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 문외한이 쓴 글이라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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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올랭피아>
명화집에 실려 있는 여자 나체 그림이라 하여도 그것을 성냥갑 속에 넣어서 판매하였다면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같은 그림이라도 상황과 의도에 따라 음란성이 다르게 평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상대적 음란성 이론' 에 관한 이야기다.(대법원 70도 1879 판결) 역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강렬한 정사씬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아가씨의 동성애 장면은 자극적이라기 보다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화면 구도나 움직임이 저속한 성적 흥분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회화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클로드 모네, 산책로>
인상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인 마네와 모네의 그림들이다.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도와 느낌이 비슷하다. 박찬욱은 인상주의 화풍의 유화처럼 느리고 유려한 카메라 워크로 화면에 꼼꼼히 붓질을 해놓았다. 아가씨를 인상주의자들의 그림과 비교하는 것은 단순히 화면이 주는 느낌이 비슷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표현형식과 미학적 부분에서도 둘 사이의 묘한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다.
18세기부터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당시 일본의 대표적 미술 형식인 우키요에가 유럽에까지 전파된다. 목판화 특유의 평면성과 신선한 화면분할, 비대칭의 잘림구도 같은 화풍이 유럽인에게는 매우 충격적으로 인식 되었다. 이런 화풍은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적극 수용되어 유행처럼 번져가는데, 당시의 이런 미술사조를 자포니즘(Japonism)이라고 불렀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였던 고흐도 자포니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숙희를 속이기 위해 히데코가 백작 위에 올라탄 장면은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연상된다>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던 세력은 고전주의적 전통을 답습하고, 제도적으로는 국가 주도의 살롱 체제에 순응하는 소위 신고전주의자들이었다. 살롱전에 출품된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들은 지나치게 형태가 모호하고 메시지가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큰 비웃음을 샀다. 선명한 윤곽선, 종교적이고 영웅주의적인 주제를 추구했던 신고전주의자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여인의 도발적 시선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어떤 예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가에 대한 가치 혼란과 다툼이 오고가던 이 시기는 보수적이고 케케묵은 권위에 대항하여 새롭고 진보적인 시각이 왕좌를 뺏으려고 다투는 격변기였다. '전통적 질서에 저항하는 현대적 사고방식'의 대립구도는 영화에서 이어진다.
<뱀, 철창, 코르셋, 장갑, 지하실...속박의 상징들>
여성들은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에 의해 왜곡된 자아를 가진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숙희와 히데코는 서로를 마주보며 자신의 성적, 계급적 본질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한쪽 신발'은 숙희의 혼란스런 내면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아르고 원정대의 외짝신 사나이 이아손, 섬돌 밑에 숨겨놓은 신발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찾아 떠났던 테세우스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잃어버린 신발을 찾는 이야기는 자아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숙희는 히데코가 삐뚤어진 남성적 질서에 저항 할 수 있는 주체적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순종적 삶을 살아왔던 히데코에게 숙희는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남성의 뒤틀려진 욕망이 내재하고 있는 고서적(알고보면 춘화)을 찢어발기고 서재의 뱀 대가리를 깨부수는 행위는 맹목적 권위에 사로잡혀 있던 전근대적 미술사조에 반발하는 현대의 행위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은 곪아가는 전통적 질서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정신을 '빛과 어둠' 이라는 대립구도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 창문조차 없애버린 서재는 삐뚤어진 욕망을 의미한다. 낭독회의 변태들에게 히데코의 몸과 마음이 철저히 유린당하는 순간 전기가 나가면서 세상은 어둠에 잠기지 않았던가. 반대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정원, 넓은 창문이 있는 응접실은 자유와 진취적 방향성을 옅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상하이를 향하는 배 위에서 남장을 차려입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은 히데코 부부를 떠올려보자. 바다 위에 휘영청 떠 있던 보름달이 엔딩의 미닫이 문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가씨들의 밝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은가.
인상주의는 사상 최초로 사물이 아니라 빛을 그리려 시도한 미술 사조이다. 과거의 회화 전통에서는 빛의 위치에 따른 사물의 왜곡을 피하기 위해 거의 실내에서만 작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젊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젤을 들고 햇살이 비치는 야외로 뛰쳐나갔다. 같은 사물이라도 빛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인상 그 자체'를 그리려 했다.
<모네, 수련 연작>
아가씨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들이다. 조선인이지만 뼛속까지 일본인이고 싶어하는 코우즈키, 가난한 사기꾼이지만 귀족이고 싶어하는 백작, 남자이면서 여자이고 여자이면서 남자인 아가씨들. 박찬욱은 3부에 걸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뚜렷한 윤곽선을 가진 전통적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빛 번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들의 인상을 표현하려 한듯하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혼란의 시기, 일본식과 서양식과 한식이 뒤죽박죽인 공간, 사기꾼과 귀족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혼재된 캐릭터. 이런 상황에서는 강렬한 감정, 충동적 정사, 직관적 인상이야말로 사물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훌륭한 수단이 아닐까? 아가씨의 미술은 비주얼에 대한 집착이 아니다. 주제를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