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렸던 글 중 몇개를 추려 다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번에 경숙고모 이야기 리뉴얼 버전을 올렸었고,
이번엔 풍선아이를 좀 더 보강하여 완성지었습니다.
장르소설에 아직 취약한 제 부족함 덕에
이 소설 역시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치만
읽고 난 후 약간의 섬짓함은 전해지길 바라며
글을 올립니다.
장르소설에 대해 현재 많은 공부중입니다.
조만간 장르소설에 걸맞는 작품을 올려보겠습니다.
아무쪼록 리뉴얼된 풍선아이도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풍선 아이>
아들놈의 두툼한 손을 잡고 걷는 내내 녀석은 뭔가 우물거리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대 여섯 걸음 건너 하나씩 길거리 음식 포장마차가 나타날 때마다 녀석은 주춤대며 음식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더는 녀석의 목구멍에 뭔가 밀어 넣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손아귀에 잔뜩 힘을 주어 완강하게 잡아끌었다. 정말이지 미쉐린 타이어 같은 녀석을 '운반'하는 건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가까스로 음식들의 거리를 벗어났을 때 녀석은 목 부러진 선풍기처럼 깊이 고개 떨구고 들썩였다. 내겐 울음보다 겹진 턱살 사이 고인 땀이 더 가슴 아팠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살이 찐 걸까? 집에 있으면서 애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했다며 아내 탓을 했지만, 실은 너무 배불리 먹일 만큼 돈을 벌어다 준 내 잘못이 컸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번 돈으로 살찌운 녀석을 열심히 번 돈으로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데려가야만 했다.
진료실 복도는 무척 시끄러웠다. 소아과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다. 소아라고 하기엔 너무 커다란 녀석은 제자리에 가만 앉아 부른 배를 씩씩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쉴 새 없이 옆 구르기를 하는 한 사내아이를 붙잡아 자리에 앉히며 그 애 엄마는 내게 ‘아이가 참 얌전해 좋으시겠어요.’ 말했다. 내가 ‘그쪽 아이는 칼로리를 자주 소모해 좋으시겠어요.’ 답하려는데 간호사가 아이 이름을 불렀다. 최초롱. 어쨌든 어린이.
- 어휴, 장군감이네.
의사의 첫마디는 녀석이 자주 듣던 소리였다. 씩씩한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보통 하는 말이지만, 녀석의 경우에는 포인트가 장군에 있지 않다. 어휴. 누구라도 녀석을 보면 여지없이 비어져 나오는 감탄사. 그게 진짜 첫인상이다.
- 몇 가지 검사할 텐데, 아드님 아침은 거르게 하셨죠?
- 어휴, 그럼요.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어휴.
여기까지 오는 길에 녀석이 특히 더 음식에 집착을 보인 이유가 그놈의 아침밥 때문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밥숟갈부터 입속으로 쑤셔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에게 공복이라니. 제 아비라도 씹어 먹을 기세로 덤벼대는 통에 아침부터 나는 온 팔뚝에 선명한 이빨 자국을 남겨야만 했다. 사실 녀석의 상태는 따로 검사해 볼 필요도 없이 묵직한 아랫배 한번 꼬집어보면 알 일이다. 그 전에 육안으로도 확실하고.
- 소아비만인 거야 뭐 보면 아실 테고, 당뇨 증세 있는 것도 뭐 대충 아실 거고요. 치료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방법은 쉬운데 그걸 계속하는 게 힘든 거죠. 막상 해야 하는 건 별거 없어요. 식사 조절하고 운동하고 처방해 드리는 약 꾸준히 먹고. 근데 약은 하다 말아도 돼요. 중요한 건 체중 감량하고 유지하는 건데 이게 되게 어렵거든요. 어려워요 진짜. 내가 만날 실패해봐서 잘 알아요. 소아비만이란 게 저보다도 부모님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단 말이죠. 애들 비만은 어른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거든요. 나처럼 된다고요. 이거 이대로 계속 가면 합병증도 무시 못 하고요. 자자, 이걸로 땀 좀 닦아라.
