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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16.저리자.감무열전
게시물ID : history_124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9
조회수 : 67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1/02 16:38:42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http://www.podbbang.com/ch/6526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필자는 사기열전에 이 저리자.감무의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글을 읽으며 그리 재미를 느끼지도 못하였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그저 소소한 공이 없다 할수 없을 정도의 인물이라 생각하는데
사마천은 두사람의 이름을 사기열전에 올렸다.
자세히 읽고 또 읽어도 그리 대단한 사건도 없었으며 이 두사람의 행적이나 업적이
후세에 길이 빛날만큼 커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두사람은 열전에 올라 후세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니
이는 그저 두 사람의 공적이 진나라를 융성시키고 천하통일로 가는길의 한 징검다리정도는
되었는가 싶다.
 
진나라가 동쪽 의 길을 열때 이 저리자.감무의 역할이 컸던것은 틀림 없으니
이에 저리자.감무열전을 서술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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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신정(九龍神鼎)
 
저리자(樗里子)또는 화리자 질(疾) 이라고도 하는데 저리.또는 화리 라는것은 그가 나중에 받은
봉읍의 이름이고 질 이 그 이름이다.
서적마다 부르는 이름이 차이가 있는것은 한자의 독음이 하나뿐이 아닌때문일것이다.
전번에 언급한 상앙 이 원래 이름이 공손앙 인데 위나라사람이므로 위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상 땅을
하사받아 상군에 봉해졌으므로 상앙 이라고 부르는것과 매 한가지이다.
아무튼 저리자.화리질 다 한사람을 부르는 여러이름이므로 여기에서는 저리자 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아무튼 이 저리자는 진(秦)혜왕의 이복동생이며 어머니는 한 (韓)나라 공주이다.
진혜왕의 동생이면 진나라 왕족인 영(嬴)씨일 것이니 저리자의 이름은 영질 이라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저리자는 변설이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해서 진나라 사람들이 그를 지혜주머니 라고 불렀다.
 
진혜왕 8년에 곡옥땅을정복하여 진나라의 판도를 넓혔다.
진혜왕25년에 저리자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조나라를 치게 했다.
조나라를 쳐서 여러 장수를 포로로 잡았고 이듬해에는 초나라를 쳐서 초장 굴개를 깨고 한중땅을 얻었다.
진나라는 저리자를 엄군 으로 봉하였다.
진혜왕이 죽고 태자가 왕이되니 그가 바로 진무왕이다.
진무왕은 저리자에게 병차 100대를 주어 주나라에 들어가게 했다.
진무왕이 죽고 진소왕이 즉위했다.
소왕은 무왕때보다 더욱 저리자를 존중했다.
소왕7년에 저리자는 죽었다.
진나라 속담에 "힘은 임비.지혜는 저리자" 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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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무(甘茂)는 하채사람이다.
하채의 사거선생 문하에서 제자백가의 학설을 배우고 장의.저리자를 통해 진혜왕을 뵈었다.
혜왕은 감무를 좋아하여 장군으로 삼아 한중땅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던중 혜왕이 죽고 진무왕이 즉위하였다.
이때에 촉나라가 반란을 일으켜 초무왕은 감무를 시켜 촉을 평정하였다.
감무가 돌아오자 진무왕은 감무를 좌승상.저리자를 우승상으로 삼았다.
감무는 한나라 의양땅을 공격하여 군사6만을 베고 승리 하였다.
저리자와 감무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일종의 경쟁자 관계였다고 할수있다.
감무는 나중에 진나라에서 도망쳐 위나라에 살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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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가 조금 더있으나 열전에 나온 저리자.감무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나 다름없다.
보는바와같이 별로 대단할것도 없다.
그래서 저리자.감무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그 당시의 사세와 형편에 관한 일화나 하나 소개해보려 한다.
 
원래 천하 여섯나라는 다 정승을 두고 있었다.
진나라는 여섯나라와 같이 정승이란 명칭을 쓰는것이 싫었다.
그래서 진나라는 정승을 승상 이란 직책으로 고치고 좌승상.우승상을 각기 한명씩 두었다.
저리자가 우승상이 되고 감무가 좌승상이 되었다.
 
