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구름

 

많은 사람들이 귀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것을 자신이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굳이 PAN같은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친구나 지인에게서 자주 들은 귀신목격담이 그 반증이다. 가령 나의 경우 중학생 시절, 학원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던 밤12시, 아파트 앞에서 나무 가지 위에 춤을 추던 시커먼 무언가를 본 적이 있었다. 순간 깜짝 놀라 헛바람을 깊게 들이켰고 몸에 닭살이 오돌토돌 돋았다. 물론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봤을 때, 그 검은 것의 정체가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대껴서 그런 것이란 걸  알고 나서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말이다.

그 사건을 통해 나는 점차 미신적인 것을 믿지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도 지어내는 이야기라던가 혹은 잘못봤을 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사람이 우주로 나가는 시대에 그게 무슨 시덥잖은 소리란 말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나의 그런 생각은 어느 순간 내 친구의 뒤통수에 달라붙은 ‘그것’을 보고 나서 말끔히 씻은 듯이 사라졌다. 처음에 그것은 검은 먼지였다. 알사탕처럼 조그만 크기를 갖고 있었다. 너 머리에 뭐가 묻었네, 하면서 친구 뒤통수에서 떼어주려고 그랬는데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머리 좀 감고 다녀라. 뭐 이런 게 묻었어.” 라고 했지만 친구는 뒤통수를 슥 훑더니 “아무 것도 없구만.” 그러고 넘어갔다.

문제는 그게 다음날도 일주일 뒤에도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커졌고 종강을 하루 앞 둔 지금은 마치 검은색 먹구름이 뒤통수에 낀 거 같았다.

그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그것을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괴담이 자주 올라오는 인터넷에 문의를 해보기도 했고 심지어 친구 녀석을 잘 구슬려서 나조차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점집에 가보기도 했다.  문제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본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무당마저 친구 놈을 보고 올해의 운수라던가 성적운이라던가 하는 그런 것을 읊고 복채를 요구할 뿐이었다.  내가 기대했었던, 친구를 보자마자 화가 있느니 영가가 있느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이렇게까지 커졌다. 젠장. 혹시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요즘이었다.

“내일 뭐할 거야?”

친구가 물었다.

“시험 이제 끝나니까, 집에 가야지. 짐은 다 싸놨다.”

“그렇구나. 나도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그 녀석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부산에서 살던 우리는 우연찮게 서울에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했고 함께 넘어오게 되었다. 물론 그 사실에 대해 우리 둘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야 고등학교 때 놀기도 많이 놀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 자체에 본인에게 뿌듯해하고 있었지만 그 녀석 같은 경우는 모범생이라, 수능 한 번 못 쳐서SKY 못 가고 이리로 온 것 자체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재수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는데 그게 한으로 남는 모양이었다.

친구의 집은 서울에 있었다. 내일을 기점으로 당분간 못 보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아니다, 부산에 함 놀러오라고 할까. 어쨌든 자취방에 들어가서 남은 시험 공부를 해야했다.

“내일 보자. 준태야.”

“그래. 너도 준비 잘 하고 내일 마무리 잘하자.”

그가 항상 타는 버스가 왔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버스 기사는 뚱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앉아 껌을 씹고 있었고 정류장 앞에 있는 호수에선 오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많이 타는 버스라 금새 친구는 인파에 파묻혔다. 일상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집을 나올 때 문을 잠갔나 고민하게 될 때의 그런 찝찝함? 아니 그런 것보다 더 기분이 나빴다.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준태가 인사하고 돌아설 때 검은 구름이 마치 광대처럼 마스크를 끼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준태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전날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요새 예민한데 방해가 될까 걱정이 되서 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나는 시험을 치는둥 마는둥 끝내고 강의실을 나왔고 어제 준태가 올라탔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매연을 한 차례 쿵 내뿜고 달렸고 나는 생각의 늪을 허우적거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아니 아닐 거야. 그냥 몸이 안 좋았던 거겠지. 하지만 어제 그건 뭐지? 잘못 본 걸까? 그렇겠지. 하지만 학교에 나오지 않았잖아. 누구보다 시험에 더 열중하던 친구였는데.

따위의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서 나를 꺼내준 건 카톡 메시지였다.

-          상희야. 준태가 어젯밤에 사고를 당했단다.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이야기를 나눴던 준태는 영정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준태의 어머니는 실신하셔서 뵐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영정 앞을 지키고 있었다. 장례식장은 조용하고 엄숙했다. 아버지는 어딘가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셨고, 힘들게 내뱉는 말엔 쇳소리가 섞여있었다. 울지는 않으셨지만 빨갛게 부어있는 눈을 보면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친한 친구였으니까.

어젯밤 12시 경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바람을 쐬고 온다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사고가 난 지점은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였다고 한다. 그가 자주 가는 편의점 뒤편에서 달려오던 차량을 피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했다. 외진 동네의 밤 거리, 주변에 사람이 없었고, 사고를 낸 당사자는 너무 겁을 먹어 바로 신고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담배를 열 개피는 핀 다음에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었다고. 의사는 손을 대지 않았다.

“아버지, 사실 준태는······.”

말을 삼켰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뒤통수에 검은 구름이 있었다고. 그게 사고 당일 시커멓게 웃고 있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들어도 그건 미친 소리였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을 때 다른 친구들한테도 보여줬던 것이 기억났다. 무슨 소리하냐고 되물었었다. 나는 그 이후로 그것에 관해서 타인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준태에게도. 그래서 무당을 만나러 갈 때도 그냥 점이나 보러 가자,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 한다고 해도 이해나 해주실까.

“아니, 아닙니다. 아버지 몸조리 잘하십시오.”

나는 장례식장을 그림자처럼 빠져나왔다. 곧장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신병원에 가진 않더라도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 그 검은 구름이 들어선 것 같았다. 앞이 깜깜하고 축축히 젖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