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 판단은 내가 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고려에는 공민왕이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자주적인 고려를 꿈꾸었고 그 것을 위해서는 원나라의 기황후를 업고 세를 떨치던 친원파를 척결하여 국론을 모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고심을 했어야 하는데, 이이제이라고 했던가요? 때마침 좋은 일?이 생깁니다, 원나라에 고생하던 그를 늘 곁에서 호종하던 조일신에게 고려에 돌아와 왕위에 오른 김에 자리를 하나 내주니 위 아래 없이 굴고 인사권을 능멸하여 골치였는데 이 친구가 일을 일으킨 것입니다.
나 탄핵한 녀석 누구냐? 10초 9초 그런거 없다, 당장 튀어 나와라
그 일은 다름 아닌 조일신의 임진 정변이라 불리는 정변으로 같은 친원파였지만 계파를 달리했던 터라 평소 충돌이 잦았던 기씨 일파와 당시 고려에 돌아와 있던 고용보에 대하여 부족한 세를 만회하기 위해 방법 아니 현피 한밤중의 어둠을 틈타 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원을 제외한 모두가 도망가 버렸기에 임진정변은 절반의 승리로 끝날지 모르지만 그는 여기서 플랜 B를 시작합니다, 왕궁을 포위하고 숙직하던 관리들을 참살하여 무력 시위를 벌인것이지요.
어쩔수 없이 그의 청을 따르게 된 공민왕을 업고 조일신은 짧게 나마 영화를 누립니다, 도망간 기씨 일파와 고용보에게 현상 수배를 내리는 한편 자신의 도당들을 전국의 군사 및 행정 조직으로 파견하여 뿌리부터 잠식해 들어가고자 한것인데 여기서 그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자신의 동료들을 차례 차례 역적의 누명을 씌어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스스로의 권력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고 공민왕의 역습을 불러왔습니다.
왜 고려 이야기를 주구장창 했는가 하면 문제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자신의 형제들과 일족들이 변을 당하자 기황후는 크게 분노하여 혜종을 사주합니다, 이미 바지 사장이나 다름없던 혜종은 그녀의 뜻에 따라 공민왕을 폐하고 대도에 있던 덕흥군을 왕으로 모시라는 명을 고려에 보내지요.
그러나 이미 노선을 달리하고자 했던 고려에서 이 말을 들을리가 없었지요, 그랬기에 그녀는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해 요동의 병력 1만을 움직입니다,
미래에서 온 내 여자(???)에게는 따듯한 차가운 고려 남자
하지만 고려는 당시 고려의 인재풀은 가히 절정이었습니다, 최영과 이성계로 대표되는 무장들과 비전을 공유하던 공민왕이 있었기때문으로 최영과 이성계가 고려군을 이끌고 정주 부근에서 1만의 원나라 군을 맞아 일전을 치룬결 과 기록상 살아 돌아간 원나라의 병사는 17명뿐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대승을 거둡니다.
어찌보면 이 싸움은 고려의 독립 기념일일것입니다, 더이상 원나라의 굴레를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될만큼 고려가 힘을 키웠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사건은 기황후때문에 일어났지만 그녀와는 사실 별 관련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일족들은 참살당하고 고용보는 해인사에서 죽임을 당하여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것 뿐입니다.
원나라와도 크게 상관은 없었습니다, 이미 제후국과 부마국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이라 하나 터졌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녀의 권력은 고려가 아니라 원나라의 대도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더 이상 고려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을 보더라도 그녀가 고려를 바라보았던 시각이 어땠는가를 알수 있겠지요.
다만 여기서 그녀는 손실을 입은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대패에 있어 기회를 포착한 정적들의 공세가 다시금 시작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정적들의 공세는 혜종을 근위하는 일파와 기황후와 황태자를 따르는 일파로 나뉘어 무력으로 충돌하기 까지 합니다.
이는 주원장이 성장하는데 크게 이바지 한 달리 말해 원나라의 명운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결과를 낳지요,
상황을 간략히 적어보자면 고려 원정의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불화를 처벌하려 한 정적들의 공격과 그 것을 방어하는 기황후 일파의 정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국봉을 파직시키고 유배를 보내는 등 의례 그렇듯 성공적으로 끝나나 싶었지만 정적들은 볼루드 테무르를 불러들였고 볼루드 테무르는 무력으로 대도를 점령합니다, 비록 아유시리다라는 놓쳤지만 기황후를 사로 잡는등 한때는 정적들이 이기는 것 처럼 보였지요.
