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언론사랑) Satire Night Live (스압)
게시물ID : readers_253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빨간냄비
추천 : 1
조회수 : 9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31 17:48:54
옵션
  • 창작글

무대.
FD(FloorDirector)

(보조조명들이 빛을 발하는 무대.
관객석에도 그 희미한 빛이 비친다. 관객들이 내는 사소한 웅성거림들.
이내 검은색 정장을 입은 왜소한 체격의 한 사내가 무대에 등장하자 주위는 조용해진다.
그는 커다란 피에로 가면을 쓰고 있다.
그 웃는 얼굴의 한쪽에 걸친 헤드셋을 통해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
 
FD
(떨리는 목소리로) 아..아.. 마이크테스트 원첵 원첵.. 휴우... 습습후후~
아 아 ~ 아.. 안녕하시렵니까?
(정적)
아 이게 아닌가.. 원래 웃기면서 시작하는 거라던데... 

(FD의 피에로 가면이 희번덕거리며 정면을 바라보다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거어기, 그쪽 뒤에 흰 티셔츠 입은 여자분!
그래요 거기 당신! 좀 웃어요. 안 그럼 나같은 가면 씌운다?
(발작적인 웃음소리들)
그래요, 이제야 좀 낫네. 역시 21세기 유머는 이래야 돼.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FD입니다.
FD가 뭔지 아시죠 여러분?
(관객석의 누군가가 ‘플로우디렉터!’라고 외친다)
그래요 오우 예~똑똑하시네.
난 그냥 연예인 되려고 이거 하는 건데?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들)
하하하, 네, 저 플로어디렉터 맞습니다.
앞으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제가 여러분을 안내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을 잘 들으셔야 돼요?
(건성으로 네 하는 응답 소리들)

그래요! 자아..
여러분 이 좋은 날씨에, 이 컴컴한 곳까지
무슨 볼일이 있다고 찾아오신 건가요?
(또한번 관객석을 둘러본다)
(지목을 피하려는 듯한 켁켁대는 웃음소리들)
그래요 네네.. 이해합니다 케케켁. 역시 자유분방한 21세기에요 그죠..?
네? 아.. 여기 온 이유가 있다구요?
그래요.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아! 아녜요. 물론 제 얘기는 아닙니다.
이제부터 가면을 벗은 세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 주어진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네 그 뭐 그런...
어쨌든 여러분들은 박수만 잘 치시면 됩니다!
지금이요 지금! 이렇게 타이밍 못 맞춰서 연애들 하겠어?
(박수소리)
그래요. 좋습니다. 앞으로도 제 지시를 잘 믿고 따라오셔야 돼요?
절 믿으세요.
자,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
(빛이라곤 없이 껌껌해진 무대)
 
 
 
1막

공장
팡틴. 감독관. pc노동자들. 윤전기노동자들.
 

(쿵 쾅 하는 기계소리.
그에 뒤이어 어떤 남성의 고함치는 소리. 채찍소리. 남성들의 씩씩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감독관
찍어! 더 찍어! 더 빠르게!
(쿵 쾅)
퍼 담아서, 날라라!!
(묵직한 기계음들, 남성들의 씩씩대는 소리들)
 
남성노동자들
고개 숙여! 고개 숙여! 절대 그를 쳐다보지 마라!
 
감독관
저쪽에서 한 연예인이 애인과 찍은 사진을 올려놨다!
(쿵 쾅)
퍼 담아서, 날라라!
 
남성노동자들
고개 숙여! 고개 숙여! 절대 그를 쳐다보지 마라!
 
감독관
찍어! 더 찍어! 더 빠르게!
(쿵 쾅)
 
윤전기노동자1
감독관님! 감독관님!
 
감독관
왜 그러나?
 
윤전기노동자1
오후에 반차를 써야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전 이십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딸아이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이 오늘은 저밖엔 없어요!
 
감독관
그래? 좋다.
..오후부터 계속 쉬어라! 돌아오지 마! 이곳은 잊어버려! 나도 잊어라!
찍어! 더 찍어! 더 빠르게!
우리는 24시간 쉬지 않는다!
 
윤전기노동자1
그럴 리가요!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건 원래 제 얘기...
 
감독관
시끄럽다! 난 네같이 머리 긴 놈 얘기 따윈 궁금하지 않아!
(쿵 쾅)
팡틴을 대령해라!
 
윤전기노동자1
(군화들의 발자국소리)
안돼 이거 놔! 이건 아니야~
(고함소리 점점 멀어진다)
 
남성노동자들
고개 숙여! 고개 숙여! 절대 그를 쳐다보지 마라!
 
(앞쪽부터 조금씩 밝아지는 무대)
(십수명의 넝마들이 관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 있다. 침통한 표정들.
무대 뒤쪽에 간헐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쉼없이 돌아가는 커다란 윤전기와
그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그 앞쪽으로 pc모니터와 마우스가 줄줄이 달린 긴 작업대와
그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무대 오른쪽 위로는 가운데가 꺾인 긴 계단이 딸린 작은 사무실이 무대편의상
높다란 이동식 카트 형태로 설치되어 있고, 누군가 거기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관현악곡이 울려퍼진다)
 
합창
이 하루가 끝나면 또 하루씩 늙어가겠지
가난한 우리들이 아는 건 이것뿐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여 누구도 이기지 못해
이 마감이 끝나면 또 하루씩 추워져
이 안에 있다고 피할 순 없어
우리도 언제 먹잇감이 될 지 몰라
죽음의 추위가 사방으로 퍼져가네
우리들의 차례는 언제일까
 
(완전히 밝아진 무대. 세 줄의 pc작업대 맨 뒷줄 가운데에,
혼자서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작업하고 있는 한 늘씬한 여성이 보인다)
 
합창
이 하루가 끝나고 집에 가도 소셜네트워크는 따라오네
출근해서 보면 폭탄은 다 터진 뒤야
그들은 게걸스럽게 시체들을 먹어치우지
이 배고픔은 끝나지 않아
우리들도 언젠가 아귀지옥에 가겠지, 이 마감이 끝나면
 
감독관
이 마감이 끝나도 대박내지 못하면 돈은 없다!
지옥을 걱정하기보다 인턴에서 벗어날 궁리를 해야지!?
 
