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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 어이쿠_왕자님.sillok
게시물ID : history_121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ygnus
추천 : 14
조회수 : 147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0/20 22:43:18
(동명의 게임을 떠올리고 들어오셨다면...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실록을 들여다보면 정말 탄식을 금치 못하게 하는 인물들이 더러 나옵니다.

더군다나 이런 인간이 왕족인데 심지어 세자저하라면 뭐 참 답이 없지요.

좀 노는(?) 왕자님 중에 대표 케이스라 할 만한 양녕대군... 

현대에는 어째선지 동생한테 왕위를 양보한 대인배 캐릭터로 전해지는데 사실 기록을 살펴보면 영 아닌 듯합니다. 충녕과의 은근한 신경전 등등...

어쨌거나, 이 막장돋는 왕자님의 행각을 소개하자면...



1. 공부 안함. 아주 그냥 x나게 안함.

언제나 그렇듯이 윗사람이 농땡이를 치면 죽어나는 건 아랫사람들이죠.


- 세자궁(世子宮)의 환자(宦者) 노분(盧犇)에게 볼기를 때렸다. 임금이, 세자(世子)가 공부를 게을리 하므로, 노희봉(盧希鳳)을 시켜 좌우(左右)에서 시중드는 자인 노분에게 볼기를 때리니, 분이 세자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소인(小人)의 죄입니까?”
하니, 세자가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공부 안 한 건 왕자님이지만 차마 왕자를 때릴 순 없으니 대타로 내시가 매 맞고 "너님 때문이잖아여 ㅠㅠ"


- 서연관(書筵官)에게 명하여 세자에게 학문에 힘쓰기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문학(文學) 정안지(鄭安止)·사경(司經) 조말생(趙末生)에게 이르기를,
“이제부터 서연(書筵)에 입직(入直)하는 관원은 세자가 식사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 있을 때에도 좌우를 떠나지 말고, 장난을 일체 금하여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도록 하라. 세자가 만약 듣지 아니하거든 곧 와서 계달(啓達)하라.”
하고, 또 시관(侍官)을 불러 꾸짖었다.
요즘 듣건대, 세자가 공부하기를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은 너희들의 소치이다. 세자가 만약 다시 공부에 힘쓰지 아니하면, 마땅히 너희들을 죄줄 것이다.”


===괜히 서연관들만 달달 볶입니다.

태종: 세자가 저렇게 처놀다니, 도대체 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일 똑바로 안 할래!

문제는 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


- 서연관(書筵官)을 불러 일과(日課)를 폐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들으니 세자(世子)가 옛 것을 복습한다고 핑계하여 일과(日課)를 폐한다 하니, 금후로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

===복습드립치며 자체휴강.


-세자(世子)가 서연(書筵)에 나갔다. 세자가 병을 핑계하니, 서연관(書筵官)이 재차 청하고, 중관(中官) 김문후(金文厚)가 눈물을 떨어뜨리며 강권하자 세자가 그때서야 나갔다.

==="너님 서연 안 나가면 우리 다 죽는다고요 아이고 ㅠㅠㅠ"


- 서연관(書筵官) 빈객(賓客)·요속(僚屬)과 대간(臺諫)에서 세자(世子)에게 청강(聽講)하도록 두 번 세 번 청하였으나, 병이라 핑계하고 굳이 거절하였다. 강(講)하는 날이 항상 적었다.

===사관 눈에도 한심해 보인듯.


- 세자가 팔뚝에 매를 받치고 전문(殿門) 밖으로 나가고, 또 병을 칭탁하고 강(講)을 듣지 않았다. 빈객·대간에서 두세 번 강(講)하기를 청하니, 세자가 병으로 사절하였다. 장령(掌令) 전직(全直)이 청하기를,
“성상께서 대간 한 사람에게 명하여 날마다 서연(書筵)에 나오게 하신 것은 강하기를 청하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 세자의 말을 듣고 곧 물러가면 교지(敎旨)를 어기는 것이니, 청컨대, 조금만 강하소서.”
하니, 세자가,
“두세 번 강하기를 청하니, 내가 대단히 기쁘나, 내가 병이 있으니 회복되면 저녁에 입직(入直)한 서연관과 더불어 복습을 하겠다.”
하였으나, 저녁이 되어도 그대로 하지 않았다.