진무왕은 장의가 이야기한 왕업 이란것이 잊혀지지않아서 우승상 저리자와 상의했다.
"과인은 서융땅에서 자라 중원의 문물이 대단하단 말만 들었지 한번도 가보질 못했소
만일 삼천을 무찌르고 주나라 낙양땅을 구경할수있다면 곧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저리자는
"주왕실을 가보려면 반드시 한나라를 공격해야 하는데 한나라는 멀고 지세가 험하기때문에
수많은 군사를 수고롭힐것이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이는 불가합니다"
라고 하였다.
진무왕은 다시 좌승상 감무와 이일을 상의 하였다.
감무는
"왕께서 정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제가 위나라에 가서 함께 한나라를 치자고 교섭해보겠습니다."
라고 하였고 이에 진무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감무는 위나라로 들어가서 위애왕과 이일을 교섭했다.
나약한 위애왕은 진나라를 돕기로 약속했다.
 
우승상 저리자와 서로 시기하는 사이인 감무는 진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위나라가 이일을 허락한것을 알리고 그러나 한나라를 공격하지는 말도록 말을 전한다.
감무의 말을 의아하게 생각한 진무왕은 감무가 돌아오자 한나라를 치지 말자고 한 말의 뜻을 물었다.
감무가 대답 하였다.
"예전에 공자의 제자로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증삼과 이름이 똑같은 마부 증삼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마부증삼이 살인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자의 제자인 증삼의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당신의 아들 증삼이 살인을 했다' 고 알렸습니다.
이때 베를짜고있던 어머니는 눈빛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내아들 증삼은 효자라.결코 사람을 죽일아이가 아니오.'라고 말하고는 계속해서 베를 짰습니다.
그런데 조금후 다른사람이 들어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 고하자 그 어머니는 잠시 베짜던 손을 멈추고
'세상사람이 다 살인을 해도 내아들은 그런 사람이 아니오'
라고 말하고는 다시 베를 짜더랍니다.
잠시후 또한사람이 들어와서 '사람을 죽인자의 이름이 틀림없이 증삼이다' 라고 말하자
그 어머니는 그제서야 베짜던 북을 내던지고 관가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진왕이 물었다.
"그이야기를 어째서 내게 하는거요?"
"증삼의 모친은 아들이 어진사람임을 굳게 믿고있었지만 세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침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은 증삼처럼 어질지가 못하고 대왕께서는 저를 믿는것이 증삼의 모친만 못합니다.
그러한데 지금 저를 모함하는사람이 어찌 세사람 뿐이겠습니까?
만일 누가 '감무가 사람을 죽였다' 고하면 대왕께서는 세번은 커녕 한번에 믿어버릴것이 틀림없으니
저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진무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일 누가 그대를 모략하더라도 나는 절대 그말을 믿지 않을것을 맹세하겠소."
이에 임금과 심하는 입술에 희생의 피를 바르고 그 맹세를 한 곳 식양땅의 지명까지 기입한 맹서를 써서 각각 한통씩 나눠 가졌다.
 
이리하여 감무는 마침내 대장이 되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한나라 의양땅으로 쳐들어 갔다.
그러나 의외로 한나라의 저항이 완강하여 몇달이 지나도 의양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저리자와 공손석등 대신들이 감무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진무왕도 그들의 말을 어쩌지 못해 감무에게 회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감무와 그의 군사들은 돌아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일봉서신을 보내왔는데
그 봉서를 뜯어본즉 [식양(息壤)]이라는 두글자만 적혀 있었다.
즉 전날에 식양땅에서 왕과 자기가 한 약속을 잊지말라는 뜻이었다.
진무왕은 그제야 크게 깨닫고 지원군을 보내주어 감무를 돕게 하였다.
 