(사무실에서 그들에게 고함치는 감독관에게로 핀 조명 떨어진다.
툭 튀어나온 배 위로 해군의 외출복을 연상케 하는 짙은 파란색 정장을
간신히 껴입은 그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내려오면서 핀조명 꺼진다)
 
(넝마들은 합창을 끝내고 자신들의 작업위치로 돌아간다.
일사불란하게 키보드를 누르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pc노동자들.
수다도 쉬지 않는다)
 
(윤전기의 쿵 쾅 하는 소리)

pc노동자1
저 도도한 자태를 보라지. 불뚝 나온 배만큼 거기도 튀어나왔을까? 누구 확인해 볼 사람?
(큭큭대는 노동자들)
 
pc노동자2
소문 못 들었어? 저번에 승진한 고년 말야.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친구가 물었더니 글쎄,
너도 감독관이 오피스텔에 같이 가자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서 시키는 대로 다 하라 그러더래~
 
pc노동자들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세상에~
 
pc노동자3
내가 더 정확한 얘길 알고 있지.
혹시 로또맞아서 거기 가게 되면, 모두들 잘 들어.
일단 시장에 가서, 알지? 방울 두 개 달린 속옷상표 그거.
그거랑 비슷한 짝퉁팬티를 파란색으로 10장씩 묶음으로 사. 꼭 짝퉁이어야만 해!
그걸 갖고 거기 가서, 그 파아~란색 짝퉁 팬티를 입은
그의 엉덩이를 10대씩 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pc노동자들
끄아악~! 그건 또 무슨 취향이래!
너무 더럽다 얘 짜증나~
야 뭐 어때. 나라면 하겠다. 인턴생활 지겹지도 않아?
사장이 같이 올 때도 있대!
에엑~? 사장님이?
2대1인가?
 
팡틴
(작업하다 말고 고개를 홱 들며)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의 사장님은 그렇지 않아!
 
pc노동자들
...팡틴? 어머어머 얘 봐 왜 이래 갑자기. 너 혹시 사장님 낙하산이뉘~?
얘 오늘 퍼런색 옷 입고 온 거 봐. 끼부리는 거니? 헐 대박~
이제 보니 너 엉덩이 잘 때리게 생겼다 얘~
 
팡틴
뭐어~? 이것들이 정말!!
 
감독관
왜 이리 시끄러워?

(마침내 작업대 앞까지 다다른 감독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일순간 조용해진 무대. pc노동자들은 아예 양 옆으로 갈라져
맨 뒷 줄 가운데에 선 팡틴과 감독관이 마주보게 만든다)
 
감독관
팡틴 인턴, 지금 당장 사무실로 올라오도록!
헉 헉...

(감독관은 땀을 닦은 후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다시 둔중한 발걸음을 옮긴다)
 
(모든 노동자들의 시선이 팡틴에게로 향한다.
곧 모든 조명 꺼지고 팡틴에게만 핀조명 비춰진다)

(팡틴은 천천히 무대 앞으로 나선다.
뽀얀 피부의 미모가 그제서야 또렷이 드러난다)
 
 팡틴
(무대 중앙으로 다가서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일은 안 하고 시끄럽게 했다고 꾸짖는 걸까.
꾸지람 듣는 걸로만 끝나면 좋겠는데.
인턴 합격했다고 산 이 옷들, 아직 할부 남았단 말야.
월세도 내야 하고.
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잖아. 괜찮을 거야.
...설마, 같이 어디 가자고 부르는 걸까?
아까 그 소문이 사실인 건가?

(무대 중앙에 서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팔꿈치를 허리에 갖다대며)
소문을 퍼나르는 사람이 소문을 두려워하다니.
진짠지는 알 수 없는 거잖아. 신경쓰지 말자.
(팡틴, 계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이제 겨우 계단의 반쯤 올라왔던 뚱보 감독관의 모습이
팡틴을 따라오던 핀라이트조명 언저리에 비친다.
그가 그것을 눈치채고 뒤뚱대며 황급히 사무실로 올라가는 동안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팡틴, 계단의 꺾인 중간 부분까지 올라간 후
관객석을 본다. 음악이 계속 울려퍼진다)
 
팡틴
난 꿈을 꾸었네.
세상의 모든 정의가 온전해지는 꿈을.
그 꿈 안에선 언제나 영웅이 악당을 무찔렀지.
붉은 망토를 등에 달고 골목을 뛰는 멍청한 남자애들을 봐.
그의 옷깃에 달린 뱃지 하나면 악당들이
호랑이를 본 원숭이들마냥 고개를 떨구는걸.

의심따윈 없었던 소녀는 봄처럼 건강하게 자라나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었고,
 
합창
힘차게 ‘좋아요’를 클릭했지.

팡틴
그에게서 정의의 뱃지를 받아들었던 날을 기억해.
삶이여 제발 이대로 멈추기를.
하지만 호랑이는 그 이후로 만날 수 없었네.
영원을 약속하는 악수를 끝으로 그는 시련만 남겨두고 떠났어.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공장과 저 감독관을 봐.
여기선 뱃지도 못 달게 해. 나의 봄은 끝난 것일까?
 
합창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지

팡틴 
그가, 사장님이 날 시험하고 있어.
난 이 시련을 이겨낼 거야.
정의만이 가득한 봄을 함께 맞이할 거야.
 
