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학자군주의 모습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1989년 정조의 어진은 학자군주로서 정조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렸다.
하지만 왕실 족보에 있는 정조의 모습은 학자군주라기 보단
마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비 와 같은 무장의 모습이다.
그의 학자군주와 다른 면모를 보자.
정조는 文 뿐만 아니라 武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武에 능통한 것을 이어 받았을까?
그는 병서를 직접 쓸 뿐 만 아니라
장용위를 직접 관리하고 병법을 익혔다.
장용위는 무사 백동수와 같이 무사 중의 무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조가 이들을 관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도 바로 武士로서 능력이 특출하였기 때문이다.
어사고풍첩
정조의 활쏘기 기록이 있다.
일부러 한 발은 안 맞추는 저 센스!!
현대 국궁선수들이 50발중 50발을 맞추려면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한다.
정조는 이처럼 文武에 능통한 왕이였던 것이다.
그는 규장각 학자들을 모아 활쏘기 연습을 시켰다.
그가 규장각 학자들에게 활쏘기와 병서를 익히게 한 까닭은 정조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문무를 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였다.
정조는 강력한 군사권(장용위)과 문신의 세력(규장각)을 통해 자신만의 정치를 달성해 나가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한 그의 의지는 즉위한 첫날 대신들에게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노론들은 등 뒤로 식은땀이 났을 것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정조
그는 많은 개혁과 조선의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학자군주로서 평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다른 면모도 함께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