짐꾼들에게 45킬로그램의 짐은 보통이다.


가족 생활은 대가족제이며 도덕적으로 지극히 건강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위의 책 중)


 


 



 


 


 


6. 조선인은 대단한 지적 능력이 있으며 예리하고 탐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단력을 갖춘 자랑할만한 민족. 조선은 위대한 가능성의 나라.
(영국 선교사 알렉산더 윌리엄슨의 글 (1870) )



 



 사진제목이 마지막선비 라고하더라군요



 이그림을 보니


음? 엽혹진 할때가 아닌데 라고생각하게되네염-_-..


 


10.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도적질이 일어나기 힘든 훌륭한 교육.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없다.


 협잡을 업으로 하는 관아의 심부름꾼과 그들의 횡포, 그들의 악행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줄어들고 소작료가 적정히 책정되고 수납된다면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여행자들은 한국인의 게으름에 많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러시아령 만주에서의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근면함 그리고 그들의 검소하고 유족하고


안락한 집의 가구들을 보고 난 후에 나는 그것이 기질의 문제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관리들의 수탈이 아주 견딜 수 없게 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마저도 빼앗겼을 때에만 한국의 농민들은 폭력을 통한 절망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 ...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11. 마을마다 북과 나팔, 피리, 몇 개의 솥 뚜껑이 있어서, 흔히 여름철의 고달픈 노동 시간 중에


한참 동안 일손을 멈추고 힘껏 합주하여 피로를 푼다.....


조선 사람의 커다란 미덕은 인류애 법칙을 선천적으로 존중하고 나날이 실행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동업 조합이나 특히 친척이 서로 보호하고 서로 원조하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부조하기 위해 긴밀히 결합된 단체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동포 감정은 혈족 관계와 조합의 한계를 넘어 확대되어 간다.


상호부조와 모든 사람에 대한 혼현한 대접은 이 나라 국민성의 특징인데, 속직히 말하여 그런 특징은 조선 사람을 우리 현대 문명의 이기주의에 물든 여러 국민들보다 훨씬 우위에 서게 하는 것이다. 
( 프랑스 신부 달레(C.C. Dallet)의 <조선교회사 서설> 중 )


 


12.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모나지 않고 상냥하며 남에게 순종을 잘하는 성품을 갖고 있다.


그들은 중국어를 이해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음악과 춤에 천품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고운 마음씨는 예나 다름이 없어 다른 민족의 모범이 되기에 넉넉하다. 
(프랑스 선교사이며 지리학자인 뒤 알드(Du Halde)의 글)



 


 


 


 


 


 


13. 아시아 민족 중에서 조선인보다 더 음악에 대하여 열렬한 애호심을 가진 민족은 없을 것이다.


군부의 어느 대신이 손풍금의 연주에 감동하여 평소의 엄숙한 태도를 던져버리고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오페르트)


*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어느 민족보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를 전문가들은 우리 전통사회가 드물게 보는 억압적인 사회였기에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을


정서적으로 발산시키는 수법으로 노래가 이용됐다는 이론을 든다.


한이나 원을 스스로 풀어야 하는 성격 때문에 우리 민족은 노래 중에서도


독창이 발달했고 그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미친듯이 악을 쓸 수 있는 노래방이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것이다.


 



 


 


<참고2> ". .... 한국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에 있게 된 것이 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은 내가 가본 나라 중에서 가장 노래를 많이 부르는 나라'라는 것이다. 나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 뉴질랜드 일본 태국 베트남 영국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았고 여행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노래를 잘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노래를 부를 자세가 되어있다. 혼자서도 부르고 여럿이 같이 부르기도 한다.


 라디오를 따라 흥얼거릴 때도 있고 텔레비젼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같이 부를 때도 있고, 길을 걷거나 차를 운전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5년 동안 근무한 일본에서도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자주 가라오케에 가곤 했다. 몇몇 대회에 나가 상을 탄 적도 있고 텔레비젼에 출연한 일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뭔가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과 같은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노래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은데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는 않다....... 정말 한국인은 어디서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박찬호 선수가 공을 던질 때도 노래를 할까? 잠실 야구장에 가서도 관중들이 응원하는 광경에 감동받았다. 야구장에서 관중들이 얼마나 노래를 많이 부르는지, 도대체 이 사람들이 노래하러온 것인지 야구를 보러온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은 노래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일요일 명동성당 미사에 갔을 때 들은 합창이다. 미국의 성당에서 다 같이 노래하는 것은 대개 억지로 하는 일 같은 것으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같지만한국 카톨릭 신자들이 노래하는 것은 진짜로 노래하는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느낀 것은 그들이 정말로 그곳에 있고 싶어 하고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일까. 한국인들은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 이 의문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주한 美 공보원 공보관 패트릭 리네핸. 주간조선 97.8.7일자) 



