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가입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2015년 12월, 더민주(당시 새정치민주연합)가 온라인으로 입당 신청을 받기 시작했을 때, 10만 당원이다 뭐다 해서 들뜬 분위기일 때도 당원 가입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야권 성향이긴 했지만 열렬한 더민주 지지자는 아니었다. 단지 좋아하는 정치인 몇 명이 그 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원 가입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더민주를 지지하긴 했지만 아주 거창한 이유로 지지하는 건 아니었다. 이상한 정권 아래 우리나라가 점점 망가져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래. 그나마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제1야당이 더민주이기에 그 당을 막연히 지지해왔던 것이다. 공약으로 따지자면 ‘월급을 300만 원으로!’를 외치는 정의당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중간에 잠깐 ‘혹’ 한 적이 있었다.
안철수가 탈당하면서 말만 하면 친노패권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당내 사쿠라(?)들을 데리고 나갔을 때. 그리고 표창원을 시작으로 문재인의 영입 인재가 하나둘 발표되었을 때. 아! 이제는 조금 기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더민주에서 주최한 디지털미디어콘텐츠 공모전에 두 번 응모했고, 그중 한번 열정상을 받았다. 아, 당명 공모에도 응모했었지. 5만 원짜리 온누리상품권을 받으러 국회에 방문했을 때, 더민주 관계자에게 ‘현수막을 왜 새누리보다 많이 달지 않느냐’느니, ‘걔네가 현수막으로 뻥카치는데도 왜 가만히 있느냐’는 등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정도로 애정을 표현했다. 당시 대표 문재인 의원실 문패 앞에서 셀카도 왕창 찍고 왔다.
확신이 없었다.
이 정도면 당원으로 가입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백수였던 나는 (지금도 백수다) 혹시 당적이 취업에 어떤 불이익이 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신이 없었다. 내가 이 당에 당원으로 있어야 할 강렬한 동기가 없었다. 사실 나 하나쯤 당원으로 있든 없든 그 당에선 중요하지도 않을 거고, 나 역시도 그랬다. 당원 가입하면 뭐해? 내가 좋아하는 의원 몇 명이 있을 뿐이고, 여당보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의원이 몇 명 더 있을 뿐이지. 그 당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자기 권력 유지하려는 국회의원들이 완장 차고 있는 그런 곳 아니야?
2월 23일,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야당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느꼈다. 물론 그들은 국민을 위해,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 바쁘게 뭔가를 하긴 해왔을 거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국민에게 국회가, 당이 뭘 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필리버스터로 야당에 괜찮은 의원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더민주가 뭔가를 하긴 하는구나, 그래도 그들이 우리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목소리를 내는구나. 처음으로 우리가 마냥 ‘방치’되어 있지만은 않음을 느꼈다.
그래도 확신은 안 생겼다.
필리버스터 의원에 대한 후원이 이어졌다. ‘후원은 못 하지만 당원이라도 가입할까?’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필리버스터 열풍에 즉흥적으로 당원 가입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또 보류했다. 필리버스터는 분명 고마웠지만, 그것만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는 않았다.
3월 2일.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입당 신청을 했다.
“아마 우리가 질 겁니다. 하지만 우리부터 지는 게 낫지, 어떻게 국민더러 지라고 합니까”
단 세 마디였다. 소심하고, 더민주를 못 미더워하고, 당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내가 더민주에 가입한 이유. 은수미 의원의 저 세 마디 말이다. ‘김어준의 파파이스 87화 (은수미와 필리버스터)’에서 은수미 의원이 했던 말이다.
<김어준의 파파이스 87# 은수미와 필리버스터 1 : 58 : 00>
저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원 가입을 미루면서 ‘더민주를 믿어볼 만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국민을 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다.
더민주에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안다. 거기에 정말 국민만을 생각하는 사람만 있진 않다는 걸 안다.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많다. 개중에는 분명 기업인한테 뒷돈 받은 사람도 있을 거고, 다른 당이랑 쿵작쿵작해서 자기 몸값 올리려는 의원도 있을 것이다. 선거 때만 고개 숙이고, 당선되고 나면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마냥 거드럭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민주당원으로 가입한 이유,
사람들이 묻는다. ‘왜 더민주에 당원 가입했냐’고. 예전에는 그 질문에 나 스스로도 이해할만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당원 가입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더민주에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국민더러 지게 하느냐고, 우리부터 지는 게 낫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그래도 거기엔 있으니까요" 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