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오는 길에 너무나도 위로가 필요해서 적습니다.
연락도 잘 안되고, 만나도 시큰둥하고, 보고싶다는 말도, 만날 약속도, 스킨쉽도 반사적으로만 하는 여자를 제가 너무 좋아했습니다.
연락 씹고 잠수탈 때마다 애태우고, 나 혼자 좋아하는거 같은 마음에 자존감 상실하며 짝사랑같은 연애를 했어요.
너무 힘들어 헤어지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내뱉은 뒤 후회할까봐 내가 더 잘하고 본인 상황 이해해주는 좋은 남자가 되면, 더 매력있고 어른스러워지면 달라질까 기대하고 참아왔어요.
평소 확인은 늦어도 대충이라도 답장은 하는데 돌연 잠수타는 일들이 생기고, 같이 있어도 너무 피곤하다며, 장거리 연애라 먼 길을 만나고픈 마음으로 찾아온 저를 귀찮은듯 대하고 갑자기 서울로 돌아가란 얘기를 들어도 몸이 약하구나, 내가 배려가 부족해서 그렇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새벽 먼저 잠든 여친 몰래 본 핸드폰에서 이 모든게 제 잘못이 아니란걸 알았어요.
저와 만났던 다음 날. 집에 보냈을 때 입었던 옷 그대로 사귈 때는 헤어졌다고 말한 전남친과 1박 2일로 바다랑 산에 간 사진이 있더라구요.
자취하는 곳에 여자인 친구들이 없다는걸 뻔히 아는데, 저한테는 피곤해서 일찍 잔다고 했던 날. 새벽에 누군가와 둘이서 먹을 술상을 차린 사진도 찍혀있구요.
자기는 사진빨 안받아서 사진 찍는거 싫어한다고. 저랑 있을 때는 셀카도 잘 안찍고 같이 찍은 사진은 자기가 핸드폰 가로채서 지운 아이가 그 날은 무슨 셀카를 그리 많이 찍었는지.. 이런 상황을 알게해준 전남친과 찍은 투샷도 이 친구가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여친과 함께 찍은 전남친의 프사는 배경이 여친 동네였구요. 잠수를 탔던 날이 1년 기념일이었던거 같더군요.
순간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기보단 저 자신이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얘보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한다는건 알고있었지만, 원래 무심한 성격인줄로만 알고 견디려했는데 아니었다고, 그게 나라서 그랬던거라고 사진 속에서 웃는 그 친구가 말하는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시간에 다른 남자와 웃고 떠든 것보다, 잠자리를 가진 것보다, 나는 그 사람에 비하면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처절히도 뇌리를 흔들어 잠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이었던건, 등록된 전번에서 여봉♡이라고 적혀있고 여친의 폰번호와 뒷자리를 맞춘 번호를 발견했는데, 당연히 전남친인줄 알았던 이 사람이 전화번호를 등록하고 카톡에서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전남친이 아니었습니다.
전 이름으로, 전남친은 아에 번호가 저장이 안되있더군요.
페이스북을 뒤져 찾아보니 명문대 졸업생에, 사귀기 전 친구일 때 술자리에서 얼핏 들었던 전의 전남친인듯 하더군요.
너무 우울하고 외롭고 비참한 기분에 오후쯤에서야 일어난, 최근 저와의 스킨십을 피하는 여친을 졸라 아주 오랜만에 관계를 가졌습니다. 만지고 사랑을 속삭이는 걸로 그녀어게 있어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고 싶어서요. 이 지경이 되서도 내가 좋다고, 다른 쪽을 정리하겠다고 하면 떠나지 못할 것 같을 정도로 좋아해서요.
그리고 껴안은채로 말했습니다. 미안하다고. 내 멋대로 네 핸드폰 봤다고. 전남자 만나는거 알게됬다구요.
화가 나기보다도 더 추락한 자존감과 그럼에도 붙잡고픈 마음에 그 사람과 나 중 누가 본심이냐 물었습니다.
제가 화를 내지 않아서인지 처음엔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다 끈질기게 재촉하니 말하더군요. 자기가 이제 만나야 할 사람은 결혼을 해야할 상대라고.
전남자는 연애상대지 결혼상대는 절대 아니며, 본래 저와 사귀기 시작할 때에는 헤어졌으나, 전남친 쪽에서 그 이후에도 매달렸고 그 주변 인간관계 때문에 헤어질 타이밍을 놓쳐서 이제까지 만나게 된것이라, 이럴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에대한 이야기에서는 입을 다물자, 사실 저도 뻔히 답을 아는 문제를 재촉했습니다.
전 결혼상대로는 그 사람보다 나으나,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더군요.
예상했던 답변이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냐 나냐를 물으니 둘 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문제의 여봉♡ 이야기를 꺼냈어요.
이제 나랑 전 남친 이야기는 대충 알겠고, 정리됬으니 그 사람은 대체 뭐냐고.
그랬더니 그냥 훨씬 전에 만났던 사람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발뺌을 하더군요. 그리고 알게됬습니다. 아, 이사람이 진짜구나. 라고.
저는 이 두 사람한테 너랑 사겼었고, 당신들이랑 사귀는걸 이제 알아 헤어졌다고 알릴거라고, 그나마 니가 내가 모르는 여봉♡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줘야 내가 소설 안쓰고 그나마라도 수습해서 한명이라도 건질거 아니냐라고 심한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번도 본적도 없는 표정과 제가 참 좋아했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는 살벌한 음성으로, 넌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하냐고. 그 사람들한테 말하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고 소리를 빽 지르더군요.
