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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 아이는 갑자기 어디서 떨어진 아이란 말인가. 여기 오기 전 미리 알아본 청아의 신상정보에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순간 순간 마치 기억을 잃은 것처럼 행동가는 데 그게 정상이라니.
‘기분 더럽네.....’
그리고 그 날 경환은 악몽을 꾸었다. 눈을 떠보니 경환은 어느 산 속에 혼자 서 있었다. 곧 경환의 앞쪽의 약간 솟아오른 땅이 들썩들썩하더니 갑자기 쑥하고 손이 튀어나왔다. 그 튀어나온 손이 이미 썩어서 군데군데 뼈가 드러나 있어 경환은 그게 시체라는 것을 알았다. 곧 시체의 해골까지 땅에서 나왔다. 시체의 해골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경환은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시체는 거기서 더 나오지 못하고 한 쪽 팔만 버둥거리며 경환을 잡으려고 했다. 해골은 뭔가를 말하려는지 이미 누렇게 변한 치아를 딱딱거렸다. 어쩐지 그 소리가 오싹하게 들렸다.
“넌....날....살...릴... 수..있..었.잖아.”
시체가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헉..!!”
경환이 참은 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여름도 아닌데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불쾌한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빠르게 반복되던 경환의 호흡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되고 경환은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아마 아내와 비슷한 나이 대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 날 경환이 ‘그’와 마주친 건 모를 것이다. 경환은 그 날 딸의 생일을 맞아 모처럼 가족끼리 놀러가기 위해서 오전근무만하고 서둘러 집에 가고 있었다. 날씨마저 어찌나 포근한지 아빠에게 삐진 딸의 마음도 한 번에 녹을 거 같았다. 그때였다.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이 방금 전만해도 평화로웠던 분위기를 단번에 갈라놓았다. 경환은 서두르는 마음에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튀어나갔고 마침 우회전하던 차가 경환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경환은 너무 놀라 나자빠진 채로 멍하니 운전자를 보았다.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으나 착각이겠지 싶어서 넘어갔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경환은 운전자가 연쇄살인마 OOO이고 그 차의 트렁크에는 아직 살아있던 그 여자가 묵인 채 실려 있었음을 알았다.
평소 경환이라면 그런 직감을 놓치지 않고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경환은 자신이 자신의 사적인 문제 때문에 그 직감을 모른 채하고 넘어 갔다.
경환은 괴로운 듯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한 번 호되게 악몽을 꾸고 나자 다시 잠도 오지 않았다. 경환은 잠든 아내를 바라보다가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기 위해서 손을 갔다댔다.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썩더니 해골이 되어 경환에게 소리쳤다.
“날 죽여 놓고!”
경환은 다시 헉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지독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님! 팀장님!”
웅웅울리던 소리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경환은 화들짝 놀라서 대꾸했다.
“괜찮으십니까? 병원 다녀온 이후로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대호가 경환의 자리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 내가 살다 살다 니가 내 걱정을 하게 만드네. 수치다 수치.”
대호는 크게 웃으며 ‘이제 팀장님도 한물갔습니다?’ 하고 까불다 기어코 한 대 맞고 자리로 돌아갔다.
며칠사이 경환은 죽을 맛이었다. 꿈에서 처음에는 해골이랑 팔만 나왔던 시체가 어느덧 땅 속에서 거의 빠져나와 자신 쪽으로 달려들고자 버둥거리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났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자신의 아내, 딸, 동료들이 그 여자 시체로 변해서 자신을 공격했다. 도대체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점점 모호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방금은 대호덕분에 간만에 정신이 또렷해진 경환은 아까 병원에서 들은 청아의 말을 회상했다.
“아저씨도.... 잘못되었네.”
마치 성모마리아와 같은 선한 얼굴 선한 목소리였다. 그런 얼굴 그런 목소리로 청아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거에 경환은 놀라서 청아에서 되물었지만 이미 청아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 이후부터는 아예 자기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의 질문에 대꾸하지도 않았다. 마치 경환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경환은 청아의 말을 몇 번 곱씹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아저씨도....라고?“
경환은 성당에서 비통한 표정으로 얘기하던 기하를 떠올리고 전화를 걸었다.
