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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아프락사스 2
게시물ID : panic_883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삼봉씨
추천 : 4
조회수 : 7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03 21: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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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성당에 들어선 경환의 눈에 혼자서 기도하고 있는 기하의 모습이 들어왔다. 경환은 기하를 방해하기 싫어 성당 맨 뒤 의자에 앉아 조용히 주변을 구경했다. 잠시 뒤 기도를 마친 기하가 경환에게 먼저 다가왔다.

천주교신자셨군요.”

하하...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냥 요즘 괜히 누군가에게 잘못했다 빌고 싶고 그러네요.”

그리고 잠깐의 잡담을 끝으로 전 날 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연구내용을 알아야 하는 데 이미 그 길은 다 봉쇄되었고 결국 저희가 기댈 곳은 생존자인 윤청아 그 소년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윤청아를 찾아간 건... 자살한....두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에선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라면서 면회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해놓았더군요. 첫 날 다녀온 두 사람이.... 눈이 아주 맑아서 빨려드는 것 같았다고. 마치 자기 속 구석구석까지 다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혹여나 소년이 상처 입을까 자극적인 질문은 피했던 두 사람이 둘째 날 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윤청아는 그냥 청소가 있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몇 번을 물어도 윤청아가 그렇게 대답하자 두 사람은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처음으로 그 두 사람은 윤청아와의 대화가 어딘가 어긋난다고 느꼈습니다. 말은 통하고 있었지만 자신들과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과 얘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넷째 날 두 사람은 악몽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 계속 꿈에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자 두 사람은 멍하게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거기서 더 심해지자 아무것도 없는 곳에 대고 미안하다며 사과하기도 하고 갑자기 중얼중얼 거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얼마 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날 각자의 집에서 자살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기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떠듬떠듬 말하다가 간신히 문장을 내뱉고 나서 긴 한숨을 쉬었다. 경환은 기하에게 좀 쉴 것을 권유했으나 기하는 거절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제가 윤청아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다들 말로는 두 사람이 우울증으로 죽었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내심 한순간에 변한 두 사람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의문을 풀기위해 스스로 가겠다고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역시 먼저 떠난 두 사람과 같이 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사건에서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박경환 경위님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으십니까?”

얘기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기하의 입술은 바짝 말라있었다. 기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증오가 담긴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럼..... 악마랑 싸우셔야 할 겁니다. 그 새낀 악마에요.”

 

 

경환은 갑자기 쏟아진 허무맹랑한 얘기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악마라고? 수사 관련해서 몇 번 생존자를 찾아갔더니 자살을 했다더라?’

곱씹을수록 어이가 없고 복장이 터지는 소리였다. 무슨 단서라도 있을까싶어 찾아갔더니!

그래그래.. 정리해보면 한 기밀 연구센터에서 진행된 연구와 관련된 소년이 악마로 변해서 연구원 6명을 자살시키고 형사 두 명까지 자살시켰구만!’

씨발!!!!!!!!”

그딴 미친소리가 어딨어!’

이걸 그대로 수사보고서에 올렸다간 자신이 정신질환으로 입원해야 할 판이었다.

.... 머리야..”

경환은 이마에서부터 천천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누군가 정답으로 갈 수 있는 길에 안개를 뿌려놓은 기분이었다. 연구내용은 기밀이지 전 수사 담당자는 헛소리나 하고 있지.... 도대체 어느 길을 가야할 지 그리고 이게 길은 맞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 악마라... 한 번 면상이나 보고 싶네.”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한 아이니까 주의하시고 1시간 내로 끝내셔야합니다.“

간호사가 딱딱한 태도로 필요한 내용만을 전달하고는 사라졌다. 4인실이나 6인실을 쓰고 있을 줄 알았더니 간호사가 안내한 곳은 VIP전용 층이었다.

과연.... 높으신 분이 뒤를 봐주는 악마인가?’

간호사마저 사라지고 나자 어쩐지 VIP층은 으스스하다고 느낄 만큼 조용했다. 1층만해도 환자들이 많아서 소란스러웠는데 여긴 완전 다른 장소 같았다. 그런 분위기에 압도된 경환은 괜히 땀이 삐질 삐질 배어나온 손만 쥐었다 폈다 하다가 결심한 듯 생존자 청아가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경환은 감히 들어서지 못하고 순간 눈이 마주친 청아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들은 대로 청아의 눈은 아주 맑았다. 아니 들은 것보다 더 맑은 것 같았다. 마치 광택이 나도록 잘 닦아 놓은 흑 돌을 눈에 박은 것 같았다. 아니 더 자세히 보니 아주 잔잔한 호수 같았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 마치 블랙홀같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게 있었다는 걸 깨닫고 경환은 머쓱해진 상태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첫 날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청아의 의사소통 능력에는 문제가 없었고 질문 중에 모르는 것에는 침묵하긴 했으나 청아는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다만 경환이 자신을 기하대신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청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기억이 많이 오락가락하는 거 같은데......’

저런 아이가 수사에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둘째 날 경환이 청아에게 연구센터에 대해 물었을 때 청아는 기하가 얘기해 준 그대로 청소라고 대답했다그때까지만 해도 경환은 이런 아이를 악마라고 표현한 기하가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셋째 날이 되었을 때 경환은 앞선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뭔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앞서 질문 중에 모르는 것에는 대답을 안 한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 그 말이 안 들린 사람처럼 반응했다.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표정도 아니었기 때문에 경환은 혹시 청아의 정신질환과 연구센터의 연구가 관련이 있을까 싶어 곧장 병원에서 청아담당을 찾아갔다.

 

형사님께서는 그 일하신지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청아의 병에 대해서 물었을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의사는 오히려 경환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경환이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노의사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35년간 이 일을 했습니다......나름 직업의식도 있지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고 이틀 뒤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아이에게 아무 치료도 하지 말라더군요.”

그제야 경환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목소리가 낮아졌다.

“......입막음을 당했단 말씀이십니까?”

경환의 말에 노의사는 빙그레 웃었다.

긍정이군.’

청아는 아픈 게 아닙니다.”

그럼?”

전화가 걸려오기 전 이미 청아에게 상담치료가 2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상담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특이사항도 없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방어 성향이 강한 아이의 대표적 문제 양상도 전혀 없었습니다.”

경환은 청아의 이해안가는 반응을 떠올렸다.

그게,,, 정상이라고?’

복잡한 표정이시군요. 형사님 생각해보십시오. 청아는 사건에 휘말린 아이입니다. 그것도 형사들이 여러 번 찾아와서 수사해야하는 사건. 그런 사건에 휘말린 아이가 문제가 없다니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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