 합창
파란 짝퉁팬티를 사다 줄 거야

팡틴
(무대를 내려다보며 발끈한다)
아니야! 에러에러!
난 그에게 가서 말하겠어. 내가 꿈꾸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우린 망토 매고 뛰어댕기는 애들이 아닌 어른이니까!
진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미션을 달라고 할 거야!
(팡틴, 관객석 너머를 보며 허공을 향해
45도 각도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 후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사무실로 향한다)

(그리고 암전)
 
(끼이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 그 후 쾅 하고 닫히는 소리)
 
(쿵 쾅)
 

FD
박수, 박수우우우~!
 
 
 
 
2막

편의점
병태. 어버이. 커플 한 쌍. 경찰관. 교대자
 
 
(끼이익 쿵 하고 문 닫는 소리)
 
교대자
(젊은 여성 목소리)
병태야 나 간다. 수고해~!
 
병태
네 잘 가요~!
..아참! 혹시 오늘 사장님 봤어요?
 
교대자
아니. 왜 뭐 할 말 있어?
 
병태
아, 아녜요. 전화로 하면 되죠 뭐.
 
교대자
그래~
 
병태
네에~
 
(딸랑딸랑, 가게 문에 흔히 걸린 종소리가 난다) 
 
(무대 조금씩 밝아진다)
(한가운데에 긴 탁자로 된 덧문을 중심으로 편의점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다.
위에 놓인 책과 스마트폰. 뒤로는 담배 모형들, 천장에는 cctv카메라.
카운터 계산기 앞에 병태라 불린 한 남자가 서 있다.
FD만큼 왜소한 체격에 구부정하기까지 한 몸에
유니폼조끼, 무릎 나온 청바지에 실밥 터진 운동화를 신은 병태,
흘러내리는 뿔테안경을 고쳐쓰면서 물품들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있다)
 
병태
어디 보자 이건 여기 저건 저기... 요건 일단 저쪽으로 던져놓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큰 것들은 크게 작은 것들은 작게, 그러나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이런 잡일을 하면서 이렇게 멋진 말들을 곁들이다니,
나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하아~
ㅋㅋㅋㅋㅋ 아~이고오~, 배야!?
(정적)
흠흠.. 이제 웬만큼 정리된 것 같으니 책이나 좀 읽어볼까.
(카운터 한켠에 놓여있던, 책갈피가 꽃힌 제법 두꺼운 책을 꺼내드는 병태.
선 채로 책을 낭독한다. 청아한 목소리다)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했고 책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선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뜸 들인 후) 높은 곳에서 새벽의 M시를 내려다본다면, 형광등의 창백한 빛으로 둘러싸인
편의점은 네모난 모양의 부표처럼 보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
(책을 뒤적거리며) 느낌 좋은걸? 어디보자 제목이..산책자의 행복? 조해진?
 
(순간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병태는 재빨리 책을 카운터 밑으로 던져놓는다.)
 
병태
어서오세요!
 
(팔짱을 낀 정장차림의 선남선녀 커플 한 쌍이 무대에 등장해 한쪽 끝으로 걸어가다
병태 쪽을 바라보며 자신들끼리 속삭인다)
 
커플녀
(속삭이듯 다 들리게)
어머 저 사람 봐 디게 웃기게 생겼다~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관객석을 바라보는 병태)
 
커플남
(속삭이듯 다 들리게)
조용히 해 다 들려. 여기 야간직원은 맨날 바뀐단 말야.
저 사람이 그나마 오래 하는 거라고. 난 여기 단골이잖아. 상처주지 마.
 
커플녀
에이 알았어, 난 들리는 줄 몰랐지.  
 
(커플이 텅 빈 무대 한 쪽 끝으로 다가가 이것저것 뭔가를 고르다
이내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
병태는 무심하게 카운터에 스캐너를 댄다. 삑삑 소리가 난다)
 
커플남
충격면하고 경악면 1+1 맞죠?
 
병태
아.. 죄송한데 그 행사는 저번 주에 끝났는데요.
 
커플남
어? 그래요?
 
커플녀
에이 오빠 또 에러에러. 딴 데 가자.
 
커플남
아냐 잠깐만.. 아죠씨 제 얼굴 아시죠? 여기 진짜 자주 왔었는데..
글고 이거 저번에도 계속 그렇게 사 갔던 건데, 어떻게 안 돼요?
 
병태
(가볍게 웃으며) 편의점은 원래 그런 게 안 돼요.
 
커플남
그래요? 아이 그래도 그러지 말고 좀...
오늘 여친이랑 충악면 끼리묵어야 한단 말예요.
 
병태
(애써 무표정으로) 안녕히 가세요.
 
커플녀
(남자를 잡아끌며) 오빠 그냥 가자~
 
커플남
알았어 알았어. (끌려나가며) 아이 자식 생긴 거처럼 센스없네 c8
 
(딸랑딸랑)
 
병태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늉을 하며)
휘유... 또 사건의 진상 하나가 사라지는구나.
그래, 아까 그놈 말이 맞아. 여기 야간직원들 자주 바뀌었대드라.
(돌아나오며 매대를 정리하는 시늉 후 카운터로 돌아온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보니, 그 원인엔 남녀노소 구분이 없더라고. 후우아~
(한숨쉬며 던져놓았던 책을 다시 집으려다 관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한동안 화면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스마트폰도 내려놓는다)
없네, 없어. 답장이, 없어.
(텅 빈 눈으로 무대를 둘러본다)
여기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있는데 나한텐 답장 하나가 없구나.
저길 보라지. 그래 너거들이 좋아하는 충격, 경악. 알고보니..평범? ㅎㅎ.
꿀벅지. 하의실종. 그래 이건 좀 관심이 가네.
(카운터 덧문을 열고 나가려다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관두자. 그 건너편엔
뇌섹남, 요섹남.. 뭐야 이건? 아우, 저쪽은 더 가관이네. 죄다
종북종북 핵핵핵핵.. 저쪽은 일년내내 1+1이야. 자전거를 준 적도 있었다지?

