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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괴물
게시물ID : panic_882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요일짖는개
추천 : 25
조회수 : 148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6/01 0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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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이전에 상중하로 나눠 올렸던 글인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아쉬운 점도 많고, 
수위 관련으로 논란된 부분이 신경쓰이기도 해서(수정 후엔 이미 베스트여서 결국 베스트란의 소설은 고치지 못함)
내용을 쪼끔 바꾸고 전체적으로 다듬어서 다시 올려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떤 얼굴인지는 결혼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나에겐 오빠가 있었다. 고 한다. 사실 기억에 없다.
내가 태어나고 2년 뒤에 병에 걸려 순식간에 죽어버렸다고 외숙모가 말해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처진 등, 푹 파진 얼굴, 툭 건드리면 바스라질 듯.


어릴적부터 조용한 성격이던 저는 아버지의 힘이 제대로 되지 못한 듯 했다.

혀를 길게 빼고 방에 목 매단 형상과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내게 있어선 아버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버지까지 없어져버린 그 날,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친척 집에 맡겨졌다. 돌아가며. 처음엔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선은 차가워졌다.
놀랍게도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친척집을 순회하며 살아갔다.
어떻게든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아보려했지만, 힘들었다. 
독립을 위해 차근차근 통장에 모은 돈은 친척들에게 야금야금 뜯겨나갔다.
어떻게든 자립하고 싶었다. 기생충이 된 기분은 끔찍하다. 그것도 혐오받는.

분명 좋은 사람은 세상에 많을텐데 내 친척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자식들이 나를 욕하고 혐오하는 것을 모두가 묵인했다. 모두가 나를 내려봤다. 차라리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게 마음이 편할 것 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겁쟁이라. 
혐오스러운 벌레처럼 그들에게 붙어있는 것 말고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찌하다보니 고등학교에 올라갔다. 실업계, 그리고 남녀공학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좋은 점은 많았다. 먼저 집에 늦게 들어가는 점. 두끼를 학교에서 해결하는 점.
공부는 재미있었다. 4년을 넘어가는 휴대폰은 통화 기능을 제외하곤 거진 제 기능을 못해냈다. 
아, 시계 기능은 충분했다.


적당히 무미건조하고 적당히 비참한 나날이었다. 



내게 친구는 없었다. 중학교 땐 외숙모의 딸과 같은 학교였는데 따돌림을 당했고...
뭐 먼저 벽을 친건 자신이었긴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여러가지 의미로. 
나는 모두 망쳐버리니까. 



다. 전부. 몽땅.





그렇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와중 왠 남자애가 말을 걸었다.




남자아이는 웃음이 보기좋은 아이였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깨끗한 피부. 
피부가 얇은지, 홍조증이 있는지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아무리 밀어내도 다시 다가와 말하고 웃으며 먹을 것을 안겨다주는 남자아이는 결국 내 벽을 점차 허물어왔다.
어째선지 내게 필사적으로 말 걸던 그 애와의 시간은 사실 무척, 무척 즐거웠다.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악질적인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날 아는 사람이 있는걸까? 아니면 남자아이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두가지 다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골적인 괴롭힘은 내 팔에 담배빵이 다섯개 생겼을 쯤엔 사라졌다.
남자아이가 정말 화가 나서 여자애들에게 경고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그 뒤로 내게 욕을 하고 침을 뱉기도 했지만 더 이상 폭력적인 행위는 없었다. 




남자아이는 점점 나를 건드리면 톡 깨질 것만 같은 유리처럼 대했다.
같은 반이든, 여자든 남자든, 선생님이든 내가 그들과 말을 했다손치면 캐물어왔다. 
무서울 때도 많았지만 구속당하는 기분이 기뻤다.
내 존재가치를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그 아이에게만은 내가 그리도 소중한 존재인 것 같아서.
내가 단 한사람에게라도 가치있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서.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나만 믿으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 아이.
2학년이 되어 골격이 꽤 튼튼해진 그가 제법 믿음직스러워 나는 웃어버렸다.



2학년 여름방학, 쬐는 듯한 더위. 부채를 내게 부쳐주며 그런 말을 하는 그에게 나는 조용히 말 건냈다.


단 한마디. 소중히. 급히 내뱉으면 바스라질 것 만 같아서.


더운 여름 날, 습한 공기. 땀을 흘리면서도 부쳐주던 부채가 멈추고.
터질듯이 붉어진 너의 얼굴. 흔들리는 눈동자. 떨리는 입술.



