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오는 바위를 피하기 위해 가시덤불에 뛰어드는 건 용기지만 굴러오는 바위를 멈춰보겠다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은 객기이다.
상처 입을 지도 모르지만 해보는 것이 용기, 되도 않는 일을 우기며 해보는 것이 객기. 10화의 박도경은 용기는 냈지만 객기는 부리지 않는 현명함을 보였다. 근데 엄한 말로 피해자를 양산했지.
분노가 심히 하늘을 찌르니 오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하의 글에서 전혜빈의 오해영은 전해영, 서현진의 오해영은 서해영으로 언급하겠으니 유의하시길 바란다.
○● 어디서 되도 않는 핑계야 ●○
여자는 모텔 같은 곳에서 자는 거 아니다?
박도경(36세. 남. 음향기사). 무릎부터 꿇고 시작하자. 야, 임마! 사과해! 전국숙박업협회랑 전세계의 무수한 남자친구, 유부남들에게 사과해!
머어어~? 여자는 모텔 같은 곳에서 자는 거 아니라고? 너 임마 모텔 같은 곳에서 역사(?)가 이루어진 전국의 커플수가 얼마인지는 알고 지금 그 딴 소리를 지껄인겨?
임마, 니가 안 되서 실패한 거 가지고 왜 엄한 전국숙박업소를 건드리며 넘어갈라고 그러냐.
일단 어제 이 대사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전국의 무수한 남자친구, 남편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분명 여자친구와 아내들에게 '그럼 모텔에서 같이 잔 나는 당신한테 여자가 아니었나?'같은 비아냥을 들었을테지. 걱정하지 마시라, 여러분은 잘못한 거 없으시다.
박도경 이 놈이 괜히 멋부리고 넘어갈려고 뱉은 뻘소리임이 분명하다. 박도경은 자신의 실패를 덮기 위해 뭔가 그럴 싸한 말을 되는대로 내밷었을 뿐이었다. 님들은 잘못 없어요.
박도경(36세. 남)이 무엇을 왜 실패했냐고?
박도경은 동생인 박훈과 영화 시나리오 문제로 대판 싸운 뒤 삐쳐서 가출했다.
되도 않는 시나리오로 개무시 당하는 동생 때문에 속상해 하는 박도경에게 박훈은 어차피 어금니 꽉 깨물고 살아도 형처럼 욕 먹고 살바엔 쪽팔린 거 상관없이 밟히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겠다고 말한다.
엄마라는 사람은 남친 생일에 생일 선물로 비싼 거 사오라고 하질 않나 누나인 수경 역시 맨날 밤마다 술 처먹고 온 동네를 머리 풀어해친 채 돌아다니니 쪽팔린 걸 싫어하는 박도경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칠 노릇.
그래서 '이 놈의 집안 꼬라지 다 싫어.'하고 야밤에 가출을 하신 거다. 밤새 떠돌아 다니다가 동네 초등학교에 앉아 아버지와의 일을 회상하고 미친 듯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 시소에 앉아 있다가 뭔가 깨닭음(!?)을 얻고 서해영을 불러냈던 것이다.
무슨 사춘기 애들마냥 얼굴만 봐도 좋다고 헤실헤실하다가. 바로 태안 앞바다로 차 타고 달려서 서해영과 꽁냥질 좀 날려주고 조개구이를 먹는데 서해영의 조강지처 포쓰와 빵긋빵긋에 뽕삘을 받아 '그래, 오늘 하루 사고 한 번 쳐보자!'하며 소주를 딴 거지.
조개구이 먹는데 반주로 소주 따는 게 뭐 이상하냐 싶겠지만 박도경은 원래 술을 안 먹으며 서해영에 관련된 사건 이후 '실수'할까봐 더더욱 술을 먹지 않는다. 그러한 박도경이 자의로 소주를 딴 것은 제대로 '실수'를 해보겠다는 본심의 발로인 것이다.
거기에 서해영이 눈웃음 애교에 매 끼니 드립 날려주고 분홍빛 혀 날름 스킬까지 구사하니 욕정이란 이름의 전차가 폭주해서 낼킁 달려들어 키쑤(입만 맞추면 키스, 부비부비면 키쓰, 설왕설래면 키쑤. 위대한 한글)를 한 것.
9화까지는 잘 참았지만 이미 서해영과 본격적으로 시작 해보기로 한 거 더 참을 필요가 없었던 게지.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참 좋았어. 근데...
...
...근데... 문제는... 그게... 어... 음... 그게... 반응을 안 했던 거다.
...그거 있잖은가, 그거... 그게 반응을 안 한 거지.
...안 믿기는가? 처음엔 필자도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렇겠더라.
전날 밤 그것도 저녁쯤(박훈이 밥 운운한다)에 집을 뛰쳐나와 잠도 안 자고 아직 싸늘한 한밤중 내내 이리저리 떠돌다가 아침에는 운동장에서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리고 오후엔 애인 불러다가 차 끌고 태안 달려서 저녁에 조개구이 포차에 앉아 오늘 사고 한 번 쳐보자 하고 소주 두 잔 먹어 버리니 훅~하고 간 것이다. 의욕만 앞선 꼴.
