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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개인적인 리뷰 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자발적인 영화 리뷰가 쓰고 싶은 영화다.
영화는 무려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만약 체험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는 단언컨데 아주 잘 만든 영화다. 몸이 아플 만큼 영화는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의 디테일과 완성도는 가히 놀랍다. 특히나 딸을 연기한 아역 배우는 올 해 본 배우 중 가장 놀라운 연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이 영화가 완벽하지만, 나는 충분히 유감스럽다. 리뷰를 쓰고 싶은 이 자발적인 마음 역시나 이러한 유감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유감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고통의 반복이다. 영화는 가장 다채로운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스릴러와 고어, 심지어 샤먼을 넘나드는. 마치 종합 선물세트 같은 고통을 보고 있자면 마지막엔 웃음이 나기에 이른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고통이 점차 반복되고, 그 고통의 강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쉴 틈이 없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밀어 닥치는 (심지어 강도가 쎄지는) 공포를 받아들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맥이 빠진다. 나 같이 불성실한 관객은 이러한 동어 반복을 쉽게 눈치 채곤 영화와 멀어진다. 이것은 분명 이 영화의 태생적인 한계다.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체감되는 공포가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저 '재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그런 글을 봤다. 해외 영화제에 간 어느 프로그래머가 외국 프로그래머에게 '한국인들은 다 싸이코패스 밖에 없나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 말이 나는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한국의 모든 영화들은 사건과 더 큰 사건들의 인과를 엮어 놓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관객을 위해서?' 나는 이것들이 전부 핑계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야기의 고민을 회피한 결과이며, <곡성>은 이러한 영화의 가장 극단에 있는 영화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다양성을 잃은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물론 자극과 자극만으로도 관객을 사로 잡을 순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 또한 놓치고 간다. (물론 마지막에서야 이 영화는 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 주려고'는' 한다.) 되물어 보자. 이런 자극이 없었다면 관객인 당신은 분명 '그래서 왜 이렇게 된거야?'라고 근본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을 것이다. 고로 속고 속이는 눈속임만이 이 영화를 채울 수 밖에 없고, 이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이자 그것을 가장 편하게, 혹은 영리하게 선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은 칭찬해주고싶다. (물론 질질끄는 리듬 만큼은 최악이다.) 결국 어떻게든 이 영화를 미봉하지 않았는가? 모든 신념과, 욕심을 다 싸그리 귀결시키는 악마의 등장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힘 만큼은 앞서 <추격자>, <황해>를 만든 감독의 능력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이것의 반복을 보고 싶지 않다. 특히나 이런 폭력이 스크린에서 재미라는 명목하에 15세 관람가를 다는 것이 충격적이기 까지 한다. 뉴스에서나 지껄이던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경각심을, 처음으로 나는 몸소 체험했고, 그걸로 이 영화는 충분하다. 이 영화는, 내게 아주 잘 만든 최악이다.
ps.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별점 10개가 충격적이다. 얼마 전 만난 여고생 하나가, 자기는 이 영화가 보고 싶지 않은데 이동진 평론가의 별점 덕분에 20명의 여고생이 다함께 단체 관람을 하러 간다고 했다. 이동진 평론가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이것은 유감을 넘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