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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
몸에 착 달라붙는 브리오니 명품슈트, 비올라케이스 안에 분해되어 있는 레밍턴 700 스나이퍼 라이플, 레이벤 선글라스. 건물옥상에서 신속하게 라이플을 조립하고, 수백 미터 건너편에서 여자와 마약에 취해 희희낙락하고 있는 부패한 정치가의 머리통을 조준경 너머로 노려본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무아의 지경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목표물의 이마에 구멍이 뚫리기도 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암살자 스나이퍼.
크아~! 멋지다. 염병하게 멋지다. 지랄한다. 아주 똥을 싸라. 젠장, 그렇지 않아도 점점 똥이 마려운거 같다. 앞으로 먹는 것을 좀 더 줄여야 겠다. 그래 봤자 초코바뿐이지만.
나는 저격수다. 차갑고 냉혹하고 멋진 암살자 스나이퍼.
빌어먹을. 영화가 여러 사람 바보로 만든다니까. 여자가 한눈에 뿅 가 버릴만큼 잘생기고 멋진 암살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내 겉모습은 인사치레라도 잘생겼다고 해줄 수 없는 정도다. 그렇다고 인상을 찌푸릴 만큼 못생긴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당신은 등 뒤에 서서 피곤에 지친 표정을 하고 있던 바로 그 평범한 아저씨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언젠가 나의 암살장면을 누군가에게 정통으로 목격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목격자는 너무나 평범한 나의 인상을 재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덕분에 몽타주조차 그려지지 못했다.
"젊은 남자 였어요. 그건 확실해요. 그리고 안경은 쓰지 않았어요. 그것도 확실해요. 그리고 눈은 쌍까풀이 있었나? 코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고, 입도 평범하고……."
여담으로 힘겹게 만들어진 몽타주의 얼굴은 그 목격자가 단골로 가는 바의 바텐더 얼굴이었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헛갈린 모양이다. 덕분에 그 바텐더는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그 목격자를 고소했다.
암살 저격수의 미덕은 매력과 냉혹함이 아니다. 평범함과 인내심이다. 지금 나는 철거되기 직전의 낡은 건물 옥상에 회색 천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다. 날씨가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8월이나 12월 이었다면 목표 대신 내가 먼저 죽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사흘 째 엎드리고 있으니까.
분해한 라이플이 들어있는 비올라 케이스? 웃기고 있네. 이 짓을 하려면 총보다 중요한 것이 식량가방이다. 총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가방 안에는 생수와 초코바가 가득 들어 있다. 목마름과 굶주림에 목표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보다는 조금 번거로운 것이 낫다.
영화에서 저격수들은 목표가 자동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따위를 노리는 경우를 많이 보여 준다. 바보냐! 경호원을 포함해서 주변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저격수부터 찾으려고 든다고.
라이플의 평균 사거리는 1000m보다 조금 짧다. 그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이 가능한 인간은 세상을 전부 뒤져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때문에 두발 째를 허용하기 어려운 저격에서는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 하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저격을 성공할 확률은 높아지지만 목표를 해치우고 달아날 시간이 짧아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해치우고 한동안 그 시체가 발견되지 않을 상황에서 일을 치러야 한다. 목표의 침실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자고 있는 놈을 해치운다면 아침까지 발견될 일은 적으니까. 더구나 개방된 공간에서는 자신의 안전에 좀 더 주의를 두는 편이지만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마음 놓기 쉽다.
이번 목표가 살고 있는 펜트하우스에서 고작 600m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주의 깊은 놈인지 쉽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덕분에 여기서 3일 째 잠복중이다. 커튼 한번만 살짝 치워주면 끝날 텐데 세상 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움직였다. 그놈이 움직였다. 아니, 내 목표물이 아니라 목표물의 펜트하우스 2층 아래 오피스텔에 있는 그놈이 움직였다. 내 목표물은 비 정기적으로 자신의 거처를 드나들고 있다. 그래서 언제 목표가 개인적인 공간에서 몸을 드러낼 지 24시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엄청 지루한 일이다. 나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몸뚱이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 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때때로 정신을 환기시킬 소일거리가 필요한데, 이번에는 다른 층 사람들의 일상을 광학 줌스코프 조준경으로 훔쳐보는 것으로 지루함을 달래고 있다.
인간은 명백히 자신 혼자만 있는 공간이라 여겨지는 곳에서는 온갖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남들의 시선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군자라는 글귀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나는 그런 군자를 단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
빗자루를 들고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며 온몸을 흔드는 청소부 아줌마는 어떤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의 사무실을 발가벗고 뛰어다니는 중년의 남자중역은 미친 것이 아니다. 아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겠지.
정말 이상한 사람은 그보다 3층 위, 목표의 펜트하우스 보다 한 층 아래 오피스텔의 젊은 남자사장이다. 이 녀석은 함께 야근하던 여사원을 덮치려던 강간 미수범이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보다 이런 녀석이 더욱 심각한 미X놈이다. 다행히 미수로 끝난 이유는, 반항하던 여사원이 책상위의 커다란 머그컵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머그컵은 생각보다 고급품이었던 것 같다. 안 깨졌다. 대신 사장의 뒤통수가 깨졌다. 블라우스가 찢어지고 보라색 브래지어가 조금 뜯어진 여사원은 밖으로 드러나 덜렁거리는 오른 쪽 젖가슴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허겁지겁 달아났다.