연신 자기 이마를 훔쳐내던 손수건을 녀석에게 내밀며 의사는 소매로 땀을 훔쳤다. 그 역시 육중한 몸집에 턱살이 목젖까지 가릴 정도였지만 소아과 전문의가 성인 비만까지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다만 처방전을 쓰는 종이 위로 그의 굵은 땀방울이 뚜욱 떨어지는 것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손등으로 스윽 닦아낸 자리에 푸르게 잉크가 번졌다.
진료가 끝난 후 접수대에서 계산하는 사이 대기의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사라졌다. 잃어버렸다는 상황보다 녀석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큰 걱정 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한 게 어디 숨어질 리도 없었다.
역시 병원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덩치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집에 가자며 녀석의 손을 잡아끌었는데 손아귀에 넣는 힘이 아까 음식 앞을 지날 때보다 더 완강했다. 텔레비전에서 도통 시선을 떼지 못하길래 무슨 미식 프로그램이라도 하고 있나 싶어 브라운관을 보았다. 거기에는 음식 대신 한 흑인 소녀의 공허한 눈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이어 화면은 마른 목덜미와 팔다리를 훑어지나 풀 샷으로 널브러져 있는 소녀와 소녀를 안고 있는 부모를 비추었다. 파리 몇 마리가 소녀 주위를 빙빙 날다 얼굴에 앉았다.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대륙의 어린이 영양실조를 촬영한 다큐멘터리였다. 소녀는 뼈만 남아 앙상했지만 배는 잔뜩 부풀어 있었다. 머리는 가는 목이 버텨내기 힘겨울 만큼 커다랬다. 성우는 소녀가 현재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이며 날이 갈수록 배는 더 불러올 거라고 설명했다.
나는 익히 그 증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콰시오커.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 첫째 아이가 걸리는 병. 가나어다. 대학교 시절 한 국제단체의 자원 봉사 활동을 하며 아프리카 기아에 대한 캠페인을 벌인 적 있다. 배가 불룩한 아이들 사진을 들고 행인들에게 모금서명을 받거나 자선 음악 행사 스텝을 맡기도 했다. 관련 세미나와 토론회도 참석했다. 그땐 열정적이었고 진심으로 아프리카를 돕고 싶었다. 그러나 봉사 기간이 끝난 후 내 삶에서 아프리카는 동네 자주 가는 호프집 이름 그 이상은 아니었다. 물론 활동들은 내 이력에 유용한 사항으로 취직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잠시 내가 예전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녀석은 여전히 텔레비전에 몰두하고 있었다. 소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녀석이 제법 기특했다. 사실 녀석은 착하다. 제멋대로인 구석은 있어도 거짓말할 줄 모르며 길거리에 쓰레기도 버리지 않는다. 모금 프로그램을 볼 때면 꼬박꼬박 ARS 전화도 걸고 (비록 요금을 자기가 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면 멈추어 가슴 아파할 줄 안다. 비록 몸의 살은 거둬내야 할지 몰라도 마음의 살은 한없이 찌워 나가길 바라며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는 길에 핫도그 하나 정도는 사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녀석이 물었다.
- 아빠, 저 아이 아픈 거예요?
- 그래, 딱 보면 아파 보이잖아.
- 왜 아픈데요?
- 너무 배가 고프니까.
- 그렇지만 저 아이 배가 잔뜩 불러 있는 걸요.
- 못 먹어서 그런 거야. 다른 곳은 너무 말라서 뼈가 다 보이잖아.
- 못 먹어도 배가 나온단 말이에요?
- 그래. 네 똥배에는 음식이 가득 차 있는 거고 저 아이 뱃속은 지금 잔뜩 부어 있는 건데... 그러니까 부종이라고 단백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음... 지금 너한테 설명해 봤자 알아먹지도 못할 테니까. 쉽게 말해서 너는 부른 배고 쟤는 헛배야.
- 헛배가 뭐예요?
- 헛배가 뭐냐면, 헛배가 헛부른 밴 데, 그게... 아호, 여하튼 뱃속에 공기가 가득 찼다고 생각하면 돼. 그래, 공기만 잔뜩 차서 자꾸자꾸 부푸는 거야.
- 풍선 처럼요?
