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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교육부, 한국사 교과서 수정 권고안 발표
교육부가 21일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수정·보완 사항을 권고한 브리핑에서 교학사는 줄곧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교학사가 촉발시킨 수정·보완이었고, 이번 전문가자문위원회 재검토에서도 교학사에는 다른 7종 교과서보다 느슨한 잣대가 적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학사와의 양적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른 교과서들의 오·탈자와 흠을 무리하게 잡고, 내용적으로는 국가 정체성 잣대를 추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실 오류’서 기준 확대, 타 교과서도 무더기 권고
교학사 ‘친일’ 집중 지적… 7종은 오탈자 등 부풀려
■ 모호한 국가 정체성 기준 확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전체의 수정·보완 방침을 밝히면서 사실 오류만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이뤄진 수정·보완 권고는 국가 정체성까지 확대됐다.
교육부는 두산·비상·천재교육 교과서에서 집필기준에 들어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 서술이 누락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 브리핑 중에 비상교육 교과서엔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북한 이탈주민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서술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는 북한 인권에 대해 “정해진 분량이 있거나 정해진 팩트를 넣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북한 주민 문제가 소홀히 다뤄졌거나 해서”라는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이 질타했던 ‘유엔 총회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 관련 서술’ 부분은 두산·미래엔·천재 교과서에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두산과 미래엔은 “유엔 총회에서는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하였다”고 기술했다. 교육부는 “선거가 가능했던”이란 표현은 삭제토록 권고했다. 천재교육의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였다” 부분도 “38도선 이남” 표현은 삭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2010년 당시 검정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역으로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서”라는 표현을 넣으라고 출판사에 권고했었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교육부의 권고 건수를 보면 교학사(251건)가 가장 많긴 하지만 리베르(112건), 천재교육(107건) 등도 100건이 넘는다”면서 “교육부가 물타기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학사에서 정도가 심한 왜곡이나 오류사항을 공통 지적사항으로 올려 물타기했다”며 “반면 ‘유엔 총회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 관련 서술’은 원문 자체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어 명백한 사실 오류로 보기 어렵다. 앞으로도 큰 논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교학사는 ‘친일 교과서’ 확인…수정 권고 친일에 집중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에서 ‘친일 미화’ 논란이 일었던 내용에 대해 무더기 수정 권고를 내렸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했다고 보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서술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일제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되어 갔다’(282~283쪽)고 서술한 데 대해 교육부는 “문장 흐름상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서술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식민 수탈의 배경을 서술토록 지적했다.
‘일제 시기 고등교육기관을 세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제와의 협력도 필요했다’(260쪽)는 서술에는 민족교육기관이 일제와 타협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친일교육에 앞장섰던 사람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됐다. ‘많은 사람이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하고 참여했다’(288쪽)는 서술도 친일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수정 대상에 넣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일본 측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한 부분(190쪽)과 3·1운동의 한계점을 묻는 부분(254쪽)도 수정을 권고했다.
교육부는 김성수·이병도·최남선 등 대표적인 친일파에 대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했다’는 등의 평가를 한 데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일제가 한반도 통치수단으로 설치한 경성방송국을 민족 실력양성 운동으로 다룬 부분, 화신백화점을 민족자본으로 서술한 부분 등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 숫자 맞추기 의혹… 교학사는 빠뜨리고 다른 7종은 부풀려
교학사 교과서의 수정·보완 권고사항이 다른 교과서의 2~4배로 많았지만 이조차 이중잣대 의혹이 제기됐다. 다른 교과서는 사소한 실수를 부풀리고, 교학사 교과서에선 빠뜨려 수정 권고사항 개수를 억지로 짜맞춘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교학사를 뺀 7종의 교과서에선 오·탈자나 문장부호, 띄어쓰기까지 별도의 항목으로 수정 권고했다고 밝혔다.
금성교과서는 ‘무단총치’를 ‘무단통치’로, 지학사는 ‘정부통령으로’를 ‘정·부통령으로’로, 리베르에선 ‘조의 제문을’을 ‘조의제문을’로 바꾸라고 꼼꼼하게 지적했다.
반면 교학사 교과서엔 심각한 오·탈자가 많았으나 수정 권고 건수에 잡히지 않았다. ‘동학 농민군’을 ‘동학 동민군’으로, ‘고부 군수’를 ‘고분 군수’로, ‘고엽제’를 ‘고엽자’라고 썼으나 모두 지적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교학사를 제외한 7개 교과서의 수정·보완 권고 건수는 굳이 채택 일정까지 늦추지 않고, 그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학교들이 채택한 이후에도 수정이 가능한 정도”라며 “교육부의 권고안만으로도 교학사 교과서는 수정·보완의 수준을 넘어선 불량교과서임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