===아_나중에_복습할거라니까.fake


- ... 세자가 내구문(內廐門)까지 나아갔으나 뵙지 못하고 물러와, 편치 못하다면서 강의를 정지하고 해질 무렵에는 과녁을 쏘았다. 서연관이 나아가 말하기를,
“편치 못하다면서 강의를 정지하고 과녁을 쏘는 것은 가합니까?”
하니, 7, 8시(矢)를 쏜 뒤에 그만 두었다.

===아파서 공부는 못하겠는데 활은 쏠 수 있뜸 ㅋ
오죽하면 서연관이 면전에서 클레임을 ;;


- 서연관(書筵官)에서 세자(世子)에게 강(講)하기를 청하였으나 병을 핑계하고 나가지 않았다. 재삼 청하기에 이르자, 세자가 굳이 사양하고 말하였다.
“이 앞서 주상이 나로 인하여 동념(動念)하므로 황공하고 두려워 몸 둘 바를 몰라서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하다가,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밥을 먹으니, 가슴의 명치가 꽉 막히었다. 후일을 기다려야 나갈 수가 있겠다. 내가 만약 우연이라 한다면 어찌 나가서 강(講)을 듣지 않겠는가?”

===(얼마 전에 대형사고를 친 탓에...) "아부지가 나 때문에 빡쳐서 내가 요새 쫄아갖고 눈치 보느라 밥도 오늘 처음 먹었잖아. 지금 내가 공부가 되겠냐?"

(후술하겠지만 이 대형사고가 크리티컬이 되어 사실상 폐세자 사건의 결정적 계기가 되긴 합니다...)

이외에도 더 있지만 일단 여기서 컷.




2. po난봉wer

못된 것만 아버지 닮아서 호...호색돋습니다.

더군다나 그 방법의 막되먹은 정도가 심히 막장이지요.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세자 시절 행적만 보면 준 연산군급이에요.


- 세자(世子)가 몰래 기생 봉지련(鳳池蓮)을 궁중에 불러 들였다. 세자가 사신에게 잔치하던 날 봉지련을 보고 좋아하여, 곧 소친시(小親侍) 두 사람에게 명하여 그 집을 밟아 사통(私通)하고, 마침내 궁중에 불러 들였다. 임금이 듣고 소친시에게 곤장을 때리고 봉지련을 가두니, 세자가 마침내 근심 걱정하여 음식을 들지 않았다. 임금이 세자가 미치고 혹(惑)하여 병이 될까 염려해서 봉지련에게 비단을 주었다.

===몰래 기생 들인 것도 황당한데, 걸리고 나서 오히려 단식투쟁. 

태종은 아들 병날까봐 기분 풀어주려고 기생한테 비단을 내립니다. 이건 뭐...

(아니 부모 형제도 쓸어버리고 왕 해먹은 양반이 아들놈한테는 왜 이렇게 무른겨?)


-판내섬시사(判內贍寺事) 김매경(金邁卿),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박수기(朴竪基)를 파직하였다. 처음에 헌부에서 아뢰었다.
“동궁(東宮) 북쪽 담 밑에 작은 지름길이 있으니, 반드시 몰래 숨어서 드나드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동궁의 소수(小竪)를 불러들여 국문(鞫問)하게 하니, 과연 예빈시(禮賓寺)의 종[奴] 조덕중(曺德中)과 내섬시(內贍寺)의 종 허원만(許原萬), 서방색(書房色) 진포(陳鋪) 등이 몰래 평양(平壤) 기생 소앵(小鷪)을 동궁에 바친 지 여러 날이 되었다.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말하였다.
“세자가 날마다 내수(內竪)와 더불어 음희(淫戲)함이 도가 없어 응견(鷹犬)이나 기첩(妓妾)으로 풍악을 잡히는 일을 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내가 지난해에 그 사사로이 괴임을 받는 진포에게 장을 쳐 본역(本役)으로 돌려보냈더니, 이제 들으니, 진포가 또 동궁에 몰래 들어와 매일같이 밤만 되면 기생 소앵을 받아들여 불의(不義)에 빠지게 하여 세자가 아직도 개전하지 아니한다 하니, 내 경승부(敬承府)와 서연(書筵)의 관직을 혁파하고, 그 공름(公廩)을 거두고자 한다.”
그 장인[舅] 김한로(金漢老)로 하여금 이바지하게 하니, 김여지(金汝知) 등이 대답하기를,
“세자가 어린데다가 심지(心志)를 정하지 못한 때문이니, 가벼이 관료(官僚)를 혁파함은 불가합니다.”
하므로, 임금이 꾸짖기를 심히 간절히 하였다. 김여지 등이 굳이 청하니, 일은 곧 정침하였으나, 명하여 소앵은 평양으로, 진포는 홍주(洪州)로, 조덕중은 공주(公州)로 잡아 보내고 모두 정역(定役)하도록 하며, 진포에게는 장(杖) 1백 대를 치게 하였다. 유독 허원만은 도망 중에 있으므로 명하여 동궁의 북문(北門)을 막도록 하고, 드디어 김매경 등의 직책을 파면하니, 조덕중·허원만을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일이 이에 이르른 것이었다. 빈객(賓客) 조용(趙庸)·변계량(卞季良)을 불러 심히 책망하였다.
“저부(儲副)2516) 를 교양함이 경들의 직책인데, 불의한 일이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가?”
세자가 먹지 아니하니, 정비(靜妃)가 환자(宦者)를 시켜 세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리지도 않은데 지금 어째서 부왕(父王)께 이와 같이 노염을 끼치느냐? 이제부터는 조심하여 효도를 드리고 또 밥을 들도록 하라.”

