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결혼과는 아직 먼 나이지만 즐겁게 결혼게시판을 눈팅하는 징어입니다. 이건 제 부모님 얘기에요!
아까 1 2 3으로 나눠올리다 너무 도배글같아져서 합쳐서 다시올립니다 말씀해주신 분 감사해요♡♡
작성자는 메모장에 글을 쓰다가 방금 싹 날려서 어이가 없으므로 음슴체.
제가 아주 어릴 적(초등학교 때)에 저의 아버지는 음식을 잘 만들지 않으셨음. 가끔 당신 드시는 라면 셀프로 끓이기 정도가 다인 데다 어머니께서 계시면 그나마도 어머니께서 끓여주심. 그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어머니께선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음.
어느 날 아버지께서 라면을 끓여드시고 계셨는데 어머니께서 라면을 한 입만 달라고 하심. 아버지께선 ㅇㅇ그래 하시며 한 입을 전달하심. 근데 어머니의 리액션이 좀 과하셨음.
어머니 : 어머 자기야!! 라면 진짜 맛있다~ 어떻게 이렇게 끓이지? 대장아 이리 와서 한번 먹어봐 이거 진짜 맛있어! 느이 아빠 라면을 이렇게 잘 끓이는지 몰랐네!
그렇게 맛있나 싶어서 제가 한번 먹어봄. 근데 그저 그랬음 진짜 그냥 라면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
저 : 엄마 배고파? 이거 ㅂ.. 어머니 : 그치? 맛있지? 자기 진짜 라면 잘 끓여!
전 그냥 그날따라 어머니께서 배가 많이 고프신가보다 하고 말았음. 근데 다음날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심.
어 : 자기야 나 라면 좀 끓여 주라~ 어제 먹은 라면 맛이 아직도 생각나네~ 진짜 맛있었나 보다!
아버지는 칭찬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라면을 끓이심. 어머니는 그걸 드시며 다시 폭풍 칭찬
어 : 역시! 자기 라면 끓이는 데 소질있는 거 같아! 내가 이때까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어!
??? 라면 끓이는 데 소질이 필요하단 걸 그날 처음 깨달음. 진짜 맛있게 드셔서 저도 한 젓가락 얻어먹어봤는데 걍 라면 맛이었음...
근데 이날부터 가족 중 누구든 라면먹고싶다는 얘기가 나오면 어머니께선 무조건 아버지를 시키심.
어 : 라면? 라면먹고 싶어? (큰 소리로)그래 그럼 우리 아빠한테 끓여달라고 하자! 아빠 라면 잘 끓이시잖아 그치? 자기야 라면끓여줘~
그렇게 아버지께선 당신께서도 모르는 사이에 라면요정이 되어갔음..
※ 편의상 아버지를 빠(아빠), 어머니를 마(엄마)라고 표시하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이상함을 느끼셨는지 한 마디 하심.
빠 : 근데 이거 라면을 왜 나만 끓이는 거 같지? 마 : 그래? 그럼 오늘은 내가 끓여줄게~
잠시 후 어머니께사는 라면을 가지고 오심. 불은 데다 물 양도 맞지 않는 3인분의 라면이었음. 맛이 없다고 제가 말하자
마 : 어유 엄마는 아빠처럼 맛있게 못 끓이겠다~ 자기야 나 물도 맞추고 시간도 맞게 했는데 자기처럼 맛있게는 못 끓이겠어~ 앞으로는 자기가 끓여주면 안 될까? 빠 : 그럼 그러던가 ㅇㅇ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정식 라면요정이 되어가심. 그러다 어느 날
마 : 자기야 나 오늘은 라면 말고 짜파0티가 먹고 싶다! 빠 : ㅇㅇ 그래
한 입 드신 후 어머니께서는 다시 폭풍칭찬을 하심.
마 : 어머 자기야 자기는 라면도 잘 끓이더니 짜파게0도 진짜 잘 끓이네! 이렇게 맛있는 0파게티는 처음이야!
???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인스턴트를 먹을 때마다 반복됨. 어머니의 간절한(?) 요구 > 아버지의 요리 > 폭풍 칭찬
이게 반복되다 보니 점차 아버지는 은연중에 집안의 모든 인스턴트 요리를 담당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니 어머니께서 "자기야 라면~" 하면 별 생각 없이 라면을 끓이시게 됨. 덩달아 요리에 대한 아버지의 자신감이 상승하기 시작하심...
어머니께서 하루종일 바깥에 계시던 날이었음. 그날 점심은 아빠가 하겠다고 하심. 앙념 오리불고기를 하겠다고 하시길래 기뻤음. 냉장고에 재워진 고기를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되는 거여서 걱정도 없었음.
빠 : 밥먹으러 와라~ 저 : 오리불고기했ㅇ... 아빠 이거 뭐야..? 빠 : 뭐긴 블루베리지 저 : 근데 이걸 왜 오리랑 볶아?
