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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머리를 감기 싫다고 생각했다
우산이 없어 어깨가 젖었음에도
손가락의 상처는 이제 다 아물었는데
거품을 내주던 손을 제대로 보지 못해
하얀 욕조 속은 캄캄할 뿐인
웅크리지 않고 두 발로 곧이 서서
아니 실은 당신에게 기대어 있었다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 것마저 처음 같았기에
나를 웃게 한 우리의 흔한 냄새는
내가 굽힌 무릎에 머리를 가까이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언제나처럼 쉽게 잠들고 싶은데
지금껏 숨겨온 외로움을 들키기 싫은 마음이
누군가의 품에 안긴 채로만 깨칠 수 있는 사실에
당신은 마치 나도 볼 수 없는 내 얼굴이 보인다는 듯이
울지 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어쩌면 내 왼쪽 뺨에 맺힌 눈물은 눈물이 아닐지도 몰라서
시린 손조차 당신이 아닌 내 것이었구나
아는 척했지만 잘 모르는 사실이 수두룩했음을
입은 목소리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또다시 내가 있는 이곳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아
나만 빼고 모두 알고 있었다고
그 애는 왜 날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건데
그늘 안에서 가만히 한 사람을 기다려본 적 있다면
닿아야 할 곳에 닿길 바라며 무작정 던진 고백이 나를 못살게 해
어제 내 꿈에 네가 나왔어 그러면 당연하지 하고 답하던
짧디짧은 너의 시가 꼭 너의 사랑 같다는 감상에 웃어버린
잘게 떠는 창문 앞 뭉툭한 모서리에 자꾸만 몸을 부딪쳤다
그러다 가방 밑의 짙은 얼룩을 그대로 둔 날
금이 간 종이책과 그 위의 얼굴을 더듬은 날
붙일 수 없는 부러진 귀 하나를 감춘 날
굳은 달팽이 그리고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건드린 날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흑백사진을 상상한 날
기억해줘
무엇을
내가 한 말
그 순간이 끝이었던 날
집에선 요새 비가 오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갈 때 즈음엔 아마 계속 비가 올 거라고 해요. 장마철이라고.
왜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없는 걸까요. 왜 나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디지털카메라를 사려 했는데 저는 그냥 필름카메라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지울 수 있는 게 싫어서. 친구 아버지한테서 필름 인화하는 방법을 배우려고요. 졸업하기 전에.
말을 잘할 줄 알았으면.
출처 | blog.naver.com/rimbaudiz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