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스포일러에 대해 좀 예민해져서...운 좋게도? 전혀 내용을 알지 못하고 곡성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전혀 모르고 봐서 그런지 초반에는 이게 대체 뭔 내용인가 싶더군요.
저는 원래 영화 리뷰를 즐겨 쓰는 사람도 아니고, 영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은 보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다만 곡성이...감독의 예전 작품도 그렇지만 난해?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글들이 보이더군요. 스압을 느낄 수 있는 자세한 리뷰도 베스트에 올라오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중요하게 보이는 영화의 주제를 언급하고 싶었기에 글을 씁니다. (아 그리고, 제 입장이 이 글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런 입장인지라 그런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죄송스럽게 그런 글들에 대해서 언급할 만한 처지는 아니라, 이 글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을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네. 곡성을 저는 전혀 난해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난해한 영화를 보고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 리뷰를 이래저래 찾아보곤 했던, 다른 영화들 봤을 때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영화관에서 한 번 본 영화라, 사실 다른 분들처럼 성실한 리뷰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 자체는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두서가 없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명확하게 아실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가장 첫 부분에. 누가복음이 나옵니다. 맨 처음에 성경 구절이 등장하는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잠언들) 작품들은 그 구절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구절을 한 켠에 지니고 영화를 내내 관람하였습니다.
사람이 죽는, 어떻게 보면 인간 사회에서는 가장 큰 일이 벌어집니다. 곽도원과 그 동료 형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처음 언급한 것은 독버섯이죠. 이것은 짧게 언급되고 빠르게 잊혀집니다. 보는 관객 분들 중에 많은 분들도 아마 빠르게 잊으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들어 보이는 큰일들이 연달아 터지기 때문입니다. 이건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몹시 공감하시게 되겠죠.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마을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은 독버섯으로 대표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자세한 것은 추측으로 밖에 알 수가 없고, 그 환각성 버섯을 재료로 한 약이 시중에 유통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가 버젓이 티비에서 나오는데도 관객과 영화의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거기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실제로 뭐가 일의 원인인지 대놓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게 미끼니까요.
그 동료 형사의 친척?이라는 견습 신부?(그 신부 계급 밑이랬는데 기억이 안나네요.)를 따라서 교회로 가는 씬을 떠올려 보세요.
영화에는 대사를 통해 아주 노골적으로 대놓고 영화의 메시지를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 장면도 마찬가지죠. 근대 교회의 신부님?으로 보이는 그 어르신이 말하는 것이 아주 압권입니다.
니가 직접 봤냐고. 교회에서 해줄 것은 없다고. 대충 이런 말들을 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굉장히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사실들을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단지 읽었다는 이유로,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는 이유로 신이 존재한다고 굳건하게 믿고 말하는 집단의 지배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요. (물론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반박하고 싶으신 분들도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더 인상적인 건 곡성이라는 작품 자체는 영화인데 말이죠...근대 이 영화의 메시지 자체가 “너는 보는 것으로 판단하고 믿고, 거기에 대해서 이미 결론을 다 내려버리는데 그게 맞는 것 같냐?”인 것도 굉장히 아이러니인 것이죠. 보여주는 것의 끝판 대장 정도로 취급해도 좋은 영화라는 매체가 자신을 해체하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죠.
이것을 알고 곡성을 다시 한 번 보면 영화가 약간 갑갑하고 지루해질 것입니다.
그 딸의 기괴한 행동?
성폭행 당해서 정신병이 온 것이죠. 두드러기는 실제입니다. 일본인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딸의 일기장, 그리고 두드러기를 확인하는 아버지를 대하는 행동, 대사...밤 중에 딸 아랫도리를 들추고 뭐하냐고 하죠? 그때부터 이미 딸에게 아버지는 딸을 강간하려는 개객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고 뭐고 쌍욕을 할 수 있는거죠. 앞 부분에 곽도원이 성행위 장면을 딸에게 들키고 그 뒤에 딸과 대화하는 씬...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죠? (그 두드러기와 육체적 질병의 표현들이 영화 내도록 나옵니다만 그게 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왜냐면 딱히 그건 영화 메시지 상에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우리 현실에서도 생각해보면 정보를 얻는 것에는 이처럼 명백한 한계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꽤나 명확하게 추측해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형사이자 아버지는 딸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주장대로 무속이라는 불명확한 것을 조금씩 믿어 버립니다. 그 때부터 이 가족의 불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딸이 처음으로 소리 지르는 장면이 기억이 나네요. 그 대사도 굉장히 노골적입니다.
