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티비도 잘 안 보고 드라마도 잘 안 본다. 그런데 우연히 심심해서 채널 돌리다 발견한.. 그것도 꼴랑 이십분만 봤다가 그대로 덕통사고 당해버린 이 드라마가 너무 사랑스럽고 이대로 혹시나 묻힐까 아쉬워 되도 않는 글이라도 써서 영업 좀 해보고자 자판을 들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푹 빠질 수 있을만한 로코가 등장한 게 반갑고 독특한 캐릭터성이 좀 더 깊게 혹은 입체적으로 회자되지 않는 것이 매우 아쉬워서 쓴다. 아마 작가나 감독은 높아져 가는 시청률 추이에 기뻐하면서도 어딘지 미진한 느낌이 들겠지. 이 글이 그들의 고심과 노력에 대한 소소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드라마를 안 보았다면 한 번쯤 보고 이 글을 읽는 걸 추천하며 이미 보았다면 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보면서 소소한 재미를 찾길 바란다. 사실 스포가 많지만 알고 봐도 재미있다.
먼저 결과부터 언급하고 넘어가보도록 하자. 이 로코물의 남주와 여주는 멀쩡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꽤 진상들이다. 물론 이쁜 진상들이지.
이하 전혜빈의 오해영은 전해영. 서현진의 오해영은 서해영으로 언급하겠으므로 주위 깊게 읽길 바란다.
참고로 꽤 길당.
1. 미친 여주
일단 여주가 미쳤다.
로맨틱 코메디에서 여주가 미쳤다는 게 이해가 안간다면 서해영(서현진이 연기하는 오해영)을 배 아파 낳고 32년간 육성하신 친모의 증언을 들어보자.
"우리 해영이 내다버립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메친 년이예요."
그렇다. 친모가 보증한 미친 여자다. 극소수의 예외(장윤정의 사례같은...)는 있겠지만 친모의 발언만큼 신뢰도 높은 워딩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여주가 전후사정을 숨긴 탓(파혼 당한 걸 숨김)에 엄마가 상황파악을 못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주 본인은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본인의 발언을 참조해보자.
"나 원래 이렇게 말 쎄게 하는 스타일 아니예요. 제가 미쳐서 그래요."
이쯤 되면 확인사살이다. 금테 두른 품질보증서를 발급해주고도 남는다. 술 처먹고 집 열쇠 잃어 버리고 가스렌지도 안 되서 옆집 남자가 타준 차 한 잔 마시며 함께 녹아가는 몸과 마음으로 서해영 본인이 직접 말한다.
결혼 전 날 일방적으로 차이고도 자존심 때문에 어디 말도 못하고 오히려 내가 엎은 거라고 속시원하다고 겉으로만 밝은 척 연기하던 여자가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던 남자에게 무장해제 당하던 순간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기. 밤바람이 따뜻해지는 계절에 날씨까지 너무 좋아서 오히려 더 미칠 것 같다는 여자를 앉혀 놓고 남자는 자신의 사연과 함께 빗소리 담긴 테이프를 들려준다.
그런데 3화의 이 장면까지 비 내리는 씬은 딱 한 번 나왔었다. 박도경의 파탄난 결혼식. 자신이 차이던 그 날의 빗소리를 자신과 같은 아품을 가진 여자에게 공유해준 것이다.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던 나쁜 남자의 희소한 오지랖.
그렇다. 이 남자... 선수다. 너 이 새끼.... 좀 하는 듯. 동정심 자극, 공감 형성.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여담이지만 왠지 이 장면 꽤 초창기에 찍은 장면 같다. 바퀴 달린 책장이라던가. 이 장면이 관계를 설정하고 감정선을 잡은 뒤 몰입도를 높이기 좋은 장면이라는 점 등등.
하여튼 여주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증거는 더 있다. 술 먹고 도로횡단 해대가며 남의 지갑이나 주으러 다니는 장면도 그렇지만 가장 압권인 건 오늘 처음 본 맞선남에게 '일주일만에 자빠뜨린다'고 말한다.
쎄다... 강적인듯...
이런 여자. 드라마니까 웃으면서 보지 실제로 보면 무섭다. 아무리 이뻐도 소용없다. 그냥 이쁜 미친 X인 거다.