게다가 키쑤도 하필 구부정하게 서서 해버리니 가뜩이나 피로한 몸에 술기운이 확 올라와 버렸을 것이다. 키쑤도 하면서 흥분하니 피도 빨리 돌고 거기서 그냥 게임 끝. 아마 키쑤하면서 알아챘을 껄.
[아. ㅆㅂ. 오늘 안 되겠는데.]
다음 장면에서 포차 앞에 포옹하고 서 있는 장면을 보라. 박도경은 이미 실신지경으로 휘청거리고 있고 서해영이 쓰러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포차 장면에서 그들의 테이블 위에 있던 소주는 겨우 한 병. 겨우 그거 먹고 간거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대리를 부르긴 했는데 그래도 포옹하면서 '반응'이 오나 안 오나 끝까지 테스트 하고 있었을 거란 점이다. 안 믿기면 그 장면을 다시 한 번 또 보시라. 서해영이 대리 불렀단 말에 황당해서 밀쳐내니까 방금 전까지 쓰러질 듯 휘청거리던 놈이 두 발로 멀쩡하게 서 있다. 주머니에 손도 넣고... 진짜 술에 떡이 되서 균형감각이 사라지면 주머니에 손도 못 넣는다.
박도경이 여자 처음 만나본 남자도 아니고 일 년 전만 해도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서해영의 은근한 제안(사실 대놓고)과 욕망을 전혀 눈치 못챌리가 있나. 그 장면을 자세히 보면 시선도 자꾸 피하고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 하는 게 역력하다.
물론 그런 애들도 있긴 하다. 저녁에 술 먹고 밤새 친구들과 피방 달리고 그 다음 날 해장국 먹고 조기축구하고 오후엔 여자친구도 불러서 같이 놀다가 좋은 시간을 보낼 정도로 체력 좋은 애들. 특히 십대나 이십대면 그런 일 충분히 가능하다.
근데 박도경은 36세다.
36세.
36세.
36세.
...근처에 삼십대 중후반 남정네 있으면 한 번 테스트 해봐라. 전날 저녁부터 굶기고 밖에 세워놓고 아침에 운동장 지칠 때까지 달리게 하고 서울에서 태안까지 달리게 한 다음 저녁에 술 먹이고 유혹해보라. 될 것 같은가? 설령 입성한다고 해도 침대에 눕자마자 코 골고 쳐 잘 껄?
결론은 안 돼... 힘들어... 고멘고멘.
하여튼 그래서 서해영의 불타는 마음을 모른 척 술 취해서 못 알아들은 척 능청 떤 거다. 진짜 몰랐으면 '여자는 모텔 같은 곳에서 자는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리가 없지. 게다가 아무 욕망도 없었으면 '좋은 곳에서 자자'라는 말을 했을리도 없고.
서해영이 아쉬움에 울상을 지었다면 아마 박도경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껄.
솔직히 이해는 된다. 자신이 끝까지 갈 각오를 품고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여자와의 첫 거사(?)인데...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전투에 임했다가 막상 칼날이 부러졌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상황 어떻게 할꺼야. 누가 책임질거야. 가뜩이나 쪽팔린 걸 싫어하는데 그 개쪽은 어쩔꺼야.
그래서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들키지 않으려고 엄한 모텔 운운하며 뭔가 있는 척, 마치 너를 아끼는 것인 척 있어 보이는 멘트를 날린 거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예측일 뿐이고 다른 분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너님 눈에 음란마귀가 잔뜩 낀 거 아냐? 우리 박도경이 그럴 리가 없어!]
...알다시피 박도경은 파혼이후 1년이나 수절하듯 굶은(?) 남자다.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도 아니고 고기 잘만 먹고 1년간 잠깐 수도원 들어가느라 참고 있었다가 속세에 다시 내려온 뒤 저잣거리에서 고기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정육점 앞을 어슬렁거리는 신부님이랄까...
옛날에 열녀가 나면 나라에서 괜히 쌩돈 들여가며 열녀문 같은 거 세워주고 그랬던 거 아니다.
모르긴 해도 서해영이랑 포옹하는 박도경의 혈액검사를 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아드렌날린 수치가 너무 높다고 의사가 엄격 근엄 진지하게 권고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다 쓰러진다고. 좀 풀고 살라고.
서해영과 박도경의 멜로씬과 격한 감정표현에 혼동하시는 분들 있는데 잊지마시라. 요거 로멘틱 코미디물이다. 코.미.디.
하여튼 박도경의 모텔 발언에 쓰라린 상처를 입은 남성분들은 더이상 아파하지 마시라. 당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당. 아, 근데 박도경처럼 잘 생기지 못했다라는게 죄가 될 수 있긴 하다.
그렇게만 생겼어봐. 모텔이 뭐야, 민박이라도 괜찮다고 할 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