무엇이 중하냐고 절규하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고.
중요한 건 뭐죠? 현실이죠. 성폭행 당하고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아서 마치 귀신에 씌인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딸과 마을의 죽이고 죽는 모든 사람들.
인간이 현실에서 고통을 너무나 받기 때문에 뭔가에 기대고 싶고,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하기가 쉽게 됩니다.
더군다나 마치 기적과 같은 일들이 영화에서는 연달아 벌어집니다.
벼락을 맞는다든지, 머리에 쇠스랑을 맞고도 한참 돌아다닌 다든지...그런 걸 보다보니 이게 현실에서 사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고 으레 착각을 해버리죠.
예를 들어, 일본인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고라니 시체가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곽도원의 동료 형사도 슬슬 일본인 괴담설?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근대 냉정히 생각해보세요; 고라니 시체랑 그 일본인 괴담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연관시켜서 맥락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죠. 영화에서는 누가 그런 걸 봤다고만 하지 실제로 일본인이 고라니를 먹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냥꾼의 집으로 찾아가서 증거 있냐고 묻는 장면도 인상 깊지 않나요. 증거가 있다고 하지만 그가 열어서 보여주는 냉동창고?는 텅. 비어 있습니다.)
영화는 온통 그러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끼가 만들어지면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관객들도 그것을 냠냠 먹는거죠. 자기 맘대로요.
심지어 미끼가 떨어지면 자기가 만들어서 먹는, 자급자족의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ㄷㄷ;
황정민이 살 날리는 장면 있잖아요? 그리고 일본인도 그 시간에 굿을 하죠. 마치 둘이 대결하는 것처럼 교차 편집을 해서 보여줍니다. 아마 많은 관객 분들은 둘이서 무속 대결을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겠죠;
하지만 영화의 메시지에 따르자면 그것은 그냥 별개의 사건이고, 관객들은 곽도원이 딸 때문에 흥분해서 굿을 망쳤기에 일이 망쳐지게 된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현실에서도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곽도원 가족들처럼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겠죠.
사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가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만약 곽도원이 조금만 더 침착하게 딸의 문제를 파악했다면? 심지어 처음에 독버섯이 몸 안에서 잔뜩 검출되었다고 말했던 그 처음 부분의 이성적인 형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곽도원 가족이 그렇게 망가졌을까요? 그 가족이 망가지게 된 근본적은 원인은 뭔 말도 안 되는 해괴한 것들에 홀려서 그것을 믿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꾸 행동하게 되니까 현실의 삶이 뒤틀리고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실 감독의 편견도 일부 있겠습니다만...)
끝부분으로 가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반전으로 보면 영화가 노골적으로 계속 외치고 있는 미끼를 덥석 물게 되는 것이죠. 메시지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감독은 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닭이 울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곽도원이 버텼다면 일가족이 무사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영화와 감독과, 심지어 어쩌면 현실에서도 미끼를 덥석 물고 낚여서, 이상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하게 됩니다. 좀 억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아놔, 그럼 영화인데 당연히 그렇게 생각되는 거 아냐?? 네 맞습니다. 그게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사람이라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라고요.
암튼 곽도원은 서로 지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천우희, 황정민에게서 빨리 벗어나서 자신의 현실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영화는 이제 작중 인물들의 대사를 빌어서 영화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나중에는 지쳐서 꿈과 현실조차 의심하는 곽도원처럼...그 감염된 (물렸잖아요. 근대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요. 영화에서 안 나오잖아요. 안 나오는 걸 추측하는 건 재미는 있지만 영화의 미끼를 아주 덥석 물고 음미하는 거겠죠.) 견습신부?도 일본인이 악마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인과의 고리를 영화는 항상 제공은 하고 있습니다. 근대 잠깐씩만 보여주는 일의 원인들은 전부‘현실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부가 환각을 보는 것은 자신의 손상된 육체와 거기서 비롯되는 나약해진 정신이 원인이죠. 일본인이 차에 치이고도 안 죽는 것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 자체가 그 질병?의 보균자잖아요. 사람이 머리에 쇠스랑을 찍히고도 한참을 움직이는데 차에 치이고도 살아남을만은 하죠. 그리고 결코 일본인이 악마가 아닌 것은 절벽에서 떨어져서 너무나 인간적이게 고통스러워하고 우는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왜 그런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영화에 그대로 넣었을까요.
