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런 여자인지 몰랐지요.
내 동생이 누구냐면..
그
녀가 제 2황후에 오르자 자연스레 그녀의 가족들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는 왕의 작위가 내려졌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대부인이 되었고, 그녀의 오라버니 기철은 원의 행성참지정사 + 고려의 덕성부원군에 임명됩니다, 다른 형제들도 기본적으로 ~~군에 봉해졌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고려는 왕정국가입니다, 그렇지만 원 제국의 부마국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원의 간섭을 완전히 떨칠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며 친원파의 득세가 마치 일제강점기의 프리퀼 마냥 막강했던 시기입니다.
그러한 시기의 왕정 국가에 왕이 또 한 명 들어선다면 어떨까요? 비록 영지도 부민도 없는 이름뿐인 왕이라지만 그 정통성은 장인 어른의 나라 원 제국이 보장해주는 왕입니다, 말 그대로 부마국의 왕으로서는 손을 댈수 없는 치외법권적인 존재가 탄생하는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왕자인 기철과 그 형제들의 권세는 이루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고려 왕의 신하이기는 하지만 이 쪽은 고려의 위에 있는 원나라가 보장해주는 왕자입니다, 더욱이 기철의 그 벼슬이 요양성평장을 거쳐 대사도까지 올라가니 이건 다루가치나 누가 와도 어찌 터치할 수준이 아닙니다, 뭐 원나라에서는 크게 관심도 없었겠지만 말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신분이나 위상이 올라간 이상 조용히 지내거나 혹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생각을 하면 좋은데 문제가 있다면 처음부터 행주 기씨는 고려에서 내노라 하는 세도가였고 그 근간은 끊임없이 권력이라는 파이를 독식하기 위한 행보에서 유래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범이 날개를 달듯 기세를 타고 권력을 탐식해 나갔고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횡포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거기다 왕실과는 척을 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충혜왕은 기철의 친척이자 내시이던 전자유의 처를 강간합니다, 기철의 매제인 염돈소는 무리를 이끌고 왕명을 빙자해 남의 여염집 여식들이나 아녀자들을 끌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지요, 기철의 막내 동생 기윤은 친척 전마파와 함께 등촉을 관리하는 관리들을 두들겨 팼고 이에 분노한 충혜왕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충목왕때는 남의 토지를 빼앗기를 즐겨하던 기삼만이라는 친척이 원나라의 묵인 아래 설치된 정치도감에 끌려가 매를 맞고 죽자 이에 놀란 기주가 해외로 도피하려다 잡혀오기도 했습니다, 공민왕때는 어땠는가 보자면 기철은 왕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네 어쨌거나 신하이지만 그런것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그 근본을 보자면 왕실과 동등한 상황임을 강조하는 이 들에게 문제가 있는것은 자명합니다,
인생 뭐 있나, 즐기면서 사는거지
아 충혜왕은 원래 답이 없으니 말해야 입아프지요, 심하게 말하자면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똑같은 놈들끼리 부딪힌것에 불과합니다.
王聞醴泉君權漢功二室康氏 有姿 使護軍朴伊刺赤 納之宮中 伊刺赤先奸 事覺 王怒皆撲殺之
왕이 예천군(醴泉君) 권한공(權漢功)의 둘째 아내[二室]강씨(康氏)가 얼굴이 잘 생겼다는 말을 듣고, 호군(護軍) 박이라적(朴伊刺赤)을 시켜 궁중에 들여 오게 하였다. 그런데 이라적이 먼저 간음하여 그 일이 발각되니, 왕이 노하여 그들을 모두 때려 죽였다.
嘗說王曰 進士井洞 有處女 美而艶 王與俱至其家 主嫗 謝以本無女 王疑嫗匿其女 又謂遠欺罔 皆殺之
원(遠)이 일찍이 왕에게 아뢰기를 “진사정동(進士井洞)에 처녀가 있는데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하여 왕이 함께 그 집에 이르렀는데 주인 노파가 본시 자기 집에는 여자가 없다 하므로 왕은 노파가 그 처녀를 은닉하였는가 의심하고 원이 속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이다.
又謂近臣曰 今宮闕將成 欲以奴婢實之 卿等各獻有姿一兩婢如何 尹桓康允忠孫守卿等 不得已皆曰 惟命
또 측근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제 궁궐이 완성되면 노비로 여기를 채우려 하니 경 등은 각각 용모가 예쁜 여종 한두 명씩을 바침이 어떠한가." 하니 윤환(尹桓)ㆍ강윤충(康允忠)ㆍ손수경(孫守卿) 등이 부득이 모두 아뢰기를 “명령대로 거행하겠나이다." 하였다.
네 이런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피를 보는 것을 금기중에 금기로 여기는 원나라에서 혜종이 니 피를 천하의 개들에게 뿌려 줘도 모자르지만 내가 너에게 그 걸 안하는 건 내가 살인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할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고려에서 일어나는 철저한 패악은 사실상 기황후에게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저 형제들과 일족들이 잘 지내는지 그 것 하나만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녀가 일족의 패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단 한번, 충목왕이 정치도감을 설치했을때 일로서 그나마 사신이 친족이라 할지라도 벌을 주라는 명도 아니고 그저 의중을 전달한 때인데, 오히려 원나라의 혜종이 패악을 징치했다는 보고들 듣고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포상을 내린데 반해 고려의 충목왕은 사로잡은 기주를 풀어주고 이 정치도감을 핍박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집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터질 문제이기는 하지만 고려로서는 어차피 손을 댈수 없다는 것을 아니 더 나아가 어떻게 본다면 보여주기식 행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MBC의 의도로 추정되는 바와는 다르게 철저한 방관자의 입장으로 고려가 아닌 일족을 중시했다는 것입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고려라는 나라가 어찌되든 거기서 무슨 패악을 부리든 내 일족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고려에서만 이러한 패악이 심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스케일이 남다르셨는데 그것은 다음글에 이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