===동궁(세자궁) 담 밑에 지름길이 있는데 이걸 통해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 같다는 사헌부의 매의 눈 제보가 들어옵니다.

조사해 보니 레알 평양 기생들이 동궁에 파워 조공되었던 것.

관련자들을 처리하고 기생까지 쫓아보내고 나니 역시나 욕먹는 건 아랫사람들입니다. "니들은 대체 뭐했냐?!"

그 와중에 세자 저하께서는 또 단식투쟁에 돌입하시고, 참다못한 중전마저 한소리 하십니다.

현대 버전으로 풀자면 이 정도 되겠군요. "뭘 잘했다고 밥을 굶어? 당장 안 먹을래!"



-세자(世子)가 밤에 창기(倡妓)를 들이었다. 몰래 내노(內奴)2839) 를 시켜 김한로(金漢老)의 집에서 말을 끌어내어 창기(倡妓)를 태우고자 하였다.

===굴하지 않는 근성가이!


-경승부 소윤(敬承府少尹) 조종생(趙從生)의 직책을 파면하고, 경승부 승(敬承府丞) 신숙화(辛叔和)는 좌천시켜 사섬시 직장(司贍寺直長)으로 삼으니, 모두 세자전(世子殿)에 몰래 출입하는 사람을 규찰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윗사람_잘못만나_인생꼬임.ansup


-기생 초궁장(楚宮粧)을 내쫓았다. 세자(世子)가 사사로이 상기(上妓)인 초궁장을 가까이 하므로, 임금이 알고 내쫓은 것이었다. 상왕(上王)이 일찍이 이 기생을 가까이 하였었는데, 세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 사통하였기 때문이었다.

===뭐 기생 끼고 노는 게 한두 번은 아닌데, 하필이면 이번 기생은 할아버지 태조와 썸씽이 있었던 여자(...) 개족보?


-명하여 선공 부정(繕工副正) 구종수(具宗秀)·악공(樂工) 이오방(李五方) 등을 의금부(義禁府)에 가두었다. 임금이 항상 세자(世子)를 옳은 방도로 가르쳤는데, 세자는 주색에 빠져서 가르치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 갑사(甲士)를 시켜 문을 파수하여 잡인(雜人)이 출입하는 것을 금하였다. 구종수가 세자에게 잘 보여서 후일의 공을 도모하고자 하여 이오방과 더불어 대나무다리[竹橋]를 만들어 밤마다 담을 넘어 궁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며 유희하고, 혹 밤에 세자를 제 집으로 맞아서 잔치를 베풀고, 혹 남모르게 여색(女色)을 바치고, 비밀히 매[鷹子]를 드리고 하였는데, 이 때에 이르러 일이 발각되어 옥에 가두었다.

===웬 후레잡놈들이 밤마다 궁궐 담 넘어서 세자랑 술 퍼먹고 여자도 갖다 바치고 매도 갖다 바치고...

