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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시대
“너무 번거롭지 않습니까?”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까요? 연구결과로도 충분히 알 수 있겠지만 저희 메디컬로이드를 사용하시면 손님의 수명이 최소 20년은 늘어날 것을 보장합니다. 물론 아주 건강한 몸으로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아들 녀석이 보내온 효도 선물에 M씨는 조금 난감했다. 기특한 마음으로 보내온 선물이지만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두 팔과 손으로 건강을 체크 하는 안드로이드를 집으로 들인다는 것은 쉽게 찬성할 문제는 아니었다.
M씨는 아들이 사춘기 시절에 아내를 잃었고, 그 후 혼자 아들을 길러 왔다.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아들의 효도는 감동스럽기는 했지만, 얼핏 보기에는 인간의 모습과 매우 흡사한, 더구나 젊은 여성형의 안드로이드를 홀아비 집안에 들이는 것은 조금 변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꼭 저렇게 안드로이드 형태를 가져야 하나요? 이미 저의 건강을 체크하는 메디컬머신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보급형 메디컬머신은 손님에게 필요한 운동, 영양섭취, 취침시간, 병원진료 등을 성실하고 정확하게 알려주기는 합니다. 그런데 손님. 메디컬 머신이 고지하는 데로 운동을 하시고, 식사를 하고 계십니까?”
M씨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메디컬머신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을 겁니다. 대부분의 고객님들이 그러하시더군요. 덕분에 저희 회사는 메디컬머신을 사용하는 고객분들이 병에 걸려 고생을 하셔도 보상금을 드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메디컬머신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는 경우 보상을 해드린다고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메디컬 로이드는 다릅니다. 단지 옆에서 말로만 건강을 챙기세요 하고 떠드는 것만이 아니라 적당한 물리력을 사용해서 손님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앞으로 M씨가 먹고, 자고, 싸는 모든 것을 이 쇳덩어리가 제약한다는 말이다. M씨는 여러모로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들놈의 정성을 뿌리 칠 수 없어, 배달 온 메디컬로이드를 집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메디컬로이드를 바라보는 M씨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M씨가 어린 시절만 했어도 엉성한 움직임으로 춤을 추는 로봇도 신기한 시절이었는데, 이제 환갑을 넘긴 M씨의 앞에는 대화가 가능한 안드로이드가 있지 않은가? 급변하는 세상에 휘둘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엄청난 물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메디컬로이드를 차분히 바라보는 M씨의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흥분과 감상 그리고 신기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금속바디를 감싸고 있는 인공피부는 모공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같지 않은 인공물의 무감정이 전해진다. 메디컬로이드의, 잘 만든 가면 같은 얼굴을 보며 M씨는 기묘한 것을 느끼고 흠칫 했다. 그 얼굴의 생김세가 먼저간 아내의 얼굴을 묘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어린 시절의 흥분을 느끼던 M씨는 조금 더 성장한 남자의 충동을 느꼈다. M씨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메디컬로이드의 젖가슴이라 생각되는 위치의 굴곡을 쓰다듬었다.
딱딱했다. 메디컬로이드는 그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기물 덩어리일 뿐이다. M씨는 비참한 당혹을 느끼며 물러섰다.
“심장박동이 상승합니다. 호르몬과 뇌내물질이 과잉 분비되는 것이 감지됩니다. 안정이 필요합니다.”
메디컬로이드는 소파를 향해 M씨를 부드럽게 인도하여 앉히고, 오디오를 켜 기분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이러한 스타일의 헬스케어가 이어졌다. 물론 M씨에게는 귀찮은 일이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염분과 산화지방이 가득한 음식도 먹고 싶은 법이고,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한 잔의 술에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메디컬로이드가 제공하는 음식은 마치 혼이 빠져 나간 듯한 싱겁고 재미없는 음식이었고, 술이라도 한잔하고 들어온 날은 알콜을 분해하는 정체 마사지와 뜨거운 뜸을 강제로 시행하는 것이었다.
“심장박동이 흡연후의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담배를 수색합니다.”
판매원의 말대로 이 메디컬로이드는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인 동시에 최악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감히 주인의 행동을 직접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M씨는 자신의 자켓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폐기하는 메디컬로이드를 보며 왜 소설 속의 로봇3원칙이 현실에 적용되지 않은 것인지 분개했다. M씨는 가능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줄이려고 했다. 그러나 정년퇴직한 홀아비가 집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고작 두 달도 지나지 않아 M씨의 몸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것이 상쾌해졌다. 얼굴과 손발이 불쾌하게 부어오르던 고질적인 부종도 깨끗이 사라졌고,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일하면서 생긴 요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강요된 식이조절과 체질개선, 근육운동이 늙은 M씨의 몸에 주는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윤락여성을 찾은 M씨는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의 정력에 스스로 감탄할 정도였다.