그리고 더이상 마주하는 것도 괴로워, 그녀가 씻는 중에 그냥 방을 나서려하니 붙잡더군요. 눈가를 파르르 떨며 분노한 표정을 보면서 바닥에 마주앉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복수하려고 하는거냐고 하더군요.
네. 복수하고픈 마음이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죠. 적어도 저한테 상처주고 다른 사람이랑은 아무 탈 없이 잘 만날거란게 배알이 꼬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이 친구를 상처주기는 싫은 마음도 있었어요. 아직도 등신같이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서. 그냥 내가 애인 있는지 모르고 접근하고 고백하고 사겼으나 이제 헤어졌다고만. 딱 그 당사자들에게만 알릴것이며, 너와 내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과 너의 주변 지인들에게는 결코 알리지 않을 것이라 말했죠.
그냥 가만히 앉아 부모의 원수처럼 저를 째려보는 그녀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 우리 어제완 달리 불편한 사이 됬다고. 일어나고싶다 말하니, 제 이야기가 듣고싶다더라구요.
그래서 다 쏟아냈습니다. 사귀면서 서운했던 점부터 이 상황이 내겐 화가나기보단 비참함을 다 털어놓았어요.
그러니 자기도 좋아했다고 좋아해서 만난거라 말하더군요.
방금 다 벗고 껴안은 상태에서, 화가 아니라 사랑을 구걸하던 때 이미 나는 아니라고 말한 그 입으로.
방금까지만 해도, 정말 빌어서라도 듣고 싶었던 한마디가 실감을 잃었습니다. 한참을 서로 무언으로 눈을 마주보고 있다가 그러냐고 하고 일어서니 이번엔 핸드폰을 낚아채더군요.
연락하지 말라고. 니가 대체 무슨 권리로 내 폰에서 훔친 번호로 연락을 하냐고. 당장 지우고 가라고. 연락을 해도 자기가 할거라고.
그렇게 또 한참을 실랑이 했습니다.
그렇게되자 저도 화가 났습니다. 너는 니 행위로 상처받은 나는 안중에도 없냐고. 나는 니가 만나는 다른 남자들도 다 나처럼 지들이 잘못해서 연락안되는건가 자기비하할까봐 겁난다고 쏘아 붙였죠.
하지만 그럼에도 핸드폰을 쥔 손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 친구의 바닥을 봤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덧 본인의 행위의 피해자인 저에 대한 배려는 일절 없더군요.
여기까지 와서야 이 사람을 내가 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죠. 번호는 니가 지우라고 하니,너 보는 앞에서 남자들 뿐 아니라 네 번호까지 전부 지우고 차단을 하겠다. 하지만 몇 다리 건너서 물으면 다 알게될 사람들이라고. 나는 지우더라도 연락을 하겠다고.
그렇게 번호를 지우고서야 집을 나섰습니다.
연락은 연락처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카톡으로 약속한 만큼만 보내고 모두 차단했어요.
아직은 좋아하는 마음이 남은게 원망으로 화해서 그 친구 행복을 빌 순 없어요. 아마 이제 평생 볼 일도 없겠지만.
헌데, 남들이 이러는거 보고 사이다일 줄 알았는데 반대로 더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세 다리란건 이야기 안했어요. 사귄 것도 제가 많이 좋아해서 먼저 고백해서 사겼다고. 당신과 사귀는지 오늘에서야 알아채 헤어졌다고만 썼구요.
그 둘은 각자가 저랑만 양다리인줄만 알거에요.
서울 향한 차를 타러 걸어가는 길에 질척하게 내리는 비까지 잔뜩 맞고, 가만히 있기에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이 곳에 글을 남겨요. 한참을 정신없이 써갈겼는데 아직도 도착하려면 멀었네요.
바람 핀 여자와의 이별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렇게 저를 비참하게 만든 연애는 처음이라 너무나 힘듭니다. 제발 빨리 잊혀지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긴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추가분입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와중 최대한 배려해서 증거사진 같은 것도 일절 안보내고 내가 너무 좋아해서 만났고, 이 친구는 만나고 있던 당신을 숨겼을 뿐 나한테 냉담했다. 이런 식으로만 남자들에게 보냈더니..
그냥 저 혼자 쇼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네요. 함께한 2달은 없는걸로. 그냥 같이 술 몇잔 했으나 사귄 적은 아에 없는 사람으로.
정말 저한테 너무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세 다리 다 깠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어제도 한숨도 못잤는데 머리가 복잡해 도무지 잠에 들지 못 해서요. 이제야 제가 가진걸 모두 내려놓았어요.
차단 해제하고 이야기해본 여봉은 예상대로 전의 전 남친으로 5년간 만난 사이라더군요..
매일 연락하고 매주 만났다고.
세 남자와 매일 연락하고 매주 만난 여자.
애정으로 눈이 멀었던 탓일까 세상에서 제일 착할 것만 같던 여자가요.
배낭 매고 붐비는 버스 타면 가방이 다른 사람한테 걸려서 걸리적 거린다고 부족한 주머니 사정에도 택시 타자고 했던, 부자이기보다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반해 만날 때 마다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연애는 제 속을, 마음을 오롯히 바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대이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그 전에 당장 이 여자를 잊어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