(다시 여기저길 둘러보던 병태,
관객석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시선이 딱 멈춰선다)
아.. 안녕하시렵니까? 아냐 이건 아까 안 먹혔잖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서 오신 기사들이신가요. 나이트를 밝히는 나이트들이라..
네? 맞춰보라구요? 어디 보자.. 이거 다들 자유분방하셔서 키워드를 뽑아낼 수 없겠는데요?
(속삭이듯 다 들리게) 연체동물 두족류 오징엇과가 많은 걸 보니 방울 두 개 달린
그곳..에서 왔냐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야 없지.
네? 아.. 아녜요. 아무 얘기도 안 했습니다. 하하! 방가방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에 그러니까 그것이.. 네, 병태입니다.
아마 당신들께선 오늘도 절 본 적이 있었을 겁니다. 거스름돈 쥐어주던 그 사람,
바빠 죽겠는데 카운터 너머로 외쳐봐도 보이지 않던 그 사람,
생수 한 병 사는데 적립카드 어쩌구 하는 질문만 세 개씩 해 대던 그 사람, 네, 접니다.
당신 지폐에까지 높임말 붙여주던 친절한 그 사람이었냐구요?
아뇨, 전 그렇게까진 안 하십니다. 전 그래도 국어를 배운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배우신 분이 왜 이 늦은 밤에 여기서 이러고 있냐구요?
(꼬아보며) ..그 질문이 겁나 무례한 질문이란 거 알고 하신 거죠?
(몸을 풀며) ..다들 궁금했지만 참았던 질문인가 보군요. 음.. 왜일까요.
고상한 햇빛 속 낮에 가려졌던 인간존재의 비열함을 체험하기 위해서..라고 해 둘까요?
..마음에 안 드나 보군요. 좋습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 밤은 저의 것이니까요.
새벽시간에 이렇게 깨어있으면 잠들어있던 환각들도 같이 깨어납니다.
그 모든 게 다 제 것이죠.
십수년 전에 있었던 사소했던 어떤 기억들이 생생하게 제 앞에 펼쳐집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 가게를 지키는 겁니다.
물론 저는 당신들도 환각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상관없어요! 이렇게 제 얘기 들어줄 분들이 있으니 심심하진 않겠군요.
장사가 그렇게 안 되냐구요? 천만에! 유흥가 바로 앞이라 좀 전까지도 엄~청 바빴다구요.
다들 아시잖아요.
(소주잔 꺾는 시늉 후 가상의 매대들을 가리키며)
술, 그 옆에 술, 그 옆에 또 술, 술안주,
취한 놈들이 꼭 찾는 아이스크림, 술 깨는 약...
취했으니 잠 깬다고 찾는 캔커피...
 
아 저기 보세요 저거. 요즘에 나온 건데 저게 잠 깨는 데 그렇게 좋아요.
저도 알람이 울리자마자 이불을 걷어차면서 저걸 한 병씩 마십니다.
발칵! 멘붕.. 트모그룹의 샤샤샤S양, 아이돌 으르렁K군과 이럴수가...?
으아니 이것들이!!
(무대에서 군인목소리 몇이 ‘감히 우리의 샤샤샤를 모욕하다니!' 하고 외치는 소리 들려온다)

(병태, 눈을 크게 뜨며)
아아! 아침이로구나!!
수탉은 꼬끼오대고 햇빛은 살랑거리는 아침,
우리들은 연예인 기사를 마시며 똥을 싼다!
쾌변의 아침이어라!!
(기마자세 후 곧추어서며)
자 이제 힘차게 일터로 향하자. 오늘은 누가 누굴 괴롭히게 될까.
멱살잡는 일이 없으면 제대로 된 하루가 아니지.
오늘도 세상은 평화롭구나!
물론 전 밤에 일하니까 해가 질 때 쯤에야 깹니다만,
그런 디테일쯤은 무시합시다! 우리는 기사님들의 박력을 본받아야 돼요!
 
그렇게 일한 지 이제 석 달째가 되어가네요.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월급이 밀린 적은 없었습니다.
지난 달엔 박력있게 좋아하는 책 몇 권도 주문했거든요.
(잠시 침묵. 아까 그 두꺼운 책을 매만지며
관객들을 바라본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이 가게는 자영업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며칠전 새벽이었습니다.
전 집게발과 비닐봉지를 들고 가게 앞으로 나갔습니다.
청소를 하려고요.
근데 어떤 사람이 길 건너편에 고꾸라져 있는 겁니다.
또 술취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저는 말없이 가게 앞에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멀쩡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얘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핏발 선 목소리로) '언론자유 수호! 복직 때까지 투쟁!'
(본래 목소리로) 저는 계속 쓰레기들을 주워담았습니다.
(핏발 선 목소리로) ‘저 불빛 환하게 밝힌 놈들이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놨어.
언론자유, 수호! 복직 때까지, 투쟁!'

(본래 목소리로) 저는 말없이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불빛이 환하게 켜져있는 이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말한 곳은 요 옆 건물 10층의 변호사 사무실일 겁니다.
설마 여기겠어요...?
(뒷목을 긁으며)
하지만 원래.. 모든 일이 그렇지 않던가요?

...왜 여기서 일하는 거냐구요?
아까도 얘기드렸잖아요.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힌 후 눈을 반쯤 감은 채 코를 킁킁대며)
밤에 피는 인간존재의 비열함이란 꽃향기를 맡기 위해서라고나 할까요. 킁킁.
(속삭이듯이) 책을 너무 많이 긁어서 가불해야 될 판이란 말야...
(다시 곧추서며) 아.. 아닙니다! 하하.
제가, 일을 꽤 잘 하는 편이랍니다.
사장님도 어찌나 절 믿는지 밤에는 본 적이 없어요.
...못 믿겠다구요? 진짜라니깐요?
 