“아 오셨습니까?”
경환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하를 맞이했다. 기하의 얼굴은 전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기하는 불과 며칠 만에 부쩍 수척해진 경환을 보고는 직감한 듯 얘기했다.
“만나셨군요.”
“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여쭐 것이 있어서....”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이 피어올랐다. 카페주인은 두 사람의 묘한 분위기에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곧 자기 일로 눈을 돌렸다.
“.....저 전에 말씀하셨던 악몽이라는 거 혹시 자기가 잘못한 일에 관련된 겁니까? 그러니까 죄 같은 거요.”
한참의 침묵 끝에 경환이 입을 땠다. 지금부터 자신이 할 얘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인지 자신이 생각하고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경환에게 이 길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환이 질문을 들은 기하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무엇과 관련된 꿈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맞나요?”
경환이 재차 질문하자 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돌아가신 두 분께서 얘기했던.... 과거 지우고 싶은 순간.....이라는 것도 잘못과 관련된 게 맞나요?”
단순히 지우고 싶은 순간이라면 창피했던 순간, 선택을 잘못했던 순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경환이 얘기하는 건 좀 더 자신과 같은.. 죄와도 같이 죄책감을 자극하고 생각할수록 괴로운 그런 것들이었다.
‘......역시...’
“솔직히 성당에서 얘기하셨을 때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겪어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청아에게는 뭔가 있어요.”
경환을 말을 이으려다가 한 숨을 내쉬고 카운터에서 물 두 잔을 부탁해 가지고 왔다. 초조한 지 연신 커피를 들이부은 탓에 두 사람의 커피 잔은 비어있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할지 압니다..... 그런데 이것 말곤 다른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기하가 얼른 말해보라는 듯이 눈빛으로 경환을 재촉했다.
“어제 청아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아저씨도 잘못되었네.’라고.”
경환이 옆에 놓은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펼쳤다.
“그 말을 듣자 그쪽에서 해준 얘기랑 제가 겪은 일들이랑 연관해서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더군요.”
경환이 노트에 쓰인 문장을 차례로 손가락으로 짚었다.
1. 청아는 연구센터에서 정신과 관련된 연구 대상이었다.
“아니면 청아가 보여준 행동들을 설명할 수 없겠죠.”
2. 연구의 결과 청아는 어떤 능력을 얻었다.
3. 그 능력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4. 청아는 능력으로 사람들을 자살시켰다.
“그리고 방금 전에 들은 질문의 답으로 그 능력이 무엇인지 추측해봤습니다.”
경환은 펜을 꺼내 그 밑에다 세 글자를 썼다.
‘죄책감’
“아마....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잘못에 관한 기억을 자극하거나해서 극도의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거겠죠. 하지만...”
경환은 다시 몇 글자를 더 썼다.
‘왜?’ ‘어떻게?’
“제 가정이 맞는다고 해도 청아가 왜 그러는 건지,,, 또 어떤 방법으로 죄책감을 자극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기하는 생각에 잠겼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경환은 확신이 필요했다. 자신의 가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며칠 사이 현실과 악몽을 오가느라 자신의 판단이 올바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미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기하가 입을 뗐다.
“......놀랍네요. 악마라는 말보다 훨씬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경환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안심했다. 기하의 표정 역시 밝아졌다. 드디어 안개 속에서 가려진 길이 드러난 듯 두 형사는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구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야겠군요.”
“맞습니다. 그 연구 내용이 청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야합니다.”
“연구소는 이미 다섯 번 넘게 뒤졌어요.”
“그럼 연구원들의 집은 어떻습니까?”
“이미 한 번씩 찾아가보기는 했는데.... 그래도 가능성은 있겠네요.”
“그리고 청아를 찾아가서 ‘왜?’와 ‘어떻게?’ 이 두 가지도 알아내야합니다.”
열띤 대화를 나눈 후 기하가 먼저 경환에게 수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경환은 오히려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므로 기하의 부탁을 받아드렸다. 연구원의 집에는 기하가 청하에게는 경환이 계속 가기로 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경환은 어느 때 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고 느꼈다.
나흘 뒤 기하는 잘못된 건 자신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