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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지문
별개의 두 사람이 같은 DNA구조를 가질 경우는?
종종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 같은 유전자를 가진다.
그러면 별개의 두 사람이 완전히 같은 모양의 지문을 가질 확률은?
이론적으로 지문인식기에 등록된 지문에서 추출된 코드가 동일할 확률은 약 10억 분의 1이라고 한다. 전 세계 60억 인구 중 당신과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5명은 더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열 개의 손가락 지문이 모두 같은 경우는?
개 같은 중소기업의 개 같은 사장과 개 같은 부장이 던져준 업무 때문에 개처럼 일하며 야근에 매진하던 나는, 새벽 2시 반에 겨우 내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던 날은 빌어먹을 토요일,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일요일이었다. 6시간 후에는 또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 남들은 뼈와 살을 불태운다는 주말에 야근 하는 것도 모자라, 하느님도 쉬었다는 일요일에 특근을 나가야 하는 처지가 너무 나도 슬펐지만, 피곤한 몸은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이 들자마자 누가 내 원룸의 현관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염병! 지금 새벽 3시라고!
분노와 잠결에 정신줄을 놓은 나는 아무 거나 손에 움켜쥐고 문을 열었다. 식칼이었다. 그러나 내가 움켜쥔 도구는 별 소용이 없었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조폭과 유사점이 많은 거대한 덩치의 남자들이 나를 단숨에 제압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갑과 밧줄로 꽁꽁 묶인 채 경찰서 취조실에 덩그러니 놓여진 후였다.
“어렵게 하지 말자. 이 새벽에 너도 졸리고 힘들잖아. 흉기에서 네 지문이 나왔어. 아무리 발뺌한다고 해도 이미 게임오버야. 쉽게 가자, 쉽게. 자 이름?”
빠져 나갔던 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형사가 묻는 대로 이름과 주소 등의 인적사항을 줄줄이 대답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대답하지 못했다.
“김OO외 4명을 살해한 사실이 있습니까?”
“예?”
“아, 죽인 사람이 더 있나? 김OO, 이OO, 박OO, 조OO, 최OO 이외에 또 누굴 죽였어?”
“예?”
“야 이 새끼야! 네가 죽인 사람이 전부 몇 명이냐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거냐? 엉, 그런 거야?”
“예?”
그리고 내 머리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참을성 없는 놈 같으니…….
그리고 나를 취조하던 형사는 여러 가지 언어적 설명과 상당히 아프고 괴로운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 내가 경찰서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살인. 그것도 연쇄살인의 주요 용의자.
최주임, 조과장, 박부장, 이상무, 김사장을 죽인 연쇄살인이라면 어이없지만 마음으로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꼭 죽여 버리고 싶은 인간들 이니까.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처자들을 다섯이나 칼로 찔러 죽였다고 체포되어 왔으니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하지만 얼마 후 나 못지않게 형사들도 당황하게 되었다. 나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나왔으니까. 전국 여기저기에서 그 불쌍한 여자들이(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펑펑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길게는 수백km, 짧게는 수십km 떨어진 우리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었다. 그리고 염병할 김사장이 보안을 위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달아둔 CCTV에 좀비같은 내 모습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여자들이 죽던 날 밤, 내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김사장의 명예를 걸고 맹세 할 수 있다. 그 흡혈귀 같은 김사장은 하지도 않은 야근에 대한 수당을 지불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형사들은 그 CCTV의 영상이 조작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국과수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 영상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나라의 높은 양반이 ‘빨리 해결하라’고 명령한 연쇄 살인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를 쉽게 풀어주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 여자들을 죽인 흉기에서 내 지문이 나왔다. 내가 형사라도 나를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정말로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매스컴은 이미 진범이 잡혔다는 듯이 나를 범인처럼 보도했다.
위로부터의 압력에 똥줄이 탄 경찰들은 조금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여 나를 범인으로 엮으려고 했다. 며칠만 더 늦었어도 나는 살인을 인정하는 자술서에 서명할 뻔했다.