만약 현실에서 당신의 실제 친구가 이랬다고 해보자 여자라면 이 뇬이 진정 미쳐돌아가는구나하며 머리끄뎅이 잡으러 가거나 부모님께서 다리몽뎅이 분지를 때 쓰실 몽둥이 공구해줄 사람이 수두륵할 것이고... 친구가 남자라면 이 새뀌 조만간 은팔찌 철컹철컹이라며 야외불법뇌수술을 단행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박도경의 지갑을 주워주고 콧대 보강수술 대신 술 얻어 먹던 그날.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했던 발언들도 의미심장하다.
왜 이 좋은 술을 안 먹느냐는 서해영의 물음에 박도경이 실수할까봐 안 먹는다고 하자 서해영은 음흉한 웃음과 함께 무슨 큰 실수냐고 묻는다. 백미는 그 다음 대사다.
"여자는 아무리 술에 떡이 되도 절대서 해선 안 되는 (말)실수는 안해요.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우리...모르는 사이 될래요?"
서로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사이. 술 먹고 하는 실수. 맛선남에게 첫날부터 자빠뜨린다 운운하는 여자. 거기에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하룻밤 상대에 대한 스타일을 종합해보면... 어이, 티비엔... 이 드라마 15금으로 괜찮은 거냐???
여기서 뭔가 촉이 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순수한 마음 계속 간직하길 바라고... 이제야 촉이 온 사람은 반성해라. 좀 일찍 눈치채야지 말해줘야 알다니 너님 감 죽은 듯. 정진해라. 신사숙녀의 길엔 일로정진만이 있을 뿐인거다.
물론 박도경이 말한 실수는 엄한 남녀 결혼 파탄낸 걸 말하는 것이지만 서해영은 그 사실을 모른다. 이 여자는 술 먹고 할만한 '실수'에 대해 뭔가 혼자 음흉하게 떠올리고는 찔러본거다. 아닌 것 같다고? 이번에도 서해영 본인의 자백을 떠올려 보자.
"그냥 술 취해서 한 말이야. 나 취하면 좀 들이대. 아무나 막 찔러봐."
6화에서 녹음기 사태에 멘붕하고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서해영의 말이다. 그냥 한 소리 일 수도 있지만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이 여자... 과거가 심히 궁금한데...
박도경 도망쳐. 네가 감당할 만한 여자가 아냐.
머... 사실 맞선남의 경우야 자격지심+똘끼의 융합으로 대책없이 질러 본 말일 가능성이 높고 서해영도 차 안에서 '말실수'라고 분명 말했으니 어디까지나 망상력 폭발한 음란 신사숙녀의 자폭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자폭이면 어떻단 말인가. 이 길의 험난함은 그 정도 풍파에 굴하지 않는 법. 솔까 너님도 나랑 다르지 않지 않음!?
무엇보다 잊으면 안 된다. 이 여자... 남자의 상반신 나체를 고개도 안 돌리고 위아래 스캔하며(오오하는 입모양에 주목) 뒷태 감상까지 마친 여자다.
현실에서 안면만 있달 뿐 잘 모르는 남정네가 수건 한장 걸치고 눈 앞에서 돌아다니는데 이렇게 차분한 감상을 실제로 할 수 있을 법한 여자... 거의 없다. 있으면 도망쳐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아냐.
여자 나이 이팔청춘(16)이 생기발랄하다면 여자 나이 서른 둘은 색기발랄할 나이다. 자연의 섭리인 것.
고로 15금에 걸맞는 하드코어 꽁냥질을 기대해보자. 덥썩덥썩 잘 안기는 미친 여주이니만큼 높아진 우리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 티비엔 너 이새끼... 빠이팅.
2. 표리부동 (이 구라쟁이들)
이 로코의 등장인물들이 진상... 그것도 입체적인 진상들이라는 또 다른 증거들은 수없이 반복되는 언행불일치에서 드러난다.
콩깍지를 내려놓고 얘네들 하는 짓들을 가만히 보면 내로남불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엿듣지 말기. 시끄럽게 하지 말기. 이 두 개만 좀 지킵시다!"
캔맥주 후르릅하며 코미디프로 보다가 옆집 사내 등판하자 살금살금 다가가 엿듣기 시전중이던 사생팬(서해영)에게 일갈하신 박도경 선생의 발언이다.
