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 트로피를 바라보는 4강 진출팀 사령탑과 선수들의 표정은 결의로 가득 찼다. 이제 두 경기만 치르면 트로피의 주인공이 가려진다. 2014 하나은행 FA컵 4강 대진이 완성됐다.
2014 하나은행 FA컵 6라운드(4강) 대진 추첨 및 미디어데이 행사가 25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다목적회의실에서 열렸다. 올해 FA컵 4강에는 전북현대, FC서울, 성남FC, 상주상무 등 K리그 클래식 팀들이 진출했다. 대진 추첨에 따라 상주상무(1번)와 FC서울(3번), 전북현대(2번)와 성남FC(별)가 각각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FA컵 4강전은 10월22일 열린다.
이번 추첨은 결승전 대진까지 적용된다. 결승에 진출하는 두 팀은 이번 추첨 시 부여받은 추첨 번호를 비교해 낮은 숫자 팀의 홈 경기장에서 결승 경기를 개최한다. 단 별은 2,3보다는 높은 숫자이지만 1에 대해서는 낮은 숫자이다. 즉, 별을 뽑은 성남은 2,3번을 뽑은 전북이나 서울과 결승에서 만나면 원정 경기를 치르지만 상주와 만나면 홈에서 경기한다.
FA컵 4강에 진출한 감독들은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은 FA컵 역대 최다우승 타이(포항, 4회) 기록에 도전한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1998년 이후 16년 만의 FA컵 우승 도전에 나선다. 이상윤 성남 감독대행은 시도민구단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박항서 상주 감독은 전역자들이 대거 빠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군인정신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이다.
FA컵 4강전의 묘미를 미디어데이를 통해 미리 만나보자.
박항서(왼쪽) 상주 감독의 도발에 난처한 웃음을 보이는 최용수 서울 감독.
상주상무 vs FC서울(상주시민운동장)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양 팀 사령탑의 입담 대결이 볼 만했다. 박항서 상주 감독은 시종일관 서울을 도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최용수 서울 감독은 조용한 자신감으로 맞섰다.
두 팀은 올 시즌 K리그에서 두 차례 만나 1승씩을 나눠가졌다. 두 경기 모두 치열한 한 점차 승부였다. 공교롭게도 상주는 서울전 두 경기에서 모두 1명씩 퇴장 당하며 어려운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박항서 상주 감독은 “서울과 홈에서 붙어 다행이다. 서울이 최근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 홈이다. 개인적으로 지도자 생활하면서 FA컵과 인연이 없었는데 서울 이기고 꼭 결승에 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서울은 앞선 FA컵 3경기에서 모두 연장전 혈투를 벌였다. 포항과의 4라운드(16강) 경기는 연장까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2로 이겼다. 부산과의 5라운드(8강)는 0-1로 뒤지던 경기를 1-1로 만든 뒤 연장 끝에 2-1로 뒤집는 저력을 과시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4강까지 올라오는데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1998년 이후로 FA컵과 인연이 없었다. 4강에 오른 팀은 실력 차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상무와 원정 단판 승부를 치르는데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상주와 서울의 대표 선수로 참석한 권순형과 김용대도 굳은 결의를 드러냈다. 전투복을 입고 미디어데이 행사에 나선 상주 권순형은 “(10월 FA컵 4강을 앞두고) 9월에 전역자가 많아 분위기가 어수선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잘 준비해 군경팀 첫 4강 진출에 안주하지 않고 결승에 가겠다”는 출사표를 밝혔다. 서울 김용대는 “4강까지 힘들게 올라왔다. 최근 원정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여세를 몰아 승리하고 싶다”고 했다.
박 감독이 먼저 도발했다. “서울전에서 공교롭게도 한 명씩 퇴장당한 가운데 이기고 졌다. 이번 경기는 퇴장을 당하지 않고 경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박 감독은 “우리 골키퍼 홍정남이 FA컵 승부차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최용수 감독에게 미리 말하는데 우리는 무조건 승부차기까지 갈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최 감독은 “참, 상주가 우리와는 묘하게 얽힌다”며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두 팀 감독에게 ‘4강에서 만나고 싶은 팀은 원래 어디였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최 감독은 “사실 어제 자체적으로 ‘내일 FA컵 추첨하는데 누구 뽑을까’ 물어봤는데 선수단이 어느 한 팀을 지목했다. 숨길 이유가 없다. 성남을 꼽더라. 이상윤 감독대행께 죄송하지만 상당수 선수들이 택했다. 그래서 반드시 성남을 뽑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선수들이 연이은 원정 경기에 지쳐 성남을 뽑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솔직히 여기 오기 전 선수들에게 물어봤는데 (상대팀으로) 서울과 전북 이야기는 안 하더라. 선수들이 전북은 곤란하지만 성남은 해볼 만하다고 하더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 말은 들은 이상윤 성남 감독대행은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박 감독은 이어 “우리 팀에 빅클럽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울과는 잘 하는 편”이라며 다시 한 번 ‘타도 서울’을 외쳤다.
