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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미러볼 (Mirror Ball) - 전해영
게시물ID : drama_456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밀덕덕
추천 : 16
조회수 : 118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6/10 17: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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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전해영과 한태진에 대한 리뷰가 자꾸 늦은 가장 큰 이유는 얘들이 정말 어렵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상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도 않고 단편적으로만 나오는 사람들이다보니 그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기껏 추측해봤자 틀린 것일 가능성도 높고 드라마 몰입에 방해도 될테니 고민이 좀 심했다.
 
한태진까지 다루기엔 너무 기니까 이번엔 전해영에 관한 이야기만을 해보도록 하겠다.
 
이하의 글들은 예측 가능한 사건 진행의 흐름과 밝혀진 레파토리를 기반으로 조심스레 추측하는 것 뿐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너무 의미부여하지 마시고 가볍게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읽는 분들이 납득가능한 수준으로 내용을 제한했지만 그래도 길이 너무 길었다. 짧게 써야한다고 스스로를 갈궈도 잘 안된다. 미리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다.
 
전해영의 오해영은 전해영, 서현진의 오해영은 서해영으로 언급하므로 유의하시길 바란다.
 
 
 
1. 전세 역전
 
 
12화 이후의 서해영이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라디오 사연의 두 주인공이 모두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판에 전해영이 서해영의 결혼을 파토낸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상황.
 
아마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서해영의 출근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회식 자리에서 두 번이나 붙을 뻔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많은 이들이 팝콘을 들고 개봉 날짜만을 고대했을 듯. 왜 흔히 그러지 않는가. 인생이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이 말을 조금 바꾸어 볼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내 이야기라면 비극, 남의 이야기라면 희극.
 
 
제철밥상이라는 아이템을 서해영이 먼저 제시한 아이디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 존재감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오던 서해영에게 갑작스레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원수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막장 설정까지 끼어들었으니 사람들이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라며 광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만이었다면 그저 미쳤는가하고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해영은 어쨌거나 피해자인 입장이고 이사도라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거기에 만약 각성한 박도경이 회사 로비에서 서해영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내가 비겁했다고 다시 만나달라고 비는 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서해영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될 것이다.
 
전해영을 잊지 못하여 복수하겠다고 나섰다가 서해영을 실수로 파혼시켰던 남자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해영은 차버리고 서해영에게 애걸복걸 매달리는 상황이 되어버리니까.
 
 
그 존재감 없던, 전해영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던 서해영이 전해영과 결혼 직전까지 갔었던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게 된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자들에게는 비극적 로맨스의 아이콘이 될 것이고 남자들에겐 서해영이 전해영마저 뛰어넘는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마성의 여자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천하의 나쁜 놈말고 나랑 한 번 만나보자며 들이대는 사람도 있겠지. 평상시엔 전혀 관심도 없던 남자들이 갑자기 친한 척 들이대면서 말이다.
 
평소 만인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하던 전해영에게 이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주변 사람의 관심이 쏠리는 거야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꾸준한 관리 없이는 그런 관심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쯤이야 자신의 경험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박도경이 자신한테는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공개적인 사랑 고백을 서해영에게 하는 것만은 참기 힘들 것이다. 아마 폭발할 것이다. 자신이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그렇게 굽히고 잘못했다고 빌었는데 왜 난 안 되고 어째서 하필 쟤냐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당사자인 서해영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기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는 한데 자기 마음이 어떤 지는 아무도 관심없고 그저 자기들 떠들고 싶은 대로 말하는 사람들만 수두룩 하니까. 자신의 의견이 진리인마냥 서해영에게 투영시키며 폭력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서해영은 결코 원하지 않은 방식의 관심과 기대속에 피곤해지며 이것도 할 짓이 아니라는 걸 느낄 지도 모른다.
 
 
 
2. 내 이름은 캔디.
 
 
인트로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전해영이 어째서 자기자신을 숨기고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었는지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가 버리듯이 외할머니에게 떠넘긴 이후 전해영은 타인의 동정과 안타까움, 미묘한 거추장스러움을 느끼며 살아왔을 것이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한다고 행하는 일들이 당사자에겐 부담과 상처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왕왕 있기 마련이다.
 
 
전국의 소년소녀가장들의 수기를 모아놓은 책들을 읽어보면 그러한 측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소년소녀가장들을 후원한 답시고 그들을 행사에 불러내어 사진을 찍거나 생색을 내며 오히려 그들을 말로 상처 입히는 경우도 꽤 있다.
 
