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걸 확실히 하고 가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건 살인 사건이 아니라, 그 기저에 깔린 '이성혐오의 원인' 입니다."
저는 살인사건 자체의 해석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상당히 이상한 양상으로 이성혐오가 표출된 극단적인 사례 하나에 불과해요.
주목해야 할건,
"이 사건을 이성혐오 범죄로 보아야 하느냐, 그리고 모든 남자를 잠죄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는거 아니냐?"
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을 그렇게 해석하고 딱 그 틀에서 논쟁하는 사람들의 바닥에 깔려 있는, "이성혐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과 논쟁. 그게 이 사건의 훨씬 중요한 측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하느냐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이성혐오'의 원인을 이야기하자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 자체의 해석을 두고 논쟁하실거면 다른 글에가서 해주세요.
그 논쟁은 절대로 정상적인 논쟁이 될 수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논쟁을 아무리 길게 해봤자 새로운 결론도, 발전적인 해결책도 안나올테니까요.
그러니까, 이 사건을 이성혐오 범죄로 볼거냐, 지나친 일반화다. 하는 그런 논쟁은 다른데가서 해주세요.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볼게요. 제 시각은 이거에요.
이성혐오의 본질은 자원의 분배. 심플하게 말해 '돈 문제'다.
네. 딱 잘라 말할 수 있어요. 여성혐오, 남성혐오의 본질은 돈 문제에요.
자, 여혐 논리의 핵심은 뭔가요?
"한국 여자들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없다."
"한국 여자들은 돈 (능력) 보고 남자를 고른다. -> 남자에게 의지해서 인생을 해결하려 한다."
이거죠? 이 논리를 기반으로 혐오 정서가 쌓입니다. 한국 여자들은 의지가 없고 능력 있는 남자만 찾는다.
자기가 잘해서 어떻게 해볼 생각을 안한다. 이게 기본이고 그 위에 다양한 개인적 '사례" 나 '경험'을 통해 이논리를 강화합니다.
남혐은 이것에 대한 유치한 반발에 불과합니다.
왜 유치하냐구요? 여혐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만큼이나 똑같이 멍청하니까요.
둘 다 문제의 본질을 못 보고 이상한데 총질을 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멍청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돈인데, 남자는 여자를 , 여자는 남자를 공격하죠.
한가지 물어볼게요. 과학이 뭡니까? 과학의 발전이라는게 뭘까요?
스마트폰? KTX? 초고속 인터넷? 졸라 짱 멋진 어벤져스를 만들어주는 화려한 CG?
아니요. 과학의 가장 큰 혜택은 그게 아니에요.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사고'를
'객관적이고 일반화 가능한 하나의 논리'로 대체해준다는거에요.
과학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내 주변 사람은 그렇던데, 내 주변 사람은 아니던데, 이런 개인적인 사례의 집합말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사고해봅시다.
간단한 통계를 하나 보죠.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남성 월 평균 임금이 270만원, 여성의 경우 174만원 정도되네요.(2014)
자 그럼 가구별 생활비를 보죠.
서울 거주 가구의 한달 평균 생활비를 봅시다.
3인 가구 355만원. 4인가구 465 만원.
감이 오시나요? '평균적인' 남자와 여자의 임금을 합치면 440만원.
4인가구 생계를 꾸릴수가 없습니다. 꾸리려면 좀 많이 아껴야겠네요.
3인가구를 기준으로 해볼까요? 90만원이 남는군요. 학자금 대출 받았죠? 갚으셔야죠.
이런, 차를 뽑으셨군요? 갚으셔야죠? 이런, 전세대출을 받았군요. 갚으셔야죠?
결론은 뭘까요?
"평균적인 남녀의 임금으로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이게 결론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돈 들어갈 일이 생길테니, 사실상 빚안지고는 못 산다고 봐야죠.
자 그럼 한가지 더 살펴보죠. 여자들 임금이 왜 그렇게 낮을까요?
사실 대부분의 남자분들 잘 실감안날거에요.
특히 젊은분들은 더. (20대?) 내 주변에 나보다 잘벌거나 비슷한 여자들 많던데?
아니요.
결혼하고 애 낳은 뒤를 생각하셔야 되요. 결혼하고 애 낳으면 여자들 좋은 직장에 있기 힘듭니다.