우리는 그 여름방학, 사귀기로 했고.








처음 느낀 것은 그가 얼마나 섬세한지. 다정한지.
그리고 곧바로 실감한 것은 더욱 커진 독점욕과 소유욕이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이리도 나를 원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사랑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사실 나는 그것만으로 족했다. 과분할만치 넘치는 사랑에 나는 만족했다.

애석하게도 그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눈 한 번 깜빡이면 훅 사라질 듯 굴었다. 점차 더 불안해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내가 사라질 것 같다고, 자신을 두고.
그렇지않다 말해도 그의 마음은 불안정해 보였다.
같은 반 남자애와 몸이 스쳐도 그는 그 부위를 털어냈다. 손이나 머리카락 같은 맨 부위는 핥고 깨물었다.
그가 무서운 한편 깊은 곳에선 짜릿했고 또 걱정이 됐다.
그래도 좋았다. 그가 날 필요로 하는 것이 기뻤다.
많은 부분을 그에게 기대었다. 맹목적인 나와 맹목적인 그 아이.
서로의 호흡마저 얽어맬 듯 한 관계.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가 힘들어 하는 것이 싫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시간은 흘러갔고 그는 여전했다.
되려 악화만 되가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친척들이 나를 두고 자리 비운 저녁. 


그는 서투르고 거칠었으며 섹스가 끝난 뒤의 내 하반신은 아릿하게 아파왔다. 
그래도 그가 기뻐보여서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내겐 사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중엔 당연히 사촌오빠들도 있었다.
그 중 큰고모의 맏이인 사촌오빠는 막 군대에서 전역한 즈음이었다. 

크리스마스, 그 저녁. 다 같이 나갔었다가 두고 온게 있어 집에 들렀었다고.
웃으며 사촌오빠는 말했다.



내가 뭘 봤게?



처음엔 억지로 당했다. 그 다음부턴 스스로 행위에 응했다.


사촌오빠가 들이민 동영상에 나는 침묵할 뿐 이었다.
그가 하자는대로, 하라는대로. 행위의 횟수가 늘어날 수록
개처럼 짖기도, 제발 해달라고 애걸하기도 했다.
사실 그 때 당시의 기억은 흐릿하다.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응.













그가 나와 하고싶어 눈치를 볼 때 나는 거절했다. 나는 그 행위가 이제 치를 떨만큼 혐오스러웠다.



소나기 온 날이었다. 갑작스런 비에 교복이 젖어 단추 잘 여맨 셔츠 벗고 넉넉한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몰랐다. 미처 몰랐다. 뒷목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리고 보고싶지도 않아서.


그가 봤다. 그 자국, 모를 리가 없는 상흔을. 
그는 분노했다. 나를 끌고 갔다. 체육복을 무자비하게 벗겼다.
나는 더이상 숨길 수 없는 몸을 완전히 드러냈다.
캐묻는 그에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까지 흘리던 그에게 난 계속 아무것도 아니라 말했고,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맞았다. 



나동그라진 내 몸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만 보는 그는 처음이었다. 평소였다면.. 
아니 평소였다면 때리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달려와 일으켜 세워줬을텐데.

두려웠다. 그의 감정이 내게서 떠나버릴까봐.
그래서 다리를 부여잡고 빌었다.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거라고.
왜냐고, 대체 왜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그저 미안하다 죄송하다 앞으로는 이러지않겠습니다 엉엉 흐느낄 뿐 이었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두려웠다. 그마저 날 부정해버리면. 그 생각만 머리에 몰아쳤다.
그래서 텅 빈 눈동자로 나를 보는 그의 눈에 순간 광채가 돌았던건, 그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올라간 건 착각이라고. 
그리 믿었다.



그 뒤로는 조용했다. 나는 순종적이었고. 그가 하자는대로 다 따랐다.
행위를 할 때면 그는 내 온 몸을 핥고 깨물고 자국을 남겼다. 피까지 났지만, 그정도야 익숙했다.

사촌오빠도 취직준비로 바쁜지, 부르는 횟수가 굉장히 적어졌다.
가끔 불려도 스스로를 능욕하며 제발 넣지 말아달라 비니 자비롭게도 당분간은 입으로만 해결할 수 있었다. 
몇개월간은 조용했다. 불안할정도로. 