최 감독은 끝으로 결승에서 만나고 싶은 팀으로는 전북을 꼽으며 “FA컵 자체가 팬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결승에서 전북과 만나 많은 관중 앞에서 재미난 경기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박 감독이 가만히 있지 않다. “최 감독이 착각하고 있다. 그건 우리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 홈이니 서울이 이길 확률이 낮다. 최 감독은 AFC 챔피언스리그나 신경 쓰시고 FA컵은 우리에게 양보하라. 괜히 체력 낭비를 하지 마라”고 말해 또다시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박 감독은 “전북이든 성남이든 상관 없다. 결승 가면 최선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일단은 서울 이기는 것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최강희(왼쪽) 전북 감독의 능청스런 말투에 이상윤 성남 감독대행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전북현대 vs 성남FC(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과 4강 맞대결이 결정되자 이상윤 감독대행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K리그 클래식에서 1위를 달리는 데다 ‘닥공(닥치고 공격)’이 되살아나고 있는 전북은 FA컵 4강에 진출한 모든 팀들의 기피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양 팀 감독은 차분하게 출사표를 밝혔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우리는 작년에 FA컵 결승을 홈에서 치렀다.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실패했다. 올해 FA컵에 도전하는 자세는 선수들이나 나나 남다르다. 포항이 지난해 우리와 경기를 이기면서 상승세를 타 리그 우승까지 했다. FA컵이 리그 중간에 열리는 대회지만 팀에 끼치는 영향 크다고 본다. 여기까지 왔으니 우승이 목표고 준비를 잘해서 올해는 꼭 우승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 감독대행은 “전북현대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최강희 감독님은 제가 좋아하는 분이다. 선수 시절에도 저에게 모범 답안을 주신 분”이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곧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했다. 그는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보면서 브라질 우승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우승하지 못했다. 독일의 우승 과정을 보면 (단판 승부에서) 어떻게 우승해야하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라며 “전북이 강한 건 사실이다. 저 역시 버겁고 어렵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준비를 잘 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은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국으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우승은 전통의 강호 독일에게 돌아갔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북이 현재 분위기상 우승이 유력하지만 일화 시절 최강 구단으로 손꼽힌 성남이 우승 DNA를 되찾아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겠다는 게 이 감독대행의 생각이다.
FA컵 우승은 두 팀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북은 지난해 포항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빼앗긴 한을 푸는 동시에 대회 최다우승 타이 기록에 도전한다. 반면 성남은 시도민구단 전환 이후 어려운 구단 사정을 일신하고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FA컵 트로피가 절실하다.
이 감독대행은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면서 어려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FA컵이 더욱 절실하다. FA컵 우승을 차지해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면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상주가 결승에 올라왔으면 좋겠다”며 “확실한 것은 시민구단의 롤모델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이다. 절실함을 발휘해 FA컵 트로피를 거머쥐겟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은 이 감독대행의 부푼 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는 “이상윤 감독대행이 말과 행동이 다른 것 같다. 추첨하고 내려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굉장히 곤란한 표정으로 제 옆을 지나갔다. 그래놓고는 결승 간다고 한다. 꿈을 깼으면 좋겠다”며 개그 본능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이어 그는 “여기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상주는 피하고 싶었다. 박항서 감독님이 유일하게 선배님이시고 항상 경기하면 떼를 많이 써서 이번에는 피한 게 다행”이라며 너스레를 떤 뒤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개인적으로는 작년 FA컵 준우승 한을 풀어야 한다. FA컵이 리그 중간이니만큼 상승세 이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결승을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5라운드 MOR(맨오브더라운드)에는 전북 외국인 공격수 카이오가 뽑혔다. 카이오는 8월13일 열린 강릉시청과의 5라운드 경기에서 1-2로 뒤진 후반 막판 두 골을 뽑아내 극적인 3-2 역전승을 이끌었다. 카이오는 상금 100만원과 트로피를 받았다.
글=오명철 사진=FAphotos
FA컵 5라운드 MOR로 선정된 전북 카이오(왼쪽)가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있다.