감무는 결국 적군의 목 6만을 베고 의양땅을 빼앗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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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왕은 감무를 소환하고 우승상 저리자를 삼천으로 보내 길을 열게 하였다.
마침내 진무왕은 천하장사 임비와 맹분등 장수들을 거느리고 의양을 거쳐 삼천을 지나 주나라 낙양땅으로 들어갔다.
이때 주난왕은 진무왕을 영접하려고 교외까지 나왔지만 진무왕은 주천자를 만나볼 필요가 없다하여
회견을 거절하고 곧장 주나라 태묘로 들어갔다.
주나라 태묘에는 천자를 상징하는 구정(九鼎)이 있었다.
이 구정이라는것은 옛날 중국 아홉개주에서 쇠를 거두어들여 만들어놓은 아홉개의 솥인데
그 각각의 솥에는 각주의 산과 강이름,그 고을의 유명한 인물,그 고을의 부세,공물의 수량,그 지역의 전답과 넓이등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각 솥의 솥발과 솥귀에는 정교한 용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구룡신정(九龍神鼎)이라 불렀다.
 
옛날 하나라가 천하를 상징하는 보물로 상나라에 전하였고,주무왕이 상나라를 치고 주나라를 세울때
무수한 군사를 동원하여 아홉개의 솥을 수레와 배에 나눠싣고 이곳 낙양으로 옮겨놓은것이다.
이 아홉개의 솥은 마치 작은 철산과도 같아서 그 무게를 아는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진무왕은 그 아홉개의 솥을 일일이 둘러보고는 연신차탄하여 마지않았다.
각각의 솥에는 각기
형(荊).양(梁).옹(雍).예(豫).서(徐).양(揚).청(靑).연().(冀)등 그당시 천하구주의 이름이
분명히 새겨있었다.
 
진무왕이 옹(雍)자가 새겨져있는 솥을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진나라를 상징하는 그당시 옹주로구나.
과인은 이 솥을 우리나라 함양으로 가져가야겠다."
 
진무왕은 또 솥을 지키는 주나라관리에게 물었다.
"지난날 이 솥을 들어올린자가 있더냐?"
"자고로 이 솥하나의 무게가 천균(鈞)이라 하는데 누가 능히 이것을 들어올리겠습니까?
아직까지 솥을 들어올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진무왕이 용사 임비와 맹분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능히 이 솥을 들어올릴수 있겠는가?"
임비는 진무왕이 원래 힘도 세지만 승벽이 대단하단걸 알기때문에 짐짓 사양하였다.
"한 백균쯤 된다면 모르지만 천균이라면 저는 도저히 들어올릴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자 곁에있던 맹분이 팔을 걷어부치며 말했다.
"청컨대 신이 한번 들어올려 보겠습니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벌은 내리지 말아주십시오."
 
맹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솥에 큰 줄을 걸고는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솥을 들어올렸다.
순간 솥은 약 반자가량 땅에서 들어올려지는듯 했으나 곧 바닥에 내려지고 말았다.
맹분은 너무 과도하게 힘을 쓴탓에 눈알이 튀어나와 들어가질 않았고 눈초리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진무왕이 껄껄 웃으며말했다.
"그대는 솥을 겨우 들긴들었지만 겨우 반자정도였다.
과인이 힘은 없지만 그대보다는 높이 들어올릴수 있으리라."
 
곁에서 임비가 말리며 간했다.
"대왕은 만승의 고귀한 몸으로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진무왕은 그말을 듣지 않고 금포를 벗고 옥대를 풀고 튼튼한 가죽띠를 허리에 두르고 솥 앞에 섰다.
임비가 진왕을 가로막으며 재차 간했지만 진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말했다.
"그대는 능히 이 솥을 들지도 못하면서 과인을 시기하는가?"
임비가 기가막혀 뒤로 물러서자 진무왕은 심호흡을 하고 솥에 걸린 줄을 틀어잡고 힘을 모으며 생각했다.
<맹분은 약간 들어올렸으니 나는 이 솥을 들고 몇걸음 걸어야 겠다.
그러면 나의 힘을 알릴수 있을것이다.>
 
진무왕은 순간 힘을써서 솥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한걸음 내디디려하는 순간에 손에 힘이 쭉 빠지며 하늘이 노래졌다.
진무왕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놓았고 동시에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솥이 진무왕의 발에 떨어진것이다.
사람들은 솥을 치울필요도 없었다.
진무왕의 발이 완전히 떨어져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신하들은 기겁을하여 왕을 모시고 공관으로 돌아갔다.
그날밤 진무왕은 아픔에 몹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죽고말았다.
 