그러나 황태자 아유시리다라는 산서성의 코케 테무르를 불러들였고, 대도에서 내전이 벌어지는데 결국 볼루드 테무르가 부하에게 배신을 당하며 죽어 황태자 일파는 승리를 거두고 기황후는 다시금 권좌에 올랐지만 이는 결코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거듭되는 탐욕에 지친 혜종은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없이 양위를 강요하는 그녀와 그녀의 일파는 진저리나기 그지없었지요.
특히나 1황후 바얀 후투그가 죽은 이후 검소한 그녀를 비웃는 기황후의 행동과 그 죽음을 틈타 1황후의 자리를 노림과 동시에 일개 재부를 관리하는 기관인 자정원을 정치 기관으로 만들자는 즉 권력을 독식하고자 하는 기황후와 그 일파의 행동은 더 이상 그녀를 돌아보지 않게 많드는 결정적인 계기였지요.
그렇지만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지요, 그가 끔찍하고 지리한 권력 다툼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더 이상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기황후는 1황후가 정비가 될수 있었습니다, 네 고려의 여성으로는 아니 이 땅에서 태어난 여성을 통틀어서 이러한 업적을 이룬 여성은 없었지요.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하였던가요? 2년입니다, 단 2년만에 그녀는 북으로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일으킨 혼란을 먹고 자라난 주원장이 이끄는 대군이 원나라 전역을 넘어 대도로 덮쳐왔고 더 이상 전력이 없던 왕실은 대도를 떠나 북으로 향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북원의 시작입니다.
그 때부터의 기황후의 생애는 알수가 없습니다만 결코 대도에서와 같은 권력과 부를 누린것은 아닐것 같습니다.
MBC가 그녀를 드라마로 만든 이유는 분명히 알수 있는 것 같습니다, 네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 중국 전역을 통솔한 역사는 전후무후한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나라를 불살랐습니다, 그 대상이 고려가 아니라 원나라일뿐입니다.
그녀가 지리하게 벌인 탐욕과 질시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때로는 고려를 위협했습니다, 제아무리 백성들에게 인자하고 내 가족에게 친근하다 할지라도 그녀가 벌인 정쟁들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원나라를 무너뜨리는데 충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댓가로 얻은 정비의 자리는 고작 2년뿐이었습니다, 이후의 삶은 알수 없지만 그녀가 북원에서도 대도와 같은 삶을 누렸으리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권력이라는 파이는 하나이고 그 것을 노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원나라 시절에는 혜종과 정적들이었지만 북원에는 그의 아들 아유시리다라가 그녀와 대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정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관리하는 기관이야말로 그녀와 그 일파를 자리잡고 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 과연 그것이 없는 그 기능을 할수 없는 북원에서 그녀가 자신의 힘만으로 권력이라는 파이를 독식할수 있을까요?
사료를 통해 볼때 그녀의 능력도 물론 좋았지만 그것은 남성을 매료시키는데서 그칩니다, 결코 일파를 이끌고 정쟁을 벌이는 그런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고용보와 박불화와 같은 이가 있었기에 일어날수 있었던 그녀이지만 그 들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싸울수 있을지는 알수 없습니다.
네 두서 없는 글이었지만 그녀에 대한 평을 내리자면 그렇습니다, 그녀는 여자일지언정 정치인은 아닙니다.
그녀의 인생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는데, 능력을 발휘한것은 2황후의 자리에 안착하는 전반기뿐입니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끊임없이 정쟁을 벌이고 아들을 재위에 오르려는 후반기는 그의 측근들이 능력을 발휘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MBC의 결론은 너무나 성급하고 무리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닌말로 방송에서 일족을 참살한 공민왕을 내쫓고 새 왕을 옹립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나 이성계와 최영에게 격파당하는 고려 원정군이나 내전을 통해 국력을 소진시키고 분열된 국론에 박차를 가하며 북으로 내쫓기는 장면을 그리겠습니까? 죽은 1황후를 검소하다 비웃는 장면은 어떻습니까?
과연 MBC는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일까요?
나라를 망친 요녀? 한 남자를 차지한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