대부분 처녀 때 다니던 좋은 회사보다 못한 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여성 평균임금이 낮아지는 이유 1위가 바로 출산/결혼후 경력단절과 이직이거든요.
가,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봅시다.
남혐/여혐 현상의 원인이 왜 돈문제냐구요? 머리 돌아가시는분들은 이미 감왔을거에요.
여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전보다 훨씬 못 한곳으로 이직해야 합니다.
이게 대부분의 '평균적인' 여자들의 삶이에요.
"니가 능력을 키워." 라구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네요.
그럼 한국 남자들은 왜 회사에서 짤리고 치킨집을 차리나요? 니가 못나서 그런거지.
남들은 과장달고 부장달고 이사달고 잘만 살던데 넌 왜 짤려서 치킨집 차려요? 니가 못나서 그런거지.
기분나쁘죠? 이게 여자들이 느끼는 감정일거에요.
이건 구조적인 문제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심지어 여기서도 여자들은 내쫓기기 일수죠),
혹은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갈 수 있는 여성의 비율은 한정되어있어요.
결국 대다수는 이 고리를 못 벗어나죠.
"니가 능력을 키우면 되지." 라구요? 지금 20대를 보면 뭐 느끼는거없어요?
지금 대학생들 90년대 대학생들하고 비교하면 말도 안되는 고스펙이에요.
지금 밖에 나가면 발에 채이는 자격증 몇 장씩 들고 봉사활동에 어학점수에 인턴경험 있고 어쩌고 하는
대기업 못들어가는 젊은 친구들, 90년대 대학생들 중 몇 명이나 그렇게 고스펙일것 같아요?
잘못된 구조를 고치지 않고 모든 개인이 노력하면, 결과는 '내삶의 개선' 이 아니라,
경쟁의 과열이에요. 같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같은 돈을 받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이게 구조를 고치지 않고 개인이 노력했을 때 도착하는 유일한 귀결점이에요.
여자들의 경제적 지위가 그렇다는거에요.
아 , 물론 이런 문제는 다 제쳐두고 여자들아 당당해져라, 니들이 능력을 키워라, 인식을 바꿔라.
이런 이상한 논리로 여혐 정서에 편승해 잘 나가던 모 강사도 있었죠.
구조 얘기는 다 빼놓고 여자들에게 인식을 바꾸라고만 하는거에요.
그걸 현대적인 여성상인양 포장해서 여자들에게는 멋진 여성인것 처럼,
남자들에게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에게 문제의 초점을 옮기는 논리를 팔아서
돈벌던 강사도 있고, 심지어 그런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저렴한 tv 프로그램도 있었죠.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 강사나 그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데이터'가 아니라 '사례'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키워갔겠죠.
솔직히 말씀 드릴게요. 저도 여자들 기분 잘모르겠어요. 난 남자니까요.
난 그런거 안겪어봤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아냐구요?
전 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를 신뢰합니다. 저한테 과학은 스마트폰 게임이 아니라,
제 개인적 경험이나 개인적 편견을 수정해주는 도구거든요.
그런데 모든 데이터가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자만 못 하다는 결론밖에 안내줘요.
자 , 다시 논의로 돌아가볼게요.
남녀 불문하고 제가 말씀드린 데이터 알고 계셨던 분 ,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보신분 몇분이나 되죠?
진심으로 고민해본적 있으세요?
"결혼하면 내 수입이 저렇게 떨어질거고, 애 둘 낳으면 아무 큰 일없이 살아도 빚이나 안지면 다행이겠구나.
애 하나만낳아도 버겁겠구나"
이런 고민 안해봤죠? 내 주변에 애들 대부분이 저렇게 사는거에요. 누구만 빼고? '돈 많은 남자' 만난 애들만 빼고.
이런 현실속에서 사랑하나 믿고 결혼할 수 있어요? 남자들은 이거 못느끼겠죠.
솔직히, 적어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자들은 자기 주변에 그런일이 워낙 많으니, 불안하지 않을수가 없어요.
다 불안한거에요. 근데 자기 능력으로는 해결이 안돼. 그럼 결국 능력있는 남자를 우선적으로 보게 되는거에요.