오리불고기와 블루베리를 거의 1대 1 비율로 볶으심ㅋㅋㅋㅋㅋㅋ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날 냉장고에는 밑반찬도 없던 날이었음. (어머니께서는 오리불고기를 믿고 외출) 동생은 메뉴를 보자 방으로 들어감. 꾸역꾸역 먹던 중 어머니께서 도착하심
저 : 엄마!!!! 아빠가 이상한 거 했어!! 마 : ...? 뭔데? 저 : 아빠가 오리불고기랑 블루베리랑 섞었어!! 맛 진짜 이상해..
전 이날 어머니께서 좀 이상하다고 느낌..
마 : 어머 자기 블루베리랑 오리불고기랑 섞은 거야? 이거 완전 퓨전이네 퓨전~ 자기 정말 창의적이다! 저 : 엄마 근데 블루베리가 따뜻해.. 마 : 왜 외국에서는 사과도 구워 먹는다잖아! 그게 영양에도 더 좋대! 넌 아빠가 이렇게 요리를 잘 해주셨는데 괜히 그런소리 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 저 : 그럼 엄마도 먹을래? 마 : 아니 난 많이 먹고 왔어 왜 이상해? 괜찮아 보이는데~
그리고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심. 전 밥을 비울 때까지 블루베리오리불고기와 함께였음^*^
그날 이후로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취향에 맞는 퓨전요리를 만들기 시작하심. 이때가 아마 요리의 과도기였을 거임. 그때 만든 음식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블루베리밥(단순히 둘을 비벼먹는 것) 치즈밥 떠먹는요거트플레인을 넣은 라면
정도가 있음. 대체로 일상적인 음식+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의 조합이었음. 어머니께서는 이것에 대해 전혀 터치를 하지 않으심. 그저 새로운 조합이라며 칭찬만 하실 뿐...
※ 몇 년이 지나 아버지께서 잠시 외출하셨을 때 저 : 엄마 근데 저번에 아빠가 만든 블루베리불고기같은 거 보고 왜 암말도 안했어? 마 : 그럼 이미 만든 거에 뭐라고 하니? 저 ; 그거 이상하지 않아? 난 도저히 못 먹겠던데 마 : 그래서 나도 안 먹었잖아 저 : ??? 그럼 아빠한테 왜 칭찬했어? 마 : 칭찬을 해야 계속 요리를 하지. 지금 봐. 얼마나 열심히 요리를 하시냐? 너 앞으로도 아빠기 한 요리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저 : 왜? 마 : 아빠가 요리를 안 하잖아. 그럼 내가 다 차려야 돼. 좀 이상해도 느이 아빠가 하시니까 얼마나 편하니~ 요즘은 또 잘 하시잖니?
아버지의 특이한 요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창의력에 감탄하시다가도 맛을 보겠냐는 질문에는 항상 "난 정석적인 음식이 취향이야~"라고 하셨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요리를 맛보이고 싶으셨는지 일상적인 음식을 하기 시작하심. 계란찜이나 고기굽기 같은 거ㅇㅇ. 이런 것들을 만들면 어머니께서는 항상 드시면서 칭찬에 칭찬을 하심. 맛있다, 어떻게 만들었냐, 훌륭하다, 음식점 차려도 되겠다 등등...
점차 아버지께서는 요리에 관심을 가지시고 요리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시기 시작하셨음. 해보고 싶은 요리를 따라하시고 몇 번의 실패(어머니는 여전히 칭찬머신)를 하시면서 점점 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늘어나기 시작함. 계란찜부터 시작하더니 스테이크나 탄두리 치킨같은 것도 하시게 됨. 재작년에는 곰국거리가 생겨 며칠 동안 곰국도 끓이심! (아버지의 곰국은 저희 집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됨☆)
덕분에 최근에는 저녁시간대의 모습이 좀 바뀜.
아버지가 바쁘지 않으신 기간. 저녁(아버지께서 바쁘신 기간에는 어머니께서 하시거나 각자 차려먹음) 저 : 엄마 나 배고파 마 : (전화기를 들어 아버지께 전화를 거신다) 응 자기야 언제와? 나 배고파. 오늘 저녁 뭐야? 저 : 엄마 밥은? 마 : 밥 안쳐 놔. 아빠 오신대.
아버지 등장 > 요리 시작하심
저와 동생이 밥과 밑반찬, 수저를 세팅하고 식사를 시작. 설거지는 제 담당. 저나 동생이 바쁘면 어머니 담당.
이상 아버지를 변화시킨 어머니 이야기였습니다. 써보니 별거 없는 글인 데다 생각보다 재미가...없네요... 역시나 머리속의 이야기와 직접 글로 전달하는 이야기는 차이가 있...큼. 제 글솜씨가 없는 탓이겠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