물론 진정한 선의로 행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예산 집행의 투명성 확보' 혹은 '증빙 자료 확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관련 서류를 만들다보니 본의 아니게 예민한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행위가 관심과 사랑이 아닌 그저 그들의 일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식의 도움이라도 없다면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가기 싫고 자존심이 상해도 가족들을 위해 억지로 나가는 케이스가 많다. 그리고는 절대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사진 찍을 때 좀 웃으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입고 억지로 웃음 지으며 더 괴로워하고는 한다.
 
'웃음이 안 나오는데 왜 웃으라고 하는 지 모르겠어요.'
 
또한 소년소녀가장에게 투표권이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정치적인 배려에서도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같은 예산을 투입해야한다면 정치가 입장에서 볼 때 투표권이 있는 쪽에 잘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테니까. 취업도 힘들고 딸린 가족이 더 많은 건 소년소녀가장인 경우가 많은데 지원은 노인층에 더 먼저 이루어지는 경우들.
 
물론 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은 둘 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며 이지선다 혹은 제로섬 게임의 대상이 아니므로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경제에서의 돈의 논리가 정치에서의 득표의 논리로 치환되어 적용될 수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하여튼 전해영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외모덕에 타인의 시선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고 오히려 그 때문에 '저렇게 이쁜 아이가 저렇게 고생하다니'하는 식의 평가도 많았을 것이다. 그 안엔 동정도 있었겠지만 숨겨진 악의와 생색도 많았을 것.
 
또한 어머니, 아버지에게 버려진 것처럼 외할머니에게도 버려질 까봐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이쁜 척 착한 척 아양 떠는 것이 전해영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생존전략이지 않았을까.
 
취업도 불가능하고 법적으로 독립되거나 경제적인 능력도 없어 새로운 생존전략을 펼 수도 없으니 타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취하는 건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될수록 엄마 아빠없이도 밝고 건강하고 씩씩한 여자 아이에 대한 주변의 관심과 사랑은 그녀를 기쁘게 했을 것이고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타인을 통해 충족할수록, 빼어난 외모로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커질수록 그녀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듯 하다.
 
'난 불쌍하고 동정받는 아이가 아니야. 밝고 씩씩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아이야. 난 불쌍하지 않아.'
 
진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티내지 않을 정도의 자기암시는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버림받고 불쌍한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줄곧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비추면 적절한 대응과 비슷한 관심으로 관계를 형성해왔을 것 같다.
 
비록 스스로 빛을 내지도 못하고 속은 텅비어있으나 비춰지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많든 적든 되돌려주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미러볼처럼.
 
 
 
3. 알고 보면 엄친딸?
 
 
사실 박도경을 버리고 결혼식날 도망간 사건만 빼고 보면 전해영은 고전적인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이상적인 여주인공의 모습들을 닮아있다. 남자도 여자도 한 번에 반할만한 미모와 불우한 유년시기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하게 자란 진취적인 여성. 사회적으로도 능력 있고 학벌도 좋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면 그녀에게 그렇게 불우한 과거가 있었는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막상 알게 되도 이렇게 성장한 그녀를 보며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엄친딸급의 여자다.
 
남자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고 정작 주변 여자들마저 질투는 나지만 쟤 정도면 인정함정도의 대우를 받았을 테니 그야말로 완전체에 가깝다. 까놓고 말해서 전해영이 돌아왔는데 감사하다며 넙죽 받아들이지 않는 박도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박도경의 친구인 진상과 동생인 훈이 마저도 안 보일 때는 그렇게 욕하다가 막상 눈 앞에서 보니 어버버버하며 말도 못하지 않았는가. 박도경이 다시 전해영과 시작해보겠다고 했다면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납득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겉으로만 보면 드라마속 진(眞) 여주인공급 레벨의 전해영이 드라마속에서 시청자들의 하향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녀의 생존전략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혐오에서 발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까놓고 말해보자. 만약 전해영이 자기자신에 대한 연민과 자기애에서 비롯된 의지로 불행을 극복했다면 박도경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음을 알았을 때 진정한 자신을 알아보아준 것을 감사히 여기며 위안과 더 깊어진 사랑을 느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도경이 자기 내면을 알아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전해영은 치욕스러움을 느끼며 동정 따위 필요없다고 하며 결혼식 당일 외국으로 튀어버리고 복수의 의미로 SNS에 다른 남자와 찍은 사진을 올렸었다.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치고는 매우 납득불가능한 상황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사람에게 오히려 복수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걸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은 그리 많지 않으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자기 혐오'에 있다.
 