몇 달의 시간이 더 지나고 어느 정도 그 강제적인 건강에 익숙해진 M씨는 메디컬로이드에게 이름까지 붙여주면 정을 주기 시작했다.
“어이, 세라! 오늘 내 심장박동은 어때?”
“정상입니다. 저도 아주 기쁩니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지식과 기술을 총망라하고 있는 메디컬로이드는 M씨의 심장박동을 스캔하는 것으로 모든 질병의 검진을 할 수 있다. M씨는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욕실로 들어섰다. 젖은 몸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곧 칠순이 돌아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몸이 보였다. 날로 두꺼워지는 흉근과 갈라지기 시작하는 복근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 덕분이었는지 M씨는 최근 터무니없이 어린 여성과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녀를 처음 집으로 초대한 날이자, 그녀와 함께 어른의 사랑행위를 시도하려는 날이기도 하다.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씻는 M시에게 메디컬로이드 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의 심장박동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안드로겐의 과다분비가 의심됩니다.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망치를 움켜쥐고 있는 M씨는 기시감을 느꼈다. 20여년 전 M씨는 지금과 상당히 유사한 행동을 한 경험이 있다. 망치를 움켜쥔 손에 흐르는 땀도 같았고, M씨의 앞에 사지를 펼치고 널브러진 여성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20년 전 M씨가 쥐고 있던 것은 망치가 아닌 술병이었고, 널브러진 여자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었다는 정도이다.
“심장박동이 상승 합니다. 지나친 흥분상태로 여겨집니다. 진정을 요합니다.”
“분명히 말을 하라고요. 마누라 하고 아들버리고 저 여자하고 살 거예요?”
“심박의 안정을 위한 음악과 약을 제공하겠습니다. 그전에 따뜻한 물로 사워할 것을 추천합니다.”
“저 싸구려 계집 품에서 헐떡거리는 지금 당신 꼬라지가 아주 볼 만하네요.”
“주인님의 동행분은 의복을 착용하시고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행동은 주인님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년아 뭘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어. 빨리 옷입어!”
“주인님의 건강유지를 위한 요청입니다. 받아들여 주십시오.”
“차라리 내가 나갈까요? 그 년을 안방으로 끌어들여서 천년 만년 잘 살아보겠어요?”
“나가 주십시오.”
“꺼져 이년아!”
M씨가 젊은 여자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하는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온 20년전 의 마누라와 10분전의 메디컬로이드는 정중함의 차이가 있을 뿐, M씨에게 비슷한 내용의 말을 지껄였다. 젊은 여자는 모두 기겁하여 달아났다. 그리고 20년 전의 M씨는 술병을 휘둘렀고, 10분 전의 M씨는 망치를 휘둘렀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많은 것이 흡사했지만 또 많은 것이 달랐다. 피투성이의 시체를 분해하고 산에 묻고, 추를 달아 바다에 버리고, 드럼통에 넣어 태우고, 변기에 흘려보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투덜거리며 마당을 던져버리면 되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온갖 거짓증언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판매회사에 전화를 걸어 위약금을 물겠다고 통보를 하면 그만 이었다.
언제 발각 될까 두려워 벌벌 떠는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야 했지만 지금은 되알진 욕설을 퍼붓고 술병을 들면 되었다.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머리의 반이 날아간 메디컬로이드는 현관문을 열고 되돌아 왔다.
※
M씨가 전화로 메디컬로이드의 회수를 요청을 하여 판매회사 직원은 M씨의 아들과 함께 M씨의 집을 방문했다. 어떤 물건이든 구입할 때는 쉽게 팔지만 해약 할 때는 번거로운 절차가 있는 법이다. 직원은 반드시 계약자와 동행하여 메디컬로이드의 파손부분을 확인해야 한다고 우겼고, 아들은 오랜 만에 아버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이 먼저 만난 M씨는 거실 한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는 의미 없는 살덩어리인 하반신뿐이었다.
M씨의 상반신은 커다란 수조에 배양액과 함께 담겨 있었다. M씨의 상반신은 매우 규칙적으로 꿈틀거렸다. 양 손의 엄지손가락에 연결된 전극에서 분당 65회의 펄스 전기가 M씨의 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님의 심장박동은 정상입니다. 저도 아주 기쁩니다.”
출처 |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