- 풍선? 뭐... 풍선이라고 하자. 어, 풍선이야. 풍선
- 저 아이 죽어요?
- 죽을지도 모르지.
- 빵, 터져서요?
- 그건 아닌데 하여튼 그래.
아이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기란 언제나 힘든 일이어서 더는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녀석은 풍선 이야기만 해댔는데, 누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거냐, 아니면 숨 쉴 때마다 공기가 들어가서 부푸는거냐, 아프리카는 뜨거울 텐데 잘 터지지 않겠느냐, 뾰족한 것도 멀리해야겠다, 이런 이상한 질문들만 늘어놓는 통에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질문 하나에 대답하면 또 그걸 물고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결국 녀석의 입을 막기 위해 핫도그와 핫바의 힘을 동원해야만 했다. 먹는 동안 녀석은 잠잠했고 어느새 집 앞 골목 어귀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려주었을 때는 풍선이며 아프리카며 이미 쏙 들어가 버린 후였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저녁 식사 후 녀석이 소파에 누워 있는 내게 스멀스멀 기어 오더니 다시 풍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바스락거리는 커다란 감자칩 봉지를 손에 들고 쉴 새 없이 쩝쩝거리며. 손가락과 입가 잔뜩 과자 부스러기를 묻힌 채 말이다. 그런데요, 쩝쩝, 제 배에도요, 바스락, 풍선이 있으면, 와그작, 어쩌죠, 쩝쩝바스락와그작.
순간 나는 내 새끼지만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내가 벌어 먹이고 있는 건가. 풍선이란 건 네 배에 있기에는 너무 낭만적인 물건이란다. 그 돼지 같은 뱃가죽 속에는 종일 먹어댄 음식들이 똥이 되어 들어차 있을 거야. 라는 말을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빠다운 언어로 대체해 들려주었다.
- 초롱아, 풍선이란 건 실제로 사람 몸속에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아들 요 통통한 뱃속에는 밥이랑 과자랑 아까 먹은 핫도그 같은 것들이 들어있어서 초롱이가 더 씩씩하게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지.
- 뱃속의 풍선이 터지면 그 아이는 죽겠죠?
자기만의 답을 내린 아이를 설득시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한 들 소용없다. 배를 갈라 뒤집어 보여주지 않는 이상 녀석에게 사실을 확인시킬 방법은 없을테다. 아니 보여준다 해도 믿지 않을는지 모른다. 녀석에게 풍선은 이미 확고한 진리인 것 같았다.
- 도와주고 싶어요.
- 어떻게 도울 건데?
- 어떻게든지, 뭐든지요.
- 그런 대답은 없어. 어떤 행동이 있다든가 무슨 방법이 있어야지.
- 그럼 풍선을 바꿔주면 되잖아요. 터지기 전에 다른 풍선으로 바꿔주는 거예요. 문방구에서 풍선을 잔뜩 사서...
나는 손짓으로 녀석의 말을 멈추었다. 함께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이러다가 진짜 아프리카까지 날아가자고 조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별안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초롱이가 그 소녀를 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기부해 주는 거야. 배가 고프니까 풍선으로 배를 불리는 거잖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초롱이가 돈을 보내 주면 더는 뱃속에 풍선을 넣지 않아도 되고, 어떠니?
- 저는 돈이 없어요.
- 괜찮아. 초롱이도 돈을 보낼 방법이 있어.
- 어떻게요?
- 네 과자를 소녀에게 주는 거야. 초롱이는 밥도 매일 세끼 먹고 엄마가 해주는 간식도 먹잖니? 그러니까 과자쯤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잖아.
- 배고파요.
- 그래도 죽지는 않잖아?
- 죽을 만큼 배고파요.
- 그 친구는 진짜로 죽는데도? 초롱이가 배고픈 걸 조금 참고 과자를 소녀에게 주면 죽지 않을거야.
녀석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심각한 표정이 고작 과자 몇 봉지 때문이라니. 한심스러운 동시에 감탄스러웠다. 한동안 제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던 녀석은 이내 결심이 선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 좋아요. 제 과자를 주겠어요.