진정한 속내로는 자신이 매우 불쌍하며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켰다는 사실에 전해영은 치욕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을 느낀 것 같다. 겉만 화려하고 당당해보일 뿐 실속 없고 남의 눈치나 보는 자기자신을 혐오하는데 이걸 해결할 생각은 없고 들키지 않게 행동할 생각만 있었달까.
 
타인의 추앙을 받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실상 자신의 불행하고 우울한 내면을 더욱 깊게 눌러놓았을 테지만 하필 박도경이 그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재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자식이 있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엄마 아빠를 보며 결혼에 대한 깊은 회의와 증오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자신을 낳지 않았으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텐데'하는 원망도 있었을 것이고 도경 엄마가 말했듯 적절한 롤모델도 없는 자신이 결혼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 확신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욕하면서 닮는다고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분명 있었을 것. 결혼이 가까워질수록 도경 엄마가 그 사실을 찔러댈수록 의심암귀가 꽃을 피웠을 개연성이 높다.
 
여담이지만 서해영이 학창시절 전해영을 의식했듯이 전해영 역시 매일 도시락을 싸다주는 부모님을 가진 서해영을 보며 열등감과 부러움을 느끼고는 비슷한 수준으로 의식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여튼 엄밀히 말해 박도경이 자신의 귀책사유라고 말하는 녹음본은 불쏘시개 역할만 했을 수도 있다. 잠재되어 있는 거대한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불쏘시개.
 
굳이 정리하자면 꾼이 꾼을 알아본 건데 장난치다 걸려서 손모가지 날아갈까봐 도망 간 꼴.
 
그런데 이걸 좀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전해영 역시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박도경을 버리고 도망간 경우다. '넌 불쌍해서 안아주고 싶어'라고 말하는 박도경에게 '네가 뭘 알아. 난 불쌍하지 않아.'하며 그의 이해를 거부하고 자기 자존심을 먼저 챙긴 것쯤 되지 않을까.
 
1년이나 고통스러워하다가 박도경에게 돌아온 것도 비슷한 견지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박도경을 진짜 사랑해서? 뭐... 그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아마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함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 같다.
 
 
 
4. 미움받을 용기
 
 
타인의 추앙과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한 그녀에게 미움과 증오는 익숙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서해영처럼 그녀를 마냥 꺼려하고 몰래 뒷담화하는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었겠지만 그들의 질투와 미움은 근거없는 험담과 같아서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을 듯.
 
사실 자기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그녀의 심기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캐치하고 외풍을 막아주었을테니 굳이 스스로 나쁜 여자가 될 필요도 없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박도경의 케이스는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달리 그야말로 온전히 그녀만의 잘못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법한 일이었다. 왜 파혼하고 도망갔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과연 그녀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제 속내를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하고 대답하면 주위에서 퍽이나 그렇구나하고 납득해줄리가 있나. 더더군다나 '하지만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일 경우 더 황당해 하겠지.
 
그렇게 안 봤는데 너 좀 이상한 애였구나하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해영에게 있어서 박도경과의 사건은 일생일대의 오점이자 상처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싶은 그녀의 욕망 또한 박도경의 용서와 애정을 갈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가장 큰 증오를 받는 건 그녀의 가치관과 행동원리에 있어서 비수처럼 마음을 찔러대지 않았을까.
 
돌아가면 다시 만나면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껄 뻔히 알면서도 전해영은 박도경을 다시 찾아왔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는 것을 그것도 분명히 불리한 것을 감수하는 행위엔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또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진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미안해. 잘못했어. 욕해도 할 말 없어. 때려도 할 말 없어. ...보고 싶었어. 진짜. 많이. 매일."(5화)
 
 
만약 누군가 자신이 차버린 애인에게 매달리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어째서냐고? 핑계와 이유를 먼저 대고 맨 마지막에서야 미안하다고 말한 한태진과 달리 전해영은 일단 미안하다는 말부터 그리고 어떤 댓가라도 치루겠다고 먼저 말했다.
 
