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윈스턴은 영국의 쉰들러 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영국의 주식거래인이던 1938년 스위스 스키 여행을 취소하고 프라하에서 난민들을 도와주던 친구를 방문합니다. 거기서 그는 669명의 (대부분이 유태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보내서 구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남겨져서 나중에 나찌의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Petr David Josek/AP) 사진은 체코 대통령이 윈튼 씨에게 체코의 최고 명예 훈장을 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2003년에 기사 작위를 받고, 작년 (2015년) 7월에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락방에서 예전 스크랩북을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그는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스크랩북에는 아이들의 이름, 위조 여권, 그리고 영국의 위탁 가정 명단이 있었지요. 1988년에 이 스크랩북은 BBC에 전해져 BBC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듭니다.
진행자가 "혹시 이 중에 윈튼씨 덕분에 산 사람들이 있으면 일어나 주세요" 라고 하자 스튜디오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구출된 아이들 중의 한 형제인 한스/게르트 파이기 형제가 전후에 적십자를 통해 받은 부모님의 편지입니다.
(형제는 나중에 영국식 이름인 존과 아서로 이름을 바꿉니다).
편지를 쓴 부모님 사진
(존 필드센드씨 개인 소장 사진) 필드센드씨의 어머니 트루드, 아버지 쿠르트, 그리고 그의 형이 드레스덴에서 1928년에 같이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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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에게
엄마가
너희가 이 편지를 읽을 때엔 전쟁은 끝났겠구나. 친절하신 전달자 분이 더 일찍 배달할 수는 없을거야.
우리는 너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구나. 너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어.
아주 짧은 시간만 우리 곁에 둘 수 있었지만 말이야.
잔인한 운명은 벌써 몇 달 째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단다.
1942년 1월에, 바일러씨 가족이 잡혀갔어. 우리는 아직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고 있단다.
6월에는 베티 할머니 차례였어.
9월에는 마리온 숙모, 빌리 삼촌, 파울리 삼촌이 잡혀갔어.
10월에는 슈타이너 할머니 할아버지가 잡혀갔고
11월에는 90살 되신 너희 증조 할머니와 베르만씨 가족들이 끌려갔구나.
12월은 우리 차례가 될거야.
이제는 다시 너희 생각을 하며 너희들이 좋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그리고 우리가 다같이 행복했던 시기를 생각해 달라고
부탁할 때가 된 것 같아.
우리는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끌려간 사람들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전해듣지 못했어.
너희를 이런 운명으로부터 지켜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렴.
너희는 딱한 너희 부모의 마음 한 조각을 담아갔단다. 우리가 너희를 보내기로 했을 때 말이야.
너희에게 잘 대해준 사람들에게 우리의 고마운 마음을 전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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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들었던 운명에 대해 너희 엄마가 이미 말해주었구나.
우리 또한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용감히 나아갈거야.
하느님이 뜻하신다면 우리가 너희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야.
우리를 잊지 말고 잘 지내라. 나 또한 고맙게도 너희를 받아 준 고마운 분들께 감사한다.
쿠르트/트루드 파이기,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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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구출된 한스 파이기 씨의 여행서류입니다.
서류 속의 꼬마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군요. 영국에서 입양되어 존 필드센드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성공회 (영국 국교회) 성직자를 하시다가 은퇴하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