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푸코가 근대사회의 시작이 배타적 타자의 설정으로 시작된다고 한 것은 깊은 통찰력이라 봅니다.
근대국가 탄생 이전 인간의 삶은 가족과 생계를 이어가는 지역에 국환되어 있었습니다.
국가란 것은 삶과 무관한 것으로 추상적인 대상이기에 국가 또는 사회라는 것은 체감되어 알게 되는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국가간의 발전은 경제적으로 국가와 국가와 이어지며
규모 역시 총력전의 형태로 국가 대 국가로 경쟁하게 되기에
정치적 사회적 필요로 인하여 국가는 이전 국가와 무관한 삶을 살아온
구성원들에게 이런 체감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국가와 사회의 존재를
이해 시키고 교육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족주의입니다.
이전 단순히 존재한 가족과 생계를 이어가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만이 있는게 아니라
언어 문화가 같은 국가의 구성원은 모두 동일한 존재로 배타적인 타자들인 외부의 국가와 다른
하나의 동일체라는 교육이 그런 사례죠
이는 사회의 구성원 내부에도 적용이 되어
올바른 국가의 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내부의 배타적 타자
범죄자, 정신병자 들에 대한 격리가 진행되게 되고
그렇게 걸러진 건강하고 올바른 국가의 구성원은
민족이라는 추상적 공통분모하에 결집하여
외부의 배타적 타자인 다른 민족. 다른 국가와 전쟁이란 방식으로
극단적인 배타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근대에 배타적인 타자라는 존재가 필요한 이유는
가상의 적이자 타자들의 존재로 인하여
내부의 구성원들이 단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고
국가와 사회라는 추상적 가치를 보다 체감하기 쉬운
직접적 가치로 만들어 주게됨에 따라
국민국가 즉 국가와 사회로 확장 된 근대적 가치가
보다 빠르게 학습되고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유럽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등장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에 민족주의가 확산 보급 된 사례가 그러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거의 모든 유럽의 국가들이
상비군 체제를 확립하고 지속적인 전쟁을 벌이며
국가체제를 완성해 갔던 이유가 다름이 아닙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배타적 타자의 설정이란 국가의 역할이
보다 전문화 되게 되면 국가의 역할이 사실상 전쟁에 있는
전쟁국가 즉 군국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프로이센 같은 경우가 대표적 사례죠
전쟁을 통해 독일 민족주의를 이식하고
전쟁을 통해 국력을 신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강대국이 된 대표적 국가입니다.
서구에서 약 200년에 걸쳐 진행 된 이런 근대화 과정이
동양에 수입되었을 때 가장 모범적으로 학습한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메이지 유신은 동아시아에 이런 근대화 즉 전쟁국가 체제의 등장을 알린 사건이라 봅니다.
동시대 이웃나라인 중국과 한국은 유럽의 국민국가 체제가 아닌
동아시아 특유의 국가체제 민족주의, 배타적 타자화를 이용한 응집이 아닌
유교적 가치관으로 국가관과 응집력을 만든 유교적 중앙집권 체제를 이미 시행중이었고
다만 일본만 오랜 봉건체제로 이런 유교 중앙집권 체제를 구성하 경험이 없기에
서구식의 국민국가 체제를 적용하며 최초의 중앙집권 체제를 구성하였고
당연한 절차로 체제 유지를 위하여 전쟁국가 체제로 나아갔을 뿐입니다.
대표적 사례가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적 헌법 체제를 구성하기도 전에
(일본이 개항이래한국 정부에 지속적인 내정개혁과 내각제등의 정치개혁을 요구했으면서
정작 양국 일본제국과 대한제국 흠정헌법 성립이 고작 몇년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죠)
가장 먼저 시항한게 징병제라는 것만 보아도 그러합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근대화 개혁의 시작을
정치적으로 징병제의 실시와 정한론으로
경제적으로 군수산업의 개발과 확장으로 시작합니다.
일본은 내부의 투쟁이 종식 된 이후 국가의 총력 방향을
한반도로 투사하기 시작하였고
1876년 개항과 함께 한반도를 점진적으로 잠식해 갔습니다.
이런 개항이래 누려온 일본의 영향력이
1884년 갑신정변 실패로 청나라 군대가 파견되면서 청나라에 사실상 모두 뺏기는 상황이 되자
청일전쟁의 계획이 내각에서 결정 되었고
장장 5년에 걸쳐 일본은 정부 재정의 5할 수입물자의 5할을
군수물자와 군비증강에 쏟아 부으며 그야 말로 충력전으로
전쟁을 준비하여 그것이 완료 된 시점
1894년 인천항 기습 공격을 시작을 청일전쟁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전쟁국가 체제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른바 일본제국 10년 주기 전쟁설입니다.
1864년 시모노세키 전쟁 1874년 대만침공, (1875년 한국개항 1879년 류쿠병합) ,1884년 갑신정변 사주 한국장악 시도, 1894년 청일저쟁 - 1904년 러일전쟁 - 1914년 1차 세계대전 - 1924년 적백내전 시베리아 원정 - 1934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 1945년 원폭 투하 패전 종전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은 국가의 근대화와 체제정비, 경제성장, 사회의 발전을 모두
전쟁 준비 - 전쟁 - 전쟁 승리 - 보다 확장된 전쟁 준비 - 전쟁 - 승리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진행했습니다.
일본은 전쟁과 외국 침략이란 방식을 통하여 국가 내부를 정비하였고
침략의 결과로 얻은 이권과 자본을 다시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데 투자하여 확장하였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이 전쟁을 중단한 시기는 모두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준비 기간일 뿐이었습니다.
일본 내부 - 일본 한반도 - 일본 한반도 만주 대만 - 일본 한반도 만주 대만 중국 - 일본 한반도 만주 대만 중국 동남아
- 일본 한반도 만주 대만 중국 동남아 태평양
국가의 규모가 성장하고 전쟁으로 국력이 신장 될 수록 그 전쟁의 범위도 넓어졌을 뿐이죠
메이지 유신 이래 국가의 재정이 대부분 전쟁에 소요되고
경제의 대부분이 군수산업과 그에 파생한 식민지 산업에 집중되고
국가 인력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군부에 지원하는 국가체제가 만든 결과물입니다.
이런 국가체제에서의 전쟁의 종식이란 것은 자체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과잉 생산으로 발생한 대공황과 같이
국가의 방향, 산업, 인력이 전쟁에 종속된 국가에서 전쟁의 중단은
곧 국가의 침체와 쇠퇴를 의미하기에 외부로 투사되지 못하여
안에서 폭발하는 내부의 압력을 견딜 수가 없고
대부분 쿠데타나 군부의 재집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유럽의 가장 비슷한 사례인 프로이센이 그러하듯
이런 전쟁국가체제로 근대화를 시작한 나라가
전쟁을 중단 하는 시점은 유일하게 단 하나
보다 강력한 국가에 의해 패망하는 경우 뿐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패전했다면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패전했다면
한반도는 식민지화 되지도 않았고
일본도 역시 태평양전쟁에서 원폭을 맞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 봅니다.
20세기 동아시아에서 일본제국이란 전쟁국가 괴물이 출현했을 때
장장 80년을 폭주하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주었던 이유는
동아시아에 이런 전쟁국가 괴물을 제어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러시아가 물러서며 본격적인 폭주가 나타났고
균형이 무너진 동아시아에 미국이 개입을 하며
전쟁이 종식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원인과 함께 논쟁이 있던 것 같은데
태평양전쟁은 그 세부적인 발발 이유나 세부적인 시점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큰 틀에서 보자면 메이지 유신 때 부터 필연적인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