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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박도경이 인간 고구마가 된 이유
게시물ID : drama_455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밀덕덕
추천 : 31
조회수 : 2676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6/06/07 02: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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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1화는 딱히 내용적으로 분석하거나 어려운 내용이 없으므로 리뷰를 작성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박도경의 행동에 너무 답답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약간이나 참고하실만한 내용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솔직히 이하의 내용은 혹시 나중에 드라마 다 끝나고 총론을 써야할 일이 있을까 싶어 적어놓았던 것이라... 이렇게 빨리 등판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드라마가 끝났을 때를 전제로 쓴 글이라 중간 이후의 내용은 매끄럽지 않을 수 있으니 많은 양해를 바란다.
 
또한 이하의 글은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사견일 뿐이며 괜한 선입견을 만드는 것은 필자나 독자 모두에게 이롭지 않으므로 그저 이런 견해도 있구나 하며 가볍게 읽고 넘어가주셨으면 한다.
 
 
 
역대급 애어른
 
 
혹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남자주인공이었던 이카리 신지를 기억하는가. 로봇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로 찌질한 남자주인공이자 그 답답한 성격으로 수많은 이들의 어그로를 끌었던 그 중학교 2학년 14세짜리 소년 말이다.
 
이카리 신지가 어째서 그렇게 답답하고 우울한 주인공이 되었는가는 거의 20년이란 시간동안 무수히 분석되어 오면서 거의 하나로 귀결되어져 왔다. 고작 14살 짜리한테 죽고 죽이는 더군더나 인류 존망이 걸린 싸움터에 나가서 싸울 것을 강요했는데 제정신일리가 있느냐고.
 
Holemes의 스트레스 측정표(HRS 척도)에 따라 추론하면 이카리 신지가 받은 스트레스 수치는 약 400여점이 넘어간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텐데... HRS 척도에서 배우자의 사망이 100점에 해당한다.
 
이카리 신지는 14살의 나이에 배우자가 4번쯤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말이다. 멘탈 붕괴가 일어나는 거야 당연하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는 것.
 
 
그럼 비슷한 접근방법을 박도경에게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유년기: 부모의 사망(100) + 부모의 재혼 (63) + 부모 사이의 언쟁 (47) + 부모의 재정적 위기 (45) + 부모의 잦은 부재 (38)
성인기: 파혼 (73) + 부상과 질병 (53) + 재정적 곤란 (39) + 잦은 언쟁 (35) + 법적인 곤란 (29) + 수면습관의 변화 (17)
 
다 합치면... 음... 박도경의 경우 539점쯤이 된다. 역시 이카리 신지보다 나이를 22살이나 더 먹은 것 답게 점수가 조금 더 높게 나왔으니 마냥 나이를 헛 먹은 것은 아님을 증명해보인 듯 하다.
 
 
뭐 저리 많은가 싶으실텐데 하나씩 따져보자.
 
박도경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의 사망에 자신의 탓이 있는 게 아닌가 자책하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부모간의 사이는 좋지 않았으며 직업 특성상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는 영화하겠다고 하다가 가산을 탕진. 다른 남자와 재혼하면서 박도경은 의붓동생을 얻기까지 한다. 이후에도 도경 엄마의 사업병 기질은 없어지지 않은 듯 하다. 박도경이 대학 졸업하자 마자 음향기사 일을 시작한 것은 경제적 문제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의 일화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으나 완벽주의적인 직업 성향탓에 2화에서 보이듯 이리저리 싸우는 일이야 자주 있었을 것이고 어머니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12번이나 돈을 뜯어갔으며... 동생인 박훈은 조연출을 8년이나 하며 썩는 바람에 속을 태워 다툼이 많았을 것이다.
 
전해영에게 파혼을 당한 이후에는 더더욱 일에 몰두하여 수면부족까지 있었고 서해영을 만난 이후엔 두 번이나 총 세 번(하루에 두번도) 남한테 맞은 적도 있다.  
 
유년기와 같이 오래된 일의 경우 시간의 경과 혹은 주변인들의 적절한 대응에 의해 희석되거나 치유될 가능성이 높고 점차 스트레스 정도가 낮아져 회복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겠으나... 극중 등장하는 도경 엄마와 박훈과 박도경의 모습을 볼 때 유년기동안 어머니로부터 애정과 보살핌을 받았을 확률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결론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이 박도경이란 주인공이 정상일 확률은 인물설정 단계부터 없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견해일 뿐이나... 초반부에 보였던 쿨시크, 츤데레로서의 모습은 시청자의 착각이었을 뿐 박도경은 애당초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할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유년기 때의 상실과 부모의 방치, 부적응으로 인하여 EQ가 낮은 주인공이라... 알고 나면 유니크하지는 않은데... 이런 식의 연막으로 가려놓았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한테 맞은 뒷통수가 거하게 아픈데. 너무 쉽게 보지 말라 이런 건가?
 
 
필자가 끝까지 가보자는 말을 너무 나이브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박도경이 말한 끝까지라는 건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지 모든 걸 내려놓아 보자는 뜻은 아니었던 것. 하긴 그랬으면 18화까지 가지도 못하고 아마 14~16화에서 끝났겠지.
 
