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9번이고 그 형은 재수한 94학번.. 나는 대학방송국에서 일을 했고 그 형은 사범대 학생회에서 일을 했다. 나는 방송국 실무국장을 했고 그 형은 사범대 학생회장을 했다. 같이 농활도 가고 같이 집회도 나가고 같이 술도 참 많이 마셨드랬다.
그 형을 통해서 '학생운동'에 관해 참 많은 것을 보게 되었고, 그 무렵 전성기의 끝을 달리던 "한총련"이라는 단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실 학생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긴 했지만 대학언론이라는 '대안 매체'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있었던 지라 자연스레 '기성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소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소제의 중심에는 학생 운동이 있었고, 그 학생 운동의 중심에는 '한총련'이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한총련'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토록 뜨겁게 싸움을 이어가던 이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하는 궁금증에 대한 이야기이다.
99년부터 01년까지 군대를 가기 전 3년 동안 대학생활을 하면서 노동절, 한총련 출범식, 통축 그리고 기타 등등의 집회에 취재를 가면서 치열한 현장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마치 그들은 지금이라도 세상을 뒤엎을 것 같은 기세였고, 왠지 머지 않아 이 세상은 바뀔 것 같은 들뜬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총련 의장과 부의장 그 외의 집행부들이 무대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새롭게 다가올 세상의 주인공 같았고,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불꽃같은 눈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며칠 전에 대학생이었을 때 친하게 지내던 형을 만났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두 잔.. 세 잔.. 한 병.. 두 병.. 세 병..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왠지 그 형의 어깨는 더더욱 좁아지는 듯 보였다. 나는 군대를 다녀온 후 일찌감치 일을 시작했고,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며 돈을 꽤 모아 이제는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 형의 형편은 조금 달랐다.
99년이 되었을 즈음에 우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치열한 토론을 이어갔었는데, 그 때 우리가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이러 이러한 세상"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었다.
"이러 이러한 세상" 자유롭게 경쟁하고 자유롭게 비교할 수 있어서 결국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되고, 바로 옆에 있는 이들 조차도 동료나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세상..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이러 이러한 세상"이 아닐까? 지금 대학생들은 말 그래도 아주 자유롭게 경쟁을 하고 있는데.. 살아남기 위해..
그럼 우리는 왜 막지 못했을까? 우리의 힘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힘과는 무관하게 그들은 우리의 상대자가 아니었던 것일까?
문득 난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사회 각계각층에서 열심히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치만.. 지금 그들은 아직도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우린 진걸까?
수많은 물음표를 던져본다.
이런 글 쓸 곳이 '오유'밖에 없구나. 늘 와서 웃고 가끔 댓글 달고, 두 세번 글 쓰고 했던 곳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