취직에 연이어 실패했다고 했다.
제발 하지말아달라고 짖었지만 사촌오빠는 결국 무자비하게 제 뜻을 행했다.
여느때보다 폭력적인 행위였고, 나는 학교를 결석했다.




그가 병문안을 왔다. 나는 이불밖에서 나오려하지 않았지만, 결국 들켰다. 
그는 찬찬히 초라한 내 몸을 훑어봤다.
소리치지않고, 욕하지도 때리지도 않고 그는 두려움에 떠는 나를 둔 채 조용히 떠났다.


이 자국은 뭐냐고 묻지도 않은 채 그가 가버렸다.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다음 날. 아직 괴로운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다.
그에게 용서빌기 위해서. 


교실에서 마주친 그는 평온해보였다. 평소와 다를바 없이 나를 대했다.
나는 두려웠고 불안했지만 여전히 그가 나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어 영문도 모른 채 안심했다.
강간인걸 알아버린걸까? 내가 더럽지 않은걸까? 날 배려해주는 걸까?
그는 착하니까. 정말 다정했으니까. 그리 지레짐작하고 나는 조용히 그 일을 묻었다.
우리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했다.



그 뒤로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다정하고 헌신적인 그와 있으면 즐거웠다.
사촌오빠가 나를 가끔 부르는 일 말고는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

사실 잘 모르겠다. 이미 예전부터 난 제정신은 아니었으니까.








어느 날, 항상 아교처럼 붙어 같이 하교하던 그가 들릴데가 있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별일이었지만 그래, 하며 혼자서 집을 향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처음보는 남자들에게 끌려갔다.




그 다음은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다.










흐릿한 정신에 남자들의 목소리가 끊기듯이 들려왔다.


** 존나 ***데
그건 **고 지 여친* 강*하**새*는 뭐* 씨*


내 뒤에 있던 남자가 말리는 듯 했지만


내 앞에 선 남자는 낄낄 대며 무슨 상관이냐고 욕해댔다.


그들이 몇명이었지? 그것조차 기억나지않는다.


몇명이나 내 몸을 거쳐간지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채,
흔들리는 뿌연 시야와 낄낄거리는 목소리를 뒤로 하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 떠보니

그가 울고 있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진 나를 부여잡고.
내가 사랑했던 목소리와 눈동자가 정처없이 흔들리며....


정말 슬퍼하는 듯 보였고, 그것은 기만된 사실일터다.
내재된 추악한 열망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몸서리치도록.




나는 대체 그의 어떤 모습을 바라봤던걸까?
밝고 힘차고 나를 사랑해주던, 나를 소유하고 싶어하던...
무서울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뒤틀린 사람은 아니었는데.
기쁘면 기쁘다 웃고 슬프면 슬프다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던 사람.
그랬던 그가 왜 지금은 이렇게 비틀려있는걸까...?


너는 내 빛이었는데.
왜 네가 나를 진창으로 밀어넣은거니?
어둡고 어두운 구렁텅이, 바스라진 정신 부여잡으며
다만 나는 거짓된 이를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고개 품은 그가 눈물과 웃음을 함께 흩뿌리는 것을 느끼며.




아주 조용히 비가 내렸다.















+





그녀는 영혼없는 껍데기만 같았다.
창백하게 하얀 피부, 꼬리 올라간 눈매, 옅은 분홍의 입술. 
언제나와 같이 비현실적인 미모에 언제나와 달리 더 생기없는 모습.
톡 치면 그대로 바스라져 눈 앞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그녀.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녀. 원망스럽고 사랑스러운 그녀.
그래도 이젠 달랐다. 온통 상처받은 그녀는 이제 나만을 따른다.
이제 내게만, 오직 나에게만 의지하는 그녀의 모습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의 쾌감을 선사했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불쌍하고 가련하고 비참한 당신.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내가 다 감싸안아 치유해줄테니.
어디에도 가지 못하도록 내 흔적 다 남겨줄테니까.




'그 일' 일어난 지 이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표정과 눈동자로 그녀가 말했다.
실은 사촌오빠에게 억지로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하지못해 미안하다, 니가 나를 더럽다할까 두려웠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 조아리는 너를 감싸안고 괜찮다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사촌오빠가 미워서 미칠 것만 같다고,
그 사람을 죽이지않는다면 내가 먼저 죽어버릴 것만 같다고.