근데 대부분 알다시피 박도경 본인이 사생활 침해의 끝판왕 급이다. 정작 엿듣기는 지가 더 많이 했다.
그래, 좋다. 음향기사니까. 소리민감도 만빵에 연상능력 우수. 고퀄 청음 패시브 장착이라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들렸던 것 뿐이라고 실드 한 번 쳐보자.그래도 서해영이 엿듣다가 걸린 건 도경 엄마 등장씬이 끝이었다.
사실 이 여잔 애초부터 엿듣기 레벨에 만족하는 소심하고 얌전한 여자가 아니다.
무단가택침입(이삿날), 재물손괴(짱돌 던지기), 협박(이사도라 지구종말전 살인 운운)의 트리플 크라운에 빛나는 똘끼 만땅 잠재적 범죄력 충만한 여자다.
...박도경 이대로 괜찮냐... 오해영이란 이 이름엔 마가 낀게 분명하다.
아무튼 서해영의 엿듣기가 단 일회, 그것도 미수에 그친 것에 불과하다면 박도경은 직업 직능에 걸맞게 수차례나 발각되지 않고 엿듣기를 성공하셨다.
서해영 모친의 불신검문이 있던 날.
'개가 똥을 끊지 니가 술을 끊어?', '이 게으른 년이 비밀번호를 바꿔? .... 도둑을 맞아도 안 바꿔, 이 년은.'의 이연타 연속기가 작렬할 때 박도경은 똥그래진 눈으로 분명히 청취하셨음을 명징하게 보이셨다.
이 남자의 치밀함은 이것만이 아니어서 서해영이 도저히 찾아올 수 없는 오지(양수리. 또한 서해영은 차도 읎음)까지 진출하여 불법 취득한 녹취본을 청취하는 범상치 않은 내공을 보이기도 한다. 범죄란 어떤 것인지 실례로 보여주는 훈훈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가히 프로페셔널!
먼 커플이 둘 다 훌륭한 범죄자들이냐... 뭐. 솔직히 더 이상 녹음하지 말라고만 했지 있는 것도 다 지우라고는 하지 않았던 서해영의 허술함이 일궈낸 참사이긴 하다....
박도경 너 임마 듣고 싶어도 범죄가 아니려면 당사자(서해영)에게 해당 사실을 충분히 고지(들어볼거야)한 후에 당자사가 동석한(옆에 앉아봐) 상태에서 같이 듣고 난 뒤 이와 같은 사실(똥방귀)이 있었음을 확인(이 소리 니 꺼야?)받고 그랬어야지. 그렇게 몰래 혼자 듣고 그러면 안 돼.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니 담부터는 꼭 지키길 바란다.
무엇보다 방귀소리도 스킵하지 않고 끝까지 듣다니... 훌륭하다. 대한민국 상변태의 앞날은 밝구나. 하긴 잘 생긴 변태는 레어한 것이다. 가치가 높아.
아무튼 이런 우스개 소리 외에도 진지한 측면에서 그들의 표리부동함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해영은 웨딩사진첩을 한강에 불법투기하고 돌아온 다음(훌륭한 경범죄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며 '이리저리 재지 말고 발로 채일 때까지 사랑하자'라며 벚꽃 날리는 아름다운 장면을 배경으로 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결심한다. 그리고 몇 화도 지나지 않았는데 친구한테 투덜거리며 말한다.
"(박도경에 대한 마음)이제 접을꺼야. ...전해영이랑 사겼잖아!"
재지 않고 발로 채일 때까지 사랑하겠다던 결심은 사라지고 '난 3급수, 전해영이랑 사겼던 박도경은 1급수. 어차피 힘들 꺼야. 그러니 내 맘 접을 래'라는 심리다.
가히 우디르급 태세전환이다.
이 뇬아... 아직 그 장면 짤로 찌는 사람이 수두룩해... 몇 화나 지났다고...
솔직히 이해는 충분히 된다. 파혼당한지 얼마 안 된 여자 입장에서 아무리 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지만 그게 정말 말처럼 쉬울까? 아직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관심가는 남자가 빵빵하고 업된 방댕이와 잘빠진 기럭지의 소유자(쓰읍)라지만 본능은 본능이고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다.
