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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백혈병 환자의 대전 방문기
게시물ID : travel_193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집은우리집
추천 : 1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7 14: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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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대전에 다녀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혼자 멍 때리다 중얼 거린 것을 이야기 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한참 고민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싶어 최근에 쓴 글들을 다시 보고 왔네요. ‘생존 신고’ 에서 현충원에 아직도 못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이게 다녀오겠다는 말이 되긴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드디어 대전에 다녀왔어요. 자꾸 인사를 먼저 해야 하는데 인사도 까먹을 뻔 했네요. 안녕하세요? 자꾸 생각이 먼저인지 행동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뒤죽박죽 그래도 항상 치킨은 먼저인 조파닭 인사드립니다. 안녕 
 
 
   전화통화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한적하고 낯선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그 길을 다시 걸을 때면 통화 하던 사람이 생각나고 좋다고 생각되던 문장이 생각나게 되거든요. 그 길은 이제 낯선 길이 아니라 목소리의 길이라던가 좋은 문장의 길이 되는 거죠. 뭔가 비포장도로를 취향대로 덧칠 놀이 하게 되는 것 같아 생각 만해도 두근거리지 않나요? 나만 그런가! 음흉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미 포장되어 있는 길 위에 서 있는 일 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는 것 같아요. 대전은 제게 그런 곳이에요.
 
 
   대전에는 7월 4일에 다녀왔어요. 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어요. 왜 폭우가 오던 날에 갔냐구요? 그러니까요 도대체 왜 그랬대. 거기다 백팩도 아니고 캐리어를 끌고 갔다니까요. 도대체 왜 그랬냐구요? 그러니까요. 도대체 그 날의 나는 어떤 나였는지 일기장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어요. 일기장이 깨끗하네요. 앞으로 일기예보 잘 보고 다니겠습니다. 실망 
 
 
 
   사실 대전에는 1년 전에 한 번 왔었어요. 왜 그 때 현충원에 가지 않았냐구요? 그 날엔 후배 부고 때문에 왔었거든요.
   동생 부고 때문에 왔었다는 문장을 쓰고 한참을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왔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알던 동생이고 학교 후배로 들어왔던 동생, 내가 아프단 소리를 듣고 울었다던 동생, 나 살리겠다고 헌혈증 열심히 구해주던 동생. 복학하니 그 동생은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는데. 그 친구는 내게 뛰어다닐 시간도 주지 않았네요. 조금 나처럼 천연덕스러웠으면 좋았을 텐데. 입관을 위해 관을 가족 분들의 부탁으로 친구들이 들었는데 무게가 무겁다 가볍다가 아니라 멀다 라는 거리감으로 느껴지던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오전에는 사찰에 안치되어 있다는 동생을 찾고
   오후에 현충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었어요.
   동생이 안치 되어 있다는 사찰은 지도마다 위치가 다르게 나왔어요.
   주소는 하나인데 왜 위치가 다르게 나오는 건지.
   그 동생은 하나인데 별명은 여러 개인 동요의 현실 판인가 싶었다는.
   내린 정류장에서 가깝게 표시된 곳은 산이어서 산을 탔어요.
   길도 따로 없고 예초도 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폭우까지.
   아무리 올라도 사찰에 사도 보이지 않고 몸은 축축하고 캐리어는 무겁기까지.
   결국 등산해서 무엇도 보지 못하고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 네비에서는 도로 한 가운데만 나오더라구요.
   많이 서운했나 봐요. 한 번 보자가 아니라 구체적이게 말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현충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그 동생은 그냥 평소처럼 자기는 어딘가에 잠수타고 잘 지내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아무 것도 실감나지 않게 하는 걸지도. 생각해보면 나 살리겠다고 그렇게 뛰어 댕기던 녀석인데 서운하다고 나를 보지 않으려 하진 않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저는 기억력이 참 좋은데 작년 장례식장 때 기억은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 녀석은 외국으로 여행 갔다고. 언젠가 랜드 마크가 박혀 있는 엽서를 보내주지 않을까 싶어요. 아차. 우리 집 주소도 모를 텐데. 나도 엽서 좋아하는데 우리 집 주소는 물어보고 여행가지.
 
   어떻든 동생이 나를 보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현충원에 도착하니 방금 전까지 그리 내리던 폭우가 거의 그쳐서 인 것도 있어요.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무리 신기하고 유쾌했다고 했어도
   조금씩 싹트던 불안감을 특유의 유쾌함으로 마저 날려주셨던 원사 아저씨.
   원사 아저씨는 제가 온다니까 화창하게 반겨주시는 것 같았어요. 날씨가 꼭 아저씨를 마지막에 봤을 때 좋지 않은 몸 상태를 누르며 유쾌하게 웃어 보이시며 반겨주시던 것처럼.
 
 
 
 
 
   보훈모시미 셔틀 버스를 타고 아저씨가 있는 묘역에 도착해 묘비 번호를 더듬거리며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한 번씩 읽어가며 아저씨 앞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이 묘역에서 거의 막내! 입이 근질거렸어요. 놀리고 싶어졌어요.
   아저씨 젊으시네요. (능글능글)
   아저씨의 얼굴은 없고
   아저씨의 이름과 아저씨의 계급만 덩그러니 묘비에 있으니
   농담에 대한 반응도 글자로 보일 것 같아서 묘비를 한 참 바라 봤어요.
   저는 잘 살아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살이 조금 쪘다가 또 빠졌습니다.
   네 사실 또 요요 왔습니다. 또 뺄껍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경례를 하고 보훈모시미 버스를 기다리니
   첫 항암 끝나고 군병원으로 쉬러 갈 때 아저씨에게 경례 했던 일이 생각났어요.
   군병원 가기 전에 맛있는 거 먹으라고 용돈도 쥐어주셨는데
   라멘 먹을 때마다 아저씨가 생각나요. 좋은 문장이나 좋은 음악처럼.
   모든 일은 왜 항상 어제 같은 건지 모르겠어요. 보면 실감 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네요.
 
 
   블로그 뒤적거리다 12년도에 원사 아저씨의 손을 찍고 사족처럼 써놓은 글을 봤어요. 
 
 
 
   피부가 벗겨진다. 숙주반응에도 손바닥과 발바닥은 하얗다. 하얀 손바닥처럼 군생활을 20년 넘게 깨끗하게 했다는 자부심이 있는 손이다. 바다를 몇 번이나 항해하고 이제는 손금처럼 깊은 생명선을 헤엄치고 있는 중이다. 아직 항해는 끝나지 않았고. 어떠한 방식으로도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정박하기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둘러보기 위해선 정박도 필요한 거겠죠.
   정박이 항해의 끝은 아닐거에요.
   원사 아저씨는 오늘은 어디로 출항하셨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실감할 수 있을까요.
   동생도 원사 아저씨도. 만났던 것만 실감 할 수 있어요.
   실감하려고 대전에 갔던 걸까요. 모르겠어요.
   무얼 바라고 간 것은 아닌데 그래도
   간혹 갈 거 같아요.
   동생도 한 번 다시 찾아보고.
   어차피 잠수가 아니라고
   여행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실감하지 못할테니까
   다음엔 반겨줬으면 좋겠다.
 
   모두들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과, 동물들과. 건강하게.
출처 http://pann.nate.com/talk/332347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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