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여자들 사이에 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왕이 한 분 계십니다. 하도 두 여자가 만날 때마다 서로에 대한 질투 오브 질투를 해대니 왕의 스트레스는 장난 아닙니다. 한 여자를 택하자니 정실인 한 여자가 엉엉 울고 신하들도 그리 안 좋게 보일 것이고, 또 다른 한 여자를 택하자니 이 여자는 너무 이~뻐. 물론 한 쪽이 좀 온화하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뭐 양쪽이 모두 질투 스킬 만렙을 찍은 상태니 왕은 고민이 큽니다.
여기 고민에 빠진 왕의 이름은 고연불, 훗날 중천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며, 이 중천왕을 사이에 두고 사랑과 전쟁 고구려판을 찍고 있는 두 여인네들은 각각 왕후 연씨와 관나부인입니다.
연씨는 중천왕 즉위 원년 10월에 왕후가 되었습니다. 왕후 연씨에게는 중천왕의 총애를 받으며 그렇게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째 갑자기 자신과 비교하자면 듣보잡이나 다름없는 관나부인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왕의 총애를 빼앗아 갔습니다. 관나부인은 얼굴이 이쁘고 9자나 될 정도로 풍성한 머리길이를 자랑했다고 합니다(옛날엔 엘라스틴도 없었을 텐데 머리 관리하느라 굉장히 힘들었을 듯..). 남자가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당연한 일 왕의 관심은 당장 관나부인에게 집중됩니다(어쩌면 삼국사기에서 구체적으로 머리길이를 언급한 것을 보면 중천왕은 머리카락 페티쉬....음?!).
관나부인에 대한 중천왕의 총애는 점점 깊어지고, 이윽고 왕은 그녀를 소후(小后)로 삼으려고 합니다. 왕후 연씨 입장에서는 <What the XXXX>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왕후 연씨는 부랴부랴 중천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듣기로 서쪽 위나라에서 긴 머리카락을 천금을 주고 산다고 합니다. 옛날에 우리 선왕이 중국에 물건으로 예를 다하지 않아, 병사의 침입을 받고 달아나 사직을 거의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하니 이제 임금께서는 위나라가 하고자 하는 대로 사신을 보내 긴 머리의 미인을 진상하면, 그들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다시는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위나라 사람들도 머리 긴 여자를 좋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뭐 이뻤다고 하니 머리길이는 그닥 관계없을 거라고 보입니다만), 왕후 연씨의 이 발언은 상당히 수위가 쎈 것이었습니다. 중천왕의 아버지인 동천왕 때 관구검과 싸우다가 수도까지 털리고 간신히 내몬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한 것을 보면 왕후 연씨는 상당히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뭐 잘못하다간 왕후 자리도 위협받겠는데 지금 그녀 입장에서 물불 안 가리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중천왕은 이를 한 귀로 흘려버리고 모르는 체 하였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우리 조상들의 매우 훌륭한 속담처럼, 이 소식은 관나부인에게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관나부인은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왕후 연씨에게 역러쉬 당해서 본진 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중천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후가 항상 저를 꾸짖어 말했습니다. ‘농사짓는 집의 계집이 어찌 여기에 있느냐? 만약 스스로 돌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리라.’ 대왕이 나가셨을 때 왕후가 저를 해치려고 하는 뜻을 품은 듯하옵니다. 어찌하오리까?”
하지만 중천왕은 관나부인의 말 역시 흘러 들었습니다. 두 여인의 투기에 지쳤는지 왕은 기구라는 곳으로 사냥을 떠납니다. 관나부인은 다시 머리를 굴립니다. 왕후 연씨는 연나부 출신의 빽이 빠방한 집안 하지만 자기는 관나부 출신이기는 하지만 빽도 없이 그냥 미모빨 하나만 믿는 상황. 그녀는 한 가지 계책을 냅니다. 왕이 기구에서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자 관나부인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 나타나 펑펑 울며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후가 저를 이 주머니에 담아 바다에 던지려고 합니다. 대왕께서 작은 목숨을 살려주시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신다면, 어찌 감히 옆에서 다시 모시기를 바라겠습니까?”
“???!!!!!!!!!!!!!!”
왕은 즉시 왕후와 관나부인을 비롯하여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아 이것이 과연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조사를 합니다. 아마 관나부인이 이정도까지 한 것을 보면 왕후 연씨가 그녀의 목숨을 간간히 위협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조사 결과 이 모든 것이 거짓말로 들통납니다. 왕후 연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사건은 관나부인을 미모만 믿고 거짓말이나 하는 요녀로 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왕 역시 더 이상 구중궁궐의 암투는 이제 끝내야겠다고 했는지 관나부인에게 말합니다.
“물이 좋으면 물로 들어보내주는 수 밖에"
그렇게 관나부인은 자기가 말 한 그대로 물 속에 빠져 죽습니다. 왕후 연씨는 끌려가는 그녀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카더랍니다.
"인생은 실전이야 X만아"
이 사건은 단순히 두 여인의 질투라던지 미모 믿고 깝치다간 뒤진다던지 아니면 모함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런 사건이 아닌 왕후 연씨를 대표로 하는 연노부와 관나부인을 필두로 하는 관나부의 정치적 대결이었습니다. 하지만 관나부는 본래 그렇게 잘 나가는 세력도 아니었고, 연노부는 전통의 강자였기에 결국 중천왕도 관나부인이 그리 큰 잘못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노부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두 세력의 갈등 속에 관나부인만 물고기밥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중천왕이 정실 부인에게만 잘 해주기로 맹세했다던가 안 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