어버이
(무대 한쪽에서 어느 술취한 늙은 남자의 노래소리 들려온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병태
저~기 한 명 오는군요. 제 솜씨를 보여드리죠.
여러분들은 걱정 마시고 구경이나 잘 하시면 돼요~
 
어버이
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고향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출입문 종소리 난다. 딸랑딸랑.)

(군복을 입고 원통형 가방을 등에 맨 노년의 남성, 비틀거리며 무대에 등장한다.
병태보다 살짝 더 큰 체구다)
 
어버이
전우여 내 나라는~
(병태와 눈 마주친다)
 
병태
어서오세용~
 
어버이
(비틀거리며 멈춰선 채 트름을 거나하게 한 번 내뱉은 후,
멜빵주머니에서 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병태
(당황한 목소리로)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 돼요!
 
어버이
(흥 하고는 라이터까지 꺼낸다)
 
병태
쓰읍!
 
어버이
(병태를 빤히 보며 라이터에 불을 붙여 담배에 가까이 가져간다)
 
병태
(오른팔을 흔들며 반동자세로, 긴박한 목소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으을 건다~!
 
어버이
(잠시 쳐다보다 라이터를 집어넣는다)
그래 아라쓰.. 오케이...
 
(병태, 카운터에 기대 몸을 숙이며 한숨을 내뱉는다)
 
어버이
어이! 여 종핵드링크 어딨능교?
(병태, 몸 숙인 채 손가락으로 무대 오른쪽을 가리킨다.
어버이가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시자
눈치챈 병태 몸을 곧추세우고
주차안내원처럼 한쪽을 가리킨다.
어버이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뱉고는
비틀거리며 그쪽으로 향한다)
어이! 와 이거밖에 없노?
아이 이거 오늘 가서 다 노나줘야 된단 마시~
 
병태
(피곤해진 목소리로)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어버이
박스 있는데로 다 갖고 와 봐라!
마 어뜨케 그 중한 것을 요만큼바끼 안 갖다놨노?
종북핵핵 이거 하나씩 마셔줘야 된다 말야~
 
병태
(병태 귀찮음을 애써 숨기며 카운터를 나와
왼쪽 끝에서 박스 몇 개를 양손에 담아오는 시늉을 한다)
 
어버이
저 저거 일하는 꼬라지 좀 보소 저거
(병태 쪽으로 다가가 무언갈 낚아채려 한다)
 
병태
계산 먼저 하시구요.
 
어버이
뭬~야?
 니가 그러니까 알바나 하고 있지 c8 못난 새끼!
으른이 왔으면 유도리 있게, 어?
요즘 군대는 그런 것도 안 가르쳐주드나?
 
병태
(째려본다)
 
어버이
뭐, 뭠 마? 한 대 치고 싶냐? 쳐 봐!
새애끼 치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어! 마! 국가에서 나한테 돈을 줘 임마!
비밀공무수행중이라고! 쳐 봠 마!
 
병태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뭔갈 하나 빼서
공손하게 두 손으로 주는 척 한다)
여깄습니다 으르신~

(한숨을 쉬며 카운터로 가 물건을 찍는 시늉을 한다. 삑삑소리)
그거 술깨는 게 아니고 술에 타 먹는 건데 ㅎ.
아, 아녜요 드세요 드세요.
 
어버이
(무대 한 켠으로 가 시식대에 뭔갈 놓는 시늉을 하며)
뭐? 뭐라는겨. 네깐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마!
넌 내가 딱 보니까 그 자리에서 평생 그 짓만 하며 살 놈이다 너는.
에휴~
 
병태
(목을 좌우로 꺾으며 한숨을 턴다.
계산기 화면을 누르는 시늉을 한다. 삑삑소리)
 
어버이
너 여자친구는 있냐? ...너같은 놈이 있겄냐~?
야 이쓰면 차라리 날 줘라 야 너보단 내가 낫겄다
연락처 하나 넘기봐!
(삑 소리 멈춘다. 병태 고개 숙인다)
 
병태
(고개 들며)..너무 센 사람이 걸렸네.
여기서부턴 기억하지 마세요.
 
어버이
(어버이, 드링크가 잘 안 따진다)
이건 또 왜 이래 이거.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
야, 까 봐.
 
병태
...좆까!!
 
어버이
뭐? 너 방금 뭐라고 했...야이 ㅆㅂㄱ시ㅏ???ㅇㄹ
 
(조명 깜빡이는 사이키델릭으로 바뀐다)
(어버이, 카운터 덧문을 열고 병태의 머리채를 잡아흔든다)
 
어버이, 병태
야 이 ㅁㄴ이라???리ㅏ?ㄴㅇ
 
(사이키델릭조명에 경광등 색깔 섞인다. 사이렌 소리도 들린다. 삐뽀삐뽀)
 
어버이, 병태, 경찰
어이 거 으르신 ㅊㅁㅇ림낭러???ㄴ아러
 
(조명과 음향 모두 꺼진다)
 
(조명 켜진다.
병태, 흐트러진 옷차림과 머리매무새로 고개숙인 채 카운터에 서 있다.
경찰과 어버이, 무대 한쪽 끝에 함께 서 있다.)
 
경찰
(병태를 향해) 마지막이에요. 정말 합의 안 하실 거에요?
음.. 그럼 사건접수 할 테니까요, 담당 배정되면 늦지 않게 연락드릴게요.
아우, 젊은 분이 아주 욕보셨..
(어버이 눈치보며) 험험 수고하세요
(어버이 향해) 거 얼른 나오세요 거.
 
어버이
아이 알았어 알았어. 우리 쫌 이따 거기서도 볼 텐데 왜 그래 허허.
(가방에서 뭔갈 꺼내며) 이거 드링크 한 잔 할라우?
 
