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배가 고픈 새벽엔 이불을 곂치어 뱃 속 깊이 끌어안고 잠을 부릅니다. 살결 위에 있는듯 허나 뱃 속 깊이 위장을 어루만지는 이불의 살결은 때론 내 것 보다 낫습니다. 꾸욱 밀려오는 구름덩이가 이리도 좋은지요 나는 이불조차도 상관없나요 이때즈음 행복한 외로움을 온 몸으로 느끼면 이불 너도 외로운가보다 서로를 달래며 잠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임이 오는 소리를 따스한 외로움으로 불러봅니다.
밤에 피는 꽃
여기 달빛으로 피는 꽃이 있다. 맺히는 햇빛을 잎 사이사이에 곤히 품었다가 밤이 되면 차가운 공기 속, 홀로 따스히 피는 그런 너가 있다. 달내음이 구름을 타고, 바람을 타고 흘러흘러 네게 들어와 살며시 잎사귀를 흔들면 그 흔들림이 밤을 적신다. 달빛을 받은 살결이 환하게 빛나고 흔들린 잎사귀가 내는 소리는 얼마나 어여쁜지 서로가 맞물려 꼭 품고 있는 모습이 세상 모르는 아이같다. 달빛에 피는 너는 해가 뜨면 지고 말겠지, 나는 그게 아쉬워 억지로 초생달을 등진다. 그런 내 맘 모를 야속한 그림자가 네 위에 드리우면 결국 너는 네 모습을 꽁꽁. 요즈음 달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젠 내가 너를 등진 탓일까 달빛은 드리우는데 달도, 너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발걸음을 잡아보려 하지만 지난 발자취 속 곤히 자는 네 모습 깨우기가 두려워서 그냥 놓았다. 여기 달빛으로 피는 꽃이 있었다. 내 마음 한 가운데 맺혀 늘 활짝 핀 채로 맑고 고운 꽃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 있었다.
봄
네게 던진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다가와 환히 앞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이젠 볼 수 없는 눈망울이 너무나 그리워서 추억을 더듬는 내 꼴은 가을에 맞는 벚꽃과 같아 기억속 너의 두 손 꼭 잡고 코 끝에 대어본다. 가을 한 가운데 봄스러이 나려온 너는 바람에 흘러가고 난 네게서 앗아갔던 계절이 그리워 부른다. 가을이었던 내게 너는 봄이었나보다, 계절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