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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88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valanche★
추천 : 8
조회수 : 94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5/25 01:04:00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다. 그분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계실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고민을 하던 도중, 내 머리 앞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첩에 기름칠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께서는 손에 들고 계신 물건을 내미시고는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아버님께서는 손에 있는 물건을 나에게 계속 밀어대고 계셨다. 손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보니 CD인 듯 했다. 나는 문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완고하셨다. 아버님은 버럭 화를 내시고는 문을 닫으려 하셨다. 문에서 손을 떼려던 그때, 집 안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반쯤 섞인 목소리에 높은 톤인걸 보니, 어머님인 듯 했다. “빨리 보내라고 헀잖아요! 제발! 아이고… 내 딸이… 내 딸이…” 멈추지 않는 울음에 먹혀버린 어머님의 목소리는 내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목구멍 끝에 걸려있는 그 다섯 글자가 내 목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어서 가게. 그리고 웬만하면 오지 말게. 알겠나?” 쿵. 내가 손을 떼자 마자, 짙은 회색 철문은 굳게 닫혀버렸다. 그리곤 두어개의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리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버님이 들어가실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더 있고 싶었다. 이 골목에서 조차도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문 옆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회색 전봇대 하나가 보였다. 쓰레기봉투들이 난잡하게 쌓여서는,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리속에서는 이렇게 더러운 거리가 아니다. 바로 저기 저 곳에서. 굳게 닫힌 저 문에서 걸어나왔던 사람이 있다. 저기 파란 담장이 있는 골목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있다. “선배… 아니아니 오빠. 저 진짜 괜찮아요.” “야.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혼자서 다니려고? 거기다가 이렇게 어두운 골목을?” 나는 폰 플래시를 켜서는 앞쪽을 비추며 말했다. “아이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하는거지. 집 바로 앞에서 납치되는 케이스도 있다잖아.” 나는 폰 플래시를 끄고는 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바로 앞쪽에 가로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가로등이 적을 수가 있나 싶다.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쓴다면 환한 거리를 만들 수 있을거고, 얘도 깊은 걱정 할 이유는 없을건데…… “선배… 아. 죄송해요. 오빠.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혼자 올 수 있었는데……” 살짝 웃음을 짓고는 인사를 하는 내 사랑. 너무나 귀엽다. “에이. 이용해먹을 수 있을 때는 이용해먹는 게 최고지.” 눈은 똘망똘망하게 뜬 채로, 입으로 살포시 웃고 있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가고는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 조용히 문에 손을 얹고는, 부끄러운 듯 후다닥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두어개의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들린 후, 담장 너머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우리 딸 왔구나. 근데 밖에 누구야?” 톤이 조금 높은 여자의 목소리. 아까가 아버님 목소리였으면 이번은 어머님이겠지. “응. 아는 선배가 그냥 집에 데려다 준거야.” 그렇게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얘 뿐만 아니고 다른 애들한테도 분명히 일러뒀는데…… 집에 안전하게 들어갔으니 나도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발길을 돌려 파란 담장 쪽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 가라고 하셨으니 빨리 가는 게 나에게나 저분들에게나 더 나을 것 같다. 거기에서 더 있을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추억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을건데…… 아쉽고 허탈한 마음에 머리를 핸들에 살짝 기댔다. 그러면 이렇게 마음이 찢어질 것같이 두근거렸을까?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 크고 깊게 남아있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차를 몇 번이고 돌려 그 골목 근처까지 갔었지만, 차마 다시 차를 몰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 정말 그분들이 나를 쫒아내면 어쩌나 싶었다. 난 다시 담배 하나를 물고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장례식 이후로 담배 피는 양이 부쩍 늘어서 이젠 공기대신 담배연기를 마시는 것 같다. 