경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빨리 나오기나 하세요!
(무대 바깥으로 퇴장한다) 
 
어버이
(병태를 보며)
  합의..
아냐! 퉤! 너깐 놈하고 내가 에잇..
너 마 합의 해 주건 안 하건 앞으로 여기서 일 못 할 줄 알아!
(핸드폰을 꺼내들며) 여기 사장이 내 후배야 마! 어!
앞으로 니가 이 근처 어디서 일하든 그 가게 앞에선
가스통폭발 대 축제가 일어날 거다!
(경찰 무대밖 목소리:안 나오시고 뭐 해요! 아 진짜)
커험 험
(퇴장)
 
병태
(고개를 든다.
상기된 표정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머리를 만져본다. 많이 빠지진 않은 모습이다.
고개를 젖혀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뱉고는,
cctv카메라를 바라보며 뇌까린다)
뒤져쓰...

(몸을 풀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무언가를 확인한다.
순간 스마트폰 벨소리 울린다.
'답장을 못해줘서 미안해.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
반갑게 웃으며 화면을 보던 병태, 순식간에 표정 일그러지며 황급히 전화 받는다)
네 사장님!
예 아까 전화했었냐구요? 예 그게..사장님 저 제가 이번에 가..
예? 아까 전화한 게 그 문제 때매 그런 거 아니냐구요?
어떤... 네? 아.. 아.. 연락받으셨구나.. 네... 아.. 네...네?
cctv..네..
사람.. 바로 구할 수 있으세요? 네.. 네..
네 근데 저기요 사장님 이번 일은요..네?
왜 건드렸냐구요?

(무미건조해진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네.
이번 달 일한 만큼은
(수화기에서 큰 소리 들리는 듯 귀에서 황급히 뗐다 다시 댄다)
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 뗐다 댄다)
네. 전화 끊겠습니다.

(병태, 스마트폰을 카운터에 내려꽃으려다 스윙을 천천히 줄이며 던져놓는다. 덜컥.
카운터 의자에 처음으로 털썩 주저앉는다.
카운터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밑에 던져진 책을 바라본다.
그러다 관객들과 시선 마주친다)

...뭘 봐요?
뭘 봐! 뭘 봐 시발!
시발 보지 말라고!
(주저앉아 얼굴을 싸맨 채 고함지른다)
아아악! 아아악!

(아침새소리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며 암전)
 

FD
박수, 박수우우우~!

 
 

3막

곱창집
정과장. 유부장. 정대리. 하사원. 팡틴. 병태.
 
 
정과장
아아앗!
 
(무대 밝아진다)
(전형적인 깡통 원형 테이블 6개가 2줄로 놓인 곱창집. 메뉴판들, 장식물들.
앞줄 가운뎃자리 4인셋팅된 테이블에 앉은 정과장, 유부장. 소주셋팅과 반찬접시들.
똑단발의 정과장은 큰 체구에도 헐거운 정장을 입고 있다.
깔끔한 머리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유부장은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었다. 
그 양 옆 자리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국밥과 소주를 마시는 팡틴, 병태.
팡틴은 유명브랜드의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병태는 추레하게 바랜 외출복 차림이다.
뒷줄엔 삼삼오오 모여앉은 손님들.
정과장네 테이블 불판에 곱창 굽는 철판이 올라와 있다. 기우뚱하다.
맨손으로 철판을 만지던 정과장이 아얏 소릴 내며 움찔거린다.)
 
유부장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이 거참 그.. 비키봐!
(물수건으로 놋쇠손잡이를 잡아 바르게 놓는다)
아 이런 데서 밥 안 먹어봤어? 거 사람 참..
 
정과장
(겸연쩍어하며) 헤 제가 성격이 급해서.. 헤헤헤 ..
(젓가락으로 철판 위를 젓는다)
 
유부장
집게 써 집게! 자네 입 댄 걸로..
(답답해하는 제스처)
 
(정과장 황급히 집게를 쥔 후 앞접시에 곱창을 조금 떠 유부장 앞으로 놓는다.
소주도 한 잔 따라준다. 그냥 마시려던 유부장, 빈 잔을 앞에 두고 겸연쩍어해하는
정과장을 보고 소주를 따라준다. 한 잔씩 마시는 두 사람)
 
정과장
근데 곱창 다 익었는데.. 그 친구들 안 온답니까?
 
유부장
거의 다 왔대.
 
정과장
오늘 뭐 취재하러 갔댔죠 걔네들이?
 
유부장
아 그 왜 있잖아 이번에 피습당한 미국대사. 그 사람 쾌유 빈다고
어떤 단체에서 부채춤 공연도 하고 음식도 나눠주고 그랬대요.
거기 갔다 오는 거야 지금. 요즘 좋은 뉴스들이 별로 없잖어.
우리 무난방송에 딱 맞는 아이템이라고. 내 아주 기대하고 있어요.
 
정과장
아 예..
(자신의 앞접시에 반찬을 퍼다 먹는다)
저 부장님 근데 아까 얘기드린 제 아이템..
 
유부장
아, 그거 내 생각해 봤는데, 그냥 킬합시다.
 
정과장
저 부장님 근데.. 이게 몇년씩이나 묻혀있던 문제거든요.
나중에라도 크게 터지면 늦으니까 저희가 먼저 터뜨리는게..
 
유부장
(뻔히 노려본다)
거 사람 증말.. 자네 우리 무난방송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나?
우린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무난하게 가는 거야.
사람들 요즘 사는 거 봐봐 얼마나 힘들어.
저, 저 봐봐.
(양 옆의 외톨이들을 슬쩍 가리킨다
외톨이들 국밥이 목에 걸리는지 켁켁댄다)
저런 사람들이 집에 가서 뉴스 틀었는데 가습기가 어쩌고 하는 얘기 나와 봐.
소화가 되겠느냐고.
 
정과장
아.. 아 예.. 제가 생각이 좀 짧은 것 같네요.
새로 오신 사장님 철학을 생각해야 했는데..
사장님 오시기 전엔 장난 아니었다면서요?
 