뭐 근묵자흑이라고, 죽이 맞으니 이런 인간들이 곁에 꼬이지 않겠습니까. 허허.




3.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잘못을 하면 반성이란 게 있어야 할 텐데, 이건 도무지 답이 안 보입니다.

기생질하다 걸렸는데 적반하장격으로 단식투쟁하는 것도 그렇지만, 대처 방식을 보자면 가히 상상초월.


-우빈객(右賓客) 계성군(雞城君) 이내(李來) 등이 진언(進言)하였다.
“성색(聲色)과 응견(鷹犬)은 마땅히 멀리 끊어야 합니다. 지금 들으니, 저내(邸內)에 공인(工人)을 끌어들이어 거문고를 타고 피리를 불고, 또 매[鷹] 2련(連)을 두었다 하니, 이 말이 만일 밖에 들리면 저하(低下)의 강학(講學)하는 공부가 어디 있으며, 또 주상께서 들으시고 물으면 저하가 어떻게 대답하며, 신 등도 또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나타나기 전에 도모하소서.”
세자가,
“그런 일이 없다.”
하니, 이내 등이 강경하게 말하였다. 세자가 말하였다.
“매는 한 련(連)뿐인데, 오늘 마땅히 그 주인에게 돌려보내겠고, 효령군(孝寧君)의 거문고·비파도 또한 다시 들이지 않겠다.”

===색 좀 그만 밝히고 매사냥도 끊으시라, 전하께서 물어보시면 어떡하시려고 그러냐, 간언을 올리니 딱 잘라 "아닌데? 그런 적 없는데?" (...)


-환영(還營)하였다. 임금이 어제 세자가 비응(臂鷹)2461) 으로 대노하여 장내(帳內)에서 소수(小竪)를 채찍질하였다는 말을 듣고, 김여지(金汝知)와 서연관(書筵官) 김자지(金自知) 등에게 말하였다.
“세자의 응견 때문에 종친과 대신이 탄핵을 받고, 대간(臺諫)도 내침을 당하였으나, 세자는 징계하지를 않아서 이제 또 이와 같은가? 내 처음부터 데려오지 않으려다가 그 마음이 간절하고 안색이 변함에 이르므로, 이미 유소(幼小)한 지식이 아니니 부자(父子)의 은의를 상(傷)할까 하여 애써 종행(從行)하게 하였을 뿐이다. 나의 소위(所爲)라면 불선(不善)함이 있더라도 귀밑털[鬢髮]이 이미 희었으나, 지금 세자는 바야흐로 학문할 때이니 그러함은 옳지 못하다. 또 부자(父子)의 책선(責善)2462) 도 은의를 상하는 것인데, 서연관은 어째서 소양(素養)을 시키지 아니하였는가? 모두들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이다. 너희 서연관은 속히 세자와 함께 직로(直路)를 따라 환경(還京)하라.”
명하여 유도 대신(留都大臣)은 출영(出迎)하지 말게 하였다. 또 길에서 설연(設宴)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성석린(成石璘) 등이 가돈천(街頓川)가에 출영하여 여악(女樂)을 갖추었으므로, 임금이 이를 알고 노하여 말하였다.

===보다못해 직접 매를 풀어주니 오히려 빡쳤다고 내시를 두들겨 팸.

속상한 태종... "그놈의 매 때문에 종친 대신들 다 탄핵 들어오고 대간 애들도 짤렸는데 이놈은 왜 반성이 없는겨 ㅠㅠ"