담배 끊으라고 했던 말을 유언으로 생각하고 정말 지켜볼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아까 받은 물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 같다. 난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조수석에 던져뒀던 물건을 집어들었다. 투명한 케이스 안쪽에 CD 한 장이 들어있었다. CD 표지면 쪽에는, 검은색 매직으로 써둔 글씨가 있었다. ‘오빠에게 보내는 마지막 말’ 이라는 글씨였다. 오빠 아래쪽이 까맣게 칠해져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글씨를 잘못 썼던 것 같다. 나는 거의 저물어가는 석양 빛에 CD를 살짝 비추어봤다. 잘못 적은 글자들을 제대로 지우지 못한 탓인지, 검은 칠 너머로 글자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선배. 열심히 지운다고 지운 두 글자는 선배. 아마 내 의견을 동생들에게 제대로 피력하지 못했던것일까? 분명히 나를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마저 나를 선배라고 부르고, 뭔가 잘못됐단 걸 느꼈는지 마구 지워놨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말까지 이렇게 상처를 줬어야 했을까. 마지막으로 보내는 모습을 이렇게 남겨놓을 수가 있을까? 정말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겨둔 이 물건 하나에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했어야 했을까? 원망을 해야할지, 실망을 해야할지, 아니면 덤벙대던 성격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굳이 다시 그런 일들을 꺼내야하나 싶기도 하고. 난 다시 시동을 켜고,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어보니 집안이 너무나 쓸쓸했다. 만약 내 여자친구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텅 빈 공간이 되지는 않았겠지. 차라리 예전처럼 여자친구 사진이라도 남겨놨었다면, 지금처럼 공허만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집에 여자친구를 들인적은 없지만, 또 여자친구도 내 집에 오는걸 꺼려했었지만, ‘오빠 공간까지 침범하는 건 싫어요’ 라는 말에 ‘괜찮으니까 와’ 라는 말을 해줬었어야 하는데 이제와서 후회하면 너무 늦은 거겠지. 지금 남아있는 이 CD 한 장이 이 공허를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 벽에 달린 진열장에 CD를 놔두면 될 것 같다. 난 냉장고에 넣어뒀던 반 병 남은 진을 꺼냈다. 탱커레이 넘버 텐. 예전에 칵테일 바를 같이 간 후 맛을 들인 술이었다. 진토닉만 연거푸 마셔대는 모습이 그렇게 세련되고 멋졌는데…… 난 락 글라스에 진을 가득 붓고는 바로 입으로 털어넣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진한 알코올의 맛과 함께 진한 솔잎 향이 올라왔다. 아직도 이 솔 향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걔가 좋아하던 거니 참고 마실 수 있다. 무엇이 그렇게 자기를 괴롭혔길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어야만 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보낼거 같았으면, 얼마전에 그렇게 싸웠으면 안됐던건데…… 어떻게 사람으로써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지? 텅 빈 강의실 한가운데. 그녀와 내가 서있다. 가방을 들고는 방을 떠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 진짜 왜그러시는거에요? 제가 몇번이나 말씀 드렸잖아요!” 가방 앞쪽에 서있는 나를 밀치곤 앙칼진 한마디를 내게 던졌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또 수십만마리의 늑대들이 물어뜯을까봐 걱정되서 하는 말인데. “걱정? 걱정되신다구요? 아니 대체 누구신데 제가 가는걸 이래라 저래라 막으시냐구요!” “내가 진짜 누군지 몰라서 그래? 나 니……” “선배, 정신차리세요 제발. 제 말은 아무것도 안들리시는거에요?” “내가 분명히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몇번이나 쳐말해야 하는건데!” 그리고 내 터져 나오는 화에 아랑곳 않는다는 듯한 저 태도. “중요해! 너랑 내 관계가 어떤 관곈데 그런 소리를….” 꼭두각시? 내가 뭘 얼마나 했다고 꼭두각시라는 소리가 나오는거지? 그 짧은 순간의 기억이 사라졌는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눈 초점이 다시 맞춰졌을 때, 내 앞에 있던건 뺨을 부여잡고 있는 여자친구였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뺨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그 한마디 했다고 때려?” 내가 보고 있는 양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있었다. 눈 안의 모세혈관들이 터졌는지 눈조차도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저 지켜주고 싶었던건데, 안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건데. 이미 떠나간 사람이다. 떠나간 사람에게 나쁜 기억을 남길 이유가 있나 싶다. 내가 걔를 안전하게 지켜주려 했던 것 처럼…… 남긴 마지막 이 CD도 들어주는 게 예의겠지. 이 고요한 집을 내 사랑의 마지막 목소리로 채우는게 정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위한 일인 것 같다. 치직 거리는 소리가 나고는, CD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 친것인지, 아니면 녹음된 노래를 트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의 목소리처럼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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