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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인간에게 이런 면이?
게시물ID : history_120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2
조회수 : 7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14 17:51:34
현종 때의 대표적인 재상인 이림보는 현종조 역대 재상들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재상을 역임(734-752, 개원 22년-천보 11년)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구밀복검의 고사로도 알려졌듯이 굉장히 음험한 사내라는 것이겠죠. 뭐 실제로도 음험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만.. 그리고 당대 사람들로부터도 교양 없다고 비웃음 당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재상의 자리에 이림보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뒷담화로만 했겠지만요. 



하지만 이런 이림보에게 꽤 뜻밖의 일면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장언원이 쓴 <역대명화기>에는 그의 그림에 대해 굉장히 아름답다고 표현을 할 정도로 예술에 어느정도 소질도 있었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학문적 교양이 없다고 비웃었다지만 그는 국자사업(국학의 부학장. 말하자면 대학교 부총장)에 있기도 했고 관직에 있을 때 국자감의 기강이 진흥했다고 하니 아예 학문적 교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에 대해 몇가지 말해보자면 ..


① 조(租)*용(庸)과 방정(防丁 : 국경경비병)의 수송에 따른 번잡한 50여 만 조(條)에 이르는 서류를 주(州)마다 2통으로 개선하고 조용조 등으로 수도로 수송하는 물품의 질을 인정하는 권한을 주현장관에게 위임했습니다.

② 737년(개원 25)에 당왕조의 마지막 법제 개혁을 주도. 현존 당률과 주석서인 소의가 이때 간행되었습니다.

③ 같은 재상이었던 배요경의 개혁(수도 장안의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부족을 조운의 개선으로 해결)으로 파생된 곡물의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저하를 억제하기도 했습니다.

④ 변경의 이민족을 무장으로 기용했습니다. 이림보는 「문인이 장군이 되면 화살과 돌에 맞는 것을 겁내므로, 한미한 가문 출신자나 번인(오랑캐)을 기용하는 것이 좋다. 번인은 전투를 잘하고 게다가 용기가 있다. 또 한미한 가문의 출신자는 당파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는 능력 위주의 인사정책을 폈고 그로 인해 과거 출신자들과 자주 충돌하였습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개원 24년(736년)에 있었던 삭방절도사 우선객의 상서 기용 사건이었습니다. 우선객은 현의 소리로 시작하여 군공으로 세워 지금으로 말하자면 야전군 사령관급인 절도사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절도사 재임 당시에도 재정을 충실하게 하고 무기를 충분히 갖추는 등 뛰어난 행정 능력을 겸비한 사내였습니다. 이림보는 우선객의 상서 기용에 찬성을 보였고, 당시 과거파의 필두였던 장구령(당시 시문의 명사였습니다)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이림보는 <능력과 재주가 있으면 됬지? 학문의 높고 낮음이 중요함?>이라고 깠고 장구령은 <허 님하 난 오랫동안 난 조정에서 조칙 이런 거 복잡한 일을 해왔음. 그런데 학문적 소양도 없고 벽지에서 관직 생활한 우선객이 이런 거 할 수 있을 거 같음?>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바통은 현종에게 넘어갔고, 당시 과거파에게 좀 질려있었고 우선객 같은 실제 업무에 능한 소리들을 중용하고 있던 현종은 이림보의 손을 들어줍니다. 결국 장구령은 관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렇다고 현종이 장구령 자체를 나쁘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구령의 능력만큼은 현종 역시 인정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뭐 이후의 이림보는 당나라 조정의 제대로된 흑막으로써 재상의 자리에 내려온 이후에도 자신들의 정적을 하나둘 끔살시키고 후임 재상들을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고 조정의 업무 중심을 궁에서 자신의 사택으로 옮겨왔습니다. 물론 그의 권세도 현종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입한 새로운 간신인 양국충 등의 등장으로 점점 약해지지만 그는 삭방절도사를 겸하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막대할 수 없었고, 당시 어사중승이고 권세를 키워가던 안록산도 그의 언변 하나하나를 신경쓰면서 그 앞에서 공손히 굴었다고 합니다. 



여튼 마지막까지 양국충을 견제하고 또 견제하였지만 늙은 그에게 밀어닥친 병마는 어찌할 수 없었고 그는 막대한 권력과 재물에 둘러싸여 죽었습니다. 사후 그는 양국충이 반역죄를 뒤집어쓰게 되어 무덤에서 관이 꺼내어 박살나고 시체는 모욕당했습니다. 그리고 서민의 장으로 치르고 다시 묻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주도한 인물은 이림보가 키워주고 나중에 재상까지 한 진회열이었습니다. 진회열은 이 공으로 국공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뭐 중요한 건 어쨌든 이림보는 간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간신인데 우리 생각과는 다른 저런 면이 있다는 거지 저런 면이 간신인 그의 과오를 덮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뭐 양국충보다야는 좀 더 뛰어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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