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의 기억 조작 센터는 민간인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 외에 하는 일이 한 종류 더 있었다.
그것은 특수한 범죄자들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피의자를 재판할 때는 기억 조작을 쓰지 않는다.
기억 조작의 기술을 쓰면 기억도 살펴볼 수 있을 테니, 피의자의 범죄 여부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초기에는 도입할 뻔 하기도 하였지만, 피의자의 인권 문제로 백지화 되었다.
대신 형이 확정된 이들에게는 종종 기억 조작을 하기도 하였다.
과실로 인한 살인이나, 정신병에 의한 살인 등은 강력 범죄이긴 하나 범죄자들만의 잘못은 아니므로
사람에 따라 기억을 삭제한다. 물론 일정기간 교도소에 구류 후에.
그리고 아주 먼 나라로 보내버린다.
그들은 그 나라의 언어와 생활 방법 등을 배워야 하기에 1년 정도 적응 기간을 거친 뒤 바로 사회로 풀려난다.
물론 그들은 UN 정부 감시 하에 살게 되지만 말이다.
나는 언제나 이 형벌이 맘에 들지 않았다. 너무 범죄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 같았다.
어쨌든 범죄를 저질렀는데, 정신병이 있다는 이유로 몇년 구류 되지도 않고, 기억을 지우는 것이 끝이란 말인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내 일이기에 범죄자들의 기억을 삭제 하곤 했다.
-정말 모든 기억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영혼이란 기억이다. 적어도 이곳의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어느날 나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고 다른 이의 기억으로 대체된다면 나는 영혼이 바뀌었다고 믿을 것이다.
기억을 바꾸면 인성도 성격도 많은 부분 변한다. 물론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기억이, 영혼이 클릭 한 번으로 모두 사라진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영원히.
그렇게 종종 나는 영혼을 살해하고 있었다.
내 업무의 일종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죄책감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한 범죄자를 만났다.
원래는 만나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화장실 옆자리에서 우연히 그와 함께 소변을 보게 되었다.
아니, 나는 우연히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그 범죄자의 계획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신이, 제 기억을 지우실 분이죠?"
뜬금 없는 질문에 소변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았고 그는 벽을 쳐다보고 소변을 누며 말을 이었다.
"이게 옳은 걸까요? 의도 하지는 않았었어요, 그 죽음을. 하지만 결국 제 잘못이라면 그만한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기억을 지움과 동시에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도 모두 사라지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편해져도 되는 걸까요?"
그는 소변을 다보고 나를 지나치며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제, 기억을 따로 저장해 주실 수 있나요? 나중에 다시 달라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저 제 잘못, 죄책감들이 세상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거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기억을 따로 저장해 달라고? 무리한 요구였다. 불법이다. 그 기억은 어디에서도 저장되지 않게 영원히 말소되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간들끼리의 관리는 부실했다.
누가 설마 범죄자의 기억을 따로 저장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조금만 더 감시가 철저했다면 자연스럽게 기억을 완전히 없앴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난 고민에 빠져야 했다.
그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
들어줄 이유가 없었지만, 안 들어줄 이유도 별로 없었다.
기억을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기억을 따로 백업을 했다.
센터 컴퓨터에 저장할 수는 없었고 빨리 휴대폰을 연결하여 휴대폰 메모리에 저장을 해 두었다.
꽤 용량이 컸지만 내가 휴대폰을 하드하게 다루는 사람은 다행이 아니기에 용량은 상당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범죄자의 기억을 지웠다.
어찌 됐건 똑같았다. 종종 있는 범죄자 중 한 명이었다.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긴 했지만 그 외에 달라질 건 없었다.
그도 결국 완전히 기억을 삭제된 채로 타국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적응해 나갈 것이다.
모두 끝난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건 후 2년 뒤 그를 한 여행지에서 만났다.
친구의 유럽 여행 후, 문득 부러워져 휴가를 내고 떠난 여행이었다.
공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때였는데, 공원을 지나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헤어도 얼굴도 상당히 달라져 있었지만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그도 나의 눈빛을 눈치 채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순간 내가 잘못했구나 해서 당황스러웠지만, 이왕 엎질러진 물 최대한 티를 안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 저를 아세요?"
그는 번역기 앱을 켜고 나에게 물어왔다. 그가 하는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었다. 한국어를 완전히 잊은 듯 싶었다.
"사실 제가 아는 분이랑 닮아서 무심결에 쳐다본 것 같네요. 여행오셨나 봐요?"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건만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아니요. 이곳에서 거주해요. 기억 말소, 추방 벌을 받았거든요."
세상의 차별은 없어지고 있었다. 한 때 있었던 장애인 차별,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등 시간이 지나며 많이 사라졌지만
차별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 기억이 말소되고 추방된 범죄자들은 은연 중에 차별을 받고 있었다.
완전히 기억을 잃어 새사람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나에게 과거 범죄자라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래요? 적응은 잘 하셨나요?"
"사실 적응이 안 되네요. 한구석이 공허해서요. 분명 잘못을 해서 이곳에 왔을 텐데, 모든 걸 잊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종종 차별을 받아요. 노골적이든 은연중이든 그러면 화가 그들이 아니라 나를 향해서 표출돼요. 도대체 나는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 거지?
하고 말이에요. 저는 이렇게 어느정도 자유를 얻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도 잊고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옳은 걸까요?
피해자나 가족들은 아직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텐데요."