자기합리화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는 행동은 타자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기 마련인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것. 이게 진심이었다면 전해영은 단지 사과 한 줄만으로도 그녀가 여전히 박도경을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당기면 당기는 대로 밀면 밀리는 대로 흔들리던 서해영과 반대로 전해영은 자신이 먼저 행동으로 옮겨 용서를 구한다. 박도경의 집으로 찾아간 그 날 전해영은 도경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박도경의 분이 먼저 풀릴 때까지 가만히 참고 있기도 했다.
 
너무 편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 여자는 분명 자기도 억울한 면이 있는데 그걸 꺼내서 합리화시키는 것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해주고 있었다.
 
 
물론 이후의 서해영 관련 발언으로 어그로를 잔뜩 끌기는 했지만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서해영과 삼자대면한 직후인데다 썸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그녀와 어떤 관계인지 먼저 묻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는 헤어진 애인이 안부를 묻는 말은 결국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니?'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남자든 여자든 다시 들이댈 때는 상대의 옆구리가 비었는지 확인부터 하는 게 필수다.
 
상황과 시점만 좀 달리보면 전해영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레벨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타이밍 혹은 아다리가 최악이었을 뿐.
 
 
 
5.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서해영이 눈치와 촉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이전의 리뷰에서부터 쭉 해왔다. 흥미로운 건 전해영의 생존전략 역시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재빠른 촉으로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이다.
 
불행한 아이에서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가 되기 위해 전해영은 다른 사람들의 선호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해왔을 것이고 이는 뛰어난 관찰력과 기민한 순발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얼굴이 이뻐도 성격이 드러우면 그저 얼굴값 하는 까칠한 여자가 될 뿐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지 못할 테니까. 그런 그녀가 박도경 역시 자신과 같은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과연 파혼하고 도망가서 다른 남자와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박도경에게 어떤 상처로 다가올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쿨시크에 츤데레 같은 사람이 자신에게만 아이처럼 해맑은 모습을 보면서 전해영은 이 남자가 자신처럼 어린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고착되어 살아왔음을 잘 훈련된 눈치와 촉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워낙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주는 것이 익숙하다보니 그의 행동도 잘 받아주었을 것이고 박도경 역시 진정한 위안처를 찾은 것 같은 마음에 그녀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을 것이다.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끼리 같이 부둥대며 살아보자는 의미로. 당신은 내 엄마와 다를 거라는 확신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포에 잠식되고 조건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여 사랑을 아양 떠는 것으로 인식하는 박도경에게 사랑한다는 표현 없이도 그저 한없이 받아주는 전해영의 모습은 잃어버린 모성애에 대한 욕구와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구원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전해영 역시 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박도경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그를 버리고 떠나 새 남자를 만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완성한 것이다. 박도경에게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 박도경은 아버지에게서 부성애를 잃었고 어머니에게서 모성애를 잃었으며 전해영에게서 또 한 번 모성애와 타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녀가 박도경의 상처를 잘 이해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박도경이 아버지의 일로 버려지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면 전해영 역시 엄마 아빠에게 버려진 것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박도경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전해영에게 다시 돌아갈 경우 박도경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여버린 것이나 다름 없고 원수처럼 여기고 있을 거라는 걸 추론하는 거야 쉬울테니.
 
자신이 먼저 차버렸으면서 먼저 다가가는 그녀의 행동이 다소 뻔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박도경을 만날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박도경은 전해영의 전화를 받지도 않고 먼저 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저장해놓지도 않아서 나중에 자신의 누나에게 물어보기까지 한다.
 
막상 만나도 차갑게 대하고 할 말만 하고 가라고 하며 녹음본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 여간하면 포기할만도 한데 전해영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들이댔다. 마치 처음부터 이쯤은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 마냥.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이 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결국 박도경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해영과의 썸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무렇지 않았을 수 있었던 건 그 정도 상처를 치료하는 건 나 자신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근저에 깔려있지 않았을까.
 
물론 최악의 경우 역시 감안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6. 준비되지 않은 이별과 폭로
 
 
사실 박도경이 끝까지 거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해영이 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대사가 있다. 굳이 서해영 때문이 아니라 박도경의 고집스러움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을 말이다.
 
