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구로도서관에 갔다.
글쓰기와 독서가 피곤해질 때 쯤, 집에 가려고 하니 비가 왔다.
뚫고 갈 양이 아니었다. 나는 우산이 없었다.
룸메이트 J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이냐
- 아니 밖이다
바쁜 그를 방해해서는 안되겠지.
비옷을 만들기로 했다.
도서관 입구에 비치된 우산 담는 비닐을 다섯 장 뽑았다.
1층 종합자료실에서 가위와 테이프를 빌렸다. 비닐을 자르고 붙였다.
가까이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다. 나를 수상하게 여기는 듯 해서 말을 걸었다.
"누구 기다리시나 봐요."
"예. 애가.."
하며, 어린이 도서관을 손으로 가리킨다.
"전 우산이 없어요."
"네"
"그래서 비옷을 만들려구요."
"하하"
"잘 될진 모르겠네요."
그는 이제 내 관객이 되었다.
이제 나를 힐끔힐끔 보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 도서관 로비 구석의 한 평 남짓한 공간은 메이커스페이스가 된 것이다.
첫 시도는 실패했다.(왼쪽 그림) 머리에 넣을 구멍을 계산하여 둥글게 비닐 5장을 붙였는데, 입어 보니 구멍이 너무 컸다.
그리고 목에서 부터 멀어질 수록 비닐이 펄럭거리고 커버가 잘 안됐다.
두 번째 시도는 조끼였다.(오른쪽 그림) 팔, 머리 넣는 곳을 만들고 몸에 두른 다음, 앞섶을 여며서 입는 방식.
입는 과정에서 테이프가 뜯어지는 어려움이 잠깐 있었지만, 테이프를 보강하여 해결했다.
"저 좀 찍어주세요."
아주머니께 폰 카메라를 내밀었다.
촬영 : 구로구 주민
촬영 : 구로구 주민
"그냥 큰 비닐을 쓰는건 어때요? 청소하는 분께 한 장 얻어서, 머리 부분을 구멍 뚫으면... "
아...........
개허탈.jpg
맞다. 내 것 보다 나은 아이디어다. 더 빠르고, 쉽고, 방수가 잘 될 것이었다.
하지만 만든걸 포기할순 없다. 애정을 쏟아 부은 작품이니까.... 못 생겼어도 내 새낀데...
가위와 테이프를 반납하고, 나는 거지 같은 자작 비옷를 입고 도서관을 나섰다.
십미터 쯤 걸었을 때, 이 비옷의 가장 큰 문제점을 알아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머리와 얼굴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모자를 안 만들었나?
결함을 알았지만 돌아갈 순 없었다. 나는 내 발명품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한다. 적어도 지하철역 까지는...
머리, 팔, 다리는 젖었고 몸통은 안 젖었다.
가방도 좀 젖음..
급하게 만든 것 치곤 쓸만했다.
다음번엔 큰 비닐을 이용해 보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