독자들은 진무왕이  "내 낙양을 한번 엿볼수 있다면 곧 죽더라도 여한이 없겠다" 고 한말을 기억할것이다.
과연 진무왕은 주나라를 엿보고는 곧 죽고 만것이다.
 
원래 진무왕은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왕의 서동생인 공자 직 이 뒤를 이었으니 그가 바로 진소양왕이다.
 
우승상 저리자는 진무왕이 솥을 들게 된것이 맹분 때문이었다고 하여 맹분과 그 일족을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임비는 그때 왕을 간하였다 하여 한중태수로 영전하게 되었다.
 
또 저리자는
"선왕을 낙양으로 가시도록한것은 좌승상 감무다."
라고하여 감무를 잡아들이라고 명하였다.
이 소식을 미리 들은 감무는 위나라로 도망쳐가서 그곳에 살다가 죽었다.
그는 진나라로 돌아갈 기회가 몇번 있었으나 결국 저리자와 공손석등 여러 사람의 방해로 인해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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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무에게는 감나(甘羅)라는 손자가 있었다.
감나는 12세의 나이에 재상 문신후 여불위를 섬겼다.
진나라 시황제는 연나라와 연합하여 조나라를 치기위해 사신을 보내어 회유했다.
진나라 사신은 연나라와 연합을 성공시키고 연나라 태자 단을 볼모로 삼아 진나라로 데려왔다.
 
진나라는 장군 장당을 연나라의 재상으로 삼기로 하였고
정승 여불위는 장당에게 연나라로 떠날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장당은 병들었다고 핑계를 대고 연나라로 가기를 굳이 거절했다.
이에 여불위는 친히 장당의 집에 찾아가서 재차 권하였다.
이에 장당이 역시 사양하며 말했다.
"나는 여러번 조나라를 친 일이 있기때문에 조나라는 나를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나라로 가려면 반드시 조나라를 거쳐야 하는데 가다가 조나라 사람들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나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여불위는 거듭 권했으나 장당은 끝까지 고집하고 사양했다.
하는수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온 여불위는 홀로 당에 앉아 고민했다.
이때 여불위 문하에 있던 감나 라는 어린 소년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대감께서는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어린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니 물러가라."
"자고로 선비라면 자기가 모시는 사람의 근심을 함께 걱정해야 할것인데
대감께서 자기 근심을 말하지 않으시니 저는 대감을 위해 힘쓸길이 없습니다."
 
그제야 여불위는 장당이 연나라로 가기를 거부한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자 소년 감나는 웃으며 이야기 했다.
"그런 작은 일로 고민하시는것이라면 왜 제게 일찍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가서 장당을 즉시 연나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불위가 꾸짖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고 썩 물러가라.
내가 직접 가서 청해도 거절을 당했는데 너같은 어린아이가 어찌 장당을 보낼수 있겠느냐?"
감라가 대답했다.
"옛날에 항탁은 일곱살때 공자의 스승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열두살이니 항탁보다 다섯살이나 많은데 어찌 어리다 하여 시험해보지도 않고 꾸짖으십니까?"
 
여불위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기특하게 생각하여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과하며 말했다.
"네가 능히 장당을 연나라로 보낼수 있다면 내 장차 너를 승상을 시켜주겠다."
이에 어린 감나는 여불위의 집을 나와 장당에게로 갔다.
 
장당은 여불위의 문객이 왔단 말을 듣고 맞아본즉 조그만 동자아이였다.
장당이 감라를 가벼이 보고 물었다.
"어린 그대가 무슨일로 왔는고?"
"장당대감을 조문하러 왔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어찌 나를 조상 한다는 말인가?"
"대감의 공적이 무안군 백기와 비교해볼떄 어떠합니까?"
"무안군은 남쪽으로 강한 초나라를 꺾고 북으로 연나라와 조나라에 그 위엄을 떨쳤으며 싸우면 이겼으니
그 공로에 비한다면 나의 공로는 그 십분의 일에도 못미치겠지."
 
