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제 동생이요...
100퍼센트 실화이며 아직도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명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쓰겠습니다.
대략 20년 전 초등학교 저학년인 저와 동생은 어머니 미용실을 따라갔다가 기다리기 지루해서
근처에 있는 군산의 문화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초등학교 놀이터에 있는 그네 주변이 밝지는 않았습니다.
초등학생에겐 늦은 시간(저녁 8시쯤)이었고, 초등학교 안에 사람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생의 자전거를 세워놓고 그네를 타고 있는데
모자를 쓰고 안경을 쓰고 담배를 피우며 저희에게 다가와 말을 건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너희 몇 살이니?"
"저는 -살 동생은 8살이요"
"너희들 아저씨 부탁 하나 들어주면 갖고 싶은 거 사줄게"
그 당시 무선으로 조종하는 자동차가 가지고 싶었던 저는
"무선 자동차 사줄 수 있어요?"
"응"
"무선 비행기는요?"
"응. 다 사줄수 있어. 부탁하나만 들어주면 다 사줄게"
그 말을 들은 저는 좀 뭔가 어색함도 느끼고... 이게 말로만 듣던 유괴인가 하는 생각에
순진하게도 초등학생 수준의 생각으로 그네를 빠르게, 높이 타면 아저씨가 건드리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네를 높이 타고 있었고 동생은 옆에서 아무말도 안하고 그네만 타고 있었습니다.
"이제 좀 내려와볼래?"
이상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야!!!!!!!!!!!!!!!! 이 새끼들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라는 호통에 깜짝놀라 땅에 발을 그어 그네를 멈추었고
멍하니 그네에 걸터앉은 저희에게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저씨가 너희들만한 아들이 하나 있는데...지금은 따로 살아...
아들 얼굴을 보고 싶은데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 가서 좀 불러줄 수 있겠니?
내가 부르면 안나와서..."
"네...."
그리고 월명산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늦은 시간 산...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상태로 따라갔고
더 어린 동생도 아무말 없이 따라갔습니다.
군중을 거쳐....군산 청소년 수련원을 거쳐 산책로....봄이면 벚꽃이 활짝 피는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 산책로 입구에서 2~3분 걷더니 그 아저씨는
"저 밑에 있는 집에서 철수(가명)좀 불러줄래?"
저는 내려가 그 집에대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철수야....철수야! 철수야!!!"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올라가 아저씨에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만 가서 불러볼래?"
다시 내려간 저는 좀더 큰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2~3분쯤 그러고 있으니 어떤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너 누구니?"
"저기 위에 있는 아저씨가 철수좀 불러달래요..."
"철수? 그런애 없는데"
"!!!!!"
다시 위로 올라갔습니다.
근데 그 아저씨와 동생이 없습니다...
당황한 저는 울먹이며 동생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위로 올라갈까 내려갈까 수많은 생각이 든 저는
(산책로 위로 올라가도 마을로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왔던길을 다시 뛰어 내려갔습니다.
저 멀리 아저씨와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는 동생이 보입니다.
"아저씨!! 그런애 없대요!"
아저씨는 아무말 안하고 저희를 보시더니
"그래...알았다...집에 가봐라"
하시더니 담배를 또 한대 피시더라구요
저는 자전거 한대에 안장에 동생을 앉히고 제가 앞쪽에 선 자세로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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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고나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난리가 나있었습니다.
짧게 느껴졌던 순간이 2시간정도가 지나 있었고
저녁 10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초등학생 아들들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곳 저곳 전화를 해보고 계셨던 겁니다.
저희는 어떤 아저씨 부탁 들어주러 월명산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부모님의 다행이다는 말과 함께 저희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참 아찔한 기억입니다.
동생을 영영 잃었을 수도..혹은 사건으로 인한 트라마우가 생겼을 수도..혹은 금전적인 손실을 봤을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 정도는 충분히 제압하고 동생을 데려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