-세자 빈객(世子賓客) 이내(李來)와 변계량(卞季良)을 경연청(經筵聽)에서 인견하고 사람들을 물리치고 하교하였다.
“근자에 세자를 보면 사사로이 간악한 소인(小人)들을 가까이 한다. 경(卿) 등은 직책이 보도(輔導)에 있는데 어찌하여 간해서 그만두게 하지 못하였는가? 사우(師友)를 설치한 것은 바로 덕성(德性)을 함양하고 효제 충신(孝悌忠信)의 도리를 배우게 하고자 함이었는데, 이 네 가지 가운데 과연 하나라도 있는가? 전(傳)에 이르기를, ‘덕(德)이 재주보다 나은 것을 군자(君子)라 이르고, 재주가 덕보다 나은 것을 소인(小人)이라 이른다.’고 하였다. 세자는 타고난 자질이 괴위(魁偉)3263) 하여 특히 나와 같지 않으니, 불미(不美)하다고 할 수 없으나, 학문을 함양하는 것으로 말하면 도무지 공효가 나지 아니하니, 경 등이 마땅히 잘 생각하여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서연(書筵)의 소유(小儒) 등이 생각하기를, ‘장차 임금이 될 것이다.’ 하여, 외축(畏縮)되어 간하지 못하고, 대간(臺諫)도 또한 그렇다. 경 등은 이미 재상이 되었으니, 무엇을 꺼려하여 감히 바른 길로 보도(輔導)하지 못하는가?”
이내 등이 황공하여 마침내 이사(貳師) 유창(劉敞)과 빈객(賓客) 민여익(閔汝翼)과 함께 서연관(書筵官)을 거느리고 동궁(東宮)으로 나아가 두루 임금의 명령을 알리고, 인하여 전후에 실덕(失德)한 것을 낱낱이 들어 말하고 유창이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려서 슬픔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니, 세자가 말하였다.
“근일에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주상이 진노한 이유를 아직 자세히 모르겠다.”
이내가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저하(邸下)의 병근(病根)입니다. 저하의 뱃속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사욕(私慾)뿐입니다. 저하는 벌써 적장(嫡長)으로서 바로 동궁(東宮)에 자리잡으신 지도 이제 여러 해가 되었으니, 주야로 깊이 생각하여 위로는 전하(殿下)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소망을 붙들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효도(孝道) 가운데 큰 것은 이에 지나지 않는데, 이제 그렇지 못하여 종종 과실(過失)로써 주상에게 견책을 당하여, 그 지위마저 어려울 형편이니, 어찌 동궁의 지위를 반석(磐石)과 같이 평안하게 여기는 것이 옳겠습니까? 전하의 아들이 저하(邸下)뿐일 줄 압니까? 용렬하고 어리석은 신이 서유(書帷)3264) 를 모신 지 14년이 되었으나 보도(輔導)를 잘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교지(敎旨)를 받드니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래도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와지지 아니한다면, 신은 감히 보양(輔養)하는 임직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뜻하는 바를 크게 하여 성인(聖人)이 될 것을 잘 생각하는 것은, 바라건대, 종묘(宗廟)를 받들고 전하를 섬기는 도리가 되는 도리를 생각하여, 여자와 소인을 멀리 하고 올바른 선비[正士]를 친근하게 하여서 마음을 씻고 생각을 고치면 종묘와 사직(社稷)에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눈물이 흘러 턱으로 내리며, 말씨가 간절하니, 민여익(閔汝翼)·변계량(卞季良)과 좌·우에 있던 사람들도 감격하여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세자도 무연(憮然)하여 부끄러워하여 사과하였다.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서연관(書筵官)에게 명하여, 모두 서연(書筵)으로 도로 출사(出仕)하게 하였다.


===패악만 부리고 다니던 아들이 너무너무 걱정되었던 태종, 날 잡고 진지하게 신하들을 질책합니다.

"애가 요새 주변에 어울리는 놈들이 다 소인배들이야. 너넨 이런 거 커트 안 하고 뭐했냐? 얜 정말 나보다도 더 재질이 좋은 앤데 왜 공부하는 성과가 안 나오는 거냐고. 서연관들은 얘가 나중에 임금이 될 거니까 눈치 보느라 말을 못하는 모양인데 니들은 재상이잖아. 니들이 잘 이끌어 줘야 하지 않겠냐?"

이내가 총대 매고 동궁으로 출격해서 "전하께서 너님 단디 하라는데요" 하고 어명을 전하니 대답이 예술입니다.

"나 요샌 잘못한 거 없는데? 아부지 왜 화난겨?"

마침내 울분이 대폭발한 이내의 절절한 간언.

"이게 다 너님 때문이잖아여! 뱃속엔 욕심만 한가득해서! 세자 생활이 몇 년짼데 효도는 개뿔 툭하면 사고나 치고 전하께 걱정이나 듣고! 세자 자리가 영원할 것 같습니까? 너님 말고도 왕자님들 많아요! 하긴, 내가 너님 모신 지가 14년인데 너님은 아직도 이 지경이니 내가 병신이죠. 전하만 생각하면 내가 쪽팔려서 그냥 땅 파고 드러눕고 싶을 지경이란 말입니다! 너님이 끝까지 정신 못 차리면 나도 이 자리에 더는 못 있어요. 그러니 제발 여자랑 소인배들은 좀 집어치우고, 마음 고쳐먹고 종묘 사직 보전합시다. 예? ㅠㅠㅠㅠ"

(목숨 따윈 아깝지 않은 패기. 뭐 이런 게 선비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로 욕을 드시니 좀 정신이 드는지 사과도 하십니다. 그러나...



