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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옹정제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 한림원의 손가감이라는 하위 관리가 상소를 올렸습니다.
"형제들과 가까이 지내고, 매관매직을 금하고, 서북 전사를 중지하시길 희망합니다" 라는,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는데 옹정제는 노발대발하며 장원학자 주식을 불러 말했습니다.
"손가감이란 작자는 왜 이렇게 분별없이 오만방자한 언동을 하는 것이냐?"
그러자 주식 왈.
"손가감이 제멋대로 구애하지 않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그의 배포는 존경할만하지 않습니까?"
이에 옹정제는 한참 생각하다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도 손가감의 배짱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고 인정했습니다. 후일 손가감은 정 6품 호부 운귀사雲貴司의 주사主事로 발탁되었습니다.
2. 즉위 초 옹정제가 새로 주조된 옹정통보를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손가감이 강희제 시대에 주조한 동과 납이 절반씩 섞인 주전의 합금 비율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고했습니다. 약삭빠른 백성들이 동전을 대량으로 사들여 녹인 뒤 구리그릇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아 폭리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강희제 시대부터 있었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아들은 아버지의 법을 3년간 고치지 않는 것이 효였기 때문에 옹정은 손가감의 의견을 받아들이진 않았으나 바르게 직언하는 성품을 칭찬하며 정 5품 감찰어사 직에 봉합니다.
3. 장원학자 주식은 황자들의 교육을 책임질 정도로 옹정제가 믿고 신뢰한 신하입니다. 한번은 서북 전쟁을 반대하였다가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워지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그를 만류하며 말합니다. "병을 고칠 수 없다면 짐이 어찌 말리겠느냐마는, 치유될 수 있는 병이라면 대신도 물러나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 이에 주식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 옹정이 서거할 때까지 신하로서 극진히 보필하였다 합니다.
4. 옹정제는 도교에 심취한 황제였으나 불교 또한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시랑侍郞 심근사는 불교 신봉을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불심이 강한 옹정에게 종교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으나 황제는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심근사가 죽은 후 옹정제가 어린 아들이 장례를 치루는 것을 돕도록 이부의 사관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5. 옹정제 제위 시기 '모선귀공' 이란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모선' 이라는 것은 세금으로 거두어지는 쌀, 은의 경우 중간에 부패하여 양이 줄어들 수가 있었으므로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액수를 세금으로 내는 법이었으나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관리들이 중간에서 때어먹는 일이 잦았습니다. 폐단이 너무 심해 강희제도 손대지 못한 법을 옹정제가 처리하기 위해 만든 법이 모선귀공이었습니다. 옹정제는 기존 모선 제도에서 중간 과정을 하나 더 만들어 각 지방관들이 사사로이 거두었던 모선을 일괄적으로 성省 정부에 납부한 다음 다시 주현으로 공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로서 지방 정부에서 많이 거두려고 애쓸 일이 없어져 세수도 늘고 백성들의 부담도 줄이게 되었으나, 초기에는 많은 반대에 부딛혔습니다. 먼저 주식이 이렇게 고했습니다.
"모선귀공은 전대의 법을 위반합니다. 또한 경로가 복잡해져 모선이 증가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후에도 주식은 반대 상소를 줄기차게 올렸고, 심근사와 유란 또한 새 법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옹정제는 이들을 용서하고는 '직언을 한 용기를 높이 산다' 는 내용의 교지를 내려주었습니다.
6. 옹정 5년 어사 유란이 복건성에서 일하던 중 관할 현의 곡물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고는 총독에게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총독이 무시하자 유란은 화가 나 벽에 머리를 찧었고, 총독은 황제에게 유란이 경망스러워 채통 없는 짓을 했다고 일렀습니다. 하지만 옹정은 유란이 충직한 마음으로 점시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한 것이며 오히려 직무에 충실하다고 유란을 칭찬했습니다.
7. 감찰어사 이원직이 부임한 이후 8개월간이나 수십 차례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중 한 상소는 대학사들을 질타하는 내용으로, 조정에는 황제에게 복종만 하지 논쟁이 부족하다고 고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대학사를 비판하는 듯했지만 비난의 화살은 옹정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상소가 주장하는 바는 "논쟁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황제 너한테도 있다" 이것 아닙니까? 하지만 옹정은 "용감한 발언이다. 그 태도를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 며 귀한 과일인 여지를 나눠주었다 합니다.
<-여지
8. 옹정제는 항상 용감히 간언하는 신하를 좋아했습니다. 일례로 사제세라는 이가 간관의 신분으로 옹정이 가장 신임하는 대신 전문경을 탄핵한 적이 있었습니다. 옹정제는 진노했으나 사제세를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간관을 죽이는 것이 대대로 금기로 여겼기 때문에 사제세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간관을 죽이는 일이 별것 아니라서 넘어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용감하게 직언하는 이를 죽인다면 앞으로 누가 감히 나서서 진실을 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