정말 나를 알아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치 옛날에 했던 말과 거의 같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이 있었다. 조용히 그를 바라보자, 그도 나를 바라 보았다. 그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 좀 줘 보실래요?"
그는 나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그리고 나는 그의 휴대폰에 이제껏 묵혀두었던 백업 자료를 넘기기 시작했다.
"여기요. 휴대폰. 이 안에 들어있는 건, 당신의 기억이에요. 어떤 기억인지는 저도 몰라요. 당신의 기억을 삭제하기 전에 그저 백업만 해두었었으니까.
기억을 확인하려면 센터 컴퓨터를 사용해야 되는데, 설마 걸릴까봐 무서워서 저도 못봤었어요.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하지만 이 기억으로 당신이 진심어린 속죄를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될 거 같아 이 자료를 다시 넘겨드려요. 지금도 아마 정부 관리 하에 있을 테니까 기억을 돌려 보거나 다시 당신 머리에 입력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방법은 아마 지하 시장 어딘가에 있을 테니 알아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는 그 말을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정말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기억을 돌려주었다.
나는 휴대폰에 있던 그 기억을 삭제했다. 그것으로는 안정이 안 돼서 아예 폰을 부셔서 버리고 새로 휴대폰을 구입했다.
그걸로 정말 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 달후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Z씨."
"누구세요?"
"저, 저번에 유럽에서 기억을 돌려주셨던 그 사람입니다."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연락까지 올 줄이야. 심장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왜 전화 했어요?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구요."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제 기억이 돌아왔으니까."
확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정말 기억이 돌아왔었다. 그가 만약 진짜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 어떡하지?
다시 그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렇다면 그건 나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었다.
"저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용의자를 잡고 재판에서 기억 조작 능력을 쓰면 쉽게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을 텐데, 왜 재판장에서는 안 하는 걸까요?"
"그야 인권 문제겠죠?"
"인권이요? 그런데, 범죄자에게는 기억 삭제를 시행하구요? 기억의 완전 말소는 거의 살인과 비슷한 행위인데."
"그것도 범죄자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겠어요? 교도소에서 평생 썩는 것 보다는 기억 말소가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다른 질문을 해보죠. 당신이 만약 거대한 권력을 가진 권력가예요. 근데 어쩌다가 살인 같은 중범죄를 저질렀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할까요?"
"왜 그런 질문을.."
"그냥, 맞춰봐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증거를 없애겠죠? 증인을 매수하거나..."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게 증거를 없애고, 증인을 매수하면 그 범죄가 없던 일이 될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지금."
"차라리 또 다른 용의자를 만드는 게 더 쉽지 않겠어요?"
"그럼 용의자는 가만히 있답니까?"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이미 그 용의자는 기억이 삭제 돼서 타국에 가있을 텐데."
"네?"
말 문이 막혔다. 그제야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알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 후 다시 말을 시작했다.
"저는 잘못을 하지 않았어요. 과실로라도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구요. 조작이었어요.
이제껏 그래 왔겠죠. 그렇게 그들의 잘못을 감춰 왔겠죠. 누군가 희생자를 만드는 것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가 너무 쉽게 내 머리를 파고 들었다.
"저 또한 포기하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 자신도 과실로 인해 그랬다고 인정해 버리게 되더군요.
그래야 교도소 복역은 안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 그들의 계략이었어요. 제 변호사도 한 편이었다구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좀더 준비를 제대로 했으면 진실은 밝혀질 수 있었어요."
"그..그럼, 화장실에서 유럽에서 했던 말들 그것들은 당신이 계획한 거였나요? 이러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아뇨. 당신에게 말할 때, 이렇게까지 되리라고 예상치 못했어요. 당신이 기억을 백업해 두는 것도, 유럽에서 해후를 하는 것도, 당신이 기억을 넘겨 주는 것도, 어떤 것도 예상하고 한 일이 아니에요. 혼자 상상은 했었죠.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상상. 그래서 말을 걸긴 했지만 정말 계획하에 한 건 아니엇어요."
"좋아요. 믿을게요.. 그러면 이제부터.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진실을 밝힐 거예요. 세상에. 제 모든 걸 걸고서라도. 당신이라면 어쩌겠어요? 정의를 위해 모든 걸 걸 수 있겠어요?"
"글쎄요....그래서 모든 걸 걸고 이제부터 어떻게 하려고 하는데요?"
"각 언론사마다, 연락을 돌리려구요. 통하지 않으면 인터넷에라도 글을 올릴 겁니다. 기억 말소에서 기억이 돌아왔다고 하고 모든 걸 밝힐 겁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됐다고 생각했다. 진짜 악인이었으면, 큰 일날 뻔 했다. 다시는 기억을 백업하거나 돌려주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정말 난 위험한 일을 할 뻔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그렇게 행동하려면, 한 사람에 희생이 필요해요. 그 희생은 어쩔 수 없어서, 꼭 그 사람이 이해해 줬으면 좋겠더라구요."
희생? 무슨 말이지 갑자기? 말이 제대로 안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해해 주실 거라 믿어요. 그럼 다음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가 했던 말들을 되새겨 보았다.
그는 나의 도움으로 기억이 돌아왔다 했다. 사실은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 했다.
범죄자는 따로 있고, 기억 조작은 권력을 가진 범죄자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진실을 밝힐 거라 했다.
그리고 그가 밝힐 진실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밝힐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나서, 나는 마시려던 커피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가 전화를 한 이유는 그 한 사람의 희생자에게 이해를 요청하기 위해서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