- 잘 생각했어. 그럼 이제 초롱이가 매일 먹는 과자만큼의 돈을 아빠가 소녀에게 보내 줄 거야. 대신 초롱이는 정말 과자를 먹으면 안 돼. 만일 아빠 몰래 과자를 먹다가 들키면 소녀에게 주는 돈에서 그만큼을 뺄 거야. 네가 자주 과자를 먹을수록 소녀는 배고파지고 그럼 죽게 될 거야. 어때 잘할 수 있겠어?
- 네!
안 그래도 녀석의 섭취 칼로리를 줄여야 하는 마당에 잘 된 일이었다. 당장 과자를 아주 끊는 건 어렵겠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걸 양보했다는 마음 자체가 너무 예뻤다. 나는 자발적으로 녀석을 끌어안고 볼에 뽀뽀 해주었다. 과일 깎던 아내가 그 모습을 보더니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곧장 녀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그러고는 병원에서 본 다큐멘터리 채널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내 예상대로 오늘 방송의 다시 보기와 함께 소녀를 후원할 수 있는 국제단체의 링크가 걸려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내가 대학 시절 자원봉사를 했던 단체였다.
방송의 소녀는 메인화면에 소개되어 있었다. 소녀의 얼굴을 클릭하자 자세한 사연과 함께 개인 후원 메뉴가 나타났다. 이름은 로키아. 말리에 살고 있으며 초롱이보다 한살 적은 여섯 살 . 아이의 프로필도 있었다. 좋아하는 과목, 없음. 좋아하는 놀이, 춤추기. 그러나 영양실조는 로키아를 춤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녀석을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시킨 후 매달 3만 원씩 보내기로 했다. 후원자 서명란에 제 이름을 입력한 후 직접 후원 버튼을 클릭하도록 시켰다. 곧 후원이 성사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집으로 후원 안내서가 발송될 것이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이로써 최초롱과 로키아는 같은 지구상의 친구가 되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녀석은 기쁘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웃었다. 녀석을 쓰다듬으며 나는 어쩐지 좋은 부모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과자를 끊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후원 계약을 맺은 다음날부터 녀석은 과자 금단현상을 보였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입으로 가져가 빠는 것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나는 로키아의 사진을 보여주며 풍선과 배고픔과 죽음에 대해 말해 주었다. 녀석은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잠잠해지곤 했다.
약발도 잠시, 날이 갈수록 투정은 더 했고 나중에는 밥에 입도 대지 않았다. 과자만 찾으며 울어댔다. 네가 과자를 먹으면 로키아가 죽을지 모른 다는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왜 내 과자만 빼앗겨야 하느냐고 악을 바락바락 쓰며 대들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후원단체로부터 한 통의 우편이 도착했는데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인쇄된 로키아의 편지였다. 현지어로 된 편지 뒷면에는 로키아의 손도장이 찍혀있었고 영어와 한글로 된 번역본이 동봉됐다.
...
친애하는 후원자님께.
안녕하세요! 저와 식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후원자님도 잘 지내시죠?
제게 이토록 큰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후원자님 덕에 저는 무사히 영양실조 치료를 받고 있어요.
언젠가는 좋아하는 춤을 실컷 출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지길 꿈꾼답니다.
...
여기는 너무 더워요. 후원자님이 사시는 곳의 날씨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요.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로키아 올림.
...
편지를 읽고 나는 울컥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만 쓰인 편지는 아닐지라도 내 자식에게서는 단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진심이 전해졌다. 나는 녀석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로키아의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단지 너는 투정을 부리는 동안 이 소녀는 네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썼다고. 정말 소녀가 죽어도 괜찮겠냐고.
즉시 녀석을 불러 앉혀 소리 내어 편지를 읽어주었다. 다 읽자 녀석은 한 번만 더 읽어 달라 부탁했다. 제 방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로키아의 사진을 바라보며 마른 소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로키아가 우리를 믿고 있으니 우리는 로키아를 도울 책임이 있는 거라고. 눈을 보고 물었다. 너도 로키아를 사랑하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은 잘못했다고 답했다. 내게, 그리고 로키아에게.
녀석은 앞으로 로키아를 위해 어른스러워질 것을 약속했다. 나는 스탬프를 가져와 로키아의 손도장과 맞닿게 녀석의 손바닥을 찍어주었다. 로키아와 최초롱은 그렇게 손을 마주 잡았다.
