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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처음으로 머리를 기르다.
게시물ID : gomin_12193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엔젤링
추천 : 12
조회수 : 1787회
댓글수 : 142개
등록시간 : 2014/10/03 18: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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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계신다면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저는 30대 초반의 MtF트렌스젠더입니다.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여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지요.

이 글은 최근 저의 심경에 생긴 변화를 담고 있어요.
안으로만 감추고 있던 생각들을 꺼내는 일이기에 실제 저의 신상정보가 들어나지 않는 인터넷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내보일 수 없었던 이야기랍니다.

이제 저는 한 걸음씩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마음을 굳히고 있어요.
그 첫 번째 관문으로 오늘의 유머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제 익명을 사용해서 같은 글을 올렸었어요.
아마 아직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익명으로 글을 쓰고 나니 나름 용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더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것조차 두렵다면 대체 어떻게 나아갈 생각일까' 하는 생각들이었죠.
그래서 오늘은 익명을 사용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솜씨로 쓴 글이지만, 어여쁘게 봐주셨으면 해요.
감사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제 초등학생 시절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어요.
차가운 눈빛, 거친 언사, 텅빈 옆자리 그리고, 머뭇거림.
그 시절을 회상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지요.

그렇게 있는 듯 없었던 시기가 지난 1997년 봄,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의 기억이 납니다.

원하지 않았던 남자 중학교로의 입학은 당시 굉장히 큰 두려움이었어요.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라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솜털이 경련하는 듯한 오싹함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고 꾸미기를 좋아하던 당시의 저에게 따끔거리도록 짧게 잘려진 머리카락은 시리도록 아픈 상처였어요.
조금이라도 기르고 싶은 마음에 소심한 반항들을 저지르곤 했지만 이내 거친 손길에 붙잡혀 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 겉멋만 들어가지고는, 쯧쯧. "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어른들도,
" 나도 니 나이 땐 그랬어. " 마치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이해하는 척하는 어른들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비밀 때문에 모두 감당할 수 밖에 없었어요.

아버지 손에 붙들려 끌려 간 이발소에서 악다문 입술 위로 뚝뚝 흐르던 눈물.
15세의 소녀는 그 눈물에 잠겨 웅크린 채 꼭꼭 숨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지나 사회에 발을 내딛던 순간에도 소녀는 그대로 깨어날 수 없었어요.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저의 모습은 남자였기에 그 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따라하느라 깨울 수 없었어요.

그렇게 긴 시간을 잠들어 있던 소녀는 2014년 1월, 아이러니하게도 유서와 함께 깨어났습니다.

원래의 모습보다 익숙해져 버린 가면에 막혀 참고 있던 숨이 끝까지 차올랐던 탓일까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끊어 버려야 겠다는 비탄에 빠지고 말았고, 부모님께 유서를 남기고 죽음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감정의 범람은 숨과 함께 참고 있던 눈물까지 모두 쏟아내게 만들었어요.
그 덕분에 그 속에 잠들어 있던 소녀까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저를 도닥거려 주었습니다. 15세의 소녀가요.

' 억울하지 않아? '
' 왜 한 번도 여자로서 살지 못하고 죽어? '
' 중학교 1학년 때 연극반에서 여자 역할을 맡았을 때 기억 나? '
' 겉으로는 불평하는 척하면서 만세를 부르던 게 기억 나네 '
' 난 참 예쁜 아이였어. 검정 털실로 만든 조악한 긴 머리 가발만 썼을 뿐이었는데도 참 예뻤지. '
' 머리... 한 번 길러봤으면 좋았을 텐데... '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변한 일상으로 돌아온 지 9개월이 흘렀어요.
그 일이 있은 후 무작정 머리를 기르기 시작해 어느새 어깨를 간지르는 길이가 되었네요.

밥을 먹을 때 자꾸 숟가락을 따라 입으로 쳐들어 오기도 하지만,
라면을 먹을 때 흘러 내리는 머리카락을 잡지 않으면 국물이 묻기도 하지만,
더 이상 머리를 감고 터는 것만으로는 말릴 수 없지만 저는 하나도 귀찮지 않아요.
조금씩 자라가는 머리카락만큼 소녀도 자라고 있거든요.

이 머리가 자라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면 저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할 거에요.
그리고 축하한다고 전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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