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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만卞榮晩>
신채호는 당시 법관이었던 변영만 선생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변영만은 신채호가 세상을 떠난 후 1936년 6월 중앙中央 4권 6호집에 신채호와의 일화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의외롭게 신채호의 유쾌한 면모들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1. 28년 전 제석除夕(음력 12월 30일 그믐)날, 그는 우리 집에 와서 수세守歲(밤을 세우는 것)하기로 하였다. 술 몇 잔씩 같이 먹고 난 후 밤이 깊도록 무슨 이야기를 서로 하다가 그는 차차 눕기 시작하였고, 나도 그를 따라 흉내를 내던 중, 별안간 코 고는 소리를 천둥같이 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그의 귀에다 대고 "아. 여보시오! 이렇게 수세하는 법이 어딨소?" 하니, 그의 회답인즉,
"상관있소? 잠자면서 수세합시다 그려!"
2. 그는 영문을 독학하여 기본(E. Gibbon)의 로마사까지 자유자제로 송독誦讀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neighbour 이란 단어를 [네이-그흐-바우-어] 로 발음하였다. 나는 끽경천만喫驚千萬(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가만히 말했다. "그 중에 묵음이 있으니 [네이버] 라고만 발음하시오."
"나도 그거야 모르겠소? 그러나 그건 영국인들 법이겠지요. 내가 그것을 꼭 지킬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이오."
3. 누가 새로 잡지를 발간할 즈음 나에게 순한문純漢文, 순고전純古典식의 축사를 얻으러 왔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불쾌한 허락을 해 놓고는 동생 영태와 단 둘이 속이 상해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나는 구제받은 죄인의 기분으로 그에게 사정의 전말을 보고하고, 나 대신 축사 한 수만 써 달라 애걸하였다.-불론 한번 거절당할 것을 예상하면서. 그런데 그는 의외로 흔쾌히 승낙하고 다음날에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하였다.
다음날 그 서류를 받은 영태는 일별一瞥한 후, "이것은 순한문도 아니고 축사도 아니니 우리 형님이 부탁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는 취지로 항의하였더니, 그는 "일이 참 잘못되었다" 고 하며 매우 불안한 표정을 지었으나 워낙에 고집불통이었기에, "그대로 잡지사에 보낸다고 해서 안 될 게 무엇 있느냐?" 고 하고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다 다시 들어와 "잘못 지어 가지고 왔다는 사실이나마 형씨가 아시도록 적어 놓고 가야겠다." 라고 말하고는 네모난 삿갓을 쓴 채 마루 끝에 서서 종이 조각에다 연필로 한시漢詩 한 수를 적어 놓고 갔다. 넉넉잡아 1분간의 업적業績이다.
我誤聞時君誤言
欲將正誤誤誰眞
人生落地元來誤
善誤終當作聖人
내가 잘못 들을 때 자네도 잘못 말했지
바로 잡으려 해도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인생으로 태어난 게 원래 잘못이거늘
잘 틀리는 자가 결국에는 성인이 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