유부장
사장님 오시고 나서 좋아진 거야. 그 전에는 말도 마.
보도국으로 깡패들 와서 다 뒤집어 엎고 기자들 법원 들락거리고..
 지금 편하게 일하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정과장
예 정말 그렇죠 헤헤..
근데 그때 법원 갔던 선배는 참 오래 일하셨던 분인데 요즘 안 보이시네..
(유부장, 정과장을 다시 뻔히 노려본다)
아, 아뇨 별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제가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봤던 분이라 궁금해서.. 헤헤..
 
유부장
자네.. 지금 딸이 몇살이랬지?
 
정과장
아 예 이제 두 돌 막 지났습니다 예. 헤헤.
 
유부장
자네..
 
(무언가 말하려는데 캐주얼정장에 가방을 멘 일행 둘이 무대로 들어온다.
한명은 통통하고 한 명은 홀쭉하지만 둘 다 움직임은 날렵하다)
 
정대리, 하사원
아이고 좀 늦었습니다~
 
유부장
어 어서와 앉어앉어. 고생들 많았지?
 
정대리, 하사원

아이 아닙니다~
(자리에 앉는다)
 
정과장
아이구 어서와라 야. 고생했다. 어여 먹어 이거 다 탄다 지금.
(소주병 집는다)
 
유부장
아냐 내가 따라줄게.
(정, 하 두 사람에게 소주 따라준다)
배고프지?
 
정대리
아, 예. 근데 거기 가니깐 개고기도 노나주고 그러더라고요.
 
유부장
그래~? 허 거 참 통 큰 사람들이네.
 
하사원
예 정말 은혜로웠어요.
 
유부장
(두 사람 보며)
어때 그림 좀 나올 것 같던가?
 
정과장
예 방금 테잎 넘겨주고 오는 길인데 벌써부터 반응이 뭐...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다)
 
유부장
꺄하하하!
자 우리 한 잔씩들 하자고!
(소주잔을 내밀며)
우리의 무난함을 위하여!
 
정과장, 정대리, 하사원
(소주잔을 내밀며 부딪힌다) 위하여!

(네 명, 소주를 한 입씩 털어넣는다. 아윽 끄윽 하는 소리들.
안주도 한 입씩 먹기 시작하는 그들. 쩝쩝 소리들)
 
정대리
부장님 이번에 이거 잘 되고 그러면 다음달 인사발령때
부장님 승진소식도 들리고 상도 좀 받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유부장
에이 뭐.. 난 그저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 뿐인데요.
팀원들이 날 알아주면 고마운 거죠 뭐.
아하하하.
 
하사원
알아주다니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한테 부장님은 제 아버지세요.
제가 미리 상 하나 드려야겠네요.
(쌈을 하나 싼다)
부장님 이거 받으세요. 이 시대의 아버지상 하나 드리고 싶어요.
 
유부장
아이 뭐 이런 걸 다..아우, 고마워요
(쩝쩝거리며 먹는다)
 
정과장
(급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과장님 여기 여기도.. 우리들의 우상 받으셔야죠.
 
유부장
하하 이거 참 다들.. (우걱우걱)
 
정과장
헤헤.. (쌈을 하나 싼다)
부장님
전 사건의 진상 드립니다~
(갑자기 네 명 모두 얼어버린다)
(유부장 볼 빵빵한 채로 표정 일그러진다)
(소주잔을 꺾던 양 옆의 외톨이들 풉 하고 내뱉는다)
 
정대리, 하사원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이 참 과장님...
아 분위기 좋았는데~
(유부장, 말없이 혼자 소주잔을 꺾는다)
 
정대리
과장님 이번에 승진 안 하실 거예요?
이번에도 안 되시면 솔직히 저까지 힘들어져요 아시잖아요.
근데 왜 이러세요.
 
정과장
아이 난 그냥.. 죄송합니다 부장님..
(유부장 말없이 소주잔을 또 꺾는다)
 
하사원
자자 우리 이러지 말고, 2차 갑시다 2차!
요 앞에 독일제 생맥주 하는 데 새로 생겼대요! 맥주 한 잔씩들 하죠!
 
유부장
저기 먼저들 가요. 난 집에 들어가봐야 될 것 같어.
 
정과장, 하사원
아이 왜 이러세요. (눈으로 신호하며) 정과장님이 올해 총무시잖아요. 우리 회식비 아직 남았죠?
 부장님이 우리의 연예인이신데 빠지시면 안 되죠~
자~ 갑시다~
 
유부장

아.. 그.. 그래? 그럼.. 독일제 생맥주 한 번 맛 좀 봐 볼 까?
 
유부장, 정대리, 하사원
까르르 까르르 갑시다~

(세 명, 옷과 가방 챙기며 일어난다.
정과장 미적거린다.)
 
정대리
과장님 빨리 계산하고 요 앞으로 오세요! 카드 챙겨오셨죠?
 
정과장
어 어.. 어 그래..
(테이블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들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든 조명 꺼지고 정과장에게 핀라이트조명 비춘다)

 (정과장의 스마트폰 울린다.
천천히 품에서 꺼내 받는다)
어 그래..어 일단 편집하고 있어봐.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어? 아냐 난 회식 늦게 끝날 것 같아. 내일 보자고.
(스마트폰을 천천히 주머니품에 넣는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서 위에 던진다)
 
(관현악곡 시작된다.
정과장, 관객석 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 노래 시작한다)
 
2차로
회식은 끝이 없는 가시밭
법인카들 준 부장님은 포기란 걸 모른다
2차로

(핀라이트 조명이 하나 더 켜지며 팡틴을 비춘다.
관객석 쪽을 향해 서 있는 팡틴, 노래 시작한다)

팡틴
이렇게 헤어진다면
할부는 어찌 다 갚을까
 
(핀라이트 조명이 하나 더 켜지며 병태를 비춘다.
관객석 쪽을 향해 서 있는 병태, 노래 시작한다)

병태
일자리 없어진다면 내 밤들은 어디로 가나
 
(전체조명 켜진다.
팡틴, 정과장, 병태 앞으로 나와있고
그 뒤로 얼굴 벌게진 채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머리에 묶은 유부장, 정대리, 하사원.
그 뒤로 식당손님 합창단)
 
팡틴
내일 거기로 오래.
 
