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참 힘든 한 주였습니다. 전두환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툴툴거리면서 내뱉는 걸 들었습니다. 날씨가 참 덥더군요.
저도 횡설수설했습니다. 잠결에, 어떤 글에다 별 시답잖은 나르시즘으로 채운 댓글을 단 게 지금도 찜찜합니다. 그렇다고 지울 순 없었습니다.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중입니다. 지난 주에 결정적으로 뒷목이 뻣뻣해지게 만들었던, 그 일. 그 일을 둘러싼 광장의 일들.
우선 이 글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제 입장도 이 글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아직 법집행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만, 이 자는 아마도 조현병에 의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추모가 근본부터 틀린 일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많은 유무형의 발언들이 터져나왔다면,
이건 이것대로 의미로운 일입니다. 지금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악스런 태도로 저열한 단어들을 내뱉는 저 극단적 차별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아닙니다. 그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핑크코끼리와 같은, 저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링 위로 올라오라는 초청장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그들의 몇 배에 달하는 피해자 여성들이 하는 얘기가 이 (뜻하지 않게 생긴,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공론의 장의 중심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여성들이 지금까지 당해왔던 온갖 성추행, 데이트폭력 등을 비롯한 유무형의 차별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치나 통계로도 잡히지 않았던 내용들, 억울함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깁니다.
지금은 이 이야기에 일단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관련 제도와 대책의 마련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귀를 기울여왔고 관심을 보여왔다 해도 모자랍니다. 해결되지 않았잖습니까?
착하게 살아온 나한테 왜 이러느냐는 앙탈은 지금 부릴 때가 아닙니다. 더, 더 귀를 열어야 합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귀를 열었더니 들려오는 이야기가 실j, 10c 따위의 저열한 표현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끔찍한 일입니다.
며칠 전 이곳을 통해 그 광장에서 'jae기해'라는 구호마저 들렸다는 얘길 듣고 저 역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전 평소에 단순한 인간이라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편인데, 그런 소식까지 접한 다음엔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피해당해 밤잠을 설친 날들에 비하면 이건 약과이고, 그러니 당신들의 그 잘난 '미러링' 전략이 성공한 겁니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충격요법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을 아예 이해 못 하지는 않으나, 동의할 수는 없고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그 구호의 대상이 된 어떤 사람의 생전 행적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고 용납할 수 없었으나, 만천하에 공개된 매우 끔찍한 방법으로 죽어나간 사람입니다.
외칠 구호가 그렇게도 없었습니까?
미러링은 결국 당신들에게로, 당신들이 싫어하던 그 매커니즘으로 돌아올 겁니다. 실j는 자신의 흥분에 겨워 그 분기탱천한 기운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진영논리의 자위로만 황홀해하다 사정한 후 쪼그라드는 것이니까요. 왜 당신들이 싫어하는 그 매커니즘으로 싸우려는 겁니까.
왜 이 소중하게 마련된 공론의 장을 당신들 스스로 쓰레기장으로 만들려는 겁니까.
물론 모릅니다. 그 추모의 장에 이러한 경우는 극히 일부였을지도 모릅니다. 트위터를 통해 히잡을 쓴 중동여성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뙤약볕 아래 서 있던 여성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가 훨씬 더 많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강남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터라 가 보진 못했습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잘못된 장소에 서 있었다간 저 역시 미쳐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런 사진들은 오유에서 본 기억이 없습니다. 모든 글을 다 보진 못하니, 아마 어떤 대표적인 글들에 밀려 보지 못했겠지요.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벌어졌던 일. 수많은 회원수를 자랑하는 어떤 온라인집단의 대표자들이 버젓이 조작에 조작을 낳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황당했었습니다.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니, 아마 앞으로도 평행선을 달리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목표는 그들이 아니라 소수자들에 대한 무감각, 아직 개선이 필요한 치안과 제도의 정비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선상에 놓인 문제입니다. 충분히 우리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왜 소중하게 가꾸어져온 이 공간을 게토화하려고 하는 겁니까.
모두의 의견이 그렇지는 않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초기에 휩쓸리고 나면 다시 안정을 찾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엔 이곳에서마저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이 지난주의 기억 역시 쉽게 잊혀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만연한 경멸의 기운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냥 밖에만 나가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엔 길거리에서도 입으로 악플다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어디로,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러나 더, 더 공론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 여성단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성숙한 모범을 보이길 바랍니다.
ㅇㅂ의 행태에 대해선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폭력은 잘못된 것이고 사실이라면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추모의 장에 그런 의상을 입고 나와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건 그냥 치졸한 짓입니다.
다른 글의 도움을 받아 ㅇㅂ 언급 끝. 헉헉..
그리고 저 역시 지금까지 성차별에서 백퍼센트 자유롭다고 말하긴 어려울 겁니다. 더 반성하고 조심하겠습니다.
물론, 그러니 극히 일부인 극단적 차별주의자 당신들도 언행을 조심하길 바랍니다.
이 <개같은 날의 오후>가 (분노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야기인) <28일후>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극히 일부들에게는 <무소의 뿔처럼 추모와 공론화에만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아직)그때는 (오지않은것이)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더위가 살짝 꺾였다가 다시 더워질 거라는군요. 이제 여름이 온 거겠죠. 지난 주엔 한동안 잊고 있었던 패닉의 '달팽이'란 노랠 가끔씩 꺼내들었습니다.
횡설수설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전 이런 공격적인 글을 매번 잘 쓸 수 있을만큼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지난 주에 멘탈 깨진 걸로 충분합니다.
밖에 나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어야겠습니다.
물론, 마지막으로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런다 해도 지난 주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지금 '달팽이'를 듣다 보면 그 포스트잇이 생각나 버리니까요. 언니는 꿈이 뭐였어요.
당분간은 말을 줄이고 좋은 것만 볼 생각입니다. 다들 이 더위에 당하지 않기를.
ps(2016.5.24.13:23)
: 그래도 첨언. 위에 언급한 '피켓시위사진'이 생각나 찾아보았더니 제가 본 건 아마 '홍대9번출구피켓시위사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들을 올린 트위터계정 주인들의 취향을 살펴보니 저와 맞지 않아, 굳이 출처사진을 따로 올리진 않겠습니다.
근데 찾아봐도 히잡 쓴 중동여성은 보이지 않더군요. 아마 제가 대충 훑어보고 어떤 퍼포먼스라고 자의적으로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멘탈이 깨진 게 맞나 봅니다. 좀 더 꼼꼼해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