 
"상처만 회복되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상처만 회복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장회장의 집에서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전해영이 운전 중 내밷는 독백이다. 이 대사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상처가 애정의 상처인지 자존심의 상처 혹은 그 근본인 정체성의 상처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서. 그리고 정체성의 상처였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박도경의 깔끔한 결별선언으로 재결합이 불가능해졌음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가 얻은 것은 자신이 박도경에게 '이제는 지나가다 만나도 아무렇지 않은 여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 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여자라는 소중한 자신의 정체성.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걸 견디지 못해서 파혼했지만 박도경의 용서와 이해로 그 정체성이 회복된 것이다.
 
이 대사는 전해영의 최우선 목적이 박도경과의 재결합이었지만 차선으로 박도경과 아름답게 헤어지는 것 또한 있었음을 드러낸다. 사실 그녀는 이미 카페에서 만났을 때 앙금이 남지 않도록 탁구 딱 열 번만 치고 맥주 마시고 헤어지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었다. 다시 엮어보려는 수작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진심도 반쯤은 섞여 있었달까.
 
 
그런데 막상 조금의 미련과 앙금도 남지 않는 깔끔한 이별로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여자라는 자기 인생 최고의 타이틀을 다시 획득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아프다. 위의 대사는 박도경이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었다.
 
가장 사랑했던 가장 미움받고 싶지 않은 사람인 박도경에게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순간 그녀는 오래된 트라우마가 마음을 찢고 날카롭게 일어서는 걸 느꼈을 것이다. 박도경의 그것처럼 전해영 역시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건 박도경의 사랑임을 알았을 것.
 
 
"고마워. 나 이제 살 것 같애. 고마워. 상관없어. 백 명이 망해도 천 명이 망해도 상관없어. 그거 다 오빠가 나 사랑해서 그런 거잖아.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사랑해. 나 아직도 오빠 너무너무 사랑해."
 
 
11화에서 서해영의 파혼에 박도경이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온 전해영이 했던 발언에는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박도경으로부터 버려져서 죽을 것 같았던 자신이 그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자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시청자가 보기엔 어이가 없겠지만 사실 현실에서도 남의 사정 다 따져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까놓고 말해서 누군가가 커플이면 누군가는 쏠로이며 커플이 깨지지 않는 이상 쏠로에겐 기회가 없다. 그저 다들 죽창 깍는 노인이 되어 자기 차례를 기다릴 뿐이지.
 
돌이켜 보면 3화의 부제인 '살고 싶을 땐, 사랑하기로'처럼 이 드라마는 삶과 사랑을 직접적으로 연관시켜서 말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버려짐과 죽음, 사랑과 삶이란 도식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드라마의 속성을 고려하자면 전해영의 발언은 일종의 긴급피난이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남의 사정은 부차적인 것.
 
그런데 이런 식으로 좋게 포장해주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전해영의 이 발언은 자신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일종의 자폭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위의 발언은 자세히 따져보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혹은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한 그녀의 행위가 오롯이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한 자기애의 결정체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전해영이 연극성 성격장애의 약화된 버전임을 확신하는 순간이랄까.
 
만약 그녀에게 타인과의 관계와 융화가 진정 중요한 요소였다면 사실 절대 할 수 없는 발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고 나중에 잘못을 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빠의 사랑이 필요해정도로 말했겠지.
 
박도경 역시 어처구니 없어 하는데... 자신의 고통보다 서해영의 고통이 더 크게 느끼고 있는 박도경에게 '남의 사정 따위 난 몰라 오빠가 날 사랑해서 그런 거니까 다 이해함' 따위의 발언을 하니 당연히 박도경의 눈빛이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해영이야 '오빠가 날 여전히 아껴주고 있었어'하며 어화둥둥했겠지만 박도경은 아마 속으로 '상종 못할 것이로구나'하며 혀를 차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일단 아웃 오브 안중은 확실하다.
 
그러고 보면 전해영이 박도경에게 자기 정체성을 까발린 것이나 서해영이 라디오에서 자기 사연을 까발린 것 모두 비슷한 구석이 있다. 둘 다 애타게 매달렸지만 박도경이 밀어낸 것도 비슷하다. 전해영은 마음이 없어서 밀어냈고 서해영은 사랑해서 밀어냈고.
 
 
 
하여튼 12화 이후 서해영과 박도경이 이어지는 것을 전해영이 목격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살펴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느냐며 집착하게 될까. 아니면 자신을 버렸다고 복수하려 들 것인가.
 
아마 둘 다 하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복수쪽에 무게를 좀 더 주고 싶다. 서해영에게 쩌는 행동력이 있다면 전해영의 행동력 역시 만만치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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