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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무아가 아니다.
게시물ID : phil_142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골토깽이
추천 : 2
조회수 : 1375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7/18 21:20:42
 
육자대명왕 진언
 
옴 마 니 반 메 훔
 
광명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릇 타야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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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불교의 진언들 상당 수가 "옴" 으로 시작합니다.
 
헌데 "옴" 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불교에선 그냥 간단히 천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는 아수라 니 는 인간 그 다음 어쩌구 저쩌구
 
 
근데 산스크리트어로 "옴" 의 원래 뜻은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본질인 브라만을 뜻하는 소립니다.
 
브라만을 음성화 한게 옴 입니다. 때문에 옴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만을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헌데 "범아일여"란 말이 있습니다. 즉, 모든 중생 개개인의 내면에 브라만의 분신인 아트만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우주의 근본인 브라만(Brahman)과 개인의 중심인 아트만(ātman)이 궁극적으로 같다는 사상 
 
입니다. 우파니샤드는 힌두교의 경전입니다. 즉 힌두교도 수행자들의 궁극적 목적은 우주적 원리인 브라만과  개인의 우주적 원리인
 
아트만이 서로 합일 되는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선  선도의 천인합일과 일맥상통 합니다.
 
즉 "옴" 이란 것은 브라만에 대한 찬양이자 동시에 인간내면에 존재하는 브라만인
 
아트만을 찬탄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우리 불교 신자분들과 승려들은 허구헌날 진언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 옴으로 시작하는 진언들
 
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시는 줄 모르겠습니다. "옴" 자체가 산스크리트어 이며 동시에 아트만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즉, 허구헌날 아트만 찬양하는 놈들이 뒤돌아서는 아트만은 없다! 부정한거다! 라 말하는 웃지못할 일인 것입니다.
 
 
 
 
 
헌데 웃기게도 대승불교에선 아트만이 없다고 합니다. 아트만을 부정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도 웃기는 일입니다.
 
an- atman 에는 2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안 아트만 이라는 것은
 
 
 
1. 아트만이 아니다 라는 뜻과       [ 비아]
 
2. 아트만은 없다. 라는        [무아]   2가지 해석이 가능 하져
 
 
싯달타는 안아트만을 말할때 원리적으로 말한게 아니라 수행자들을 위한 실천적인 차원에서 이야기 했던겁니다.
 
아트만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것 오온은 나의 아트만이 아니다. 나의 자아는 나의 아트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상하다. 그러므로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 라는게 원래의 뜻입니다. 즉 이것은, 나의, 아트만이, 아니다. 라는 말은
 
아트만을 상정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즉 아트만을 인정하는 힌두교와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습니다.
 
 
허나 2번째 뜻으로 해석하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집니다. 2번째 뜻은 아예 아트만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트만을 상정하는 힌두교와 완전히 다른게 되버립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칭 대승불교의 2번째 가 맞다는 사기에 속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런 대승불교도 스스로의 잘못된 인식에 스스로 놀아나 다시 아트만을 대체할 "참 나" ,"불성" 같은 희한한
 
용어들을 만들어 자기들의 아트만은 없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말을 또 만들어 놀아나고 있습니다.
 
 
 
불교신자분들에겐 상당히 기분나쁘겠지만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가 아닌 힌두교를
 
믿고 있습니다. 또 싯달타는 힌두교의 3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9번째 분신이라 합니다.
 
힌두교가 우주는 이러이러하고, 브라만은 이러이러한 원리이다. 라는 
 
원론적, 원리적인 차원의 세계관의 담론이라면
 
불교는 그 힌두교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수행자들의 실천적인
 
담론일 뿐 입니다. 초기경전의 싯달타의 가르침을 보면 어떤 우주의 원리가 이렇다! 라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은 무상하니 집착하지말라... 니 마음을 관하라.. 등등 실천적, 수행적 이야기가 대부분 입니다.  니르바나(열반)이라는 것도
 
자칭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 "해탈", 도통 같은 엄청난 용어가 아니라, 그냥 싯달타가 제자들에게 번뇌로부터 벗어남, 마음이 잔잔해진 상태
 
등으로 일상적으로 가볍게 쓰던 용어입니다.]  <- 이것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이라는 책에서 달라이 라마가 실제 했던 말 입니다.
 
 
원론적 차원의 담론이냐
 
실천적(수행적) 차원의 담론이냐의 차이 일 뿐이지
 
근본적으로 싯달타의 가르침도 결국 당시 인도,네팔 지역의 힌두교적 세계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차원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여 양자는.. 힌두교와 불교는 근본적으로  분열하지 않습니다.
 
 
싯달타의 원래의 오리지날한 초기불교는 절대 힌두교의 세계관, 힌두교의 패러다임, 힌두교의 사유체계에서
 
즉, 산스크리트어 사유체계에서, 결코 한 발 자국도 벗어나질 않습니다.  한마디로 뛰어봤자 벼룩입니다.  
 
불교(싯달타의 가르침)는 힌두교 라는 OS(운영체제) 기반의 수행자들을 위한 프로그램(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힌두교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트만을 부정해도 입으로 맨날 "옴"(아트만 찬양) 산스크리트어 진언을 외우듯이..
 
 
후대에  대승운동이 일어나면서 불교가 너무도 왜곡된 것입니다.
 
단언컨데, 오리지날 불교는 무아가 아니라 비아입니다.
 
 
모피를 반대하려는 사람들은 모피를 입지 않아야 모피를 반대할 자격이 있듯이..
 
개고기를 반대하려는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아야 개고기를 반대할 자격이 있듯이..
 
 
 
불교쟁이들이 불교는 힌두교와 다르다 말하고, 아트만을 부정하려거든
 
먼저 진언(아트만 찬양) 외우는거나 관 두고나서 아트만을 부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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