그 날 이후 확실히 과자에 대한 투정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가끔 군것질하고 싶은 눈치는 보였지만 정기적으로 도착하는 편지가 녀석을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아들이 직접 답장을 다 쓴 적은 없었는데 부끄러워서라는 게 이유였다. 후원과 편지는 일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그동안 아들의 체중은 몰라보게 줄어들었으며 로키아도 맘껏 춤 출 수 있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근래 로키아는 음악 과목을 좋아하게 되어서 종일 노래 연습에 열중이라고 한다. 아들은 지난주에 태권도 승급심사에 합격해 2품을 달았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병에 걸린 아이와 먹을 것이 없어 병에 걸린 아이가 만나 서로를 치유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건 무척 감동적인 일이었다. 나는 후원을 늘리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들에게 많은 지구촌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관계들이 아들을 더욱 풍요롭고 따스한 인간으로 키워 줄 것이었다.
꼬박 답장을 쓰는 건 내 몫이었다. 간혹 아들을 옆에 두었다. 할 말이 없냐 물으면 로키아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나는 그 말을 아들 손으로 직접 쓰게 시켰다. 잘 지내줘서 고마워. 언제나 너의 행복을 바랄게. 편지가 쌓여갈수록 로키아가 딸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편지는 내 삶의 위로였다. 때로 편지가 정말 로키아 손에서 쓰인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기관에서 내용을 일괄 작성한다 해도 로키아의 근황에는 거짓이 없을 테니까. 로키아가 우리의 편지를 받아 읽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간 나는 적금을 하나 들었다. 곧 맞이할 여름, 로키아의 나라로 가족여행을 떠날 셈이었다. 거기서 두 아이가 마주하는 순간 세상은 얼마나 경이로울까? 상상만으로도 벅차올랐다. 넉넉지 않은 월급을 아끼고 쪼개는 일이 즐겁고 설렜다. 로키아의 부모를 만나 얼마의 돈을 내 손으로 직접 전해야지. 그리고 매년 그곳에 가 로키아와 여름을 보내는 거다. 아들에겐 가치를 잴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이 될 게다. 나누는 삶의 행복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들의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한 층 계단만 올라도 숨을 몰아쉬던 게 집 앞 호수공원 대여섯 바퀴는 간단하게 뛴다. 과자를 끊고 꾸준히 운동하니 몸에 근육도 제법 탄탄하게 잡혔다. 태권도 학원에서 꼬마 애들 지도를 도울 만큼 실력이 늘어 관장님이 원비를 깎아주었다. 생활에도 규칙이 잡혀 성적마저 상승했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저 로키아를 알게 되고 편지를 주고받은 일이 한 아이의 성품을 바꾸었다.
다만, 식습관에 고집이 생겨 밥상에 고기나 햄이 없으면 투정을 좀 부렸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반찬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잔뜩 심술 난 아들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럴 때면 로키아 이야기로 맘을 돌렸다. 로키아는 고기 한 점 못 먹어도 감사하며 살지 않느냐. 옥수수죽 한 그릇으로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이 로키아 말고도 많이 있다고. 딱히 대꾸는 없어도 조용히 나물로 젓가락을 가져가는 아들이 기특했다. 그럴 때면 밤에 야식을 시켜주곤 했다. 혼자 닭 한 마리를 다 뜯을 만큼 먹성이 좋았다.
슬슬 후원을 늘리는 일에 대해 상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아들을 뷔페에 데려갔다. 나쵸와 초코칩을 산처럼 쌓아 먹는 모양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가끔씩은 괜찮겠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 로키아가 초롱이 덕에 행복해지는 걸 보니까 어때?
볼이 터져라 우물거리며 아들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우리 친구를 더 만들어보면 좋을 거 같은데?
- 어떻게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계획해오던 내용을 차분히 설명했다. 매주 한 번 정도 시켜먹던 치킨을 이주에 한 번으로 줄이면 어떠냐. 그럼 두 명의 친구를 더 만들 수 있다. 네 덕에 행복해질 친구들을 생각해보아라. 세상엔 맛있는 걸 먹는 일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다는 걸 이젠 알지 않느냐.