 
돌이켜보면 처음 이진상이라는 절친이 있기에 강박성 성격장애쯤이 아니지 않겠느냐 싶었는데... 그렇게 쉽게 보지 말고 동성친구와 찍은 사진을 침대 머리맡 액자에 넣어두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눈치 챘어야 했다.
 
박도경이 이진상이라는 동성친구의 사진을 침대 머리맡 액자에 끼워서 놓은 건 이 놈이 진짜 친구가 딱 하나밖에 없는 사회적 부적응자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고 딱 한 명의 친구와 소수의 가족들, 몇 명의 직원들만 있으면 된다는 극도로 좁은 사회에 스스로 매몰되어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인물이었달까.
 
게다가 전해영과의 연인관계 당시의 박도경이 지나치게 해맑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이제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도경의 정신적 성숙도는 실제로는 거의 성장하지 않았고 자신과 똑같이 버려지는 것에 극심한 두려움을 가진 전해영을 만나게 되자 자신의 어린 정신세계와 어울리는 사람을 만난 기쁨에 말 그대로 아이처럼 좋아했던 것.
 
또한 박훈이 남에게 무시 당하는 게 싫어서 강제로 끌고와 일을 가르치는 입장인데... 어른스럽게 어르고 달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소리부터 치고 정말 열 받을 땐 주먹질하거나 시나리오 돌리던 게 걸리자 대놓고 화를 내는 1차원적인 대화방식을 가졌다는 걸 보면... 박훈이 또라이인 것도 한 몫 하겠지만 박도경이 애당초 제대로 된 혹은 성숙한 대화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니까.. 결론은... 이 놈은 그냥 허우대만 멀쩡한 애어른일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는 것이다. 애어른.
 
 
요즘 말하는 키덜트나 피터팬 증후군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구축하는 방법도 모른 채 그저 나이만 먹어버렸는데 더 큰 문제는 그것을 고칠 유인이 스스로에게 딱히 없었던 케이스랄까.
 
원래 이런 케이스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엄청 어려운데, 대체 얼마나 능력이 쩔면 이런 성격을 가지고도 그 분야에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거지?
 
하여튼간에 11화에서 박도경이 한태진에게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맞은 이유도 아마 이런 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해서 가만히 맞고 서 있었다기 보다는 서해영에게 모든 게 까발려진 이후 엄마한테 잘못을 딱 걸린 아이마냥 얼어서 가만히 있었던 거다.
 
그래서 모든 게 걸린 이후에도 기껏 한다는 소리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짜 미안해 정도 밖에 없었던 것이고.... 무릎 꿇고 빌라는 서해영의 요구에도 어린아이처럼 심통부리고 등 돌려서 떠나버린 것.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었고 누구한테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남자의 자존심? 가오? 츤데레? 글쎄... 그런 것보다 그저 잘못했다고 빌면 그걸로 끝인 아이와 같은 반응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옳은 것 같다. 서해영에게 모든 걸 고백하기 이전의 독백이 '버리지만 말아줘'였음을 떠올려 보라.
 
 
박도경 입장에서 보자면 서해영에게 했던 그것이 인생 최대의 굽힘이지 않았을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내려놓지는 못한 것이겠지만... 아, 때 늦은 후회지만 이 드라마 처음부터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겉만 핧으면서 봐야했어.
 
 
하여튼 엄밀히 따져보면 박도경의 현재 선택(이대로 끝내는 것)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어느 것도 제대로 한 것이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저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나니 그걸로 서로 편안해지자는 것 뿐.
 
 
솔직히 말해보도록 하자. 지금 박도경이 정말 100%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죽고나서 슬퍼할 서해영을 걱정하여 이대로 끝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을 것 같은가? 만약 그랬다면 애당초 환각을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미래의 박도경이 이대로 끝내는 걸 선택했기 때문에 죽는 마지막 순간 미련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환각으로 미래예지를 해준 것인데... 만약 100% 순수하게 그녀를 위한 마음이었다면 애당초 환각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만족하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환각까지 보여주겠는가?
 
오히려 환각의 존재는 현재 박도경이 그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유아틱한 마인드로 차라리 죽겠다고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반증에 가깝다.
 
좀 더 적나라하게 까놓고 말하자면 사랑하니까 더 미안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기는 한데... 너무 큰 상처를 준 것 같으니 거부되거나 버림 받을 것이 두려워 도저히 용기를 내지 못하겠고... 그러니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하는 심리.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아, 결국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용서해달라는 말도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구나. 어차피 그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착한 여자는 또 슬퍼하게 될텐데'하고 후회할 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자기 자존심 때문에 너에 대한 배려 운운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해버린 한태진과 궁극적으로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아마 작가 혹은 감독이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변화를 이끌어낼 장면과 납득할만한 상황을 연출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진짜 내려놓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피해자인 한태진을 진정한 가해자로 돌변시켜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도경이 진정 모든 걸 내려놓고 변화할 필요성이 있으니까.
 
또한 서해영과의 관계가 안정된다고 하더라도 한태진과 전해영이 남아 있는 이상 아마 다음주까지는 답답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와 감독은 인기 있는 드라마에 작품성까지 더 했다고 좋아하겠지만 다음부터 이 두 사람의 드라마는 반드시 완결되고 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점점 굳어지는 것 같다.
 
 
이 글이 어째서 박도경이 이 모양 이 꼴의 답답한 남자가 되었는지에 관해 조금의 이해라도 도울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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