그래서 일본인은 악마였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냥 환상을 보는 거죠. 그 일본인의 말처럼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죠. 일본인은 결코 자신을 악마라고 안해요. 와타시, 즉 그냥 나라고 이야기 하죠. 악마를 만들어 낸 것은, 같은 맥락에서 신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람입니다.
이것저것 말할 것은 더 많을 수 있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생각을 전한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 특히 곽도원의 처지에 공감해서 맥락을 만들면서 같이 따라가고 싶은 유혹을 배재하고 영화를 본다면...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사실 자기 할 말만 하는데, 여러 가지 노골적인 메시지는 마구 던지고 있다고 거듭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왜 곽도원이 이렇게 어리석게 자신의 가족을, 어떻게 보면 자신이 거들면서 파탄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옵니다.
딸 때문이라고 하죠. 딸이 아프잖아요. 살려야 되잖아요. 더 바꿔서 얘기하면 곽도원이, 자신이 살아야 되잖아요. 너무 아프잖아요 인생이. 그래서 뭐가 보이고, 맥락이 형성되면 그게 자신이 그렇게나 비웃던 거라도 믿고, 어리석게 행동하게 된다고요. 근대 저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그런 감정적인 부분에 의해서는 많이 공감이 되고 많이 짠하더라구요.
영화는 발칙하게도?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사이비이고, 그것은 니네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말하고 있고요. 허허허허...그리고 더 확장하면 사는 것 자체를 그렇게 살아요.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사람들이 근거없는 낭설들에 얼마나 휘둘리는 지 굉장히 쉽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식으로 사람들이 서사를 써재끼면서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는 일이 허다하죠.
사진기라는 너무나도 명확한 메타포를, 어찌보면 상스럽게까지 노골적으로 쓰는 걸 보니까, 영화의 메시지 자체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입니다. 천우희가 그랬던가요. 황정민이랑 일본인은 한패라고...? 근대 그 한패가 정말로 같은 한패인지는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죠. 나올 필요도 없구요. (오해할만한 단서들은 던져줍니다만, 그것은 미끼일 뿐입니다. 저도 황정민이 왜 훈도시 같은 걸 입는가 궁금하긴 했지만 뭐 무속인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미끼였겠네요. 흐흐...)
하지만 뭔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점에서는 명백히 한 패겠죠. 그런 점에서는 천우희도 한 패일 수밖에 없고요.
+추가. 아아아...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은 다 사람으로 강력하게 추정됩니다.
천우희도요. 마지막에 가지 말라고 곽도원 손 잡는 장면에서 곽도원도 놀랐지만 관객분들 중에도 놀라신 분들이 많았겠죠?
그 장면은 천우희가 사람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일본인이 자신을 와타시라고 한 것처럼, 천우희도 자신을 명확하게 말해줍니다. 그냥 ~하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살리고 싶어하는? 아무튼 그냥 "여자"라고 소개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인 곽도원 딸처럼 그냥 여자인거죠.
곽도원이랑 그 견습신부는 그 장면에서 왜 그렇게 그토록이나 절규하며, 일본인과 천우희에게 물어볼까요. 대체 니가 누구냐고. 정체가 뭐냐고.
이미 그런 의문이 발생한 순간부터 둘은 미끼를 물고 파닥거리고 있는 걸 지 모르겠습니다. 눈 앞에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 시작하니
거의 정신이 나가있는 거죠 뭐 ㅠㅠ.
좀 더 불경하게 말하면 님, 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하고 물어보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겠네요.
어떤 사람이 "내가 신의 아들이다"라면서 기적을 눈 앞에서 보여준다면...여러분은 그를 신의 아들이자, 신으로 여기시겠습니까?
곡성이라는 영화는 말하는 거죠. 응.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신으로 여기더라. 그래서 어떤 인생이 망가지더라.
+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인의 대사는 그 하나하나가 그냥 감독이 하고 싶은 말 내지, 영화의 주제라고 여겨집니다.
누가 널 가게 준대? 라는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만약 우리가 현실인식으로 관점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비현실적 관점은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매우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만, 읽어주신 분의 정성으로 말미암아 제 생각이 전달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혹~~~~~~~시라도 댓글로 뭔가 대화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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