사실 지금까지 아들이 보여준 모습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어서, 늘리는 후원에 대한 돈은 조건 없이 내주어도 괜찮았다. 주고받는 편지와 자기 이름이 걸려 있다는 책임감이면 충분할거다. 하지만 아들은 이제 희생의 의미를 안다. 분명 제 것을 나누기 원할 것이다. 부쩍 어른스러워진 아들에게 사실 물어볼 것도 없는 제안이었다.
- 그래야 해요?
묻고 난 뒤 아들은 콜라를 급하게 들이켰다. 얼음을 바작바작 씹으며 다리를 떨었다.
- 음... 의무는 아니지만, 초롱이도 좋아할 일이잖아. 그 치?
아마 ‘그렇게 해요.’를 잘 못 말한 거겠지? 저맘때 아이들은 말의 의미를 제 식으로 해석하곤 하니까. 아들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럼 로키아는요?
그제야 알았다. 아들은 다른 후원이 개설되면 로키아에 대한 지원이 끊길까 걱정했던 거다. 어느새 이처럼 속 깊은 아이로 성장했을까?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 걱정 마. 로키아에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우리는 로키아를 평생 도와줄 거잖아. 안 그래?
아들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아들 손을 잡고 말했다.
- 좋다! 초롱이가 멋진 결정을 내렸으니까 아빠가 오늘 선물 하나 사줄게! 뭐 갖고 싶었던 거 있어?
- 정말요?
잠시 고민하던 아들은 온라인 게임 결제를 부탁했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소리였지만 이젠 아들의 절제력을 믿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어떤 게임인지, 무얼 사려 하는지 이것저것 설명해댔다. 관심 없는 이야기지만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대꾸하며 들었다. 재잘대는 목소리가 내 맘을 풍요롭게 했다. 교육이란 이처럼 스스로 가치를 깨닫게 이끄는 과정이어야 한다. 아들의 성장만큼 나 역시 좋은 부모란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씻자마자 아들은 뻗어버렸다. 종일 피곤했는지 오랜만에 코를 골았다. 비만으로 병원까지 다니던 때에는 매일 시끄럽게 코 고는 소리가 안방까지 울려 퍼질 정도였는데. 지금 고는 코는 쌔근대는 아기의 숨소리처럼 일정하고 듣기 좋았다. 지방이 기도를 틀어막아 그르렁대던 소음과는 질이 달랐다.
백색 소음처럼 편안한 콧소리에 노곤함이 몰려왔지만, 컴퓨터를 켜고 후원할 아이들을 물색했다. 마음이 달떠 되도록 빨리 진행하고 싶었다. 먼저 후보군을 몇 정해 내일 저녁 아들과 의논할 작정이었다. 자기 전 아내를 꼭 안고 초롱이가 많이 달라진 거 같지 않냐 물었다. 아내는 그런 것 같다며 이제 좋은 남편 노릇도 좀 해보라고 농을 쳤다. 그런 아내가 사랑스러워 새삼 로키아가 고마웠다. 가정의 평안을 가져다준 작은 소녀를 알게 된 건 축복이었다.
***
오늘 유달리 일찍 눈 떴다. 머리가 맑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로 마음먹는다. 한 시간 일찍 회사 앞에 닿았다. 근처 사우나에서 잠시 몸을 담근다. 허벅지와 종아리, 어깨와 등, 팔 근육에서 기분 좋은 피로가 올라온다. 바나나 우유 뚜껑을 뚫으며 ‘뾱’ 꼽히는 빨대 소리가 유달리 경쾌하다.
업무 능률이 좋다. 지난 몇 주간 골머리 썩던 보고서도 단번에 오케이 받았다. 팀원들에게 점심을 사야겠다. 지나며 구경만 하던 초밥집에 데려가니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세트가 나오고 두툼한 연어를 집어 부장님 입에 넣어드린다. 역시 맛이 다르다며 기분 좋게 웃으신다. 맥주 한 잔씩들 하지? 그 정도야 뭐, 일하는 데 지장 없잖아? 부장님 말씀에 술을 시켜 건배를 나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전화가 울린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이다. 도로에 차 소리가 시끄러워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아들은 로키아의 편지 소식을 전한다. 편지에 신나 아빠에게 전화했을 모습이 선하다.