우리 사귀자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얼마 전 결심처럼 다 줄 껄 각오하고 들이대는 건 말 그대로 '쉬운 여자'인 것뿐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 주면 사랑이 시작되기는 하나?
서해영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신이 '쉬운 여자(6화의 발언 참조)'이기는 한데... 여기서 쉬운 여자란 건 쉽게 반하고 쉽게 눈길 주는 정도이지 희진의 조언처럼 '덮쳐버리는' 수준의 엉덩이 가벼운 여자는 아닌 것이다.
고딩때 3급수끼리의 미팅에서 혼자만 좋다고 헤벌쭉 대던 서해영이 세상풍파 겪으며 이만큼 성장했달까. 장하다, 서해영.
3. 애잔한 찌질함
이렇게 흔들리는 여자 서해영에게 생일날 '있든 거야'하며 애써 의미부여하는 것에 선을 긋는 남자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기쁘고 귀여웠는지도 모른다.
선물부터 안주까지 고심한 흔적이 딱 보이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있든 거야'라니... 아마 속으로 이러고 있었을 거다.
"알아요. 요런 거 같은 거. 있던 거~."
[번역: 이거 내가 예전에 다 해봤던 거라 잘 안다. 티 안낼라고 애쓰는 거. 마음은 있는 거~]
다시 말하지만... 본인이 말했듯 이 여자 무지 재던 여자다. 입 터는 것도 대학교 가고 나서였고 최소한의 쫀심이나마 지켜보려고 이리저리 재어가며 남들 찔러보고 간보고 다니던 여자인 거다. 박도경의 어설픈 재보기가 통할 상대가 아냐.
자기만큼 불행한 남자라는 사실을 딱 두 번 보고 알아채는 불행력 측정용 스카우터를 자체 내장한 이 엄청난 촉의 소유자 앞에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있든 거야'라니... 이건 관짝 닫는 그 날까지 간다고 본다.
박도경이 건넨 선물을 보며 서해영의 광대가 끝없이 승천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 촉 좋고 밀땅쩌는 여자(진짜 고수다 해장국 먹이며 바가지 긁을 때 끝는 걸 보라)는 남자의 표정과 말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력으로 박도경에게 자신이 비빌 여지가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닐까.
녹음본 공개 이후 서해영이 진짜 펄쩍 뛰며 박도경을 몰아부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것보다 서해영에게 가장 짜증나게 들렸던 것은 이 말이었을 것이다.
"나 같은 놈 좋아하지도 말고"
이 남자도 자기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 비벼볼 여지가 있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순식간에 딱 잘라버리니까 빡이 치는 것이다. 근데 거기에 전해영(전혜빈의 오해영)까지 찾아와서 초를 치네? 얼레?
난데 없는 속마음 공개도 부끄럽고 선긋기 시전하는 남자도 짜증나고 또 뭔 소리를 나눌까 궁금은 한데 몰래 엿듣자니 남자 눈치는 보이고 자존심도 상하고 일단 나가서 방황은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빡이 치는 거다.
짱돌 던지는게 뜬금없다하는 사람도 있는데... 불 안지른 게 용할지도 모른다. 이미 몇 번 말했지만 이 여자 형법 민법 가리지 않고 전적 화려한 잠재적 범죄자다.
생각해보라. 내 생일에 '내 공간(짜투리에 불과하지만)'에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제일 껄끄러운 여자가 같이 있는 거다. 실제와는 상관없이 기분만 따지자면 전부인이 찾아왔다고 부부싸움중에 안방 내어주고 쫒겨난 격.
그래서 이 년놈들 다 미웡! 먼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엿이나 먹어라! 하며 근처 짱돌이나 주워다가 던져버린 거다. 물론 작가나 감독은 내가 던진 돌에 맞은 새라는 표현과 묶어서 짱돌을 던지는 걸로 했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서해영이 박도경의 마음에 돌을 던진 것이 된다. 박도경과 전해영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달까.
박도경 입장에선 재물손괴지만 서해영 입장에선 내 공간에 불법침입한 침입자(전해영, 이 도둑고양이 같은 계집)에 대한 응징이자 박도경에게 대한 경고(얼뚱한 짓 하지마. 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였던 것.