명품 머그컵에 머리를 찍힌 사장은 여사원이 달아날 때 까지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사원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바닥에 고꾸라지더니 몇 번 경련 후 축 늘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연수 쪽에 크리티컬히트가 들어간 모양이다. 머릿속의 뇌 가운데 연수에 손상을 입으면 호흡과 심장박동에 문제가 생긴다.
반갑지 않은데. 건물에서 맞아 죽은 시체가 나오면 경찰들이 몰려와 어수선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목표물도 쓸데없는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벌써 6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이번일이 실패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나오는 저격 암살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탕 쏘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 것으로 끝난다. 다시 말하지만 헛소리다. 우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 CCTV는 폼으로 달려 있나? 커다란 배낭과 총을 매고 32층, 때로는 56층의 건물 옥상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그리고 주변과 같은 색으로 염색한 천으로 몸을 감싸고, 사흘이고 나흘이고 물과 초코바로 연명하며 기회가 생기길 기다린다. 소변은 빈 생수 병에 처리한다. 대변은 비닐팩에 처리한다. 요즘 기계는 배설물에서DNA를 추출하기도 해서 뭐 하나 남겨서도 안된다.
대변의 경우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조금 번거롭다. 이것을 처리하는 중 목표가 허점을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 대변은 참는 편이다. 때문에 일을 치르기 직전 일부러 금식과 관장을 해서 뱃속의 이물질을 깨끗이 비운다.
저격을 위한 잠복을 하기 6개월 전부터, 긴 시간동안의 굶주림을 견딜 수 있는 몸을 만든다. 지방질과 근육질을 두껍게 만들어 며칠 굶어도 끄떡없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잠복중의 식사는 초코바가 유일하다. 결정적인 순간 혈당이 떨어져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잠복이 시작되고 최초 24시간 동안 물도 마시지 않는다. 24시간 후 조금 씩 물을 마시고 다시 6시간 후 초코바 반개의 식사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시는 물과 식사량을 늘린다. 그리고 가능한 첫 번 째 대변이 나오기 전에 목표를 해치우려 노력한다.
스나이퍼의 직업병이 위염, 요도염, 변비, 치질이라고 말하면 모두 웃는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다.
그 사장 놈이 움직였다. 죽은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 움직임이 이상하다. 나는 잠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목표를 무시하고 스코프의 초점을 사장에게 맞춘 것이다. 하지만 사장의 그 기묘한 움직임이 너무 신경 쓰였다. 그 움직임은 인간의 동작이 아니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그 사장은 죽었다. 그 사장의 시체가 살아 움직인 것이 아니다.
시체가 변신하고 있다!
죽은 지 아직 두 시간 밖에 안됐잖아. 벌써 시체가 부패해서 팽창할리가 없다. 인간의 시체는 벌써 썩지 않는다. 인간의 시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것은 무언가 다른 것이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점점 부풀어 오르던 사장의 시체는 지름 1m 남짓의 질퍽질퍽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 인간의 손가락이나 눈알 등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을 처음 본 사람이 인간의 시체라고 생각할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시체가 검붉은 색의 반구형 형상을 이루자 팽창이 멈췄다. 나는 그제야 한 시간도 넘게 목표에서 눈을 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멍청이.
어쩌면 목표물이 멍하니 야경을 쳐다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칠 듯이 화가 났다. 둥그레진 사장의 몸뚱이에 총알을 박아 넣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다시 눈을 펜트하우스로 돌렸다. 하지만 머릿속의 온갖 상념은 그 두층 아래에 있는 사장의 둥그런 몸뚱이에 가 있었었다.
'뭐지? 도대체 뭐 때문에 사람의 시체가 그렇게 변한 걸까? 독? 세균? 아니야. 단순히 대가리에 컵을 맞고 죽은 거잖아. 사람의 뇌속 어딘가에 건드리면 몸이 부풀어 오르는 스위치라도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있나?'
다음날 아침 나는 초코바도 잊은 채 그만 사장의 오피스텔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이른 아침은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다. 아직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늘어진 마음은 너무도 쉽게 경계심을 풀고 커튼과 창문을 열고 아침공기를 들이마시게 한다. 절대로 눈을 때면 안 돼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 오피스텔에 다른 사람들이 출근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궁금했다. 과연 목표도 팽개치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
사장이 다른 사원들을 먹어 버렸다.
출근한 세 명의 사원은(당연히 사장이 덮쳤던 그 여사원은 출근하지 않았다.) 익숙한 공간에 괴상한 물건이 놓여있는 것에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러나 당황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게 경계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 검붉고 둥그런 사장의 몸은 주변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사원들에게 다가갔다. 그 기분 나쁜 모습에 사원들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피하려 했지만 사장의 몸은 갑자기 튀어 올라 재빨리 움직이며 사원들을 덮쳤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장의 몸이 사원들을 덮치자 사원들의 몸이 사장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사장의 몸은 5분도 지나지 않아 2배로 커졌다.
