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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고려풍에 의한 혼란
게시물ID : history_123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쉘든쿠퍼
추천 : 5
조회수 : 142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0/30 02:29:31


《续资治通鉴 卷二百一十四 元纪三十二》记载:“后亦多畜高丽美人,大臣有权者,辄以此遗之,京师达官贵人,必得高丽女然后为名家。自至正以来,宫中给事使令,大半高丽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仿高丽,举世若狂。” 

  

"황후(기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하더라.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속자치통감 제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 

  

《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됬으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식이 날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

.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숙원잡기] 

  

《寓圃笔记》:"发裙之制,以马尾编成,系于衬衣之内。体肥者一裙,瘦削者或二三,使外衣之张,俨若一伞。", 

치마를 넓히는 제도는, 말꼬리를 옷안에 엮어서 만든다. 
몸을 비대하게 만든 하나의 치마로, 마른사람은 혹 두개 세개를 입는다, 
옷을 바깥으로 넓게 퍼지게 만드는데 쓰는데, 우산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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