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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없는 어버이날이 겨우 하루 지나갔습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3129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살기가어렵다
추천 : 2
조회수 : 29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5/09 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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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빠의 임종도 지키고...임종후의 막막함이 밀려오던 그 새벽의 찬 공기가 아직도 그대로인 거 같은데...

아빠를 보내드린지 벌써 며칠이 지났고 삼오도 지냈고.

길고긴 하루 였던 어버이날도 지나서 오늘이 5월 9일이 되었네요....

핸드폰에 오는 광고나 프로모션은 어찌나 어버이날을 강조하던지... 볼때마다 아득하더군요.

작년만 해도 엄마 아빠 선물을 뭘로 할지 고민하며 동분서주하던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세삼 느낍니다.

작년 이맘때 찍은 사진들을 보니 눈물이 나네요..

가을까지만 좀 더 버텨 주길 바라며 힘주어 잡고 싶었던 시간도 

지금의 힘주지 않는 시간도 결국 눈물처럼 흘러 갑니다.


평소 아빠는 저에게 큰 존재나 무서운 그런 존재가 아닌 친구 같고. 

남한테 폐끼치지 말고 살자는 것이 생전의 주관이셨고

누구에게나 편하게 자리를 내어주는 다정한 공원벤치 같은 분입니다. 가족을 위하고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교과서 같은 아빠였지요...

평소에도 뭐 해준다 고 하면 자식들 짐지울까봐 한사코 거절하시다가 두번 세번 강하게 제가 고집 부려야 겨우 승낙하시고 받으셨어요.

이제 생각해보면 몇년간을 구형 핸드폰 잔고장을 참아가며 쓰시는 게 너무 안스러워보여서 아들 딸이 고집부려서 최신형 핸드폰을 장만해드렸는데

아끼고 조심스럽게 쓰셨어요. 

겨우 여덟달도 채 못써보셨는데 핸드폰은 주인을 잃었네요.... 이럴줄 알았으면 더 일찍 고집부려서 해드릴껄 하는 후회가 됩니다.


작년말 암을 알게된 것도 우연히 잔병치레가 많아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하더군요. 

시기가 많이 늦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전이도 되었답니다....

큰 벽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빠의 성품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비밀로 했고 그냥 암인데 좀 아플거라는 정도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작년말 시작된 6개월여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항암치료를 7회동안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으나...

예기치 못한 면역저하로 폐렴과 폐혈증이 생기고...시술을 받으신 것이 2회. 큰 수술을 1회. 그리고 중환자실을 2번....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빤 중간 중간 고비 고비마다 잘 버텨 주었고...

이러면 어느정도 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다며 큰 희망을 걸고 더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다 마지막날 즈음엔 진통 패치.진통 주사. 먹는 진통제 등 최대치로 썼으나 고통이 하나도 줄지 않고 그대로여서 너무 힘들어 하셨는데

이젠 아빠도 아프지 않아도 되고 그걸 지켜 보느라 엄마가 더 슬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산자의 비겁한 변명을 하고 있네요.

사실상 주치의도 그 당시 고통이 엄청날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던 터였으나...지켜본 우리들은 그 정도 일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참 깔끔하고 착한 아빠였어요.

병원에서도 자투리 종이에 메모를 하셨어요...날짜와 그날 그날 몸 상태 그리고.

병문안 오셨던 분들 성함을 적고 들고오신 돈이나 선물 등을 꼼꼼히 기록해두었어요.

받은 재물들은 다 빚이라며 훗날 우리가 갚아야 한다며 꼼꼼히 정리해두셨어요....

게다가 병문안은 굳이 사람들 부담준다며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해서 아주 친한 지인들 친구들 해서 한 10명 안에 알렸었네요.

후에 가서야 많은 분들께 알렸고 병자 성사도 받으셨습니다.

큰 수술을 한번 하실땐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수술이었는데 그 수술때 아빠 형제들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한사코 말씀하셔서 엄마 저 동생만이

수술실 앞을 지켰었네요. 그래도 그때 수술 잘 마치고 마취도 깨어나서 우린 너무 너무 기뻤고 좋았습니다.

어찌 보면 아빠가 준 짧은 큰 선물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주치의는 그날 수술을 안하면 손못써보고 죽는 거고. 수술을 하여야 하는데 수술을 하기엔 너무 약해진 상태라

수술중에 잘못될 확률이 높다고 하셔서... 보호자들이 선택하라고 하드군요.  가혹한 현실이지요?

병 앓고 처음으로 아빠앞에서 온 식구들이 다 울었네요. 그때 아빤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울지말라고 버럭 하셨네요.

정말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맘으로 수술을 선택했고 그 기로에서 살아돌아와서 너무 기뻤어요.

수술 2일후 외가쪽 식구들이 모두 다와서 걱정해주었고 아빠도 너무 기뻐 하셨어요. 본가 식구들도 안오는 병문안을 와서였던거 같긴합니다

사실 수술전에도 외삼촌들은 수시로 전화해서 상황 확인하고. 좋다는 거 보내주시고. 시간될때마다 찾아와주시고. 하셨어요.

지금 돌아봐도 너무 고마운 일들이지요.

반면 친가쪽 사람들은 대단 합니다.

돌아가시기 며칠전에도 컨디션이 너무 않좋아서...의사가 오늘 넘기기 힘들다 해서.

엄마가 친가쪽에도 전화를 해서 그런 이야길 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가관이었네요.

자기가 직장에서 간당간당해서 당장 움직이기가 좀 어렵답니다. 

그래도 또 감사하게도 아빠는 그날을 무사히 넘기셨어요...

그리고 다시 엄마는 전화해서 안와도 된다고 했지요. 그리고 그들은 오지 않았네요. (장례식엔 왔지만요.)

친가쪽 통화는 저와 엄마만 이 내용을 알고 아빠껜 비밀로 했네요.(맘까지 아프게 해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참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냥 남인가 봅니다.

사실 남보다 못한 거 같아요.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친가쪽 사람들은 마치 욕먹기 싫어서 억지로 온거 처럼 그래 보여서. 끝까지 별로 였습니다.

친가쪽 사람들때문에 아빠가 맘고생 한 거 생각하면 너무 너무 화가 나고 분하고 이가 갈릴 정도지만.

맘고생한거 다 쓰자면 사실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기에 그건 이제 기억에서 지울렵니다.

아빠도 생전 그냥 덮어두고 가셨으니 장례식까지만 친가쪽 얼굴보는 거 참고 그냥 그들 자체를 잊고 살기로 했습니다. 

우린 이제 친가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어찌보면 6개월간 동생도 저도 엄마도 아빠없는 빈자리 예행 연습을 한 거 같습니다.

장례도 치르고 다 했지만 아직은 아빠가 병실에 계실 거 같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 같고 그렇습니다.

아직도 안방 티비가 켜져있고 침대에서 핸드폰을 만질거 같아요.

임종후의 막막함 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앞은 아직도 어둡고 막막하네요..

나이먹고 아빠 없다고 징징 대는 거 같아 좀 그렇지만 있던 존재의 부재는 참 크네요.

그래도 힘내서 셋이 우리의 생에 최선을 다하기를 서로 다짐했습니다

몇줄 적어볼까 했는데 길어졌네요.^^ 다들 편안한 저녁되세요.

그리고 아픈 분들은 모두 쾌차하시길 기원할께요...








출처 나의 가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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