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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19) 내일은 영업왕(중)
게시물ID : panic_89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카시
추천 : 21
조회수 : 264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07/17 12:10:17

준기는 요즘 아내가 낯설다고 느끼고 있었다. 화장은 두꺼워졌고 노출이 과감해졌다. 가슴골이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는가하면 팬티가 살짝 보일 같은 미니스커트를 입기도 했다.

즐겨 신던 단화는 어느새 길이만한 하이힐로 바뀌어있었고, 색깔 또한 화려했다.

확실히 며칠을 기준해서 그들의 삶은 많이 나아져있었다. 아내는 이번달 영업 목표량을 초과달성했다고 이야기했고, 열매가 달짝지근했다. 평소 먹어보지 못한 비싼 참치회를 먹어보기도 했고, 아이들이 원하던 선물 또한 산타클로스마냥 척척 갖다줬다. 물론 준기의 낡은 책상 또한 걸로 교체되었고, 항상 입던 바지 밑단과 무릎 튿어진 트레이닝 복도 나이키 상표가 달린 빤짝빤짝한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남자의 직감이라고 해야할지, 그게 마냥 좋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준기였다. 그는 지금도 콧노래를 부르며 오늘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그녀를 보았다.

아무 거나 입지 그래. 어울리는데.”

아우, 여보 그래. 영업이란 이미지 싸움이더라구. 내가 깔끔하게 보여야 업체 사장들이 나를 믿고 오더를 주고 그러지.”

그런데 치마는 깔끔하다기보단 야한 같은데.”

나가봐 . 집에만 있지말고. 요즘 치마길이 이정도 . , 늦었다. 가볼게.”

준기는 신발장에서 다리를 모으고 구두에 발을 밀어넣고 있는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중학생 때까지 지독한 말썽꾸러기였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했고, 틈만 나면 다른 친구들을 찝적거렸다. 흔히 말하는 일진처럼 돈을 뺏고, 왕따를 시키고 그러진 않았지만, 항상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책상 머리는 멀리두고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하며 말썽을 부리는 막내아들을 부모님들이 진득히 걱정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 그를 얌전히 만든 중학교2학년 때의 담임선생이었다. 교사가 되기 전에 작가가 꿈이었다고 말하던 그는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매주 권을 읽고 독후감을 정리해서 오는 숙제를 제출했다.

처음에는 몽둥이 찜질이 싫어 책을 읽던 그도 어느순간 책에 빠져들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나중에 크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렵 신경숙의 토지, 이상의 날개와 같은 시집들을 접했다.

대학교 시절 무작정 문학에 대해 배우고자 서울에 있는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했고, 우연찮게 학교 카페에서 그는 미자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 처자라 그런지 손도 곱고 눈도 크고 맑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숯기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끈기는 있었고 그녀가 자신의 이상형이라 생각하자 매일같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결국 가까워지는데 성공했다.

결혼 약속을 잡는 사귀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고 그는 그녀에게 자신은 가난하고 능력없는 예비 작가이지만 손에 물은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또한 나중에 등단에 성공해서 작가의 사모님으로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의 목표는 신춘문예 등단이었다. 오직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여태까지 달려왔다.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미자가 여성으로서 겪는 직장 생활에서 고충이 있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도리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빨리 등단하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좋은 , 맛깔나는 글을 써야 하는 의무는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가정의 문제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젓고는 방으로 향했다. 경향일보 신춘문예 응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을 마무리 짓는데 모든 에너지를 짜내야했다.

 

그는 볼을 꼬집었다. 신문사 홈페이지에 그의 이름이 떠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일요일에 시상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단편부문 당선, 상금은 자그만치700만원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이었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일을 맞닥드리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인지 그의 입은 아침부터 점심 밥을 입에 떠넣던 순간까지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깨달은 얼른 미자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밤은 가까운 식당에서 한우를 구워먹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한우를 구워먹고 이야기해야했다. 얘들아 너희는 아빠를 자랑스러워 해도 . 미자야, 고생 많았지? 이제 나도 거들게. 걱정하지마. 나도 이제 작가야.

그는 빠르게 다이얼을 눌러 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통화를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바쁜가보다, 준기는 생각하며 문자를 보냈다. 여보, 오늘 빨리 들어와. 축하 일이 있어.

 

미자는 11시가 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과 고기를 구워먹고 방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조용한 안의 침묵이 그를 짓눌렀다. 잠도 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거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미자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보, 미안해. 오늘 회식이 있어서 늦었어.”

그녀는 비틀비틀 방으로 들어왔다. 짙은 술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서 났다. 이상했다. 미자는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준기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어서 침대 위에 철푸덕 드러누웠다. 옷도 벗지 않은 채였다.

문자 봤어?”

, 그래. 무슨 일인데?”

준기는 그녀의 무신경함에 기분이 얹짢았다. 하지만 피곤해서 그럴 거라 생각하며 본인을 납득시켰다.

신춘문예 당선됐어.”

, 그거?”

그녀가 심드렁히 대답했다. 준기는 본인이 이룬 가장 성과가 단순히 , 그거 라는 지칭대명사를 통해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만은 축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무심한 그녀의 말이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해왔던 수고와 노력 어떤 것도 그녀에게 인정받지 못한 느낌이었다.

대답이 그게 다야?”

, 그래. 축하해. 이제 자자.”

요새 당신 있지?”

준기는 결국 참아왔던 말을 입밖으로 꺼냈다. 요새 그녀가 많이 변한 이유, 머릿속으로 의심만 해오던 것들을 내뱉었다.

무슨 소리야?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사람한테, 신춘문예 등단한 축하해. 하지만 내가 술도 많이 마셨고 피곤해서 그러니 이제 잤으면 좋겠어. ?”

, 준기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술에 취해있었고 대화가 그다지 되지 않을 같아서였다. 여름이지만 밤바람이 차고 시렸다. 준기는 동네 공원을 바퀴 산책 삼아 걷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고 옆으로 핸드폰이 보였다. 살아오면서 번도 프라이버시라고 터치한 없었는데, 오늘은 봐야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미자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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