"그러면 우리 진나라에 있어서 지난날 응후 범저의 권세와 지금의 문신후 여불위의 권세를 비교하면 누구의 권세가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지금의 문신후 여불위의 권세가 더 크지.. 그는 진나라의 모든 정권을 다 잡고 있으니.."
"분명 그리 생각하십니까?"
"내 어찌 그만한것도 모르겠는가?"
 
그제야 감나가 천천히 말했다.
"지난날 응후 범저는 무안군 백기장군에게 조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백기장군이 이를 거절 했습니다.
이에 범저가 한번 대로하자 그 결과가 어찌 됐습니까?
백기장군은 함양에서 추방되고 마침내 두우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장수도 권세를 잡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면 죽는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감은 백기만한 공로도 없으면서 그당시의 범저보다도 더 큰 권세를 가진 문신후 여불위가 직접 청하였는데도 끝내 거절 했으니 당신이 죽을 날도 이제 머지 않았습니다."
 
이말을 들은 장당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잘못 판단하였으니 어린 그대가 나를 도와주시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대감은 지금 곧 문신후에게 사죄하고 연나라로 떠나시는것만이 살 길입니다."
 
대화를 마친 감나는 여불위의 부중으로 돌아가서 다녀온 경과를 보고하였다.
"장당이 바로 연나라로 떠나겠다고 합니다."
감나는 깜짝 놀란 여불위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주고는 장당이 조나라를 두려워 하고 있으니 자기가 조나라에 가서 장당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오겠다고 하였다.
 
여불위는 감나의 높은 재주를 알고 함양궁으로 들어가 진왕 정에게 아뢰었다.
"감무의 손자 감나 라는 소년이 있는데 나이는 이제 열두살에 불과하지만 그 지혜와 재주가 탁월하고 변설이 능란합니다.
이제 그가 조나라로 가서 조왕을 설득하겠다고 하니 왕께서는 그를 사신으로 조나라에 가게 하시옵소서."
이에 진왕 정은 감나에게 좋은 수레 열대와 시종할 사람 백명을 주어 조나라로 가게 하였다.
 
감나는 조나라 조도양왕을 만나 말했다.
"왕께서는 연나라가 태자 단을 진나라에 볼모로 보낸것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진나라의 장당이 연나라의 정승이 되어 간다는것도 아십니까?"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연태자가 진나라로 가고 진의 장수가 연나라로 가는것은 두 나라가 서로 화합하고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나라가 힘을 합쳐 조나라를 쳐서 조나라의 하간땅을 얻으려는 때문임을 아십니까?"
 
이에 화들짝 놀란 조도양왕이 어쩔줄 몰라하고 있을때 감나가 다시 말하였다.
 
"왕께서는 차라리 지금 하간땅의 다섯개 성을 우리 진나라에 바치고
연나라보다 먼저 진나라와 화친 하십시오.
그러면 저희 진나라는 장당을 연나라에 보내지 않고 연나라와 단교할것이니
그때 조나라가 무능하고 약한 연나라를 친다면 진나라에 바친 하간땅보다도 더 많은 이득을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조도양왕은 마침내 크게 기뻐하고 감나에게 황금과 백옥을 선물로 주고
하간땅 일대의 다섯 성의 지도를 내주었다.
 
이에 감나는 진나라로 돌아가서 진왕 정에게 경과를 보고하였다.
진왕 정은 매우 기뻐하며 어린 감나를 칭찬 하였으며
덕분에 연나라로 가지 않게된 장당도 감나에게 매우 고마워 하였다.
 