- 편지가 왔어요? 어이구, 우리 초롱이 행복하겠네? 그래, 로키아는 잘 지내고 있다니?
아들이 편지를 읽어주겠다고 한다. 아직 점심시간 여유가 좀 있다. 읽어주렴, 초롱아.
늘 그렇듯 ‘친애하는 후원자님께’로 시작되는 편지. 예쁜 아들 목소리를 들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런데 다음 내용이 예전 같지 않다. 듣자니 이번 편지는 로키아가 보낸 것이 아니다. 국제단체의 자원봉사자 이름으로 시작되는 편지는, ‘유감스럽다’는 말로 운을 뗀다.
...
로키아는 건강을 되찾아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후원자님의 덕분이며
로키아와 가족들은 그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짧은 생이었지만 후원자님처럼 많은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로키아는 행복했습니다.
...
또박또박 아들은 차분하다. 로키아의 죽음을 전하는 편지는 또한 ‘유감스럽다’는 말로 끝맺는다. 울음을 참고 있을 아들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쓰리다. 무어라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나는 그저 전해주는 말들을 가만히 귓속에 집어넣는다.
로키아는 내전 중 포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공터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 갑작스러운 격전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춤을 추었으니 행복했을 겁니다. 편지는 말했다. 기아를 이겨낸 소녀의 씩씩함도 총탄을 빗겨낼 순 없었다. 평생을 죽음 가까이에서 살아간 소녀에게 삶은 낮잠처럼 한순간이었다.
편지를 다 읽은 아들은 아무 말 없다. 얼마나 복잡한 심경일까? 전화를 걸어 읽어 주어야 했을 만큼 다급했음에도 감정을 눌러가며 정성스레 읽는 목소리가 내 몸 가득 들어찬다. 두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눌었다.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고작 나온 말이라곤 괜찮냐는 물음정도. 아들은 대답 대신 아빠, 하고 나지막이 부른다.
- 그럼 이제 과자 먹어도 돼요?
정말, 유감스럽다. 차마 안 된다는 말도 못 하겠고, 턱주가리만 벅벅 긁는다. 웃기지도 않은데 웃음이 터진다. 유감스럽게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눈물이 다 난다. 편지를 쓰는 동안 자원봉사자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유감스럽다는 말 밖에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내가 웃는 걸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녀석은 나를 따라 웃기 시작한다.
사무실로 들어간 즉시 병가를 끊고 회사를 나온다. 집에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요. 비싼 초밥을 산 덕인지 부장님은 흔쾌히 허가를 내준다. 은행으로 가 적금을 해지한다. 은행원은 만기를 코앞에 두고 해지하는 이유를 묻는다. 빌어먹을 과자를 사야 한다고요. 은행원이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해지에 따른 손해 내용을 나열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해지한 적금으로 마트에 가서 과자를 산다. 거의 모든 종류를 하나씩. 카트를 가득 채워 세 번 옮겨가며 계산한다. 점원이 유감스러운 손놀림으로 바코드를 찍는다. 어디 기부하시나 봐요.
집에 도착하니 제 엄마와 진작 마트에 다녀온 듯 녀석 방에 각종 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녀석이 함박웃음으로 나를 맞이하는데, 근래 보지 못한 해맑음이란 걸 깨닫는다. 나는 감자칩 하나를 집어 들어 소파에 앉는다. 텔레비전을 켠다. 불우한 이웃의 사연을 소개하는 교양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방영 중이다. 화면 오른쪽 위, 모금을 위한 ARS번호가 박혀있다.
녀석이 내 옆으로 다가와 감자칩 봉지에서 한 움큼을 꺼내 제 입 가득 욱여넣는다. 쉴 새 없이 바스락와그작쩝쩝. 그러면서 녀석은 내 휴대전화를 열고 ARS 성금 모금 번호를 꾹꾹 눌러 댄다. 입가 가득 과자 부스러기를 묻힌 채 나를 보고 활짝 웃는 그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참, 착한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