 


 


 




 


14. 조선 사람들은 양반이나 서민이나 활쏘기를 좋아한다. 정부는 이 운동이 훌륭한 사수를 길러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장려하고 있다. ..... 조선인들은 유약하다거나 비겁하지 않다. 신체의 단련이며, 활쏘기, 사냥에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피로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위 달레 신부의 글 중 )


 


15. 남자들은 석전(石戰)을 매우 진지하게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른 봄이 되면 서로 적수인 두 마을 사람들은 얼어붙은 들판에 모여 어느 편이 힘이 센지를 겨루는 시합을 한다. 머리에 새.끼줄로 만든 헬멧을 쓰고 곤봉으로 무장한 선발대가 중립 지대를 가로 질러 상대편에게 덤벼들면 후방에서 방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언덕을 달려 내려가 상대편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이들은 돌팔매질을 능숙하게 하기 때문에 돌팔매질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일반적으로 이러한 실감나는 싸움 끝에는 몇몇의 사망자와 심한 부상자들이 많이 생긴다. 내가 조선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이러한 싸움이 벌어진 후, 전두골의 두개골판이 부숴져 뇌가 들여다 보이도록 심하게 다친 한 남자가 나를 찾아 왔다. (헐랭-_-;;;;;다이나믹)
( 의사, 외교관이었던 H. A. 알렌의 <조선견문기 Things Korean > 중)


 


 


16. 조선에서 내가 처음으로 한 절단 수술은 호랑이의 공격을 받은 어느 조선인의 팔을 절단하는 일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행한 절단 수술이었다. 그 환자는 팔꿈치 위쪽의 팔뼈가 물려 살이 썩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건강하게 회복되어 그 환자의 친구들은 무척 놀라워했다. 그는 호랑이와 외국인 의사로부터 살아서 돌아갔지만, 이제는 팔 없이 조상에게 가야 할 형편이었다. (알렌의 글 중 )


 


 


17. 한국에서 호환이나 금에 관한 이야기만큼 많은 화제거리가 있을까 싶다. 한국은 금생산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며 금부스러기들을 마치 금의 사태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 호랑이와 귀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밤에는 거의 여행하지 않는다. 관리의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이 부득이 밤에 여행해야 할 경우에는 마을에 들러 횃불가진 사람들의 호위를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행할 경우 길손들은 보통 몇몇이 서로를 끈으로 묶고 등불을 밝히고 횃불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꽹과리를 치며 길을 간다. 한국 사람의 호랑이에 대한 공포는 너무나 유명해서 '한국 사람은 일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일년의 나머지 반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중국 속담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비숍 여사의 글 중 )


 


 


 


18. 사람이 수백 명이나 살고 있는 꽤 큰 마을에서 나는 벌써 여러 번이나 키가 서로 틀리지만 나무로 만든 막대기가 여러 개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과연 이것은 특별한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자세히 보았을 때 나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가! 자세히 알고 보니 이것은 바로 동리의 우상신이었으며, 사원 혹은 기도소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것을 보호할 생각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행길 가의 땅바닥에 그냥 박아 놓았을 뿐이지 그 이상은 아무 의식도 갖추지 않고 있었다. 키가 대강 두 자에서 네 자 가량 되는 통나무 토막에 하느라고 하였다는 장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이 그 나무 껍질을 벗기고 그 위쪽 끝에다가 가장 원시적인 기술로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을 새긴 것이 곧 모든 장식이다. ( 오페르트)


 


 


19. 한국은 유교로부터 윤리를, 불교를 통해 미래의 소원을,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병이나 초상 등 민감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무속 신앙에 의존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종교를 무리 없이 포용하는 그들의 삶은 인상적이다.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학자)


 


 


20. 한국 사람들은 과음하는 관습이 유난스러워서 주정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예리한 비숍여사인데?). ... 내가 한강을 여행하며


관찰한 결과로는 취해버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품위를 떨어 뜨리는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인이 술을 좋아하는 첫번째 원인은 아마 도시에서조차도 차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과 사치스러운 청량음료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듯하다. 아마도 식수로 쓰는 물이 훌륭해서 대부분 그냥 먹을 수 있는 탓일 것이다. 농부들은 식사 후에 뜨거운 숭늉을 마시며, 꿀물은 사치품으로 생각하고, 잔치 같은 경우에는 귤 껍질이나 생강에서 우려낸 액체를 마신다. 귤껍질을 말리는 것은 한국 주부들의 큰 일 중의 하나이다.