그후 조나라는 진나라가 장당을 연나라로 보내지 않은 사실과 진나라가 연나라를 돕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연나라의 성 30개를 빼앗았다.
조나라는 그중 19개의 성은 자기가 차지하고 11개의 성은 진나라에 바쳤다.
이에 진왕 정이 매우 기뻐하여 어린 감나에게 상경의 벼슬을 주고 지난날 감나의 조부 감무에게 주었던 전택까지 돌려주었다.
오늘날 "감나는 12세에 승상이 되었다" 하는것은 바로 이일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날 감나는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잠이 들었다.
꿈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천부를 들고 와서 감나에게 말했다.
"나는 상제의 분부를 받고  그대를 데리러 왔소"
이튿날 12세 소년 감나는 아무런 병도 앓지 않고 잠들듯이 죽었다.
 
한편 진나라에 볼모로 와있던 연태자 단은 진나라의 배신때문에 연나라가 크게 쇠약해졌기때문에
속으로 진나라를 매우 미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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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저리자.감무열전을 살펴보았다.
사마천은 이 열전의 끝에 이 인물들을 이렇게 평하였다.
 
저리자는 진나라 혜왕의 골육지친이어서 중용된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그가 지혜있는자로 칭찬을 받았으므로 그의 등용은 일리가 있다.
 
감무는 하채의 여염집 출신으로 일어나 제후들 사이에 그 이름을 드러내 강한 제나라와 초나라에 등용되었다.
 
감나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하나의 기이한 계책을 생각해내어 후세에 그 명성을 칭송받았다.
비록 행실이 돈독한 군자는 아니었지만 역시 전국시대의 책사임에는 틀림없다.
진나라가 강대했던 때는 천하가 도도하게 권모술수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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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머리에도 밝혔지만 이번회는 쓰기 싫은것을 차마 빼먹을수 없어 기술 하였다.
그래도 사마천이 열전에 올렸으니 이들을 빼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미안해서 썼을 뿐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리자와 감무는 그 엄중하고도 어지럽던 시기에 진나라 라는 강대국에서
천하 열국을 호령하며 왕업을 이뤄나가는데 한몫을 한것만은 분명한듯하다.
 
한 나라의 좌.우 승상으로 있으며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질시한것은 당시의 정세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두 사람이 서로 반목하면서도 삼천을 정복하고 진왕실을 드높인것은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본 열전의 주인공인 저리자와 감무 보다도 감나의 이야기가 더 길게 한것은 참으로 어린 소년의 지혜와 기개가 높은 때문이다.
필자의 열두살 시절은 어떠했던가?
그저 철없는 아이시절이었을 뿐인걸 생각하면 참으로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필자의 열두살 시절 저 다까끼 마사오가 총맞고 죽었을때
필자는 나라가 망하는줄 알고 분향소에 가서 눈물을 흘렸던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소를 금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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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왕은 천하의 패자로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오로지 힘자랑에만 몰두하였다가 비극의 생을 마감했다.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니 평생에 삼진을 정복한 위대한 공을 세우고도
순간의 어리석음이 자신의 몸을 망치고 후세에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이름이 남게 되었다.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것은 자신은 물론이요
세상의 이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것을
위정자들은 깨달아야 할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위정자들과 기득권 언론은 이제 대소변도 못가리고 죽는지 사는지도 모를 일들을 마구 벌이고 있음에
필자는 한숨과 걱정으로 밤을 새는일이 허다하게 되었다.
 
증삼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세사람이 뛰어와 아들이 살인을 했다고 하자 드디어 그 말을 믿게 되었다.
 
증삼같은 어진 사람도 남의 거짓말 세번이면 살인자가 되는 판에 요즈음이야 말해서 무었하겠는가?
지금 이 세상은 거짓이 난무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기 어렵다.
게다가 그런것을 철저히 조사하고 알려주어야 할 언론이란것들이 오히려 거짓나팔을 불며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  고 떠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누가 나라를 뒤집으려 하였다 하고
검찰총장이 사생아가 있다고 떠들어대는 판이니 말이다.
 
이제 살다살다 내가 검찰총장을 믿고 검찰의 편을 드는 날이 왔으니
세상은 참으로 재미있는곳인듯 하다.
구룡신정.jpg
 
 
 (이 사진은 당시의 구정은 아니지만, 이처럼 두개의 귀가 달리고 세개의 발이 달렸으며 솥의 표면에 사진과같이 그림과 문자를 새겨넣은것이 당시의 솥(鼎)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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