그러한 나를 구한 사람은 충격적이게도 김사장이었다. 김사장은 ‘연쇄살인알리바이동영상’이라는 제목으로 CCTV영상을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 했다. 수십 만명의 사람들이 우리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했고, TV 뉴스에서는 억울한 사원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경영자로 김사장을 보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홍보된 덕분에, 올해 3/4분기 동안의 매출은 최근 3년간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은 성과를 올렸다.
나는 김사장이 홍보효과를 노리고 한 짓이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무사히 풀려난 나에게 ‘경찰조사 받느라 회사에 나오지 못한 날은 네 연차에서 깐다.’라는 문자를 조과장을 통해 보낸 놈이기 때문이다.
연쇄 살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 지문이 찍힌 흉기가 2개가 더 발견 되었다. 내 주변에는 경찰의 노골적인 감시가 24시간 지속되었다. 결국 흉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김사장은 나를 해고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계속 살인이 벌어졌다. 아이러니하게 나를 감시하던 경찰들이 나의 무죄를 입증했다. 어딘가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그 순간 그 경찰들은 편의점에서 담배와 소주를 사던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후 나는 조금 유명해 졌다. 연쇄살인범과 같은 지문을 가진 놈으로서가 아니라,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낸 살인범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반전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에서 펼쳐졌다. 또 내 지문이 찍힌 흉기를 남긴 연쇄살인이 벌어진 그 시간과 동시에, 지구반대편의 어떤 나라에서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 현장에서도 흉기가 발견되었는데 다들 짐작하시다 시피 그것에도 내 지문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후 전 세계 여기 저기 살인사건에 사용된 흉기에서 내 지문이 발견되는 일이 속출했다.
이 기묘한 사건은 내 외신을 가리지 않고 대서특필 되었다. 자극적인 가십에 목말라하는 독자를 위해 나를 취재하려는 3류 주간지의 인터뷰 요청과, 쓰레기 같은 추측기사가 넘쳐났다.
드디어 세상 사람들은 ‘같은 지문을 가진 여러 명의 살인자’라는 웃기지도 않는 개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는 연쇄살인범 대열에 끼게 될 공포의 아이콘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유명해 지고 말았다.
유명세의 단점은 아주 많다. 사생활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백안시를 견뎌야 하고, 온갖 루머에 시달려야 한다. 좋은 점은 한 가지 뿐이다. 하지만 그 한가지의 이점이 다른 단점을 모두 상쇄하기도 한다. 유명세의 결정적인 이점은 유명세를 큰 돈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의 TV쇼에 출연하게 됨은 물론 장난같이 작성한 원고를 대필자에게 넘겨 출판한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게 되었다.
어느덧 저명한 사회명사처럼 되어가는 나의 처지가 그렇게 나쁜 것 만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너무나도 불행한 지문을 가지고 있는 억울함의 아이콘으로 여기고 있다. 그 ‘불행’은 상당히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말하자면 김사장의 형태를 하고 나를 찾아왔다.
“그러니까 말이지 자네는 아직 우리 회사를 완전히 퇴사한 상태가 아니란 말이지. 서류상으로는 자네는 아직 우리 회사의 사원이야.”
이 돼지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건 자네가 서명한 근로계약서 일세. 자 여기를 봐. ‘계약기간 동안 을의 경제적 생산활동은 모두 갑에게 귀속된다. 단 갑의 동의하에 그 귀속상태를 해소 할 수 있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잘 보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 돼지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고?
“다시 말하면 내가 허락을 했다면 자네가 편의점 알바를 하든 대리운전기사를 뛰든 상관없지만, 내가 허락을 하지 않았다면 그 알바비는 몽땅 우리 회사 몫이라는 거야. 알겠어? 이해가 가냐고?”
이 돼지가…….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네가 벌어들인 수익은 법적으로 전부 우리회사…….”
김사장의 머리통을 부숴버린 망치에는 내 지문이 잔뜩 찍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그 망치를 현장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처 |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