이렇게 이해하면 남자랑 꽁냥질 중이던 친구집에 찾아가 시무룩 해 있다가 박도경이 문자 두 마디에 개처럼 뛰어간 것도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들어와 자', '아무말 안 할 게'
어찌 보면 별 뜻 없고 걍 걱정되니 들어오라는 걸로 끝이며.... 남자가 오랬다고 바보같이 헤실거리며 달려가는 서해영이 레알 베알리스 같겠지만 서해영의 입장에선 다른 의미가 되고 만다.
'들어와 자라는 걸 보니 내 집에서 고 년 나갔구나. 아무 말 안 한다는 것도 내가 깽판친 거 이해해준다는 뜻인가?'
하여튼 이 장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타고 가는 서해영이 주인이 부른 강아지 같다고 말하는데 의외로 정답일지 모른다. 외형도 본질도.
서해영이 짐짓 화난 듯 쿵쾅대며 들어와 제일 처음 묻는 말을 들어보자.
"오해영 왜 왔대? 또... 오나?"
간단히 생각해보면 너희 다시 시작하는 거냐고 애둘러 물어보는 것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영역표시를 확인하는 발언이다.
서해영이 개도 아니고 설마 그럴까 싶겠지만 영역표시와 비근한 연출은 이미 예전에 나온 적이 있다.
처음 이사 오던 날 박도경의 집에 서해영이 하얗고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박도경 혼자만 부유하던 공간에 왠 여자가 난데없이 난입해서 제멋대로 흔적을 남기고 돌아다니는... 넌 더 이상 이 공간에서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암시하는 장면이다.
돌이켜 보면 이 드라마는 친철한 듯 하면서도 결코 친절하지 않다. 엉성하게 보이면서도 결코 엉성하지 않은 인물관계처럼 이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의 독백으로 심정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의외의 장면에서 그들의 심정을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상업적인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작가나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런 스탠스를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해영이 희란이에게 썸 타는 것처럼 속이자고 했던 제안이 사실은 '떠보는 것'이었음을 고백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술에 떡이 되서 돌아온 남자에게 콩나물 해장국을 차려주며 살살 바가지 긁다가도 남자가 정색하니 바로 끝어주는 기가막힌 밀당 타이밍을 보여주는 서해영의 스킬도 굉장하지만 뜬금없이 자신과 사귀는 것처럼 해서 전해영을 엿 먹여보자고 박도경에게 제안하는 게 더욱 놀라운 부분이다.
이 여자 '내가 너희들 연애사의 소모품이야? 사람 그렇게 함부로 쓰지마. 되게 미안한 거야 그거.'라고 화냈던 게 바로 어젯밤이다. 술에 떡이 된 남자 면상을 아침 내내 관찰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화가 풀리고 '그래 이 남자를 위해 한 번쯤 희생해보자'하는 희생정신이 솟아난 건가 싶은 장면이다.
그럴 수 있다. 술에 떡이 됐다고 해도 그게 박도경 면상이면 그럴 법하다. 솔까 박도경이 명동 한 가운데서 병신춤을 춰도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어머! 멋진 남자!'하는 사람 꽤 있을 껄.
물론 일부 촉 좋은 여자들 혹은 숱하게 당해본 남자들은 서해영의 목소리 톤만 듣고도 '아. 저거 덥썩 물면 X 돼는데. 저거 연기다.'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솔까 드라마 보는데 일일히 등장인물 의도 파악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리고 나서 회식자리 생쑈 이후 희란에게 하는 고백을 보며 서해영 역시 '오묘한 심리를 가진 천상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겠지.
이 글을 읽는 남정네들은 서해영 연기를 보며 복습해라 여자 목소리가 저런 톤이면 미끼를 물면 안 된다. 빙썅이나 어장 당하는 놈들은 필히 복습해라.
니들 연애사에 날 가져다 놀지 말라면서도 그냥 뒀다가 이 남자 그 여자한테 갈까봐 안절부절하는 소심하고 애틋한 찌질함.
막상 니들 결혼 파토낸 건 나다라고 말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이 깊어져서 그래서 깨져버릴까봐 더 말을 못하게 되는 소심하고 애뜻한 찌질함.
이 두 찌질한 캐릭터가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더욱 사랑스럽다.
p.s 연출의 디태일함과 의외의 허술함. 그냥 던진 맥거핀 같지만 의외로 복선 같은 요소도 말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길게 썼으니 남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