그리고 남자들은 이 아래 깔려있는 구조적 문제는 다 무시하고
'니들은 왜 권리만 찾으려고 하고, 남자한테 의지해?'
라고 되물어요.
'우리 이렇게 힘든데, 너네는 왜 노력안해?'
'너는 왜 돈많은 남자 만나서 인생 편하게 살 생각만해?'
라고 물어봐요. 그럼 여자들은 화가 나는거죠.
네, 물론 사랑하나만 보고 돌진하는 여자도 있겠죠. 그리고 사람들은 또 그 '사례'를 두고 그렇지 못한 여자들을 비난해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지금 대한민국 젊은 남녀들 왜 그렇게 고시원으로,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나요?
왜 대기업, 공무원 시험에 목매나요?
중소기업 가세요. 아니면 빚 내서 사업 하나 하세요.
그정도 용기도 없이 이 험한 세상 어찌살려고 그래요?
이렇게 물으면 다들 이렇게 대답할거잖아요.
"안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거에요. 현실이 그렇잖아요."
맞아요. 지금 여자들이 느끼는게 그거에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여자들은 이런 세상에서 돈 많은 남자 만나서 너무 행복할까요?
생존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고를 때도 생계부터 고민해야하고, 내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요?
다 똑같이 불행해요. 이걸 좀 인정해줘요. 이 구조 아래에서는요, 다 불행해요.
여자들이 속물이라고 욕하는 남자의 대부분도 불행하구요.
여자들도 그만큼 불행해요.
신기하죠?
근데 이 시스템이 유지되야 되는 합당한 이유가 딱 하나에요.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해피한 시스템이에요.
돈이 덜 나가거든. 여자를 남자만큼 안줘도 되니까.
결혼하고 애낳는, 소위 생산성 떨어지는 '여자' 내쫓으면 되니까.
작은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여자를 적은 임금주고 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거에요.
왜 언론에서 아무도 이 문제를 얘기 안할까요?
당장 내일부터 입법해서 여자들 못 자르게 하고 임금 격차 없애봐요.
대기업 회장들 다 링거꽂고 병원갈거에요. 혈압 터져서.
그리고 여러분은 행복하겠죠.
짤리지 않아도 되는 여자들은 당당해질거에요.
내 아내가 돈을 잘버니 남자들도 삶이 윤택해질거에요.
돈없는 남자들은 '내가 먹여살리지 뭐.' 라고 말하는 당당한 여자들을 만나기 쉬워질거에요.
이게 바로 남혐/여혐의 원인인거에요.
의식 문제를 얘기하려면, 우선 구조를 만들고 나서 얘기해야되요.
공정한 구조가 만들어져야 개인의 인식을 탓할수 있는거에요.
구조자체가 기형적이면 다 저살기 바빠서 개판되는게 당연한거에요.
그리고 이 문제는 일부 남자들이 여자의 인식을 비난하고
메갈리안 어쩌고 여시 어쩌고 한다고 해결되는것도 아니고,
일부 여자들이 한남충 타령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에요.
이 문제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고,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서 해결해야되는 구조적 문제인거에요.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은,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이익이에요.
우리가 이상한데 총질하면서 에너지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요.
우리가 조금만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싸워나가면 충분히 해결가능한 문제고,
그 결과는 모두의 행복이에요.
하나만 기억해요.
눈 앞에 있는, 혹은 키보드 너머에 있는 그 사람도 나만큼이나 불행한 사람일거에요.
신문기사에, 뉴스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그 사람들도 나만큼이나 불행한 사람일거에요.
그리고 그 사람 역시 잘못된 구조의 피해자에 불과해요.
그 사람들이 내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그 사람들과 싸우는건,
아무것도 나아지게 하지 못 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만들거에요.
이걸 인정하는게 바로 '연대'라는거에요.
저 사람도 나만큼 불행하구나. 저 사람도 나만큼 힘들구나.
저 사람이 맘에 안들지만, 저 사람의 이야기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함께 싸워나가야겠구나.
함께 싸울 수 있겠구나. 그래야만 더 나은 사회가 되겠구나.
부디 그걸 기억해주세요.
그럼 이만, 긴글 마칩니다.
한번쯤 이문제에 대해,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 전에,
나는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