모든 초가집 지붕에는 말린 귤 껍질들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비숍 여사) 


 


 



 


 


<참고4> 고려시대 음주 문화 
" 고려인들은 술을 좋아하되 좋은 술은 얻기가 어렵고, 서민들이 마시는 것은 맛도 싱겁고 빛깔도 탁한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맛있게 마신다." ( 宋의 사신 서긍의 [고려 도경] 중에서 )


 


<참고 5> 현재의 한국 
세계 4위의 양주 수입국, 세계 1위의 1인당 술 소비량, 음주운전 적발과 그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은 나라. 1년에 소비되는 술 값 = 4조 6백억원, 음주에 따른 사회적 손실 = 9조 8천억원


-_-... 


 


21. 동북 아시아 지방에 있는 주택에는 고래가 있다. 고래는 관(管)으로 된 일종의 화덕으로서 감자를 굽듯 사람을 굽는다. 서양 사람들이 벽돌로 침대를 만들고 그 밑에 발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를 설치한 것과 똑 같다. 집의 한쪽 끝에 있는 아궁이로부터 다른쪽 끝의 굴뚝에 이르기까지 연관(煙管) 위를 벽돌이나 구들로 덮는다. 그래서 부엌에서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고기를 굽는 불은 저쪽 방 안에서 앉아 있거나 자고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데 사용된다. 다만 불을 때지 않으면 방이 차갑게 식고 밑불을 죽이면 열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애로가 있다. 
(W.E. Griffis의 <은자의 나라 한국 Corea, The Hermit Nation>중)  

 



 

 


22. 농부나 일꾼들이 사는 집이 아무리 누추하다 하더라도 항상 깔끔한 작은 침실이 딸려 있는데, 진한 갈색의 유지가 발라져 있는 구들과 시멘트로 된 방바닥은 하루에 두 번씩 밥을 하느라고 때는 불 때문에 항상 따뜻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들은 이웃 나라 사람들보다 더 편하게 산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일본의 집들은 춥기로 유명하고, 유일한 난방 시스템은 손가락을 따뜻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화로가 전부이며, 또 중국의 집들은 아주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가지 난방 시스템은 북쪽 지방에서 사용되는 식으로 불에 달군 돌 이외에는 집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중부의 가옥들은 매우 추울 경우에도 집이 전혀 따뜻하지 않아 사람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그저 옷을 더 껴입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국인 여행가인 헨리 노먼은 조선을 여행하는 동안 놀랍고 아름다운 이 나라를 매우 칭찬하였으며, 베이징을 방문한 후에 조선의 수도인 서울은 베이징과 비교하면 천국이라고 쓰곤 했다.  (알렌의 견문록 중 )


 


 



 


23. 조선인들이 등으로 크고 무거운 짐들을 쉽사리 운반할 수 있다는 것에는 벌써 주목을 하였지만, 이곳 공주(公州)에서는 운반하는 짐의 무게가 차원이 달라 두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짐을 운반하는 기술에는 수천년의 경험이 어려 있다. 최소한의 힘을 들여 최대한의 무게를 운반하는 비결은 그들에게는 더 이상 비결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지게는 아주 이상적으로 고안이 되어 있어서, 엉덩이와 등, 어깨에 무게를 고르게 전달한다.


이런 이유로 다리만 지탱할 수 있는한 엄청난 짐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을 빼놓고는 이 방법을 착안한 민족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운반력이 강한 중국인과 폴리네시아인들의 경우, 어깨 위에 걸친 막대의 양쪽에 짐을 걸고 무게 중심을 맞추는데, 만약에 짐이 분할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일 때에는 막대의 다른 한편에 무게가 같은 물건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또한 운반하는 데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 이렇게 운반하는 사람을 지나칠 경우, 이 사람이 갑자기 방향을 틀 때는 운반대에 죄없이 한 대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지게의 경우는 훨씬 간단하다........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대량의 짐을 장거리 운반하는 능력과 엉망인 도로 사정은 코레아가 수백 년 동안 대부대의 행상을 갖게 된 원인이


되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의 <코레아 코레아 > 중 )


 


 


 


 



 


 


26. 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냄새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 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어떤 빨래감은 실을 뽑아 다시 꿰매야 하며, 또 어떤 빨래감은 부뚜막에서 적어도 세 번은 삶아야한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나무판에 억척스럽게 문지르거나, 판판한 돌 위에 놓고 무거운 방망이로 힘겹게 두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것들을 들고가 빨랫줄에 널어 말린다. 빨래가 다 마르고 난 뒤에는 다시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둥근 나무 방망이로 두꺼운 공단처럼 광택이 날 때까지 한없이 두드린다.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 서울의 깊은 밤, 그 괴괴한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가 있다면 한밤내 잠 못 자고 다닥 빨래감을 두드리고 있는 다듬이 방망이의 그 쓸쓸한 소리이다. (비숍 여사의 글 중)


 



아 저기여자분 너무이쁘시네요ㅋㅋㅋ딱 나닮았어^▽^


빨래하는게.................