합창단
부름을 받으셨네
 
병태
내 전화는 계속 안 받아
 
합창단
2차는 갈 사람들만~
 
팡틴
눈에 띄는 빨간 망토가 부러워
 
합창
이 땅의 수퍼히어로~
(단원들, 두 손을 내밀어 자판을 치는 시늉을 한다)
 
병태
cctv기록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합창단
때가 왔다 모두 다 잊을 그때가~
 
정과장
2차로!
 
유부장
한 잔씩만 더 마시자. 나도 한 땐 운동권.
전설을 들려줄게. 그리고 나서 다 잊어.
 
정과장
2차로!
 
정대리, 하사원
너 한잔 홀짝. 나 한잔 홀짝.
세상은 그저 알딸딸한 것.
(주변을 둘러보며)
부어주고~ 마셔주고~
모텔에서 미담을 만들어봐요~
 
합창단
2차로 가는 세상
 
팡틴
구토야 오지 마라
 
병태
위장아 버텨다오
 
유부장, 정대리, 하사원
우릴 위해 힘냅시다
 
정과장
1차가 어디였더라
 
합창단
벌써 다 잊어버렸네!
 
정과장
아니야! 아니야! 기억할거야!
난 이걸 내보내고 말 꺼야!
 
합창단
2차로!
 
팡틴
더 높은 사람에게 연락해서 따지겠어!
 
합창단
2차로!
 
병태
날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 거야!
난 잘못하지 않았어!
 
합창단
2차로!
 
전원제창
(술잔을 집어들며)
2차로 가면 주님 뜻을 알게 되리라
2차로
우리는
2~차~로!
 
(관현악곡 마무리.
암전)
 

FD
박수, 박수우우우~!
 

(쿵 쾅)
 
 
무대
3막 출연진 전원. FD

(페이딩 없이 바로 전체조명 켜진다.
무대장치를 옮기던 출연진들, 깜짝 놀라 당황해한다.
곧 모두의 핸드폰이 울린다. 모두 짐들을 내려놓고 각자 전화를 받는다. 웅성웅성.
통화를 끝낸 다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관객석을 바라본다)
 
팡틴
그가 오고 있어!
 
병태
고도는 오지 않았었는데?
 
정과장
버스도 오지 않았었는데?
 
유부장
우리 사장님이잖아! 부지런하시다구!
해외를 며칠씩 돌며 일하시다가도
이렇게 두 손에 짐 잔뜩 지고 돌아오시는 분!
쿵 쾅!
 
출연진 전원
하.. 하..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팡틴
내일 그곳에 가서 내 의지로 열심히 일하는 거야!
운명이 문을 두드려도 절대 열어주지 말아야지!
아~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덤블링!
(덤블링)
 
병태
아버지뻘 되는 분한테 내가 잘못한 거야.
아들이 가서 용서를 빌어야지!
아~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팔굽혀펴기!
(팔굽혀펴기)
 
정과장
나도 이제 중년이니 중용의 미덕을 배워야지!
무난하게 일하자!
내일은 곱창의 효능에 관해 취재할 테야!
쪼그려뜀뛰기 10회 실~시!
(쪼그려뜀뛰기)
 
출연진 전원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호호호
 
(모두들 관객석을 바라보며 미친듯이 웃는다.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기까지 한다.
커튼 내려온다.
암전)
 
 
FD
박수, 박수우우우~!
(잠시 침묵)
...왜요? 네? 이딴 해피엔딩이 어디 있냐구요? 어이 거기.. 물병 던지시면 안 돼요!
저도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몸이란 말예요. 전 힘이 없어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 악의로만 가득찬 이야기에서 배울 게 뭐가 있냐구요?
...국정원 댓글사건을 보면서는 뭘 배우셨는데요?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던 나라예요.
이 단단한 무대 위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저쪽에 가서 일당이나 받고 돌아가시구려.
 
 
 
출처 1. <레미제라블>(톰후퍼,2012) / MBC <무한도전> 284회, 327회 / <산책자의행복>(조해진,계간창비2016봄) / http://hot.coroke.net
/ <카페느와르>(정성일,2010)에서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인용한 부분 / ‘까봐,x까’에피소드: 만화가 강풀의 트위터 /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덤블링: 코너제목 등이 잘 기억나지 않는 90년대 MBC코미디프로에서

2-1. (언론사랑)이라는 꼭지를 단 글을 비정기적으로 쓸 생각입니다. 현재의 언론을 장르적으로건 2차창작으로서건 접근해 조명하는, 기록으로 남기 위해 애쓰는 글을 써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책게에 올립니다.

2-2. 동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언론사랑)이라는 표제가 너무 느끼하다(..) 싶으시면 꼭지 이름은 바꾸셔도 됩니다. - 원래 생각했던 표제는 (이씹사세끼언론)과 (24시간편의언론)이었습니다... 다만 누적된 혐오성 발언들로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낀 요즘인 만큼, 지나치게 격한 표현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에 건전한 제목을 달았습니다. - 물론 어떤 의미에선 (언론사랑)이라는 표제가 오히려 충격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 의미에서 ‘기re기’라는 표현도 자제하겠습니다. 자신의 일에 깨끗하게 충실한 언론인들도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2-3.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이 꼭지로 올리는 글은 비판이나 풍자의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격적인 언행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것이기에, 스트레칭을 위해 (언론사랑)에 해당하는 글을 올리면서는 동시에 또는 하루쯤? 뒤 아무 글이나 함께 올릴 생각입니다. 소설이든 시든 잡문이든. 맛이 가지 않기 위해 하는 뻘짓으로 여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