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라는 국가가 본디 유목 민족이 근간이 되었던 국가여서 그런지, 여성들의 발언권이 높았던 유목민족 처럼 유난히도 다른 왕조들이나 국가들에 비해 여성들의 그것도 황태후의 목소리가 큰 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에 크게 개입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남성이 되었든 여성이 되었든 반드시 뒤를 받쳐주고 밀어줄 기관이나 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 역할을 하였던 기관이 바로 휘정원徽政院입니다, 본디 황태후의 재원을 관리했던 기관이지만 돈이 오고 가는 사이에 싹트는 인연을 타고 피어나는 탓인지 성종 이후로 황태후들이 본격적으로 섭정을 통해 정치적 권력을 키워나가게 되자 이를 따라 권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의 파이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왕실의 여성들의 힘이 커지는 만큼 황제의 권력은 비례하여 약화되어 갔고, 이는 원의 후반기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는 악영향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한 탓에 조정의 일신을 꾀하던 영종은 휘정원을 폐지시키나 얼마 못가 문종의 황후 보다시리께서 태황태후로서 섭정을 하기 위해 부활을 시켜주십니다. 그렇게 천년만년 영화를 누릴것 같던 보다시리도 정치적으로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되어 실각을 하였는데 그 부와 영향력은 자정원과 함께 고스란히 기황후가 물려받게 됩니다.
우리의 기황후께서는 일찍이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공녀로서 방황하던? 시절 자신을 밀어주고 올려준 고용보의 은혜를 잊지 않으셨던 것인지 휘정원을 부활시키는 한편 자정원資政院이라는 명칭으로 확대 개편을 시켜주시고 초대 자정원사에 앉혀주십니다.
이 자정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집경로에서 거두어지는 사실상 모든 물산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정 2품 관리 6명을 추가 증파하여 관리하게 했을정도로 규모가 상당하여 가히 하나의 당을 만들만 하였는데 고용보는 이렇게 자신을 잊지 않아주신 기황후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인지, 당시 고려나 몽골 출신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정치 세력을 만들어 그녀의 뒤를 받쳐주게 됩니다, 이게 바로 원나라를 분열시키고 무너뜨린 주된 원인이라 할수 있는 자정원당입니다.
참고로 이렇게 기황후가 권력을 쥐게되자 자고로 권력자에게 끈을 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수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지, 대도에 때아닌 유행의 바람이 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고려양입니다, 이 시기 원나라의 귀족들은 그녀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호감을 사기 위해서 일까요? 의복은 물론이거니와 집안을 개축해가며 고려의 모습을 닮아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사실 원나라를 분열시키고 무너뜨린 주된 원인은 자정원을 떠나 정치 보다는 향락을 즐겼던 혜종에게 있을지 모릅니다, 자정원당과 자정원당에 속하지 않는 여러 계파의 갈등은 첨예하였습니다만 그것을 중재하거나 막으려 하지 않았지요, 아니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가령 중서우승상 베르게부카 감찰어사 단종등의 계파에서는 커져가는 자정원당의 영향력에 부담을 느껴 그 핵심 인물인 고용보와 박불화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랬기에 어사대를 종용하여 고용보를 공격하였는데 뭐 그럴만 하기는 했습니다.
'고용보는 고려의 출신인데, 폐하의 총애를 믿고 마음대로 권력을 부려 친왕이나 승상까지도 그를 쳐다보면 쫓아가 절합니다. 뇌물을 긁어모아 금과 비단이 산처럼 쌓이고 권세는 천하를 좌우할 지경입니다. 한나라의 조절과 후람, 당나라의 구사량과 양복공이 오늘날에 다시 일어난 듯합니다. 바라건데 그를 베어서 천하의 민심을 통쾌하게 하소서'
하지만 기황후는 측근인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작 혜종의 명으로 금강산에서 4개월 남짓 귀양을 한뒤 돌아와 승진한것이 그것도 몽골 출신의 재상들도 오르기 힘들다는 영록대부에 오른 것이 전부이지요,
혜종이 벌하기는 커녕 기황후의 치마폭에 싸여 적당히 입막음을 하기 위해 고려로 귀양을 보내자 그 들은 장수를 잡으라면 말부터 잡으라는 격언이..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직접적으로 그 배후에 있던 기황후를 잡기로 하였습니다,
자정원당의 권력은 자정원 즉 그녀로 부터 나오고 그녀의 권력은 황후의 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혜종에게 고려와 함께 일하지 말라 하셨던 세조의 유훈을 들어 그녀를 비로 강등시킬것을 건의하나 정치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것인지 직접적으로 거부당하고 맙니다.
박불화를 동지추밀원사로 고용보를 영록대부에 올려 문무에 있어 더 이상 그녀를 막을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유일하다 할수 있는 황후의 자리를 강탈하는 것 마저 실패하고 말았으니 원나라에서 그녀는 곧 황제 그 이상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혜종을 이러한 권력의 첨예한 모순을 결코 수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깨닫고 보니 그럴수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지 모릅니다,
이미 조정의 문은 영록대부인 고용보에게, 무는 동지추밀원사 박불화에게 장악당하여 있었으나 그 들을 통솔하는 것은 기황후였고, 그녀를 제지할 어떠한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유시리다라에게 황위를 넘기기 위하여 계책을 꾸미는데, 자신의 뜻을 도와주지 않자 좌승상을 파직시키고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혜종은 그러한 명을 내린적도 없었고 동의 한적도 없었습니다, 말이 좋아 그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지 말 그대로 원나라의 하늘이었습니다.
혜종은 점점 정치에 환멸을 느껴가며 향락에 취해만 갔고, 자정원이 곧 황제의 뜻을 대변하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조정 대신들의 뜻은 자정원을 통해 모였고 자정원을 통해 전파되었습니다, 원나라 전역에서 올라오는 조세와 공물은 자정원을 통해 분배되었고, 심지어는 원나라 최고 종교 기관인 선정원 마저 그녀에게 아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통일되지 않은 국론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열쇠라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