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빠랑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 아빠가 굴다리 밑에서 토끼를 분양하는 걸 보셨다길래 룰루랄라 구경을 갔더랬습니다. 근데 토끼는 이미 분양이 끝났는지 안 보이고 사람들이 낙서판에 남겨놓은 메모만 있더라고요. 아쉬운 마음에 메모를 훑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이리와!!" 하는 외침이 들립니다. 뭐지 하는 맘에 고개를 드니 제 허벅지까지 오는 리트리버가 해맑은 얼굴로 똥꼬발랄하게 저에게 달려옵니다.
근데 저는 개가 무서워요. 게다가 제 키가 167인데 제 허벅지 중간까지 오면 엄청 큰 개잖아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소릴 지르니 저희 아빠가 얼른 저를 막아서며 "저리 가!!" 하시더라고요. (울아빠 쫌 멋졌음) 문제는 저희 아빠도 당뇨가 있으셔서 개에 물리거나 하면 큰일나거든요. 저는 개에 대한 공포와 아빠가 물리면 안되는데 하는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요. 물론 덩치큰 대형견들이 오히려 더 순둥순둥 하다는 건 알지만 머리로 아는 지식은 순간적인 공포감을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이눔시키는 계속 깨발랄하게 제 주위를 돌다가 주인이 오니 또 후다닥 도망가고... 다행히 주인되시는 분이 잽싸게 목줄 손잡이를 밟으며 검거하셨는데요 제가 겁먹은 걸 보시곤 "괜찮아요. 안 물어요."
................ 저 진짜 순간적으로 마구마구 따지고 싶은 걸 꾹꾹 삼켰어요. 물론 나중에 진정되고 나서는 일부러 놓은 게 아니고 순간적으로 놓친 것 같다거나 제가 너무 겁을 먹은 듯해서 안심시키려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거나 하는 것들이 떠올랐지만 그 순간은 원망스럽기만 하더라고요.
요즘은 많은 분들이 목줄과 배변봉투를 꼭꼭 챙기시는 걸로 알아요. 하지만 아직도가끔 보면 여전히 개만 쭐래쭐래 다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개들은 지들 딴에는 사람이 좋아서 막 쫓아오는 거라지만 저 같은 사람은 패닉에 빠져요. ㅠㅠ (심지어 몇 년 전에는 허숙희 세 마리가 하천가 공원 너른 들판에서 목줄 풀린 채 마구마구 뛰어다니는 걸 보고 혹시라도 제 쪽으로 올까봐 잔뜩 긴장해서 지나간 적도 있어요.. ㅠㅠ)
그러니 견주님들... 제발 외부에 나가실 땐 목줄 꼭 해주시고 가능한 단단히 잡아주세요.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럽고 어여쁜 가족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헤아려 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