4. 크리티컬

명하여 전 판관(判官) 이승(李昇)·전 소윤(小尹) 권보(權堡)·악공(樂工) 이법화(李法華)·환자(宦者) 김기(金奇) 등을 의금부에 가두게 하였다. 처음에 악공 이오방(李五方)이 몰래 동궁(東宮)에 들어가 전 중추(中樞) 곽선(郭璇)의 첩 어리(於里)의 자색(姿色)과 재예(才藝)가 모두 뛰어났다고 칭찬하니, 세자가 즉시 이오방으로 하여금 그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오방이 이에 그 무리 홍만(洪萬)과 더불어 곽선의 생질녀의 남편 권보(權堡)에게 청하니, 권보가 말하기를,
“곽선은 나와 인친(姻親)의 은혜가 있어 속일 수 없다. 그러나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고, 그의 첩 계지(桂枝)를 시켜 어리(於里)에게 말하였으나, 어리가 응하지 아니하였다. 이법화가 세자에게 고(告)하기를,
“신물(信物)을 보내느니만 같지 못합니다.”
하여, 즉시 소환(小宦)을 시켜 수낭(繡囊)을 보내었으나, 어리가 사양하는데 억지로 두고 돌아왔다. 어리가 이 일을 곽선의 양자(養子) 이승(李昇)에게 알리고 그대로 그 집에서 유숙하였다. 이법화가 달려가 세자에게 고하기를,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자, 세자가 소수(小竪)를 거느리고 대궐 담을 넘어 도보로 이오방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이승의 집에 이르렀다. 어리를 찾으니, 이승이 듣지 않으므로 그에게 강요한 뒤에야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어리와 함께 이법화의 집에 가서 자고, 그를 궁중(宮中)으로 납치(納置)한 다음, 세자가 활[弓]을 이승에게 보내고, 어리도 또한 비단을 이승의 처에게 보냈으나, 이승은 활만 받고 비단은 받지 아니하였다. 임금에게 계문(啓聞)하고자 하니, 세자가 사람을 시켜 힐난하기를,
“너는 나의 한 일을 헌부(憲府)나 형조(刑曹)에 고하려 하는가? 이 일을 어디에 고할 것인가?”
하여, 이승이 두려워서 계문하지 못하였다. 마침 전별감(殿別監) 소근동(小斤同)은 본래 김한로(金漢老)의 가노(家奴)인데 수사비(水賜婢)4113) 와 서로 희롱하였으므로 김한로가 이를 알고 임금에게 아뢰기를,
“소근동(小斤同)은 범한 것이 있으니, 청컨대, 그 죄를 물으소서.”
하였다. 임금이 내관(內官) 최한(崔閑)에게 명하여 심문하게 하였더니, 소근동이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어리(於里)의 일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이를 듣고 대노(大怒)하여 즉시 이승(李昇)을 불러 그 연유를 물었더니, 이승이 고하였다. (후략)


===곽선이란 신하의 첩 어리를 (실록의 뉘앙스에서는 강제로) 사통하고 궁궐에 짱박기...

이쁘다는 소문을 듣고 (수청을 들라?) 말로도 권해 보고 -> NO

선물(수 놓은 주머니)도 보내 보고 -> NO

다 글러먹자 아예 궁궐 담 넘어서 직접 쳐들어갑니다. 아아......

일을 치르고 나서는 협조한 이승(곽선의 양자)에게 협박도 빼먹지 않습니다. "사헌부나 형조에 불지 마라잉?"

이 일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이후에 이 여자가 애까지 낳았더라는 사실이 뽀록나는 바람에 결국 폐세자 크리를 맞게 됩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망나니-_-가 동생에게 왕위를 던져준 대인배처럼 전해 내려오게 되었는지 그야말로 미스테리...

기회가 된다면 양녕과 충녕의 은근한 신경전도 가져오겠습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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