부탁이야.
날 위해서 죽여줘.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눈동자에 깃든 불투명한 빛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아주며 나는 알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뻐하며 말했다.
나의 아이를 가졌노라하고.








+




'그 일' 일어난 밤,


비척비척 그가 데려다 준 집에 들어갔다.
아, 그러고보니 지금은 큰고모네 집에 살고 있었구나.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어 그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요즘 학교에 잘 갔었는지, 어떤 수업을 했는지도 흐릿했다.
나는 정녕 미쳐버린 것일까. 모르겠다.



늦은 밤이었기에 잠 깨우지않도록 조심스레 발걸음 했다.
큰고모 부부의 방에 불이 켜져있는 것이 문틈사이로 보였다.
듣고싶지 않아도 고요한 밤,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미 기진맥진하여 그냥 지나치려했지만 내 이름이 들린 이상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들려온 내용에 나는 납득했다.
























그 날 이후 나는 안 그래도 없던 입맛이 최악으로 치달은 것을 느꼈다.
음식의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났다. 
삼킬 수 있는 것이라곤 흰 죽과 물, 부드러운 과일 정도였다.
사실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래서 방치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임신한 것을 깨달았다.
콘돔, 피임약, 시기, 정황.
확신은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이 아기의 아빠가 누군지는 어림짐작이 가능했다.
기어이, 기어이 내 배에 제 증거를 새겨넣었다. 지긋지긋한 집착. 사랑. 소유욕.
미안하다 아가. 나는 널 사랑할 수 없단다.
니 존재에 순수히 기뻐할 수 없는 나를 용서마렴.
다른 용도로 너를 생각하는 나를 부디 용서마렴.



나는 계획을 정립했다.



















그에게 사촌오빠를 죽여달라했다.
그는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나는 임신사실을 알렸다.
그는 기뻐했다.
나는 내년, 졸업식이 끝난 뒤 결혼하자했다.
그는 더욱 기뻐했다.
그는 무척 기뻐했다.
나는 그것이 흡족했다.












사촌오빠가 실종된지 하루가 지났다.
원체 외박이 잦았던지라 아직 친척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듯 했다.



친척들에게 임신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3학년을 보내고 내년에 결혼하겠다고. 소개를 하고 싶다 했다.
다들 무척 놀라했지만 기뻐하는 것이 보였다. 뻔하기 그지없어 웃음만 나왔다.
그들의 눈에 내 웃음은 사랑에 빠져 철없고 무모한 이의 행복이겠지.
아무렴 상관없었다. 
아직 혼란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와 함께 인사를 드리려 한다. 지금까지 신세를 많이 졌으니 꼭 소개드리고싶다. 
언제쯤이 다들 괜찮은지 묻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바로 그 주 주말 점심 즈음에 항상 모이던 큰고모의 집에 모두 모이기로 했다.
너무나도 쉬워서 웃음만 나왔다. 
처음부터 이리 했음 됐을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

그 당연한 사실.














시간은 빨랐고 그 날은 금새 다가왔다. 당일날 아침 가슴이 떨려왔다.
드디어. 드디어 끝난다.



시간이 다 되어가 거의 모든 친척들이 다 도착했다.
모두와 인사하고 아침부터 준비한 음식을 부지런히 나르다보니, 드디어 그가 왔다.
검은 정장에 과일바구니를 들고온 그는 딱딱히 굳어있었다.
긴장함이 여실한 모습에 친척들이 바람빠지는 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힘 좀 풀라고 말을 걸었지만
힘차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편안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소개를 했다. 열심히. 우렁차게. 
내가 봐도 참 성실하고 착해보였다.
실제로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그를 망친 것이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조용히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10층. 충분하다.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난간에 올라 앉았다.
두손으로 차가운 금속을 부여잡고 툭 하면 떨어질만치 앉았다.
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날렸고, 하얀 치맛자락이 무릎을 살랑 살랑 스쳤다.






처음부터 이리 했어야했다.

처음부터 나는 모든 것을 망쳐왔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오빠.



'그 일' 일어난 밤, 나는 들었다.
내가 소름끼친다고. 아무런 표정도 없고 감정표현도 없고, 주변 사람들은 다 죽어나간다고.
내가 무섭다고. 싫다고. 인간같지가 않다고.