'뭐야? 뭐야? 뭐야?'
뭔가 괴상한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하던 나의 바람은 완벽하게 충족 되었다. 하지만 호기심은 100배로 커졌다. 저게 뭐지? 내 의식속에서 목표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쿨렁거리는 덩어리는 오피스텔 여기 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뭘 하려는 거지?
세 시간 후 덩어리는 오피스텔의 쓰레기통을 비우러 들어간 청소부 아줌마를 집어 삼켰다. 아줌마의 빗자루 기타연주는 다시 볼 수 없겠구나. 아줌마를 삼킨 덩어리는 눈으로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또 커졌다.
'저것 사람을 먹고 성장하는 건가?'
한 시간 후 답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오피스텔을 찾아온 경관 두 명을 삼킨 덩어리가 또 커진 것이다. 성폭행을 당할 뻔한 여사원이 사장을 신고했나 보다.
더욱 커진 덩어리는 출구를 찾는 듯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하지만 오피스텔의 오토록은 굳게 잠겨 있다. 문 옆의 오픈 스위치를 누르면 되지만 그것을 알아볼 지능은 없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덩어리는 밖으로 향하는 틈을 찾아내었다. 오피스텔의 창문.
고층건물의 오피스텔 창문은 안전상의 이유로 성인 남자가 팔을 겨우 내밀 수 있을 정도의 틈만 열릴 뿐이다. 그런데 이 덩어리는 그 틈을 통해 자신의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저러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 했지만,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 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면 죽나? 아니 그 이전에 살아있기는 한가? 여러 가지 고민하는 가운데 길게 뻗어 나온 덩어리의 일부가 옆 오피스텔의 열린 창문을 찾아내었다.
연체동물 문어처럼 흘러가듯이, 좁은 창문을 통해 옆 오피스텔로 옮겨간 덩어리가 그곳의 직원 6명을 모두 삼킬 때 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젠장! 또 몇 시간이나 목표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목표의 창문을 바라보자 커튼을 닫는 목표의 얼굴이 순간 보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거의 입 밖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6개월 동안 사전 준비를 하고, 나흘 동안 생수병에 오줌을 싸면서 기다리던 찬스가 지금 막 의미 없이 지나간 것이다.
2초. 2초면 충분했을 텐데. 2초만 내 조준경에 목표의 얼굴을 담아둘 수만 있었으면 나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오늘 저녁은 맛좋은 와인과 함께 만찬을 즐길 수도 있었는데.
실망과 분노로 거의 미쳐버린 나는 그 덩어리를 쏴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아래층을 조준했다. 그리고 고민 했다.
'어디를 쏴야 죽는 거지?'
덩어리의 몸은 이제 더 이상 덩어리가 아니었다. 창문이 열린 오피스텔의 직원들을 모두 삼키고 더욱 커진 몸뚱이를 다시 창문 밖으로 비집어 꺼내더니 건물 외벽에 넓게 달라붙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이 있는 다른 열린 공간을 찾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고층에는 더 이상 열린 창문이 없었다. 덩어리는 자신의 몸을 더욱 넓게 상하좌우로 펼쳤다.
끝났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창밖을 기어 다니는 괴물체를 봤을 것이고 대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이번 암살은 실패다.
그런데,
순간. 찰라보다 더 짧은 그 순간 계시 같은 영감이 떠올랐다. 나는 주저 하지 않고 저격 목표가 살고 있는 펜트하우스의 창문을 향해 발사했다. 지름 1.5cm의 구멍을 덩어리는 놓치지 않았다. 그 작은 구멍으로 덩어리의 거대한 몸이 흘러내려가는 변기 물처럼 펜트하우스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아! 오늘 저녁은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실까?
미끄러졌다. 한 스나이퍼가 덩어리라 이름 붙인 그것은 그냥 미끄러졌다. 덩어리에게 펜트하우스는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냥 넓기만 할 뿐 중요한 인간은 한명 뿐이었다. 더 많은 인간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덩어리는 사방이 막힌 펜트하우스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들어올 때 사용했던 작은 구멍은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 그 이전에 구멍의 존재조차 이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감각에 이끌려 몸 여기저기를 늘였다 줄였다 하며 출구를 찾는다. 땡! 소리가 들렸다. 덩어리는 청각신경은 없지만 소리를 느꼈다. 덩어리는 인간들이 말하는 전용 엘리베이터와 가정부가 뭔지 모른다. 그저 새롭게 생긴 공간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덩어리는 인간이 있는 좁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움직였다. 두 명의 가정부를 삼킨 덩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비좁은 공간에 갇혔다는 감각을 느낀 덩어리에게 다시 소리가 느껴졌다. 덩어리는 기계가 조합한 그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의 뜻은 '내려갑니다'였다. 덩어리는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출처 |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