 


27. 옷은 특히 모시 옷일 경우에는 다림질하는 대신에 비단과 같은 광택이 나도록 하기 위해 다듬이질을 한다. .... 네개의 방망이가 내는 율동적인 소리는 매우 기이하여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은둔 생활을 하는 조선의 여인들은 인내성이 강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일변하여 매우 광포해지기 때문에 생각하기조차 무시무시하다. 그때 다듬이 방망이는 무시하지 못할 믿음직한 무기가 되며, 남자들도 그 방망이를 무서워한다.. (알렌의 글 중)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매우 광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6> 한국인과 흰 옷 
① 고대 한국인들도 흰 옷을 즐겨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인들은 흰 옷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소매가 큰 두루마기와 바지를 입었다. 이러한 풍습은 고구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문헌에는 신라인들이 흰색 옷을 숭상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백제에 대해서도 의복이 청결하다는 점을 일부러 밝혀놓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는 것은 밝고 깨끗하고 우아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의복 생활에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②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테]의 국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주)서광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옷 색깔은 하얀색이다. 국내에 내놓은 45개 색상 라코스테 셔츠 중에서 지난해 판매율이 가장 높은 것이 [흰 색]으로 28.7%를 차지했다. 2위는 빨강 7%, 이어 하늘색(6.8%), 검정(6.4%), 밝은 핑크(6%), 짙은 청색(5%), 연두색(4.6%), 베이지색(4.4%), 노랑(2.7%) 순이었다. 이에 비해 유럽인은 짙은 청색(네이비 블루)를 즐겨 입는다. (조선일보 97.5.27일자 



 



 지금까지 첨부한 사진보면 정말 거의 다 백색의 옷을 입고계신게 보이죠?ㅋㅋ 


 


 


 



 


 


29. 모자를 쓰지않은 한국인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다. 모자의 종류도 수천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모자 왕국이다.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다양한 모자를 지니고 있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공기와 빛이 잘 통하고 여러 용도에 따라 제작된 한국모자의 패션을 파리인들은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프랑스인의 기록 ) 


 


1877년 영국 화보지 그래픽지 [조선의 모자]라는 특집 다룸.


 


30. 영국인 여행가는 신변보호를 위해 경호원을 쓰는 대신 한국인들이 가장 호기심을 갖는 서양의 잼, 통조림, 빵 등을 소지하였으며,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이것들을 보이며 어려움을 돌파했다. 특히 조선인들은 성냥에 매료돼 서로 성냥을 켜보려고 몰려들기도 했다. 이 덕분으로 조선의 지방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 영국의 화보잡지 [그래픽] 1888년 12월 22일자)


 


31. 사당에서 정상을 올려다 보면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구비구비 이어진 숲의 물결, 시냇물의 아스라한 반짝임, 구릉의 완만한 선들, 그 위로 해발 1829미터가 넘는 금강산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 있었다. 아, 나는 그 아름다음, 그 장관을 붓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진정 약속의 땅 ( A fair land of promise ) 인저! 진정코 ! 
(비 숍 여사)


 


 


32.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의 운명을 놓고 서로 대결한 상태에 ,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의 겨울 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 기선인 상하이행 헨릭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그리고 헨릭호가 강 위로 천천히 증기를 발산하며 움직일 때, 옛스러워 흥취있는 한국의 국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의문들을 자아내었다. (비 숍 여사)



 



 



 


 


33. “‘코리아’ 민족은 양반들뿐만 아니라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 들조차도 귀족의 티가 흐른다.


 체격과 외모 면에서도 일본인, 중국인들과 비교해 매우 귀족적이다.


특히 여성들은 일본, 중국 여성들보다 훨씬 미모가 뛰어나다.


또한 머리 전체를 뒤로 땋아 넘 긴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은 헝가리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여


퍽 인상적이었다. (헝가리 민족학자 바라소시 1929년 '코리아..'펴내)


 


 


 



 


 우리나라를 사랑합시다


















2차출처: 한열사 -여신 아프로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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