나는 납득했다.
나는 많은 것을 망가뜨렸다.
가족의 생명을,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며 기생충처럼 다른 이를 빨아먹는 삶이었다.
그리고 밝게 빛나던 그마저 내가 망쳐버렸지.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랑하던 그는 없다.
거짓감정에 점철되어 스스로를 기만하는 미치광이만이 남아있을 뿐.


내가 다 죽인 것이다. 가족도, 그도 전부.
모조리 남기지 않고, 탐욕스레 입벌려 그들을 와작와작 씹어 삼켰다.
나는 다시 마음깊이 납득했다.




나는 괴물이다.







 













+










그녀, 이유리는 금방이라도 죽을 듯 했다.
난간에 걸터앉아, 창백한 피부에 순백의 원피스. 흩날리는 흑발. 미소지은 입술.
놀라울정도로 아름다운 소녀는 하늘을 배경삼아 까르르 웃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리고 너무 간단히도 저지되었다.





" 베란다를 넘어오면 당장 떨어질거에요. "



" 유리야...!!! "





혼란에 빠져 그녀의 이름을 외치는 그, 강태현은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주변인들과 같이 멈춰 섰다.





" 왜....? "




그리 묻는 그에게 유리는 선뜻 대답했다.




" 이게 당연한 거야. 난 괴물이니까. "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누군가 말을 하려 했지만 유리는 말을 이어나갔다.




" 난 내 가족을 죽였지. 친척들에게 빌붙어 살았지. 기생충처럼. 
 그리고 또 널 망친거야 태현아. 왜냐면 난 괴물이니까! 그래, 맞아! "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걸로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동자엔 생기가 가득했다.






" 맞아. 세준오빠도 내가 망친거야! 그래서 오빠가 날 강간한거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바로 이 집에서! 내가 그를 미치게 한거야! 그래! 내가 다 망쳤어! "





쩡하니 얼어있던 분위기가 다시, 더욱 혼란에 빠져갔다.

누군가 움직이려 했지만 그녀가 팔 하나를 난간에서 놓아 제 가슴에 댄 것에 기겁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 맞아요 큰고모! 그 말이 맞아요! 전 인간이 아니에요! 
 저 그날 밤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구요! 감사해요! 드디어, 드디어 알게 된거에요!
 제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





이내 웃음 터뜨린다. 맑고 청명한 웃음소리가 조용한 하늘에 울려퍼졌다.






" 근데 이제 그거 안 궁금해요? 과연 제 뱃속에 누구의 아이가 있는지. 
  하하, 태현아. 내가 그 때 말했지. 세준오빠와 할 때 항상 콘돔을 꼈었다고.
  ....한달 쯤 전인가? 그 땐 콘돔 안꼈었다? 그리고....정작 세준오빠는 어딨게요?"




눈을 희번득 빛내며 그녀가 말했다.




" 누굴까? 누가 세준오빨 죽였을까? 늦은 밤 길 가는 세준오빠를 뒤에서 내려친건 누구라고 생각해요? 
  산으로 끌고가 토막토막 내서 묻은 건 누굴까? 응? 태현아. "










활짝, 유리는 웃음을 만면에 피워냈다.







" 니가 죽인 세준오빠. 그리고 니가 니 아이라 알고있는
 이 뱃속의 아이는 누구 애라고 생각하니? 정말 궁금하지? "








유리가 다시 두손으로 난간을 잡았다.










" 안 가르쳐줄 거지만. "











그리고 두손을 완전히 놓았다.









 











+






사랑했던 사람은 내가 다 씹어 없앴다.
이제 내겐 다 없었다. 뒤늦게 알아챈 아기조차 그 존재가 되진 못했다.
다만 나는 죽고싶었다.
바스라진 정신, 아무리 다시 조립하려해도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미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사고방식은 뒤틀렸다.
상반되고 모순된 감정과 생각이 서로 부딪치고 섞여갔다.
하루의 기억도 드문드문 끊겨 기억했고 숨쉬는 것도 잊을 때가 있었다.
걷는 것, 숨쉬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어느 하나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인간이긴 한걸까? 
인간이고 싶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괴물이 되지않았을텐데. 
나는 괴물이다. 그렇지만 나를 그리 만든건 그였다.




사랑했던 그. 사라져버린 그. 내가 죽여버린 그. 
이젠 껍데기만 같은 그만이 남아있다.










나는 몸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급하게 시야에 담긴 그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나? 모르겠다.


아무도 보지못할 말을 소리없이 속삭였다.











안녕.



















































퍼석,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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